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편에 서고 싶은가. 혐오의 편에 서고 싶은가, 작은 친절편에 서고 싶은가. 영화 <르아브르) 속에서 난민 소년 옆에 서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배척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의 답은 명확했다. 자신이 당한 인종차별 앞에서는 분노하면서, 자신은 대수롭지 않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여행의 끝이 되어서야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는 건 두 달간 내여행이 얼마나 운이 좋았는지를 방증하는 걸지도 몰랐다. 놀랍게도 모두 친절했고, 기적처럼 어떤 위험도 만나지 못했다. 이 운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운이나에게 찾아와서 나는 파리에서 안전하게 행복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한다. 부랴부랴 남편에게 연락을 한다. 오늘 내가 탄 롤러코스터 같은 하루에 대해 긴 수다를 시작한다. 이제 파리의 시간은 3일 남았다. - P303
여행 초반에는 모두 설렘 필터를 끼고 여행지를 둘러본다. 이름 없는 작은 공원에도 설레고, 시장에 과일이 예쁘게 쌓여만 있어도 카메라를 든다. 풀밭에 누운 사람들은 낭만으로 해석되고, 낯선 언어로 된 간판들 하나까지 즐거움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설렘은 곧 산화된다. 심드렁 필터의 시기가 찾아오는 것이다. 이 풍경이 저 풍경 같고, 특별함은 잘 포착되지 않는다. 사진을 찍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든다. 새로운 걸 경험해도 잠깐 즐겁고 또 금방 무심해진다. 익숙한 맛이 그립고, 때론 집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찾아온다. 체력적으로도 좀 지친다. 여행중반기에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다 떠날 날이 가까워지면 우리는 갑자기 애틋 필터를 - P304
장착한다. 뭘 보더라도 애틋하다. 어딜 가더라도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창문에 어른거리는 나무 그림자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매일 지나다니는 길이 새삼스럽고, 매일 먹던 맛이 결정적인 맛으로 둔갑한다. 이곳이 더 이상 나의 일상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찬찬히 들여다보게 되고, 천천히 걷게 된다. 나의 여행은 한 번도 이 공식을벗어난 적이 없다. 두 달의 파리 여행도 똑같은 공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파리와 산뜻하게 이별하는 건 애초에 불가능할 거라고 짐작은 했었다. 하지만 정작 겪어보니 참으로 곤란했다. 나는 참으로 파리와의 이별식을 혼자 요란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욕심을 다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기억하고 싶은 장면들이 나타나니 자꾸 또 욕심을 내게 되었고, 막상 떠난다 생각하니 무엇 하나 허투루 보이지 않아서 환장할 지경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이었다. 길을 걷던 내 눈에 술집 간판 하나가 눈에들어왔다. Demain, C‘est Loin. 뭐라고? 내일은 아직 멀다고? - P305
문장 하나를 손에 쥐고 계속 걸었더니 문득 오르세 미술관에서 본 로댕 작품이 생각났다. 로댕은 1880년부터 죽을 때까지 30년 넘게 <지옥의 문> 작업에 매달렸다. 그는 <지옥의 문>을 완성하기 위해 단테의 《신곡>을 1년 넘게 읽고 읽고 또 읽으며, 《신곡> 속 <지옥 편>에 나온 이야기들을 작품화하기 위해 애를 썼다. <지옥의 문 앞에 서서 작품을 찬찬히 보고 있으면, 문에 있는 수많은 인간 군상이 하나하나 독립적인 작품임을 알게 된다. 가장 유명한 건 문의 맨 위에서 지옥을 내려다보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 그리고 문의 왼쪽 아래에는 우골리노백작과 그의 죽은 자식들이 있다. 단테의 《신곡》 속 우골리노는 13세기 이탈리아 귀족이다. 대주교 루지에리와 함께 음모를 꾸몄지만, 루지에리의 배신으로 자신의 자식들과 손자와 함께 피사의 탑 속에 감금이 된다. 탑의 열쇠는 강으로 던져졌다. 그들은 꼼짝없이 탑 속에 갇혀하나둘씩 굶어 죽는다. 그 광경을 보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우골리노는 고통과 비탄과 굶주림 속에서 결국 자식의 시신을 먹으며 버텨 마지막 생존자가 된다. 그것이 우골리노가 지옥에 떨어진 이유다. - P307
단테의 신곡》도 안 읽었고 우골리노는 더더욱 몰랐던 나는, 며칠 전 오르세 미술관 2층에 갔다가 로댕의 <지옥의 문> 옆에우골리노 조각이 단독으로 크게 있는 걸 보게 되었다. 아무 배경지식도 없었지만 이상하게 궁금했다. 거인 같은 남자가 비탄에 잠겨 바닥을 기고 있다. 그 옆으로 작은 사람들이 죽어 있다. 남자 발치의 갓난아기도 죽어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묘사한 것인가. 무슨 일이 일어났길래 혼자 살아남은 저 거인 같은남자의 표정이 저런가. 어떻게 저런 감정을 작품에 그대로 옮겨올 수 있는가. 남자의 비통함은 나에게로 곧바로 전이되어 나도 비통한 심정으로 작품을 떠날 수 없게 되었다. 우골리노라는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단테의 《신곡》 속 우골리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 P308
계속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앞에서 바라보고, 오른쪽에서 다시 왼쪽에서 바라보았다. 앙상하게 말라 뼈가 다 드러난 얼굴. 감정을 숨길 구석조차 다 사라진 벌거벗은 얼굴.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각각의 각도에서 감정이 다 다르다는 걸 알아채게 되었다. 정면에서 얼굴을 바라보면 참담한 현실에 어찌할 바 모르는 얼굴이다. 시선은 오갈 데를 모르고 텅 비어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자식들이 다 죽어 있는데, 무슨 이런형벌이 다 있는가. 그 와중에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이 가장 참담한 형벌이다. 우골리노의 왼쪽 얼굴에는 (관람객의 시선에서 봤을 때는 오른쪽) 그 비참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오롯한 슬픔. - P308
비탄, 참척의 고통. 하지만 우골리노의 오른쪽 얼굴을 보는 순간, 섬뜩함이 느껴졌다. 다른 어떤 각도의 표정과도 달랐다. 그것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동물적 본능이 지배한 얼굴. 본능이인간의 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저 본능이 자식의 시신을 먹도록 이끌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다시 정면에서 보면 그 막막하고도 고통스럽고도 살고자 몸부림치는 한 인간이 드러난다. 하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면면이 이토록 다르다. - P309
다시 한 인간의 얼굴을 그토록 찬찬히 들여다보게 된 건까르띠에 재단에서 열린 론 뮤익 전시에서였다. 론 뮤익은 몇 해전 한국에서도 전시를 한 극사실주의 조각가다. 그는 특히 대형 인체 조각으로 유명한데, 한국 전시에서도 가장 화제가 된건 6미터가 넘는 여인의 조각이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운 이거대한 여자는 어찌나 사실적인지, 혈관부터 주름과 머리카락한 올 그리고 무엇보다 표정까지 다 살아 있는 여인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의 충격이 여전히 생생한데, 오랜만에 파리에서 다시 론 뮤익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까르띠에 재단이 숙소근처였던지라, 어느 날 닫혀 있는 그곳 앞을 지나다가 3미터는족히 넘을 것 같은 하얀색 두개골들이 전시장 이곳저곳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무슨 전시를 준비하는 걸까 궁금했는데 바로 론 뮤익의 전시를 준비하는 과정이었다. 전시가 오픈하고 얼마 되지 않아 까르띠에 재단으로 달려갔 - P309
다. 수십 개의 두개골이 나동그라진 모습도 장관이었고, 5미터가 넘는 신생아의 사실적인 모습도 장관이었지만, 내가 떠날수 없었던 작품은 배를 탄 남자를 표현한 (Man in a Boat〉라는 작품이었다. 낡은 배에 혼자 앉아 있는 이 벌거벗은 남자는팔짱을 낀 채 목을 길게 빼고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뭔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깐깐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 성마른 표정. 그 누구도 쉽게 믿을 리 없는 얼굴. 하지만 조명이 비추는 그의왼쪽 얼굴 쪽으로 다가가자 조금 다른 면이 보인다. 분명 지쳐있지만 혹시나 하며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표정이었다. 희박한 희망만큼이나 간절한 얼굴. 하지만 조명이 닿지 않은 반대쪽 얼굴을 보았더니, 그곳은 이미 포기가 장악했다. 자신에게 희망의 신호가 도착할 리 없다는 절망으로 가득한 얼굴. 언뜻보았을 때는 성마르게 생긴 사람이 벌거벗은 채로 뭔가를 기다리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인간은 한순간에도 여러 감정을 동시에 살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 P310
"그때 그 사람 얼굴 봤어?" 라고 우리는 얼마나 쉽게 단정 지으며 이야기하는가. 상대에 대해서 얼마나 주저 없이 간편하게결론을 내리는가. 하지만 그 누구도 하나의 얼굴로 살지 않는다. 한순간에도 정면과 오른쪽과 왼쪽 얼굴은 모두 다른 말을한다. 로댕의 우골리노가 그랬고, 론 뮤익의 보트 속 남자가 그랬다. 그리고 매 순간의 우리가 그렇다.
예술가들이 그 순간을 포착해서, 우리에게 순간의 풍성함을 - P310
다 안겨주고 있었다. 한 번에 한 순간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를위해 한순간의 우주를 보여주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아무런근거도 없는 나의 해석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미술 작품들은 언제나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답을 던져주는 존재다. 내가 그 답이 필요했기에, 작품에서 그 답을 찾아낸 것이다. 그게 객관적인 답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게 간절한 답, 내가 기댈 수 있는 답을 얻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로댕과 론 뮤익, 조각가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아티스트가 나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던졌다.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두 개의 메시지가 연결되어내 마음에 박혔다. 그리고 그것이 다시 ‘Demain, C‘est loin‘이라는 술집 간판 앞에서 뜬금없이 연결이 된 거다. - P311
빠르게 판단했고, 단숨에 결정을 내렸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세세한 결을 헤아려야 하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게 짐스럽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속도는 능력이었고, 단순함은 결단력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가 복잡한 감정을 털어놓을 때도, 나는 결론부터 궁금해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물며 나의 감정도 뭉뚱그려서 구석에 처박아놓는 일이 많아졌다. 그 감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면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도 있으니까. 복잡한 걸 단순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일에서는꼭 필요한 능력이었지만, 그 능력이 불필요하게 일상에서도발휘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매일 책임질 일이 너 - P311
무 많았으니까. 매일 눈앞에 빚쟁이처럼 달려드는 일들 앞에서 정신을 차리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것은 이제과거다. 오늘을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질문 앞에서 나는 좋아하는 조각상 앞에서의 나를 소환해낸 것이다. 그 앞에서의 나는 회사에서의 나와는 명백히 달랐다.
두 달 전, 파리의 시간이 내 앞으로 쭉 뻗어져 있었다. 정해진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매일 내 마음의 결만 보살피며 그날 하루의 모양을 결정했다. 그 시간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당연한 시간이 아닌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온몸으로 살았다. 이 시간은 내가 마련한 시간이지만, 동시에 이 시간을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도 나의 몫이었다. 꿈을 살기 위해 왔다면 내 꿈에 부합하는 시간을 다름 아닌 내가 만들어내야만 했다. - P312
매일을 살고, 매일을 곱씹었다. 매일의 섬세한 맛까지 다 느끼고 싶어 매 순간 열심이었다. 이제 곧 한국으로 돌아간다. 지금부터는 짐작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시간이 내 앞에 펼쳐질 것이다. 결국 내가 기댈 것은 그 시간뿐이다. 정해지지 않은 순수한 상태로 나에게 매일 도착할 24시간. 그 시간을 파리에서의 나처럼 살아보면 어떨까, 내일은 저 멀리 두고, 아니, 내일을 차라리 잊고, 오늘을 살면 어떨까. 매 순간의 결들을 풍성하게 맛보며. 다채로운 감정을 곱씹어 차근차근 알아채며. 조금은 느긋하게, 조금은 고요하게, 훨씬 더 깊게. - P312
결국 돈이 아니라 시간을 소유하고 싶었던 것이다. 안정적인돈 대신 넘치는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던 것이다. 24시간을오롯이 내 마음대로 살며, 내가 어떤 모양으로 빚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게 너무 궁금해서 결국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고정된 삶을 지키는 대신 무정형의 시간을 모험하고 싶다. 그렇다면 너무 모든 걸 정하지 않고 살아도 되지 않을까. 목표 같은 건 당분간 잊는 건 어떨까. 40년 넘게 정해진 모양대로 살았는데, 앞으로의 모양도 정해져 있다면 조금 슬플 테니까. 무정형인 시간을 온전히 받아들여, 찬찬히 나만의 하루를완성해내고 싶다. 자주 불안할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의심할 것이다. 24시간을 받아 들고 한숨을 내쉬기도 할 것이다. 내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 겨우 이거였나 고민할 것이다. 파리에서의 내가종종 그랬던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치의 반짝임을챙기려 애쓴다면, 결국은 행복한 인생이라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 지난 두 달간 그랬던 것처럼. - P313
막막한 만큼 자유로울 것이다. 고독한 만큼 깊어질 것이다. 불안한 만큼 높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여행은 이제 끝나지만, 이 삶을 계속 여행해보고 싶어졌다. 무정형으로, - P314
파리의 무엇이 그렇게나 좋냐고 묻는다면 여전히 대답하긴 어렵다. 사랑은 한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매력적이고, 웃기고, 다정하고, 감동을 줬다가, 또 울렸다가, 새침했다가 또 자기 방식대로 친절했던 파리. 그 모든 시간이 빚어낸 울퉁불퉁한 파리가 나에게 있다. 이 파리의 모양은 내 마음에 꼭든다. 그것만은 확실히 말할 수 있다. 파리에서 나를 만난 사람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해버리는 것은 참 귀한 능력이라고. 오래전 분명 자신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새 잃어버린 그 마음을 오랜만에 다시 찾은 기분이라고. 좋아하는 마음은, 이토록이나 전염성이 강하다.
부디 이 마음이 당신에게도 전염되길. 그리하여 멀지 않은 어느 날 부디 당신도 당신의 그곳에 도착할 수 있길. -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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