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삶에 의해 보이는 삶이다. 나는 의미를 지니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건 맥동하는 혈관이 의미를 지니지못하는 것과 같다.
나는 배우는 사람처럼 당신에게 글을 쓰고 싶다. 나는매 순간을 사진에 담는다. 음영을 넣은 그림을 그리듯 단어들에 깊이를 준다. 나는 왜냐고 묻고 싶지 않다. 당신은 언제든 왜냐고 물을 수 있지만 늘 답을 듣지 못할것이다 -대답 없는 질문에 따르는 기대감에 찬 침묵, 내가 거기에 굴복할 수도 있을까? 비록 그 어느 장소 혹은 시간 속에 나를 위한 해답이 존재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기는 하지만. - P19
내가 당신에게 쓰는 글은 편안하지 않다. 나는 확신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나 자신을 금속화한다. 나는 당신에게든 내게든 편안하지 않다. 내 말들은 그날의 공간속으로 터져나간다. 당신이 나에 대해 알게 될 것은 그림자, 과녁에 명중한 화살의 그림자다. 화살은 내게 거의 아무런 의미도 없으니, 나는 아무런 공간도 차지하지 않는 그림자를 헛되이 움켜쥔 것이다. 나는 나 자신과 당신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무언가를 만들 것이다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나의 자유다. - P23
누구든 나와 함께할 사람은 함께해 주기를: 이 여정은 길고 험난하지만, 사는 것이다. 지금 나는 당신에게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는 말을 가지고 장난하지 않는다. 나는 말들 너머에 뒤엉켜 있는 관능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문구들 속에서 나 자신을 구현한다. 문구들이 조용히 노크하면 거기서 침묵이 뿌옇게 솟아난다. - P31
따라서 글쓰기는 말을 미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말은 말이 아닌 것을 낚는다. 행간에 있는 말 아닌 것이 미끼를 물면 글이 쓰인 것이다. 행간에 있는 것이 잡히고 나면 안심하고 말을 내버릴 수 있다. 바로 여기가 비유가 끝나는 곳이다: 말이 아닌 것, 미끼를 물기, 말에 통합되기. 그러니 당신을 구원하는 건 넋을 놓은 글쓰기다. - P31
나는 내가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나 자신에게 모호한 존재다. 나는 처음엔 달빛의 선명한 시야를 가졌었고, 그래서 하나의 순간이 죽은 뒤 영원히 죽은 상태로 접어들기 전에 나 자신을 위해 그 순간을 뽑아낼 수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전하고 있는 건 관념들을 담은 메시지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 속에 숨겨져 있었던, 그간 내가 예견해 왔던 직관적인 황홀경이다. 또한 이것은 향연이기도 하다. 말들의 향연. 나는 목소리보다는 몸짓에 가까운 신호들로 글을 쓴다. 사물들의 내밀한 본질로 파고드는 것, 이 모든 건 그림을 그리면서 익숙해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신을 새로 만들기 위해 그림 그리는 걸 그만둘 때가 되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자신을 새로 만든다. 내겐 목소리가 있다. 그림의선線 속으로 뛰어들 때와 마찬가지로, 이 글쓰기 역시 내게는 계획 없는 삶이 펼치는 활동에 속한다. - P35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이렇게 실재하고 또기필코 사라져 버릴 순간에 자그맣고 틀에 갇힌 내 자유가 나를 세상의 자유에 연결시킨다직각으로 짜인틀에 담긴 인상, 그게 아니라면 창문이란 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거칠게 살아 있다. 죽음이 말한다. 자신은 떠난다고. 나를 데려간다는 말을 덧붙이지 않고, 나는죽음과 함께 가야 하기에 헐떡거리며 몸서리친다. 나는 죽음이다. 죽음은 내 존재 안에 자리 잡는다 - 당신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 죽음은 관능적이다. 나는 죽은 사람처럼 키 큰 풀들을 헤치며 푸르스름한 풀빛 속을 걷는다: 나는 금으로 빚어진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이며 내가 발견할 수 있는 건 수북이 쌓인 뼈들뿐이다. 나는 느낌들로 이루어진 지층 맨 밑바닥에 살고있다: 나는 가까스로 살아 있다. - P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