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집 애지시선 28
정군칠 지음 / 애지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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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비 상여                             

                       정군칠

  외따로 난 산길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개미들 간다 

  죽어서 맴돌기를 멈춘 나비

  오색무늬 제 몸이 만장이 된다

                 시집 [물집 (애지)]중에서

시인은 제주 중문에서 태어났으며 1998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수목한계선]이 있으며 [제주작가회의]회원으로 활동하고있다.

 

  오늘, 삼일만에 등산로가 개방된 한라산에 다녀왔습니다.
  며칠동안 눈이 내린 한라산은 그 색깔로도 그 장엄함으로도 범접하기 어려운 신성한 경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길은 외줄기, 일행이어도 일행이 아니어도 산을 오르는 모두는 같은 속도로 같은 보폭으로 앞사람을 따랐습니다.
  잠시만 방심하여 길을 벗어나거나 미끄러지면 허리까지 눈 속으로 파묻히게되는 상황,
  천천히 천천히 산이 허락하는만큼, 길이 허락하는만큼만 산에 잠시 머물다 왔습니다.

  진달래 대피소에서 피난민처럼 컵라면 하나 먹고 내려왔습니다.
  마치 컵라면 먹으러 올라간 듯, 남은 여정 2.3km 표지판 앞에 숫눈길을 일별하고 훠이훠이 내려왔습니다.
  다시 일렬의 긴 행렬을 따라서.
  몇 번의 발걸음에도 아직 백록담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다음을 기약합니다
  맨 앞에서 길을 만들어간 이의 고단함이 없었다면 오늘 산은 그마저도 허락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에게 감사를.......

  나무들 사이로  행렬을 따르며 걷는 동안, 버스에서 읽은 짧은 시 [나비 상여]가 내내 떠올랐습니다.
  '나비 날개를 어깨에 멘 개미들' 같은 행렬이 불러온 생각이었겠지요.
  시는 그렇게  제게 가까워지곤합니다.
  제주로 오면서 제주 시인의 집을 가져온 건 참 잘한일입니다.
  이제 시집 속 지명에도 익숙해져, 더 잘읽힙니다.  

   내일은 모슬포로 옮겨갑니다.
  [물집] 에는 많은 모슬포가 보이게도 보이지 않게도있습니다.
  왜 많은 모슬포가 있는지 답이 될 한편을 남겨놓고 갑니다.
  모슬포에서도 컴을 만날 수 있을지 모릅니다.
  다시 소식 띄우겠습니다.
  그때까지 안녕~

           이천구년 십이월 이십일일 서귀포에서 산이가 보냅니다.

 

  우회도로를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들 

                                                             정군칠

 
  채 여물지 못한 달빛이 모슬포 골목마다 
  수많은 그림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오늘은 칠월 칠석

  길의 끝에서 혹은 시작되는 곳에서 
  덩굴손이 깍지 끼어 부여잡은 푯말 하나 
  백조일손묘역 3.3km
  양민학살터 3.8km
  동서남북 불어온 바람이 달빛에 부서지다 다시 돌아와 
  그 언저리를 서성거린다

  빛이 보이는 부분을 오늘이라, 하면 
  희미한 윤곽만으로 모양새를 갖춘 삭은, 어제였나
  사람의 나이로 치자면 육십갑자의 끄트머리 
  어둠 속 내버려진 영혼들이 웅크려 있다
  남루한 형색의 눈이 퀭한 사내들
  우회도로도 없는 흙먼짓길을
  겉옷 하나 달랑 걸쳐 입은 몸으로 
  맨발 끌며 또 끌었으리 

  오작교도 없었던 반백년의 시간 동안
  내버려진 채 웅크린 그들의 그림자는 어디,   
  오늘 같은 날 달이 만든 내 그림자를 보며 
  달의 뒤편을 생각하는 것은 서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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