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손의 사랑」은 농담으로 시작되었다. 아니, 무모로 시작되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좀 더 신중을 기했어야 했는데, 마리화나를 적잖이 피워 대고 싸구려 위스키를 퍼마신 탓에 판단력이 흐려진 것이 화근이었다. 하겠다고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빌어먹을 계약 조건과 엮이지 말았어야 했다. 그건, 그 계약은 그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였다.
게다가 무슨 일이 있어도 무를 수 없는 계약이다. 계약 종료일을명시하지 않은 탓이다. 우유갑이나 요거트 통이나 마요네즈 병에 적힌 상미기한 같은 유효 기간을 적어 두었어야 했는데, 대체 뭘 안다고 덜컥 계약을 해 버린 거지? 고작 스물둘밖에 안 됐으면서, 돈이필요했다.
그래 봐야 푼돈이었다. 고로 말도 안 되는 계약이었다. 착취였다. - P243

그 셋은 어쩌다 그를 그런 식으로 이용해 먹을 수 있었던 걸까? 물론 그들은 계약의 부당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의 서명까지 떡하니박힌 그 빌어먹을 계약서를 운운할 뿐이었다. 그러니 어쨌든 그는현실을 받아들이고 돈을 내어줘야 했다. 처음에는 돈을 주지 않으려했다. 하지만 그러고 있으니 이레나가 변호사를 고용했고 이제는 다들 벼룩을 달고 사는 개처럼 변호사를 두고 있다. 이레나는 한때 그와 가까운 사이였으니 조금 봐줄 법도 했으나 그건 가당찮은 일이었다. 이레나는 매해 태양 빛 아래서 더 단단해지고 더 건조해지고 더뜨거워지는 아스팔트 같은 심장의 소유자였다. 돈이 이레나를 망가뜨렸다. - P244

그의 돈이 이레나를 망가뜨렸다. 이레나를 포함한 세 사람이 변호사를 선임할 만큼 형편이 넉넉했던 건 그 덕분이니 이레나를 망가뜨린 것은 그의 돈이었다. 그가 선임한 변호사도 그들이 선임한 업계최고의 수완 좋은 변호사들 못지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누가 승소의 기쁨을 가져다줄 것인가를 두고 서로 이빨을 드러내며 달려들고피 튀기는 싸움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골절상을 입은 하이에나의 아침 밥상에 오르는 먹이는 언제나 의뢰인이었다. 변호사들은 의뢰인을 처음에는 한입씩 베어 먹다가 나중에는 가죽이나 힘줄이나 발톱만 남을 때까지 휜담비나 쥐나 피라냐 떼처럼 조금씩 뜯어먹는 족속이었다.
그래서 그는 수십 년간 돈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이 마땅히 지적했듯 이 일을 법정으로 끌고 가 봐야 승소할 가능성도 없었다. 그가 서명했다. 그 간악한 계약서에 새빨간 뜨거운 피로 그가 서명했다. - P244

내가 멍청이도 아니고! 다 안다고! 유약을 발라 반질거리는 파랗고 하얀 타원형 명판에 대고 소리치고 싶다. 다 잊어버려야 하는데, 최대한 여기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잊어야 하는데 발목에 걸린 족쇄 때문에 그럴 수가 없다. 영화제며 문학 페스티벌이며 코믹 페스티벌이며 몬스터 페스티벌이며 하는 것들에 참석하러 이 도시를 찾을 때마다 스리슬쩍 보고 가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으로는 계약서에 서명한 과거의 바보짓을 상기시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적인 호러클래식‘이라는 세 단어를 통해 씁쓸한 만족감을 주는 명판이니 어쩔수 없다. 잭은 이 명판에 지나치리만치 집착한다. 누가 뭐래도 자신이 이룬 중대한 삶의 성취에 바치는 헌사이 터다. 그런 것이다 -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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