영란
공선옥 지음 / 뿔(웅진)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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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영란과 익명의 영란

                         

                                       공선옥의 소설 [영란 (뿔, 2010)]을 읽고

   

   

  목포에 가본 적이 있던가. 없다.

  아니, 있다. 홍도에 가느라 거쳐 갔고, 제주를 배를 타고 갈 때, 완도를 가느라, 해남을 가느라, 진도를 가느라 거쳤던 곳인데 정작 목포에 머문 시간들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가본 적이 없는 게 맞다. 내게 목포는 그런 곳이다. 익숙하고 친숙해서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다는 것을 ‘영란’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어쩌면 그런 목포처럼 내 친구 영란이도 그렇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문득했다. 영란이란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슬픔의 사람’인 친구의 ‘슬픔’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것인지 ‘슬픔’을 돌보 적이나 있었는지 돌아보게 만드는 책, 익명성 속의 ‘영란’은 그 책을 덮을 때의 묵직함만큼이나 듬직해졌다. 무게를 요구하지 않으면서 무겁고,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슬프고, 눈물이 나지 않으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공선옥, 처음 만난 서른 언저리 ‘오지리에 두고 온 서른 살’이후,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작품에 따라 기대치가 높아졌다가 낮아졌다가를 반복하여도 새로운 책을 써내면 은근 기대하면서 사게 되는 작가가 몇 있는데 그중 포함되어있다. 일테면 [유랑 가족]은 좋았는데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2%쯤 부족했다. 사건을 많이 벌려놓고 마무리에 쫓기는 드라마들처럼 끝이 조급했다. 산문집 [자운영 꽃밭에서 나는 울었네] 속의 진솔한 글이 좋은데 [수수밭으로 오세요]는 너무 억지스러웠다. 그래도 첫 소설집[피어라 수선화]의 넘치는 생기와, [마흔에 길을 나서다]의 다양한 밑바닥 이웃들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이고, 신산한 삶을 꾸려가는 여인들의 이야기가 미사여구 없이 날 것으로 살아있는 그녀만의 글을 좋아한다.

  첫 작품부터 일관되게 끌고 가는 가족, 다양한 작품 속에 어떤 식으로 조합된 가족이든지 그 안에서 좌충우돌, 해피엔딩을 꿈꾸는 우리 이웃들의 소박한 소망을 모성으로 생생하게 담아 놓는 그녀에게 감탄한다.

   

 

  ‘영란’은 슬픔과 사랑의 이야기다.

  ‘나’의 옛집과 그 집에 피어나던 장미와 그 장미 그늘 아래서 사랑을 나누고 살던 ‘나’가 사고로 아들을 잃고 그 여파로 남편을 잃고 빵과 막걸리로 하루하루를 버티다 말조차도 잃어가던 어느 날, 남편 선배의 친구이자 소설가인 정섭을 만난다. 갑작스런 친구의 부음을 전해들은 그는 홀로 남겨두면 위태로울 ‘나’를 데리고 목포로 간다. 그리고 둘은 헤어져 버린다. ‘나’는 무심결에 따라 들어간 목포의 ‘영란여관’, 그곳에서 ‘나’는 홀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수옥이와 한 때의 사랑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할머니, ‘나’를 보며 가슴이 두근대는 ‘완규’를 만나 ‘영란’으로 살아간다. ‘영란’으로 살면서 다시 부활하는 가족, 아니 식구라는 표현이 맞겠다. 작가에게 훈훈한 가족은 밥상을 같이 나누는 ‘식구(食口)’일 것이다. 어려울 때 더운 찌개 냄비에 서로 숟가락을 담그며 나눠먹는 밥이거나 술의 뜨거움이 목을 타고 내려갈 때 설움도 따라 내려가면서 위장을 따뜻하게 해주리라.  그 희망을 어렸을 때 먹어본 ‘병어찜’ 한 냄비로 받아들었다. 내 친구 영란이도, 익명의 영란이도 그 밥상에 함께였으면 좋겠다. 맛있겠다. 

   

 

  책을 펴면 앞에 있든 뒤에 있든 ‘작가의 말’을 처음 읽는다.

  “나는 ‘지금 슬픈 사람’들이 자신의 슬픔을 내치지 않기를 바란다. 외면하지 말기를 바란다. 슬픔을 방치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내 글의 독자들이 슬픔을 돌보는 동안 더 깊고 더 따스하고 더 고운 마음의 눈을 얻게 된다면, 그리하여 더욱 아름답고 더욱 굳건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면, ‘슬픔의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쓴 사람으로서, 많이 기쁠 것이다.”

   

 

  또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생긴 버릇이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게 된다. 아마도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폈는데 여린 연필로 그어진 밑줄이 그 책을 읽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의 흔적으로 읽혀 반가웠고, 다시 새로운 감동의 파장을 전해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오고가는 말들은 거침이 없이 활달하다. 그 여자를 생각했다. 실은 이곳에 오는 내내 그 여자 생각만 났다. 한마디 하는데도 남아 있는 에너지를 총동원해서 겨우겨우 입을 열긴 열지만 그렇게 힘들여서 하는 말들이, 곧잘 의도하지 않은 엉뚱한 말이 되어 버리곤 했던 여자. 그런 여자가 이렇게 거침없고 활달한 말씨를 쓰는 사람들 곁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도 자꾸만 자꾸만 그 여자가 아직 이곳 목포에 있는 것만 같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어, 먼 데 시선을 두고 정처 없이 항구의 낯선 거리를 배회하고 있을 것만 같다. 한 ‘슬픔의 사람’이 지금 어디선가 울고 있을 것만 같다. 그 여자 때문이 아니라, 그 여자의 슬픔 때문에 정섭은 지금 울고 싶다. 한 여자의 슬픔이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차박차박 걸어와 나를 좀 도와주세요,라고 노크했다는 것을 정섭은 이제야 깨닫고 화들짝 놀란다. 미안하고 부끄럽고 속상해서 가슴이 진정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여정은 어쩌면 그 여자, 한상준의 아내를 찾는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그 여자를 찾으면 우선 신발부터 사 신기고 싶다고 정섭은 생각한다. 석 달 전, 그 여자와 함께 목포에 오던 날, 그 여자가 신고 있던 빨간 비닐 슬리퍼가 정섭의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p93

   

 

  [사람들은 큰 산에 오르든, 작은 산에 오르든, 언제나 꼭대기까지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정섭도 오직 꼭대기에 오르기 위해 산을 오른 적이 있었다. 어떤 한 가지 목적만을 목표로 삼게 되면 목표 이외의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들리지 않고 소홀하게 된다는 것을 정섭은 예전에 알지 못했다. 표지판에 씌어 있는 소요정이 그 소요(逍遙)인지는 알 수 없으나, 우리 인생에서 목표를 향해 ‘돌진’ 하는 시간 외에 아무 목표도 없이 그저 ‘소요’ 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목포에서의 소요가 찢긴 내 삶에 새살을 돋게 할 수 있을까.] p104

    

 

  [이쪽 사람들이 위쪽 사람들보다 훨씬 개방적인 품성인 것 같았다. 윗사람한테 존대어를 쓰지 않는 게, 예의가 없다기보다 내가 당신에게 내 마음을 주고 싶다는 의미로 느껴지는 것은 그 개방적이고 정다운 태도 때문일 것이었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윗사람한테나, 아랫사람한테나, 공히 자네라는 호칭을 쓴다는 거였다. 그리고 그것은 공통적으로 상대를 높이는 호칭이라는 것도 정섭은 처음 알았다. 호준이나 호준의 친구 영대가 형 친구인 정섭에게 어이, 자네는 왜그런가,라고 했을 때도 그것은 전혀 하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의를 갖춘 정다운 태도인 것이다. 똑같은 말을 아랫사람한테 했을 대도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에 그것을 이해 못해 호준이나 영대가 자신에게 어이, 자네,라고 했을 때, 기분이 상한다기보다 좀 어이가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목포 사람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그들의 대화법을 깨친 이후로는 자신한테서도 이따금 자네,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존칭은 아니지만 예의를 갖춘 정다운 호칭, 자네.] p124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자네’ 이 호칭 때문에 곤욕을 치룬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그래서 잃어버리고 산, 존칭은 아니지만 예의를 갖춘 정다운 호칭, 자네.

   

 

  [그녀의 힘겨움을 덜어주거나 이해해주지 못해서가 아니라, 예의를 갖춘 이별을 하지 못해서였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면, 뒤늦었지만, 정중한 이별의 말을 할 수 있는 때가 올까. 그러나 그런 순간이 온대 해도 그때 하는 이별의 인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리고 또 한 사람, 황망한 이별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던 그 여자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 여자를 연민하는 것으로 모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덜려는 수작인가. 그러나, 그저 아팠다. 자신이 아프니, 다른 이의 아픔이 비로소 아프게 다가왔다. 단지 그뿐이었다. 내 살이 아리니 다른 이가 아려하는 것도 눈에 보였다. 위로받고 위로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그저 아파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 아픔이 타인의 아픔에 조응하는 이 낯선 경험이 그러나 정섭은 위로가 되었다. 위로를 바란 것도 아닌데, 그녀를 생각하며 아파하고 있는 순간에 제 가슴속 통증 위로 도포되는 어떤 안식의 약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면, 그때에야 아주 오래전, 남루한 현실 속에서도 싱그럽고 빛나던 한때들을 편한 마음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p129

  이런 시절도 있었다. 날마다 날마다 아프다고, 죽을 것 같다고 엄살을 매달고 살던 이십 대 후반 덜컥, 다치고 나서야, 치명적으로 아프고 나서야, 다른 이의 아픔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생에게 겸손해졌다.

   

 

  [세상을 살면서 아무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권리는 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누구에게도 누군가를 아프게 할 권리가 없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누군가의 아픔을 감당할 수도 없지 않은가.] p171

   

 

  ["나도 얼마 전까지는 엄마랑 내가 독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아쉽고 속상하드라고. 근데, 이제 안 그래. 안 그런당게. 울 엄마가 그래도 참 좋게 살아왔구나. 한 번쯤, 독한 맘먹고 험한 말이라도 한번 하고 패악질이라고 해도 좋고 하여간, 악이라도 한번 써봤으면 싶다가도, 결국은 아무한테도 해 끼치지 않은 우리 엄마가 잘살았구나 싶어. 나도 다른  누구보다 나를 원망하고 살았는데, 이젠 내가 그래도 잘살았구나, 싶은 게, 내가 남한테 당하긴 했어도 남한테 해 끼친 것은 없구나, 싶어서. 내가 바보 같긴 해도 참 고운 사람이다, 생각하기로 했지. 그러니까, 그제사 내가 나한테 고맙고 내가 막 이뻐지고…… 그러더라고.”

  인자가 말하는 동안 싸락눈처럼 흩날리던 눈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 있었다.

  인자 엄마가 문틈으로 눈 구경을 하듯이 나는 인자의 말소리 사이사이로 문득문득, 눈송이로 가득한 아득히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힘은 없어도 그래도 태어난 이상 살아야 하니까.”

  누가 상 줄 것도 아닌데,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언제까지 나 자신을 탓하면서, 자신을 미워하면서, 자신을 자기가 원망하면서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그래도 살아야하니까, 결국 마지막에 선택한 것은 자신을 자기가 예뻐해 주는 것, 그뿐이더라고.

  “안 그러면 지가 어쩔 것이여. 그려, 안 그려?”] p200

   

 

  [ "나 그때 많이 행복했다.”

  “언제요?”

  “니가 야, 이 나쁜 놈들아 , 우리 오빠 잡아가지 마,라고 했을 때.”

  총총히 멀어지는 오빠를 향해 손을 흔들고 돌아서는데 한순간, 울컥, 했다. 내가 오빠를 부르며 울었던 때가 떠올라서이기도 했지만, 지나가는 길에 여동생이 일하는 곳에 ‘그냥’ 들른 오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나도 모르게 가슴이 메어왔다. 그 울컥, 했던 순간들 때문에 나는 ‘나의 무정한 의붓오빠’를 미워할 수가 없다. 세상을 살다 보면 울컥하는 순간들이 있고 바로 그런 순간들이 사람들로 하여금, 끝끝내 미움보다는 사랑을 선택하게 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p235

  

 

  [그것이 생명이 가진 힘임을. 생명은 태동할 때도 눈물겹고 살아갈 때도 눈물겹고 소멸할 때도 눈물겹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생명은 눈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 눈물이 없이는, 그 어떤 생명도 생겨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고 소멸되지 않을 것 같다. 복숭아꽃잎이 뚝 떨어져 내릴 때, 내가 화들짝 놀라는 것이 실은 눈물이 출렁이는 순간임을 나는 알겠다. 바람이 건듯 불 때 내 마음이 흔들리는 것이 실은 내 눈물이 흩날리는 순간임을. 내 사랑들이 남긴 눈물이 나를 살게 하는 힘이듯이, ] p261

  어쩌면 좋은 글이냐, 아니냐의 차이는 각자가 느끼는 공감의 차이인지도 모르겠다. 공감할 수 있을 때 몰입도 가능하니까.

   

  이제는 슬픔을 돌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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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 길 내는 여자 서명숙의 올레 스피릿
서명숙 지음 / 북하우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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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시작되는 시각, 읽기 시작했다.
후두둑~ 빗소리와 함께.
저녁무렵,
"콤파스태풍이 온다네요~무덥던팔월도견뎠는데,그까꺼~우리함께이겨내요^^"
이런 문자를 교보생명에서 받았는데...... ㅋㅋ
콤파스든 곤파스든 지나가겠지~~
내 안에 올레가 해일처럼 밀어 닥치는데.





시작 부분은 특별한 것이 없다.
강제윤시인의 '올레 사랑을 만나다'와 겹치는 내용이
(올레관계자들, 올레지기, 올레폐인들은 겹칠 수밖에 없으니) 많아서 술렁술렁 읽게도 되었지만
'놀멍 쉬멍 걸으멍...' 때 푹 빠졌던 거에 비하면 나름 올레꾼이 되어선지, 차분하다.
그때는 모든 내용에 밑줄이라도 그을 것처럼 빠져들었는데.
이제는 사진 속의 길이 어딘가 찾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처음이거나 두번째로 만나는 이들은 여전히 올레를 향한 무장무장한 그리움 더해지겠다는 생각 들었다.
아, 저런 길~~!!



믿을 수 없다.
여기에서 놀았던 날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팔개월 전이다.
비양봉에서 찍은 망망대해를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바꾼지 일주일.
거기 머물던 며칠,
그 바람과 비... 그런데 스스로에게도 놀랍게 고요롭던 시간.
오늘도 한림항에는 배들이 꽁꽁 묶여있겠다.
비 묻어온 바람은 점점 거칠어진다.
중반을 넘어 갈수록 길 내는 여자의 열정에 고개를 끄덕끄덕,
그들이 있어 그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치유되는 우리...
감동이다.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걸으면서 만나고 사람을 위한 길.
오롯하게 사람을 위한.
고맙다.
고맙고도 고맙다.
은근 중독이다.

마지막장을 놓고 창문을 닫았다.
일순 고요하다.
내 안의 올레를 향한 막막한 그리움도 잠시 고요하다.
꼬닥꼬닥 걸어가는 이 길처럼
꼬닥꼬닥 가자.
느리게 꾸준히... 가자.

창문이 잉잉 울어댄다.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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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카 2010-09-05 1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동감합니다. 전 강제윤시인의 책을 나중에 읽어서 님과는 다른 느낌이던데요.ㅎㅎㅎ서명숙이사장의 내용이 여기에도 있네하는.ㅎㅎㅎ

2010-09-13 1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순서가 바뀌면...
알라딘에서 첫 덧글을 주셨네요. 고맙습니다^^
 
가뜬한 잠 창비시선 274
박성우 지음 / 창비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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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가지를 꺾다
                         


                            박성우


상처가 뿌리를 내린다

화단에 꺾꽂이를 한다
눈시울 적시는 아픔
이 악물고 견뎌내야
넉넉하게 세상 바라보는
수천개의 눈을 뜰 수 있다

봄이 나를 꺾꽂이한다
그런 이유로 올봄엔
꽃을 피울 수 없다 하여도 내가
햇살을 간지러워하는 건
상처가 아물어가기 때문일까

막무가내로 꺾이는 상처,
없는 사람은 꽃눈을 가질 수 없다

상처가 꽃을 피운다

                 

                   시집 [가뜬한 잠] 중에서

                   1971년 전북 정읍 출생.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거미]가 있다.

 

 가만가만 시를 읽고 또 읽어봅니다.

내 안의 자잘한 상처들이 뿌리를 내리고

[봄이 나를 꺾꽂이 한다]쯤에선 울컥~ 하다가

치명적인 상처... 명치끝에 박혀 아직 피 흘리는 상처에서

희미하게 꽃눈이 올라오는 것이 보입니다.

당신의 상처는 어떠신지요.

가려우신가요?

상처가 꽃을 피운다...!!!  당신은 ^.^

 어질어질 환한 봄빛아래 흐드러지게 꽃 피우겠지요.


오늘도 저희 **농원을 찾아주시는 분들 늘 고맙습니다.

변함없는 맛과 한결 같은 정성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여기 머무시는 동안, 또 세상 어디에 계시더라도

내내 행복하십시오.

                                  **농원 임직원일동

 

 

 

 조금 다르기도 하고 많이 같기도 한 '장 담그기'를
경인년 정월 첫 말날, 가게에서도 했습니다.
1008개(갸웃! 맞나?)의 메주를 씻어 앉히고  
14개의 큰 통에 소금을 녹여서 달걀이 500원짜리 만큼 떠오르게 하는 동안 
비가 오락가락해서 마음 바쁘고 심란했지요.
비, 잦은 올 봄....... '장 담그기'는 연중행사의 시작입니다.
올해도 장, 맛있어야 할 텐데요. ㅎ~ 
(샘~!  제 몫을 기대하셔요^^)

 
박성우시인의 [가뜬한 잠]에서 '장 담그기' 와 '봄, 가지를 꺽다' 를 놓고
잠시 고민하다가
'장 담그기' 가 길어서 포기했지요.
[가뜬한 잠]에는 망설이게 만드는 좋은 시들이 많습니다.
'고추씨 같은 귀울음소리 들리다' '싸전다리' '물의 베개' '건망증' '신혼 첫날,' '강에게 미안하다' 등등
슬몃 웃음이 지어지는 '삼학년' 같은 시편들이 있지 않을까 기대 되는
[난 빨강] 이란 제목의
시인의 청소년 시집이 출간 되었단 소식, 기쁩니다.
제게도 곧 달려오겠지요.

 
비, 오시는 휴일 아침.......
-,-;;
치과, 예약이 되어있습니다.
빗속에서도 뽀송뽀송한 월요일.... 보내시기를.

 

장 담그기

                     박성우


짚으로 묶어 띄운
메주 씻어 채반에 널었다
주둥이 큼지막한 독을 골라
찌끼 우려내어 닦아두고는

빨간 함지에 감천 약수를 붓고
천일염 한 됫박씩 되어 녹였다
달걀이 엽전 크기만큼 떠올라서
널찍한 덮개 닫아 먼지 막았다

병술년 음력 정월 스무닷새
말날(午日) 아침에 장 담근다

꽃망울 툭 불거진 매화나무집
장독대에 독을 걸고 메주 안친다
무명천에 거른 맑은 소금물
독 어귀까지 남실남실 채운다 둥실
떠오른 메주에 소금 한줌 더 얹히고
참숯 두 개 고추 대추 여섯씩 띄운다

장독대 식구가 셋이나 늘어
왼새끼 꼬아 금줄을 친다
장 담그는 공부 가르쳐주는
쥔집 할매의 잔소리가 여기서야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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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 전10권 세트 - 반양장본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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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조정래의 '한강'을 읽고-

 '강물은 흐른다'
 이 단순한 문장이 한강을 읽는동안 내내 나를 따라 흐르며 유장한 물 굽이를 보여주었다.
 철교를 지나는 전철 안에서 붉은물이 잠기는 한강을 본적이 있었다. 그전까지 그냥 강이던 한강이 그렇게 도도하게 아름다운 강이며, 내가 좋아하는 북한강도 한강이고 신륵사앞을 너르게 흘러가던 그 유장한 남한강물도 한강이며, 서울이 아름다울 수 있는것은 한강과 북한산을 가져셔란 것을 시린 차창에 이마를 박고 생각했었던 그 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르고, 내가 본 많은 강들과 물들과 그것들이 흘러가는 길을 생각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그렇게 흘러가는 것임에도, 우리는 꼭 그러지만도 않은 많은 징후들을 겪으며 살아온 세월이 한강 속에는 있다. 역사의 질곡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배고프고 처절한 넋이 한강을 따라 흐르는 것이다.

 우리는 물을 떠나 살수없고 모든 문명도 강을 따라 발전해왔다. 강은 그냥 물이 아니라 하나의 상징성이기도 하고 한강은 우리에게 더욱 그렇다.
 한강에는 산업발전이라는 명분에 묻혀 죽어간 많은 사람들의 영혼이 떠돌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많은 누이들의 눈물이 보태져 흐르고, 가슴을 치는 울분에 술을 마시던 많은 이의 분노도 담겨있고, 최루탄의 매운 눈물도 같이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한강이다.
 세상 어떤 강을 한강에 비유할 수 있으랴!
 라인강도 한강이 아닌 것을.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우리시대, 우리사회, 우리민족의 강.
 그 한강에는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땀과 눈물과 피울음이 섞여서 같이 흘러가는 것임을 절절하게 느끼면서 한강에 빠져지낸 시간이었다.

 공교롭게도 이 책의 첫 장을 펴든 것은 기차 의자와 객차사이 바닥에 앉아서 였다.
 고향을 등지고 야간 완행열차에 겨우 비집고 서울로 향하는 유일민 형제와 천두만 사이에 끼여 앉은 형국으로 그렇게 한강을 읽기 시작했다.
 전쟁이 끝나고 8년이 지났지만 나아지기는 커녕 점점 굶는날이 많아지자 사람많고 일많은 서울이 날품팔이를 하더라도 낫겠지 싶어 가족을 두고 집을 나선 천두만이기도 하고, 어짜든둥 배워야 한다고 이를 옹구려무는 엄마의 손을 놓고 설운 걸음을 떼는 일민 형제기도 하다.
 어디 그들 뿐이랴!
 인생의 막다른 곳에서 새꿈을 꾸려고 간호원이 되어 독일에간 김광자이기도 하고, 공장으로 차장으로 맥주홀로 옮겨가다 기치촌 골방에서 죽어간 나복녀이기도 하고, 잘나가는 아버지 덕에 한껏 멋을 내고 센치한 감성과 시원시원한 성품을 가진 멋진 여성 강숙자이기도 하고, 살아남기위해 비열한 짓도 서슴치 않는 이경열 기자이기도 하고, 고시패스만이 지상의 목표고 하늘로 오르는 줄 사다리기임에 그 사다리를 타기위해 몸부림치는 이규백, 김선오이기도 하다.
 어지로울 정도로 많은 등장인물이 모두 우리의 이웃이고 또다른 자신의 모습이고 모두 주인공인 한강속의 그 시절을 살아왔다.
 독립과 이념을 지나 배고픔이 주는 원초적 갈망과 번번한 좌절속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
 산다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것이 더 쉬울거 같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내가 몸으로 부대끼고 살아내야할 내 삶이 한강속 모든 사람들의 삶인 것이다.
 바로 나, 내가 살아갈 세상이 거기 있었다. 도망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는 현실로서의 내 삶의 다른 모습이 다양하게 거기 있었다.

 내가 초등학교 도서관에 앉아서 읽던 박정희 위인전이며, 교과서에서 달달 외우던 현대사가 그릇된 것이었음을 처음 알았을 때도,  세상에 대한 냉소는 덜 했었다.
 그러나 사회 전반적으로 양반이었던 사람은 계속 양반으로 남고, 식민치하에서 기득권은 해방된 나라에서도 여전히 기득권이고, 지금까지도 거의 그러하고, 교과서에 실린 많은 작가 시인들이 친일 문학인 이라는 사실에 경악하고, 현대사의 여러 질곡에도 여전히 지식인으로 대우 받는 세상이 어이가 없었다. 한편으론 무서웠다. 청산하지 못한 역사가 반복하여 보여주는 순환의 고리가 무섭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상징된 젊은 여성, 강금실 법무장관을 받아드리고 곤혹스럽게 집단 항변하는 수 많은 김선오 검사들의 모습에 실소를 금치 못하는 현실임에 위안을 삼는다. 구속되는 또다른 박준서를 보면서 다시는 강기수나 남재구 같은 인간이 권력의 핵심에 살아남지 않은 세상이기를 간절히 바래보는 희망을 건진다.
 천상 농사꾼인 천두만이 땅을 가져 농사꾼으로 돌아갈 수 있었듯이 연좌제의 사슬을 끊고 유일표 형제도 당당히 자신의 재능을 펴고 살아갈 그런날도 머지않았음을 꿈꾸어 본다.

 아직 우리의 작가는 화약 내음이 남아있는 광주로, 오늘의 우리 있기까지에는 반드시 거쳐야 할 성지가 되어버린 광주로 우리를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는 마무리를 보여 줬는데...
 그의 시선을 따라 아리랑 한의 고개를 넘어왔고, 저 험준한 백아산, 태백산맥을 넘었으며, 유장한 강물을 따라 걸어 왔으니 다시 기차에 올라, 광주 그곳으로 가려 한다.
 승자의 기록인 역사를 패자들의 삶과 기록으로 아우르며, 그 시절을 사는 사람들의 진한 피내음 속에도 희망을 건져 올리는 혜안을 작가는 갖고있다.
 그의 시선에 동승한 나의 걸음은 더욱 깊어지고 시선은 더욱 아득하게 넓어지리라.
 가치관이 흔들리는 혼돈의 시대에 작가의 역량과 책무를 가슴 서늘하게 흠모하면서 내 가슴에도 유장한 물 굽이의 강물이 흘러가기를 기대 해본다.
 가슴을 지나온 강물이 머리로 손끝으로 퍼져 저 까마득히 먼 바다에 닿기를.
 우리의 한강물이 대륙들의 먼지도 정갈하게 씻어 주기를.
 그렇게 강물은 흘러 가기를...



  2003. 3. 17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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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집 애지시선 28
정군칠 지음 / 애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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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상여                             

                       정군칠

  외따로 난 산길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개미들 간다 

  죽어서 맴돌기를 멈춘 나비

  오색무늬 제 몸이 만장이 된다

                 시집 [물집 (애지)]중에서

시인은 제주 중문에서 태어났으며 1998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목한계선]이 있으며 [제주작가회의]회원으로 활동하고있다.

 

  오늘, 삼일만에 등산로가 개방된 한라산에 다녀왔습니다.
  며칠동안 눈이 내린 한라산은 그 색깔로도 그 장엄함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한 경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길은 외줄기, 일행이어도 일행이 아니어도 산을 오르는 모두는 같은 속도로 같은 보폭으로 앞사람을 따랐습니다.
  잠시만 방심하여 길을 벗어나거나 미끄러지면 허리까지 눈 속으로 파묻히게되는 상황,
  천천히 천천히 산이 허락하는만큼, 길이 허락하는만큼만 산에 잠시 머물다 왔습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피난민처럼 컵라면 하나 먹고 내려왔습니다.
  마치 컵라면 먹으러 올라간 듯, 남은 여정 2.3km 표지판 앞에 숫눈길을 일별하고 훠이훠이 내려왔습니다.
  다시 일렬의 긴 행렬을 따라서.
  몇 번의 발걸음에도 아직 백록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합니다
  맨 앞에서 길을 만들어간 이의 고단함이 없었다면 오늘 산은 그마저도 허락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감사를.......

  나무들 사이로  행렬을 따르며 걷는 동안, 버스에서 읽은 짧은 시 [나비 상여]가 내내 떠올랐습니다.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개미들' 같은 행렬이 불러온 생각이었겠지요.
  시는 그렇게  제게 가까워지곤합니다.
  제주로 오면서 제주 시인의 집을 가져온 건 참 잘한일입니다.
  이제 시집 속 지명에도 익숙해져, 더 잘읽힙니다.  

   내일은 모슬포로 옮겨갑니다.
  [물집] 에는 많은 모슬포가 보이게도 보이지 않게도있습니다.
  왜 많은 모슬포가 있는지 답이 될 한편을 남겨놓고 갑니다.
  모슬포에서도 컴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소식 띄우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

           이천구년 십이월 이십일일 서귀포에서 산이가 보냅니다.

 

  우회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들 

                                                             정군칠

 
  채 여물지 못한 달빛이 모슬포 골목마다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은 칠월 칠석

  길의 끝에서 혹은 시작되는 곳에서 
  덩굴손이 깍지 끼어 부여잡은 푯말 하나 
  백조일손묘역 3.3km
  양민학살터 3.8km
  동서남북 불어온 바람이 달빛에 부서지다 다시 돌아와 
  그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빛이 보이는 부분을 오늘이라, 하면 
  희미한 윤곽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삭은, 어제였나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육십갑자의 끄트머리 
  어둠 속 내버려진 영혼들이 웅크려 있다
  남루한 형색의 눈이 퀭한 사내들
  우회도로도 없는 흙먼짓길을
  겉옷 하나 달랑 걸쳐 입은 몸으로 
  맨발 끌며 또 끌었으리 

  오작교도 없었던 반백년의 시간 동안
  내버려진 채 웅크린 그들의 그림자는 어디,   
  오늘 같은 날 달이 만든 내 그림자를 보며 
  달의 뒤편을 생각하는 것은 서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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