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관련된 우스꽝스러운 일화에 틴이 더 이상 재미를 느끼지못하게 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엄마는 일찍, 그것도 호상이라 할수 없는 방식으로 죽었다. 죽음에 호상이라는 것이 있겠나 싶지만그래도 정도는 있다고 틴은 생각한다. 퇴근 후 슬픔에 잠겨 두 눈이눈물에 가려진 상태로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 죽는 것은 호상이 아니었다. 다만 신속한 죽음이기는 했다. 엄마의 죽음을 계기로, 쌍둥이는 대학에 진학할 무렵 얼간이와 깡패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실로 선 없는 악은 없다라고 틴은 그 시절 드문드문일기에 적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은 있는 법이다. - P124
월간이들 중 두 명은 감히 엄마의 장례식에도 찾아왔다. 이는 조리가 장례식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조리는 지금도 그 개새끼들을 가만두지 말았어야 했다고, 묘 옆에 나타나 슬픈 척을 하면서 쌍둥이에게 너희 엄마는 정말 멋지고 친절한사람이었다고, 정말 좋은 친구였다고 말하게 내버려 두지 말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친구?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그냥 자기랑놀아날 여자나 원했던 거면서!" 조리는 노발대발했다. 그들에게 따줬어야 했다. 소란을 피웠어야 했다. 주먹으로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줬어야 했다. 틴은 그 남자들이 정말 슬펐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엄마 메이브를 사랑했을 수도 있다는 게,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가지나 두 가지 혹은 세 가지로 본다면 그렇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 - P124
지 않나? 아모르, 볼룹타스, 카리타스로 즉 사랑, 쾌락, 자선으로 말이다. 하지만 틴은 그 생각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 그랬다간 조리의 분노를더 자극할 것이다. 특히 이렇게 라틴어를 써 가면서 말하면 더 그럴것이다. 조리는 라틴어와 관련된 모든 것에 인내심이 없으니까. 라틴어는 조리가 평생 틴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부분 중 하나다. 왜 사람들 기억에서도 잊힌 죽은 언어로 쓰인 그 곰팡내 나는 낙서 쪼가리에 인생을 낭비하는 거야? 너는 정말 영리하고, 정말 재능이 많고, 잘하면...... (뒤이어 틴이 잘하면 될 수도 있었을 많은 것이 길게 나열될 테지만 그중 무엇도 실제로 가능하지는 않다.)그러니 조리를 자극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 P125
최악은 개빈이 승승장구하며 찬사를 받자 다크 레이디 소네트가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졌고 대단하지는 않아도 경력 면에서 상당히의미 있는 상들을 연달아 수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흐름에 따라 개빈의 이 초기 시들은 색다른 결을 가진 후기 시들을통해 변주되었다. 사랑에 빠진 화자는 처음에는 다크 레이디의 단순한 육체성을, 실제로는 추잡함과 변덕스러움을 좇았고, 나중에는 예전만 못해도 여전히 희미한 빛을 발하는 자신의 진정한 사랑의 뒤꽁무니를 다시 좋았다. 하지만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매끄럽기만 하고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데다 나중엔 책으로 출간되기까지한 화자의 호소를 진정한 사랑은 차가운 눈길로 일축했다. - P138
복수심에 사로잡힌 조리는 길거리의 도랑과 주차장을 훑고 돌아다니면서 마치 눈에 보이는 데이지 꽃을 죄다 꺾어 버리듯 성욕 강한 아무 남자하고 관계를 맺었다가 그들을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런행동이 조리를 함부로 내팽개친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틴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 짓을 할 수 있는사람은 내가 그 사람을 붙잡기 위해 무슨 짓을 하며 망가지는 신경쓰지 않는다. 머리 없는 염소와 떡을 친다 해도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계절의 수레바퀴가 돌아갔고, 매일의 새벽이 362차례 분홍빛 아침을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진 후 또다시 362번의 아침을, 그리고 또다시 362번의 아침을 어루만졌다. 욕망의 달은 차올랐다이지러졌다 다시 차오르기를 반복했고, 그러는 사이 정욕의 화신 같은 시인은 점점 희미하고 까마득한 먼 곳으로 사라져 갔다. 아니, 그러기를 틴은 바랐다. 조리를 위해서. 하지만 정욕의 시인은 사라지지 않은 듯하다. 당장 죽어서 다시 사람들의 조명을 받는 것, 그게 너 같은 자식이 해야 할 일이야. 틴은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개빈 퍼트넘의 사라지지 않는 그림자가. 실제로 사라지지 않는다면, 무해하기를 바라고 있다. - P139
틴이 조리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기려 한다. 조리가 버럭 화를 내면서 이 노작가의 정강이를 걷어찰 수도,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소리를 지르기 시작할 수도 있을 법한 상황이다. 조리를 여기에서 빼내야 한다. 집에 가서 독한 술을 한 잔씩 하면서 조리를 진정시키고나면 이 모든 상황을 빈정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리는 틴의 팔을 놓더니 움직이지 않는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모든 게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제 삶 전체가요." 우는 건가? 그렇다. 청동색과 금색으로 반짝반짝하며 흐르는 진짜 눈물이다. "나도 고통스러웠어요." 콘스턴스가 말한다. "알아요." 조리가 말한다. 두 사람은 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정신적 교감 속에 갇힌 채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 "우리는 두 가지 장소에 살고 있어요. 알핀랜드에는 과거가 없어 - P161
요 시간 자체가 없죠. 하지만 여기에는 시간이 있어요. 지금 우리가존재하는 시간이요 우리에게는 아직 약간의 시간이 남아 있어요. "맞아요. 때가 온 거죠 저도 미안해요. 저도 당신을 놓아줄게요." 조리가 콘스턴스에게 다가간다. 포옹하려는 건가? 틴이 생각한다. 서로를 껴안을까, 아니면 바닥에 쓰러뜨릴까? 이게 일촉즉발의 순간인가? 어떻게 도와야 하지? 대체 지금 여자들끼리 어떤 이상한 짓을벌이고 있는 거지? 틴은 바보가 된 기분을 느낀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조리에 대해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건가? 조리에게 다른 면면이, 다른힘이 있는 건가? 틴으로서는 절대 상상하지도 못한 차원이? 콘스턴스가 뒤로 물러선다. 그러고는 조리에게 "축복을 빌게요." 라고 말한다. 흰 양피지 같았던 피부가 이제 황금 비늘이 발하는 빛으로 반짝인다. 젊은 너비나는 자신에게 찾아온 행운을 차마 믿지 못하고 있다. 입은 반쯤 벌린 채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숨죽이고 있다. 우리를 호박 결정으로 만들려는 생각이로군. 틴은 생각한다. 고대 곤충들처럼. 우리를 영원히 보존하려는 것이다. 호박 구슬 속에, 호박 단어 속에.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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