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드러브 가족의 집에서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석탄 난로뿐이었다. 난로는 그 무엇이나 그 누구와도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며,
스스로 알아서 불을 ‘꺼뜨리거나‘ ‘재로 덮어두거나‘ ‘불꽃을 피워올리거나‘ 했다. 석탄을 넣어주는 것이 그 가족이고, 살살 뿌린다. 한꺼번에 붓지 않는다. 너무 많은 양을 넣지 않는다 같은 상세한 식습관을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불은 자신의 계획에 따라 살아나고 잦아들고죽는 듯했다. 하지만 아침에는 늘 죽어 있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 P55

얼마 전부터 페콜라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 눈이, 장면을 담고 광경을 알아볼 자기 눈이 달라진다면, 그러니까 아름다워진다면 자신도 달라지지 않을까. 치아는 가지런했다. 적어도 코는 크지도 납작하지도 않았다. 귀엽다는 소리를 듣는 애들 중에 그런 코를 가진 애들이 있었다. 자기가 아름다워지면, 지금과 달라지면, 어쩌면 촐리도 달라지고 미시즈 브리드러브도 달라질지 몰랐다. "아니, 저 예쁜 눈을가진 페콜라를 봐. 저 예쁜 눈앞에서 나쁜 짓을 해서는 안 되겠어." 그렇게 말할지도 몰랐다.

예쁜 눈. 예쁜 파란 눈, 커다랗고 예쁜 파란 눈, 달려, 지프, 달려, 지프가달린다, 앨리스도 달린다. 앨리스 눈은 파랗다. 제리 눈은 파랗다. 제리가 달린다. 앨리스가 달린다. 그들은 파란 눈을 가지고 달린다. 파란 눈 네 개. 예쁜파란 눈 네 개. 하늘색 눈, 미시즈 포러스트의 파란 블라우스 파란 눈, ‘나팔꽃 파란 눈. 앨리스와 제리』 이야기책 파란 눈. - P65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본다. 호기심이 들어앉아야 마땅한자리인데 텅 빈 공간이 보인다. 그것만이 아니다. 인간적 인식의 완전한 부재, 투명한 막이 입혀진 단절. 그의 시선이 왜 중도에 정지했는지그녀는 모른다. 아마 그는 어른이고 남자인데, 그녀는 어린 여자애라서 그럴 수도. 하지만 그녀는 지금껏 어른 남자의 눈에서 관심과 혐오, 심지어 분노까지 보아왔다. 이 텅 빈 공간이 새롭지는 않다. 거기에는날카로운 날이 있다. 눈꺼풀 안쪽 어딘가에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모든 백인의 눈에 그런 불쾌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을 보아왔다. 그러니까. 그 불쾌감은 그녀를, 그녀의 검은 피부를 향한 것이 틀림없다. 그녀가 내면에 지닌 것은 전부 유동적이고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검은 피부는 고정적이고 두려움의 대상이다. 백인의 눈에불쾌감이라는 날을 지닌 텅 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 그것을 설명해주는 것은 바로 흑인이라는 특성이다. - P68

차라리 분노가 낫다. 분노에는 존재감이 있다. 현실성과 존재감. 가치의 깨달음. 그 솟구칩은 근사하다. 야코프스키의 눈과 가래 끓는목소리로 생각이 되돌아간다. 분노는 지속되지 못한다. 강아지는 너무 쉽게 물려버린다. 갈증이 금방 사라지고 바로 잠이 든다. 수치감이다시 차올라, 흙탕물이 눈으로 스며든다. 눈물이 나기 전에 뭘 해야 할까. 메리 제인을 기억해낸다.
연노랑 포장지마다 그림이 그려져 있다. 사탕 이름의 주인공인 메리제인의 그림. 미소 짓는 하얀 얼굴, 살짝 헝클어진 금발과 청결하고 안락한 세상에서 페콜라를 바라보는 파란 눈, 성마르고 짓궂은 눈. 페콜라에게는 그저 예쁘기만 하다. 사탕을 입에 넣으니 달콤해서 참 좋다.
사탕을 먹는 것은 어떤 면에서 그 눈을 먹는 것이고 메리 제인을 먹는것이다. 메리 제인을 사랑하고 메리 제인이 되는 것이다.
3페니는 그녀에게 메리 제인과 아홉 번의 근사한 쾌감을 가져다주었다. 사탕 이름의 주인공인 멋진 메리 제인. - P70

첫 나뭇가지는 녹색이고 가늘고 유연하다. 고리가 되도록 동그랗게구부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개나리와 라일락 관목에서 돋아난 그 섬세하고 눈부신 희망, 그것은 고작 매질 방식이 달라졌음을 의미했다. 봄의 매질은 달랐다. 겨울날 가죽띠의 둔탁한 아픔 대신 등장한 새로운녹색 회초리의 쓰라림은 매질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그 길쭉한 나뭇가지에는 신경질적인 비열함이 서려 있어서, 우리는 가죽의 한결같은 강도나 단단하지만 솔직한 솔빗의 찰싹하는 소리를갈망했다. 지금도 내게 봄이란 여전히 회초리의 통증에 대한 기억으로가득해서, 개나리를 봐도 전혀 신이 나지 않는다.
어느 봄날 토요일에 나는 공터 풀밭에 주저앉아 박주가리 줄기를 찢으며 개미와 복숭아씨와 죽음에 대해, 눈을 감으면 세상이 어디로 사 - P123

라지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아주 오랫동안 그러고 있었던 게분명했다. 집을 나설 때 나를 앞서가던 그림자가 집으로 돌아갈 때는아예 사라졌으니까. 집안에 들어서니, 불편한 정적이 들어찬 집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문득 기차와 아칸소를 들먹이는 어머니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어머니는 개킨 노란 커튼을 안고 뒷문으로 들어와부엌 탁자에 잔뜩 쌓았다. 바닥에 주저앉아 노랫말을 들으려 했는데.
문득 어머니의 행동이 어째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여전히 모자를쓴 채였고, 진창길을 걸어온 것처럼 신발도 진흙투성이였다. 어머니는불 위에 물을 올린 뒤 포치 바닥을 쓸었다. 그러고는 커튼 봉을 내렸는데, 커튼을 걸지는 않고 다시 포치로 나가 비질을 했다. 그러는 내내기차와 아칸소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 P1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