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로 이사하기 오래전부터 나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나는 글을 쓰고 싶었다. 물론 가공의 이야기라면 무엇이든 쓰고 싶었지만 동시에 시, 극, 각본도 쓰고 싶었고, 〈스포츠 어필드》 《트루〉 〈아르거시〉 〈로그>와 같은 곳에 기사도 쓰고 싶었다(당시 내가 읽던 잡지들이다). 지역 신문에도 글을 쓰고 싶었다.
일관성 있게 단어를 엮는 일이기만 하다면, 그리고 나 말고 다른사람의 흥미도 끌 수 있는 내용이라면 무엇이든 간에 글을 쓰고싶었다. 하지만 우리가 이사할 당시, 작가가 되려면 뭔가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느낌이 뼛속 깊이까지 들었다. 당시 나는 교육에 굉장히 높은 우선순위를 두었다ㅡ지금보다도 당시에 더 그랬다고 확신하지만, 그건 이젠 내가 나이가 들고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 P196

내 가족 중엔 대학에 간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사실 의무교육 과정인 8학년 이상을 다닌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다. 나는아무것도 몰랐지만,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만큼은 알았다.
그러니까 교육을 받겠노라는 욕망과 함께, 내겐 글을 쓰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있었다. 그 욕망이 어찌나 강한지 분별력‘과 ‘차가운 현실‘ ㅡ즉 내 삶의 ‘실체‘ㅡ이 계속해 나에게 이제그만둬야 한다고, 이제는 꿈을 버리고 조용히 앞으로 나아가 뭔가 다른 것을 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나는 그뒤로도 오랫동안계속해 글을 썼다. 대학에서 받은 격려와 그때 얻은 통찰력이 도움이 되었다. - P196

가드너는 내가 글을 쓸 마땅한 장소를 구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어린아이들과 아내가 있으며 우리가 성냥갑처럼 좁은 집에서 산다는 걸 알았다. 그는 내게 자기연구실 열쇠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선물은 내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했다. 그것은 그냥 평범한 선물이 아니었고, 내게 일종의 명령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ㅡ실제로 그러했기 때문이다. 나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의 일부를 그의 연구실에서 보냈고, 그곳에는 그의 원고가 든 상자들이 있었다. 그 상자들은 책상 옆 바닥에 쌓여 있었다. 상자 하나에 유성 연필로 니켈 산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제목이다. 하지만 내가 글을 쓰기 위해 처음으로 진지하게 시도했던 것은 그의 연구실에서, 출간되지 않은 그의 책들이 보이는 곳에서였다.) - P198

그의 수업에서 단편을 쓰려는 학생들은 열에서 열다섯 쪽 분량의 단편소설을 하나 쓰는 과제를 받았다. 장편소설을 쓰고 싶어하는 이들ㅡ내 생각에 한두 명 정도 있었던 듯하다ㅡ은 이십쪽 정도 분량의 챕터 하나와 나머지 내용에 대한 요약을 써야 했다. 중요한 점은, 단편소설 한 편이나 장편소설의 한 챕터를 가드너가 만족할 때까지 학기중에 열 번 정도 교정을 해야 한다는것이었다. 작가라면 자신이 말한 것을 살펴보는 과정을 통해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를 발견한다는 것이 가드너의 기본신조였다. 그리고 교정 과정을 통해 이런 것을 볼 수 있다고, 또는 좀더 명확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교정을, 끝없는 교정을믿었다. 가드너는 교정 과정을 진심으로 신뢰했고, 작가가 어느단계에 있든지 꼭 필요한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그는 이미 다섯번은 읽었던 글이라 할지라도 학생의 글을 읽으며 지겨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 P200

내 생각에 1958년 그가 단편소설에 대해 품고 있던 생각은1982년에도 여전한 듯하다. 그는 단편소설이란 눈에 띄는 시작, 중간, 결말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끔 그는 칠판으로 가서자신이 원하는 이야기의 봉우리, 계곡, 평원, 해결, 대단원과 같은 감정의 솟구침과 하강에 대해 요약해 보여주기 위해 도표를그리곤 했다. 노력은 했지만 사실 나는 그가 칠판에 그린 내용을이해할 수 없었고, 그리 큰 관심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수업시간에 토론 주제가 된 학생의 단편소설에 대해 그가 하는 평들은 - P200

이해할 수 있었다. 가령, 가드너는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면서 이야기가 거의 끝날 무렵까지 그 인물이 장애인인 것을 밝히지 않은 이유를 큰 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학생은 독자들이마지막 문장에 가서야 이 남자가 장애인임을 알게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의 어조에는 반대 의견이 담겨 있었고, 그 말을 듣는 즉시 그 글을 쓴 작가를 포함해 수업에 참석한모든 사람들이 그게 좋은 전략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독자를놀라게 하려는 의도에서 중요하고 필요한 정보를 이야기가 끝날때까지 숨기는 전략은 속임수였다. - P201

수업시간에 그는 늘 내게 낯선 작가들 이름을 거론했다. 혹은이름은 알았다 할지라도 작품은 읽지 않은 작가들을 거론했다.
콘래드 셀린, 캐서린 앤 포터, 이사크 바벨, 월터 밴 틸버그 클라크, 체호프, 호텐스 캘리셔, 커트 하낵, 로버트 펜 워런. (우리는 워런의 「블랙베리 겨울이라는 단편을 읽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나는 그 작품을 좋아하지 않았고, 가드너에게 그렇게 말했다. "다시 읽는 게 좋을 거야." 가드너는 그렇게 말했고, 그는농담을 한 게 아니었다.) 윌리엄 개스도 언급했다. 가드너는 막<MSS>라는 잡지를 출간하려던 참이었고, 그 첫 호에 「피더슨의아이라는 단편을 실을 예정이었다. 나는 그 원고를 읽었지만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다시 한번 가드너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가드너는 이번에는 내게 다시 읽어보라고 하지 않았다. 그냥 - P201

내게서 원고를 받아가기만 했다. 가드너는 제임스 조이스와 플로베르와 이사크 디네센에 대해 마치 그들이 유바시티 거리 어딘가에 살고 있다는 듯이 말했다. 가드너가 말했다.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자네에게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만큼 누구의 글을 읽어야 하는지도 가르쳐주기 위해서야." 나는 멍한 상태로 교실을 나왔고, 도서관으로 곧장 가서 가드너가 말한 작가들 책을 찾아보았다.
그 당시 헤밍웨이와 포크너는 유행하는 작가였다. 하지만 나는 이 둘이 쓴 작품을 고작해야 두세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어쨌든, 그 둘은 워낙 유명했고 자주 회자되는 사람들이다보니 실제작품이 그 유명세만큼 뛰어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안 그런가? 나는 가드너가 내게 한 말을 기억한다. "포크너의 작품을 닥치는대로 읽어. 그런 뒤엔, 머릿속에서 포크너를 비워내기 위해 헤밍웨이의 모든 작품을 읽고." - P202

나는 가드너가 다른 학생들과 그들의 작품을 교정하기 위해개인 면담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했는지 모른다. 난 가드너가모든 학생에게 충분히 주의를 기울였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내가 당시 느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바, 당시에 가드너는기대했던 것보다 더 진지하고 세밀하고 유심하게 내 글을 살펴보았다. 나는 가드너에게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종류의 비평들을 받았다. 가드너는 나와 만나기 전에 내 글에 미리 표시를 하고, 부적절한 문장과 구와 단어, 심지어 구두점에까지 줄을 그어지웠다. 그리고 이렇게 삭제한 부분은 양보할 수 없는 사항임을내게 이해시켰다. 문장, 구, 단어에 괄호를 해둔 곳도 있었는데, 그런 경우에는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며 이것들을 살릴 수도 있있다. 가드너는 내가 쓴 것에 뭔가를 끼워넣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히 하기 위해 여기저기에 단어가 하나 또는 몇 개씩 들어가고, 어떤 때는 문장이 하나 통째로 - P203

들어가기도 했다.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일은 없다는 듯한 기세로 내 글의 쉼표에 대해 토론했고, 실제로그보다 더 중요한 건 없었다. 가드너는 늘 뭔가 칭찬할 거리를찾았다. 마음에 드는,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이야기를 즐겁고 기대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이끌고 갈 문장, 대화, 지문을 보면 여백에 ‘잘했어‘ 또는 ‘훌륭해‘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러한 의견이 달린 걸 보면 나는 가슴이 뛰었다. - P204

가드너는 꼼꼼하게 한 줄 한 줄 비평을 해주었고, 그러한 비평뒤에 숨은 이유, 왜 그런 식이 아닌 이런 식으로 되어야 하는가를설명해주었다. 그것은 내가 작가로서 발전하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다. 이렇게 세세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우리는 이야기의 더 큰 부분에 대해, 이 이야기를 통해 비추고자 하는 ‘문제‘라든가 해결하려 애쓰는 갈등, 어떤 면에서 이 이야기가 글쓰기의 전체적 틀에 맞아들어갈 수도 있고아닐 수도 있는지 따위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작가의 무딘 감각과 부주의함과 감상벽 때문에 이야기가 모호해진다면, 그 이야기에는 엄청난 약점이 생긴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쁜, 무슨 수를 쓰더라도 피해야 할 것이 있었다.
만약 단어와 감정이 정직하지 않다면, 작가가 그것을 꾸며낸다면, 작가가 관심 없거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쓴다면, 그 누구도그 이야기에 대해서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거라고 했다. - P204

작가에게는 가치관과 기술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드너가가르치고 믿는 것이었으며, 짧지만 소중했던 그때 이후 내가 간직해온 신념이다.
가드너가 1982년 9월 14일 갑자기 세상을 
뜨기 전에 완성한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 작가가 되고 작가로 남는다는 것이어떤 일인지,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현명하고 정직한 평가인 듯하다. 이 책은 상식, 도량, 타협 불가능한 가치관들을 통해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이라면 누구든 작가의 유머 감각과 고귀한 마음가짐 그리고 단호하고 타협 없는 정직함에 감동하게 될 것이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서 작가는 계속해 "내 경험에 의하면......"이라고 말하고 있다. - P205

가드너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글쓰기의 어떤 면은 배울 수 있고 남에게, 대개는 자신보다 젊은 작가에게 전해줄 수있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내가 창작 수업의 선생 역할을 하며 얻은 경험을 통해 보아도 그렇다. 교육과 예술 창작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견해에 놀라지 않으리라. 대부분의 우수하거나 심지어 훌륭한 지휘자, 작곡가, 미생물학자, 발레리나, 수학자, 시각예술가, 천문학자, 전투기 조종사들은 자기보다 나이 많고 능력 있는 선배에게서 배운다. 도자기 굽는 법이나 약물에 대한 수업을 듣는다고 모두가 위대한 도공이나 의사가 되지 못하듯이, 글쓰기 수업을 듣는 그 자체만으로는 위대 - P205

한 작가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런 일을 잘하게 되지도 못한다. 하지만 가드너는 그러한 수업을 듣는다고 손해가 되지도 않는다고 확신했다.
창작 수업을 가르치거나 들을 때의 위험 가운데 하나는 젊은작가의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거짓말이다 이번에도 내 경험을 통해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가드너로부터 반대의 실수를저지르느니 차라리 그 위험을 감수하는 게 낫다는 걸 배웠다. 가드너는 나에게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주었고, 심지어 젊고 배우는 과정에 있는 이가 그러기 쉽듯 내가 마구 흔들릴 때에도 계속 격려해주었다. 다른 직업군에 진입하는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분명 젊은 작가에게도 격려가 필요하다. 아니 내 생각에는 더큰 격려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격려는 늘 정직해야만 하며 절대로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가드너의 책이 특히 뛰어난 점은 바로 그 수준 높은 격려에 있다.
- P206

실패와 실망은 우리 모두가 흔히 겪는 일이다. 인생에서 뭔가를 시도하지만 그게 계획처럼 풀리지 않는다는 의심은 우리 모두에게 언제라도 찾아들 수 있다. 열아홉 살 쯤에 당신은 자신이 되지 않을 무엇인가에 대해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젊은 시절이 반 이상 지나야, 혹은 중년에 접어들어야 자신의 한계를 자각하고 현실을 제대로 통찰하게 된다. 그 어떤 선생도, 제아무리 많은 교육도 애당초 작가가 될 수 없 - P206

는 기질의 누군가를 작가로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직업에 종사하기 시작하고 천직을 추구하는 이라면 누구나 인생에서 쓴맛과 실패를 맛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세상에는 실패한 경찰, 정치인 장군, 실내장식가, 엔지니어, 버스 운전사, 편집자, 저작권 중개인 사업가, 바구니 짜는 이들이 있다. 세상에는 또한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글쓰기 수업 선생들과 실패하고 환멸에 빠진 작가들이 있다. 존 가드너는 이 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 왜 그런지는 [소설가가 되는 것에 대해]에서 발견할 수 있다.
나는 가드너에게 엄청난 빚을 졌고, 이 짧은 글의 문맥에선 아주 간단하게밖엔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뭐라고 말할 수 없을정도로 가드너가 그립다. 하지만 가드너에게서 비평을 들을 수있었고 관대한 격려를 받을 수 있었기에 더할 나위 없이 행운아였다고 생각한다. - P207

내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첫번째 삶은 1977년 6월, 내가 술을 끊었을 때 끝났다. 그때쯤엔 친구들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않았다. 대개는 그냥 아는 사람들과 술친구들이었다. 나는 친구들을 잃었다. 친구들은 점차 연락을 끊거나 그런 행동을 어떻게 비난할 수 있겠는가?-그냥 사라져버렸고, 더 안타까운 건 내가 이들을 그리워하지도 않았으며 이들이 사라진 걸 알아차리지도 못했다는 점이다.
만약 내가 현재의 친구들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가난한 삶과 골골한 몸을 택해야만 한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친구를 선택할까? 아니다. 내가 현재 삶을 포기하고, 가령 구명보트에서 - P216

내 자리를 양보하고 친구를 위해서 죽을 수 있을까? 대답하기 어렵지만, 비겁해 보일지 몰라도 답은 ‘아니요‘이다. 내 친구들도, 내 친구들 가운데 그 누구도 나를 위해서 그러지 않을 것이며, 나 역시 그리 해주길 원치 않을 것이다. 다른 많은 일에서 그러하듯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서로를 완벽히 이해한다. 우리가 친구인 건 우리가 서로를 진정 이해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서로를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좀더 사랑한다.
다시 사진으로 돌아가자. 우리는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으며, 우리 삶의 다른 일들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우리는 작가로사는게 즐겁다. 이 세상에 우리가 작가 말고 되고 싶은 건 없다.
비록 우리 모두 전에 작가가 아닌 다른 직업을 가진 적이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런던에서 함께할 수 있게 된게 무척이나 좋다. 보시다시피,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친구다. 그리고 친구란 함께 있을 때 즐거워야 하는법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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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 막연히 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무엇이 아름다운 것인지 알지 못했다. 이론가가 되더라도 적을 두는 예술 장르가 종래에는 생길 터인데, 그 마음의 집을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듣게 된 한 수업에서 어느 날 <목신의 오후>라는 무용 공연의 영상을 보았다. 1912년 니진스키가 안무하고, 훗날 누레예프가 목신 역할을춘 버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왜 하필 그 작품이었는지를 좀처럼 설명하지 못하겠다. 어쨌거나 나는 그때, 확고하게 저것이 가장 아름답다, 라고 생각했다. 춤추는 사람의 몸, 그 아름다움을 만나 가슴이 쿵쾅거렸다. - P22

어느 미래에 덜 부끄럽기 위해 그때부터 춤을 배웠다. 무용 공연들을 보러 다니고, 각종 축제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그렇게 7년 남짓이 흘렀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생각만큼 가슴 뛰는 공연이 많지 않은 것과, 무대 위 몸의 언어들을 이해하고 번역하는 일이 여전히 버거운 것에 지쳐갔다. 아름다움은 많은 의미에서 멀리 있었다. 그럼에도 처음 사랑한 예술가. 바슬라브 니진스키에 대한 마음만큼은 한 번도 작아진 적이 없다. 어느덧 무용보다는 다른 장르들에 더 적을 두고 살게된 지금이 미래에서도 마찬가지다.
고백할 것도 없이 나는 니진스키의 춤을 본 적이 없다. 백년 뒤에 살아남은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의 춤은 영상으로 남지 못했고, 전해지는 것은 몇 장의 사진뿐이다. 나는 그흑백사진들을 오래 들여다보며 아득해지는 일을 좋아한다.
오른팔을 위로, 왼팔을 옆으로 벌리고 고개를 젖힌 채 눈을 감 - P22

고 황홀하게 웃는 세헤라자데의 노예, 턱을 들고 미간을 다정히 모은 채 희미한 미소로 아래를 건너다보는, 곧 사랑하는 지젤을 잃고 윌리들의 숲에서 살아남을 고귀한 알브레히트, 주름진 얼굴에 서늘한 눈동자로 정면을 응시하는 광대 페트루슈카.
후대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그를 볼 수 없었으므로 그는 전설로 박제되었다. <장미의 정령>이라는 작품에서 니진스키는 분홍 장미 꽃잎으로 뒤덮인 의상을 입고, 이전까지 대개 여성무용수의 몫이었던 요정의 역할을 춤춘다. 장미 한 송이를 들고 무도회에서 돌아온 여인이 꿈꾸듯 잠들면, 창문으로 날아든 그가 눈 감은 그녀와 행복한 춤을 추고, 다정한 손길로 여인이 다시 소파에 몸을 기대자, 정령은 창문밖으로 날아 사라진다. 그리고 여인은 꿈에서 깨어난다.
이 춤에 관해 회자되는 전설에 따르면, 정령이 사라지는 장면에서 니진스키의 도약은 너무도 빼어나, 관객 중 누구도 그것이 그리는 포물선의 추락을 예측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영원히 하늘로 날아갈 것 같았던 것이다. - P23

왜냐하면 춤은, 모든 움직임은,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발생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포즈로부터 다른 포즈로, 어떻게건너가는가가 생을 이루기 때문이다. 단지 건너왔다는 사실 자체는 상실의 허무를 면할 수 없다. 건너옴 사이, 틈새와 균열속에 있던 것들, 거기서 살아 있고 반짝였으며 끝내 흘러가버린 것들이 실은 전부임을 우리는 알고 있기에 그림과 그림 사이에서 사라진 춤을, 여전히 애타게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3년, 또 하나의 제전을 복원하는 과제 앞에서 안무가 도미니크 브렁은 말했다. "저는 영화가 부럽습니다." 그에 따르면 영화에서는 이미지의 조각들을 배치하고 이어 붙여 움직임으로 구현시키는 작업 자체가 매체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는 그 같은 의미에서의 몽타주가 불가능하다. 춤은 그 어떤 사라진 틈새도 그저 삭제시킬 수 없다. 틈새를 메우는 움직임의 자취는 관객에게 고스란히 노출된다. 그 가시적인 블로킹을 벗어날 수 있는 몸은 없다. - P29

그리하여 그가 참조한 것은, 그토록 부러워 마지않는 영화 가운데, 지가 베르토프의 1928년 작 <여섯 번째 세계> 속몸들이었다. 그 낡은 흑백영화는 "당신은 ~입니다"라는 러시아어 문장과 함께, 냇물에서 물 긷는 사람, 양을 치는 사람, 아이에게 젖을 주는 사람, 나귀를 끌고 가는 사람, 모닥불에 몸을 쪼이는 사람 등이 담긴 짧은 영상을 몽타주함으로써 세계의 여섯 번째 영역, 그 가려진 풍경 속 사람들을 ‘당신‘이라는기묘한 호칭으로 우리 앞에 소환한다.
살아가는, 노동하는, 옛날의 몸들. 둘러싸인 자연과 제몫의 행위가 오만 없이 어울렸던 인간의 둥근 무게들. <봄의제전>으로부터 우리가상실한 것은 원작의 기록이 아닌 바로그 몸들이었으므로, 이제 비로소 도미니크 브렁은 제전의 몸을 상상해,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 빈틈을 기워낼 힘을 얻는다.
사랑했던, 없는 당신의 몸이 공간 속에 끌리던 방식을 떠올려볼 수 있게 된다. - P30

그리고 나는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 가루가 무엇인지를나는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의 죽은 몸이 불에타 한 움큼의 뼈로 남겨진 것을. 눈앞에서 뼈가 분쇄되고 정결한 빗자루로 쓸어 담기던 것을. 그 뽀얀 잿빛의 가루를 내가두 손에 받아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든 항아리를 땅에 묻고 삽으로 흙을 떠 세 번에 나누어 흩뿌려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땅으로 돌아가는 것을, 그 땅에도 겨울이 지나봄이 오던 것을 내가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공연의 끝에 밝혀지는바, 카스텔루치의 제전에서 사람을 대신해 춤춘 것은 수십 마리 소의 뼛가루였다. 실제로 오늘날 그것은 대규모로 생산돼 비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우리는여전히, 어떤 생명들을 희생하여 봄의 비옥을 맞이하고 있다. 나는 언 몸으로 객석에 앉아 죽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의 어떤 죽음도 단일하게 종결되지 않는다는 새삼스런 사실을 실감했다. 전설 속의 지목된 여성도, 저 많은 동물들도, 사랑했던 당신도, 나를 대신해, 나의 봄을 대가로 죽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 뼈아픈 진실 속에서, 인간의 백 년이란 너무도 짧은 것이었다. - P32

솔렌은 무대의상을 만드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그는 한 세계속에서 한 인물이 입고 잠시 살다가 죽는 옷을 만든다. 그옷들은 정확한 효용에 의해 하나의 언어가 되었다가 연극의 세계밖에서 무용해진다. 그녀의 학교에는 쓰임을 다한 무대의상들이 보관된 창고가 있다. 의상제작팀을 따로 둔 몇몇 국공립극장에도 그런 창고가 있다. 때때로 극장들은 창고를 열어 저렴한 값에 옷을 판매한다. 그러지 않으면 곧 무덤의 자리가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여 그날 객석에 앉아 나는 궁금했다. <타우버바흐>의 막이 올라가고 모두가 경외감에 싸이는순간, 솔렌과 친구들은 그 어떤 기시감에 아득했을까.
극장에서 판매하는 의상을 산 사람들은 아마도 그것을입을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특별하게 제작된 옷일수록 과도하게 연극적이기 마련이므로, 그러나 생이 연극임을 잊지 않는 이들의 옷장에 사라진 무대의 의상이 한 벌쯤 걸려 있는 풍경을 상상해보는 일은 즐거웠다. 그 옷은 반드시 유효했던 한작품의 필요에 의해 손수 지어졌으며, 오로지 한 인물, 한 배우의 몸만을 위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가상이면서도 실제인, 발생하면서도 소멸하는, 어떤 고유함을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세상에 그다지 많지 않다. 그래서 그 일을 좋아한다고 솔렌은 말했다. - P40

그리고 아마도 파리에서의 초연 때였을 것이다. 역시 모두들 웃으며 손을 내렸고, 한 이란 사람이 일어났다. 그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이란에서는 춤추는 일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선 그렇지 않은데, 당신들은 왜 춤을 추지 않습니까.
그가 무대로 나가 춤추기 시작했다. 춤의 첫걸음을 옮기는 동시에 그는 울고 있었다. 객석에서도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지 못했지만, 바흐를 듣지 못하고도 따라 부르던 사람들처럼, 그 춤을 생각하면 언제든 울수있어진다. 나희덕 시인의 「수화라는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듣지 못하는 노래,
이 노래를 나는 들어도 괜찮은 걸까
네가 말하지 못하는 걸
나는 감히 말해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누군가 보지 못하는춤을 본다. 이 사실을 잊을 수는 없다. 무대 위 옷의 무덤도, 솔렌이 만든 의상의 하나뿐인 실루엣도, 손강과론 강이 만나는자리도, 그 여름의 별똥별도, 누군가 볼 수 없던 것을 나는 본채로 이렇게 쓴다. 그럼에도 저와 함께 춤추시겠어요, 그 질문앞에 아직 용기를 내지 못하고. - P43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어디서나 살아도 상관없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둘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다. 나는 어디에서도 살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그 기분은 무척 낯선 것이었다. 논문을 마무리하고 일 년짜리 비자를 추가로 받게 되면, 나는 그곳에서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을 줄 알았다. 허나 어째서 우리는 가장사랑할 수 없는 시절에 이미 아낌없이 사랑을 해버렸던가. 기진한 내가 더 꾸려가고픈 일상의 풍경이 거기 없었다. 마음속에 풍경이 펼쳐지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는 강의를 하며 지내고 있다. 감히 아름다운 것에 대해서만 전하며, 그만큼 아름다운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수업이 끝난 뒤 꾸벅 인사하며 강의실을 나설 때, - P45

더러 어떤 얼굴은 어딘지 꼭 할 말이 있는 것만 같은 표정을숨긴다. 그 숨김이 애틋하여 나는 날마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싶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날에는 바야흐로 몇 개의 토로가 당도하기도 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은 대체로 슬펐고 많이 따뜻했으며 늘 황송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서로의 몸짓이 눈에 익은 즈음, 또 어떤 이들은 불쑥 물었다. 선생님은 꿈이 있으신가요.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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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원

서울대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렌느2대학에서 공연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여러 대학에서 공연예술이론 및 예술학일반을 가르치며, 변호하고 싶은 아름다움을 만났을 때 비평을 쓴다.
가끔 사진을 찍고 노래 부른다.

뒤늦게 쓰인 비평


좋은 작품을 보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 글을 쓰고 싶어진다. 그 작품에 대한 것일 수도, 전혀 아닌 것일 수도 있는 글을. 그충동을 따르지 못하던 시절이 내게 있었다. 박사 논문이라는 거대한 산이 여타의 사유와 문장을 가로막던 시절. 대체로 많은 날들을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누워 보냈음에도 피차 버려질 그 시간에 일어나 다른 글을 쓸 수는 없던. 그게 산에 대한 예의이자 책무이던 날들.

그러는 동안 아마도 생이 유예되었다. 밖은 소용돌이였으나 나의 작은 방 문을 닫으면 고요가 가라앉았다. 그렇게 시간을 벌었다. 현재적 휘말림이 아닌, 어지러운 춤이 아닌 방식으로 저 소용돌이와 다시 관계 맺을 수 있게 될 때까지 관망할, 애도할 거리가 생길 때까지. 그러나 거리라는 말은 내가 적을두고 있는 공연예술이라는 장르에 얼마나 생소한 것인지. 나는 얼마나 나의 직업을 배반하며 지냈던 것인지.
왜냐하면 공연예술은 시간예술이기 때문이다. 그 존재 방식이 시간에 기대고 있어,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하는 예술. 작품을 다 본 순간 그것은 이미 세상에 없다. 그것은 사라졌다. 남는 것은 기억뿐이며, 기억도 금세 바스라진다. 그러므

로 대개 공연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은 가쁜 호흡으로 이루어진다. 흐릿해지기 전에, 영영 지워지기 전에. 그러나 아무리 현재적이어도 그 글쓰기는 공허를 면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글은 독자가 거의 없다. 사람들은 문학 비평이나 영화 비평을 읽는 것처럼 공연 비평을 읽지 않는다. 글을읽다 흥미로울 경우 뒤늦게 찾아볼, 작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당신은 내가 본그것을 결코 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을 묘사하는 나의 문장은당신에게 기어코 낯설 것이다. 나의 흥분은 기이할 것이다. 어쩌면 당신은 독서를 계속할 인내를 품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리하여 그때, 유예의 시절에, 나는 나를 가슴 뛰게 한많은 공연을 기꺼이 기억의 무덤 속으로 넘겨 보냈다. 충분히희미해진 뒤에, 말하자면 독자에게만큼 내게도 작품이 비실체가 되었을 때 비로소 글을 쓰기 위해서, 독자와는 조금 더가까워지고, 작품과는 한없이 멀어진 채로, 이제는 발생을 멈춘 것들을 끝내 뒤돌아보기 위해서 많은 것이 지나간 뒤에,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이 책에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 동안 프랑스에

살면서,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 두 해 반을 더 보내면서 품었던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보았던 무대, 걸었던 풍경, 만났던 사람, 못 지킨 죽음, 읽었던 말들과 불렀던 노래가 담겨 있다. 이는 그 모든 지나간 것들에 대한 뒤늦게 쓰인 비평이다. 당신에게 닿기를 바라 유예되고 간직되었던. 어쩌면 삶도 한 편의 공연처럼 흘러가면 그만이기에.
이제 한 시절이 덮였으니 문득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어째서 어떤 슬픔은 발화됨으로써 해소되는지. 나는 그것이 늘 슬펐다. 그러나 그럼에도 말이 되지 못하고 남는 것들이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모국어로만, 침묵으로만 호명되는 것들. 그러니 나는 아마도 다시 침묵 속으로 평생을 배워도 다알지 못할 세계의 아픔에게로, 언제나 나보다 한발 앞서 그아픔을 들여다보는 친애하는 예술에게로 모든 것을 빚진, 아름다움에게로.

2021년 10월
목정원

극장이라는 공간은 오묘하다. 실시간으로 눈앞에 펼쳐지는가상의 세계를 만나러 우리는 그곳에 간다. 몇 시간짜리 허구를 기꺼이 함께 용인하는 약속이 이루어지는 곳. 지구 위에는내가 사랑하는 극장들이 몇 있고, 사랑을 촉발시킨 것은 대체로 거기서 마주한 허구의 세계였다. 나는 아름다운 가상을 만난 곳에서, 그 공간을 또한 아름답다고 여긴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가상은 실제의 공간 속에 기입됨으로써만관객과 만나게 된다. 적어도 지금껏 공연예술이라 일컬어진것들의 역사는 저 질서를 파기한 적 없다. 피터 브룩이라는 연출가는 그의 저서 『빈 공간에서 누군가 그곳을 가로지르고,
누군가 그를 지켜본다면, 모든 공간은 극장이 될 수 있다고썼다. 요컨대 무대가 성립되려면 최소한 한 명의 배우와 한 - P11

명의 관객이 필요하며, 그들의 현전이 파문을 일으킬, 공간이 필요하다.
이때 공간이란 어떤 종류여도 관계없다고 브룩은 덧붙였지만, 나는 언제고 궁금했다. 모든 빈 공간은 어떤 모양으로비어 있는가. 세상에 같은 공간은 없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고유하게 만날 것인데, 거기 어떤 모퉁이가 있어, 당신은 어디로들어오고, 나는 어디를 응시할 것인가. 빈 공간은 다시 또 어떤 빈 공간들로 나뉘고, 당신은 어디서 넘어질 것인가. 우리는어떻게 접힐 것인가. 당신의 춤은 어디까지 달려갈 것인가. - P12

제일 먼저 우리는 책상과 의자를 치워 공간을 비웠다. 그리고 거기 서서 우리가 속한 그곳을 바라보았다. 언제든 수업을 하러 강의실에 들어가면 먼저는 그 일을 하라고 위그가 말했다. 가만히 서서 공간을 감각하는 일. 이제 곧 이야기가 번질, 나의 목소리가 울려나올 그곳. 이때 공간을 감각한다는것은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나를 잊지 않는 일이다. ‘내가 여기 있어.‘ 그것을 느끼는 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된다.
그러나 존재는 몸이라는 물성을 입고 있기에 단지 바라봄만으로 충분치 않을 때가 있다. 하여 다음으로 우리가 한일은 공간 속을 걸어보는 일이었다.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눈으로 인사하면서, 아무와도 부딪치지 않는 채로, 각자가 바닥에 그리던 보이지 않는 곡선들. 편재하는 공간을 몸으로 익히는 동안 다시 그 속에서 무수히 발생하던 새로운 공간들의 결. - P13

특별히 재밌었던 건 보편성과 특수성에 관한 연습을 한일이었다. 강단에 선 상황에서는 저 둘을 잘 조율하는 능력이필요할 거라고 위그가 말했다. 한두 사람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전체 청중을 존중하며 모두에게 발화하되, 판단에 따라어떤 순간에는 특정 지점에 눈길을 돌려 주의를 환기시킬 수있어야 한다는 것. 특수로부터 빠져나와 다시 보편으로 돌아가고, 보편을 보는 사이 포착된 특수를 제때 주목할 수 있는, 일종의 유희를 원활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 P13

공연을 보고 나와 해질 무렵의 강변을 걸으며, 나는 함께 있던 친구에게 그라프롱의 수업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떠나기 위해, 혹은 무언가를 떠나보내기 위해 공간 속에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배웠노라고. 이제 어디에 살며 무슨 일을하더라도 제일 먼저 그곳에 도착했을 때 홀로 직립을 연습할수 있다고. 그날 마침 나는 극 중 에우리디케가 입은 것과 비슷한 검정 원피스를 입고 있었고, 죽음으로부터 걸어 나올 때 그의 손에 쥐인 채 땅에 끌리던, 죽은 몸을 감쌌던 흰 베일과 닮은 천 가방을 들고 있었다. 친구는 신이 나서 내게 강가의 잔디 위를 걸어보라 하고는 연신 사진을 찍었다.
생은 고통이고 죽음만이 안식일지라도, 생을 향해 걸어나가는 일, 그 걸음을 흉내 내자 문득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던 저 기분이 되살아났다. 나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같았다. 누구라도 나를 돌아보지 않을 것을 두려워 않고. - P18

누군가 내게 파리에서 무엇을 하였나 묻는다면 나는 그저 존재하는 일을 했다 하겠다. 공간 속에 서거나 앉거나 누워, 세계를 전부 감각했으므로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몸을 마침내 연마했노라고, 그럼에도 거기 남아 있는 얼굴을 한 번만더 보고 싶었다고.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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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해


1960년대 중반, 나는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 정신을 집중하는것 자체가 내겐 버거운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장편소설을 쓰는 것은 고사하고 읽는 것조차 부담스러웠다. 내게서 집중력은 사라져버렸다. 더는 장편소설을 쓸 만큼의 인내심을 발휘할 수 없었다. 여기에는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지만, 여기서 털어놓기에는 너무 지루한 내용이다. 하지만 이는 내가 이제 시와단편들만을 쓰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시작하고, 끝낸다. 어슬렁거리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간다. 그건 그 무렵, 그러니까내가 이십대 후반이던 때에 원대한 야심을 전부 잃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발전하기 위해 야심과 작은 행운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 P161

너무 큰 야심과 불운, 또는 운이 전혀 없다면, 그건 치명적이다. 물론 재능은 있어야 한다.
어떤 작가에게는 엄청난 재능이 있다. 내가 보기에 모든 작가에게는 재능이 있다. 하지만 사물을 바라보는 독특하고 정확한방식, 그리고 그런 관점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한 문맥을 찾아내는 능력, 그건 재능과는 다른 무엇인가다. 가프가 본 세상』은 당연히 존 어빙이 보는 놀라운 세상이다. 플래너리 오코너가 본 세상이 있고, 윌리엄 포크너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본 세상들이있다. 치버, 업다이크, 싱어, 스탠리 엘킨, 앤 비티, 신시아 오직, 도널드 바셀미, 메리 로빈슨, 윌리엄 키트리지, 배리 해나, 어슐러 K. 르 귄도 자신만의 독특한 세상을 만들어냈다. 위대한 작가들은 모두, 심지어 단순히 아주 훌륭한 작가들도 자신만의 독특한사변을 통해 세상을 만들어낸다. - P162

내가 말하는 것은 스타일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단지 스타일만은 아니다. 그건 작가가 쓰는 모든 글에 담긴 독특하고 분명한 서명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오로지 그 작가만의 세계이다. 그리고 이것이 한 작가와 다른 작가를 구별지어주는 기준 가운데 하나다. 재능이 아니다. 재능 있는 작가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특별한 방식으로 사물을 보는 작가, 그리고 그렇게 사물을보는 방식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는 한 시대 안에 흔하지않다. - P162

이사크 디네센은, 자신은 날마다 희망도 절망도 하지 않고 조금씩 써나간다고 했다. 언젠가 나는 가로 3인치, 세로 5인치짜리 카드에 그 말을 적어 내 책상 옆 벽에 붙여놓을 생각이다. 내방 벽에는 이미 3x5 카드들이 몇 장 붙어 있다. "서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은 글쓰기의 유일한 도덕이다." 에즈라 파운드가 한 말이다. 작가가 추구해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만약 작가가 ‘서술의 근본적인 정확성‘을 추구한다면, 적어도 제대로 들어섰다고는 할 수 있다. - P163

내게는 체호프의 단편에 나오는 문장 일부를 적은 3×5 카드가 있다. ".....그리고 돌연 그에게 모든 게 명확해졌다." 나는이 단어들에 경이로움과 가능성이 가득함을 발견한다. 나는 이단어들이 보이는 단순명쾌함, 그리고 은연중에 내비치는 이후벌어질 사건의 암시가 마음에 든다. 이 문장에는 또한 수수께끼도 담겨 있다. 이전까지는 무엇이 그렇게 불명확했나? 왜 이제는그것이 명확해졌나? 무슨 일이 일어났나? 무엇보다도, 그래서어떻게 되었나? 그러한 갑작스러운 깨달음으로 인해 생겨나는결과가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또렷한 안도감 그리고 기대를 느낀다.
나는 제프리 울프가 글쓰기 수업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싸구려 트릭 금지"라고 말하는 것을 어쩌다 엿들은 적이 있다. 그 말역시 내 카드에 들어가야 할 내용이다. 나라면 그 내용을 조금 - P163

바꾸고 싶다. ‘트릭 금지.‘ 수식어는 필요 없다. 나는 트럭을 싫어한다. 소설을 읽다가 트릭 또는 술책을 사용하는 느낌이 들면, 그게 싸구려 트릭이든 아니면 공들인 트릭이든 상관없이 책을 덮어버린다. 트럭은 궁극적으로 지루하고, 아마도 내 집중력이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겠지만, 나는 쉽사리 지루해진다. 하지만 아주 영리하게 멋부려 썼든지, 혹은 그냥 평범하고멍청하게 썼든지와 상관없이, 트럭이 들어간 글을 읽노라면 나는 잠이 든다. 작가는 트럭이나 술책이 필요 없으며, 심지어 주변에서 가장 똑똑한 인물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작가라면, 바보처럼 보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가끔은 그냥 멍하니 서서 이런저런 대상을 바라보며 푹 빠져 입을 헤벌리고 감탄할 필요가 있다. 그 대상은 석양일 수도 있고 낡은 신발 한 짝일 수도 있다 - P164

몇 달 전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서 존 바스가 말하길, 십년전에는 그의 소설 작법 세미나에 참석한 학생들 대부분이 ‘형식의 혁신‘에 관심이 있었지만 이제 더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듯하단다. 그는 1980년대에 작가들이 소시민적인 소설들을 쓰기 시작하는 것에 약간 염려를 했다. 그는 자유주의와 함께 실험 정신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걱정한다. 나는 소설 창작에 있어 ‘형식의혁신‘에 대한 진지한 토론을 가까이서 접할 때면 살짝 긴장한다.
‘실험‘은 부주의함과 멍청함 또는 모방의 허가증으로 사용되는경우가 너무나도 잦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게 더욱 고약한 이 - P164

유는 작가가 독자를 학대하고 소외시키는 허가증으로 이걸 이용하기 때문이다. 대개 그런 식의 글은 세상에 대해 독자들에게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알려준다 해도 기껏해야 황량한 풍경, 여기저기에 모래언덕 몇 개와 도마뱀 몇 마리가 있지만 사람은보이지 않는 그러한 풍경 묘사에 그칠 뿐이다. 인간이 알아볼 수있는 것은 전혀 살지 않는 그런 곳은 오로지 극소수 과학 전문가에게나 흥미로울 뿐이다.
소설에서 진정한 실험이란, 참신하고, 어렵사리 성취되는 것이며, 기쁨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 하지만 모름지기 작가라면 다른 누군가의 관점-가령 바셀미의 관점아가면 안 된다. 그렇게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세상에 바셀미•는 한 명뿐이며,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바셀미의 독특한 감성이나 미장센을 도용한다면 그 작가는 혼돈과 재난을 자초할 뿐 아니라 더욱더 심각하게는 자기 기만까지 하는 셈이 된다.  - P165

진정한. 실험자라면 파운드가 촉구했듯이 대상을 "새롭게 해야" 하며, 그 과정에서 스스로 대상을 발견해야만 한다. 하지만 작가가 제정신이라면 한편으로 우리와 교감을 하길 원할 것이며, 자신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할 터이다.
시나 단편에서 일상의, 하지만 적확한 언어를 구사해 일반적인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쓰고, 그러한 대상-이를테면 의자, 커튼, 포크, 돌멩이, 귀걸이에 거대한, 심지어 놀랄 만한 힘을 싣. - P165

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평범해 보이는 대사 한 줄로 독자의 등골을 오싹하게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나보코프가 그러한 예술적 기쁨의 원천을 가진 작가의 예이다. 내가 가장 흥미로워하는 글은 바로 그런 종류이다. 나는 야무지지 못한 엉터리 글을 싫어한다. 그게 실험이라는 미명하에 쓰여진 것이든 그냥 서투르게 차용된 리얼리즘이든 상관없다. 이사크 바벨의 멋진 단편 「기 드 모파상」에서 화자는 소설을 쓰는 것에 대해 다음처럼 이야기한다. "그 어떤 쇳조각도 올바른 자리에 찍힌 마침표처럼강력하게 우리의 가슴을 찌를 수는 없다." 이 말 역시 3X5 카드에 담겨야 한다. - P166

에번 코넬이 말하길, 단편을 쓰고 나서 다시 읽으며 쉼표를 모두 제거하고, 그다음에 다시 읽어보며 쉼표를 넣었을 때 같은 자리에 쉼표들이 들어가면 글이 완성된 거라고 했다. 나는 그런 식으로 일하는 게 좋다. 나는 무슨 일을 한 뒤 그렇게 신중하게 검토하는 자세를 존경한다. 결국 작가에게 있는 건 단어뿐이니, 기왕이면 적절한 단어를 선택하고 적절한 곳에 구두점을 찍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최대한 잘 표현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작가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단어들이 너무 과장되었다든가 또는 뭔가 다른 이유로 정확하고 올바르지 않은 단어를 썼다면, 어떤 식으로든 단어들이 애매하다면, 독자의 눈은 그 단어들을 미끄러지듯 지나가버리고 작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것이다. - P166

한마디로 독자의 예술적 감각을 사로잡지 못한 것이다. 헨리 제임스는 이렇게 불운한 글을 "빈약한 열거"라 불렀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급히 책을 써야 했다거나, 혹은 편집자가 성화를 부렸다거나 부인과 갈라서는 중이었다는 식으로, 자기 작품이 아주 좋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는 친구들이있다. "시간을 더 들였다면 훨씬 더 나은 글이 되었을 거야." 소설가인 친구가 이런 말을 했을 때, 나는 너무 놀라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본다 할지라도 여전히 같은 반응을보일 것이다. 물론 나는 그 일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는다. 내가상관할 바가 아닌 것이다. 하지만 만약 더 잘 쓸 수 있음에도 그렇게 쓰지 않았다면, 애초에 왜 쓴단 말인가? - P167

결국, 우리가 무덤까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최선을 다했다는 만족과 그노동의 증거가 아닌가. 나는 그 친구에게, 제발 부탁이니 작가는때려치우고 다른 일을 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먹고살기 위해 할수 있는 일 가운데는 그런 식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더 쉽고 또한 아마도 더 정직하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저 능력과 재능을 다해 글을 쓰고, 일단 쓴 다음에는합리화를 하거나 핑계를 대지 마라. 어떤 불평도, 변명도 하지마라.
플래너리 오코너는 「단편소설 쓰기」라는 소박한 제목이 붙은에세이에서, 글쓰기란 발견 행위라고 말한다. 오코너는 단편소 - P167

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으면 대개는 글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자기도 모른다고 한다. 또한 자기 생각엔 과연 얼마나 많은작가들이 결말을 미리 알고 글을 쓰기 시작하는지 의심스럽다고말한다. 오코너는 「선한 시골 사람들이라는 작품을 예로 들며, 자신은 이 작품이 끝나기 직전까지도 그 끝이 어떻게 될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 P168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나무 의족을 단 박사가 이 작품에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느 날 아침 문득 정신을차리고 보니 내가 어느 정도 알던 두 여인에 대한 묘사 부분을쓰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둘 가운데 한 여인에게 의족을 단 딸을 만들어주고 말았다. 또한 계속 쓰다가 성경책 판매원을 끼워넣었는데, 과연 내가 이 사람을 어떻게 할 건지에 대해서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판매원이 의족을 훔치는 장면에서 여남은 줄 앞부분을 쓸 때만 해도, 나는 그자가 의족을 훔치게 되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자가 의족을 홈치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나는 이야기가 그렇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68

몇 년 전에 이 글을 읽었을 때 나는 오코너가, 또는 누구든 나말고 다른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쓴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았다. - P168

나는 이 방식이 나만의 불편한 비밀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쓰는 게 살짝 마음에 걸렸다. 나는이런 방식으로 단편을 쓰는 것이 어떤 식이 되었든 간에 나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코너가 이 주제에 대해 털어놓은 것을 읽고 나는 무척이나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언젠가 나는 결과적으로 꽤 좋은 단편이 된 글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내가 그 글을 시작할 때는 단지 첫 문장만있었을 뿐이었다. 며칠 동안 내 머릿속에서는 그 문장이 떠나지않았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그는 진공청소기를 쓰고 있었다."[<내 입장이 돼보시오 >의 첫 문장이다.] - P169

나는 그 문장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또한 내가 그 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서두에서 이야기를 뽑아낼 수 있음을 분명히 알았다. 그 이야기를 쓸 시간만 있다면말이다. 나는 시간을 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하루종일, 아니면열두 시간이나 열다섯 시간이라도 어떻게든 시간을 냈다. 나는시간을 냈고, 아침에 앉아 첫 문장을 썼다. 그러자 다음 문장이줄줄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시를 쓸 때처럼 그 단편을 썼다.
한 줄, 다음 한 줄, 그다음 한 줄. 곧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게 내 이야기임을, 내가 계속 쓰고 싶어했던 이야기임을 알았다. - P169

나는 단편에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조짐이나 위협의 느낌이 담긴 게 좋다. 단편에는 약간의 위협이 담긴 게 좋다고 생각한다.
우선, 그러면 판매에도 도움이 된다. 뭔가 가혹한 일이 당장이라도 일어날 듯한 긴장이 없다면, 대개의 경우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소설에서 구체적인 단어를 연결해 눈에 보이는 행동을 이끌어내면 어느 정도는 긴장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또한명시되지 않은 것들, 암시, 사물의 잔잔한 (하지만 가끔씩 부서지며 동요하는) 표면 바로 아래의 풍경도 필요하다. - P170

V. S. 프리쳇은 단편소설을 "지나가며 곁눈질로 얼핏 본 무엇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얼핏 본‘이라는 부분에 주목하라. 처음에는 얼핏 본 것일 뿐이다. 이윽고 얼핏 본 것에 생명이 생기고, 순간을 밝히는 뭔가로 바뀌고, 만약 또 한번 말하지만ㅡ우리가 운이 좋다면, 더 넓고 깊은 결과와 의미를 볼 수 있게 된다. 단편소설 작가의 임무는 자신의 온 능력을 그 얼핏 본 것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작가의 지혜와 문학적 기술(재능)이 무르익고, 균형 감각과 사물의 합당성에 대한 감각이 길러지고, 사물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하는가와 그것을 자신이 어떻게 파악하는가를 감지할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은 명확한언어를 씀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언어는 독자들을 위해이야기를 밝혀줄 세세한 부분들에 생명을 부여한다. 세세한 부분들이 확고하고 의미를 전달하려면,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를 - P170

써야 한다. 단어들은 너무나도 명확하기에 어쩌면 평범하게 보이기까지 하겠지만, 그럼에도 전해야 할 뜻은 여전히 전할 수 있다. 만약 제대로 쓴다면, 그 단어들은 모든 음을 정확히 때릴 수있다. - P171

영향은 힘이다-조수처럼 거부할 수 없는 환경이자 특성이다. 내게 영향을 준 책이나 작가를 말할 수는 없다. 그러한 종류의 영향, 문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꼭 집어 말하기가 어렵다. 내가 살면서 읽어온 모든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면 그 어떤작가에게서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부정확할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오랫동안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쓴 장단편소설의 팬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어라는 측면에서는 로런스 더럴의 작품이 비범하며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더럴처럼 쓰지 않는다. 더럴은 내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한다. 나는 내 글이 헤밍웨이의 글과 ‘비슷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헤밍웨이의 작품이 내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고는 말할 - P173

수 없다. 더럴과 마찬가지로, 헤밍웨이는 내가 이십대일 때 처음읽고 존경하게 된 많은 작가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러니 나는 문학적 영향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하지만다른 영향에 대해서는 조금 안다. 처음에 흘깃 보았을 때는 종종수수께끼 같은, 어떤 때는 거의 기적에 가깝게 보이기도 하는 그러한 방식으로 나를 내리누르는 영향이다. 하지만 이러한 영향들은 내가 글을 써나가며 명확해진다. 이러한 영향들은 가혹했으며, 여전히 가혹하다. 그러한 영향들로 인해 나는 이쪽 방향으로 갔고, 그래서 호수의 저쪽 편이 아닌 이쪽 모래톱에 오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약 내 삶과 글에 미친 주요한 영향이 부정적인 것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믿는 것처럼) 억압적이고종종 사악하기까지 한 것이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걸까? - P174

나는 기억력이 나쁘다. 이 말은 내가 인생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을 잊었다는 뜻이지만 (확실히 이건 축복이다), 내가 살았던 마을이나 도시, 만난 사람들의 이름, 또는 그 사람들 자체를 설명하거나 떠올릴 수 없는 기간이 꽤 길게 존재한다는 의미도 된다. 커다란 공백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있다. 사소한 것들이다. 누군가가 무엇인가에 대해 독특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했다거나, 누군가의 호탕하거나 기운 없는, 또는 초조한 너털웃음이라든가, 풍경, 누군가의 얼굴에 담긴 슬프거나 당황한 표정 따위 말이다. 또한 나는 극적인 일들도 일부 기억한다. 누군가 분노에 차 칼을 들고 내게 들이댄다든가, 누군가를 위협하는 나 자신의 목소리를 들었던 일을 기억한다. 누군가문을 부수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기도 했고, 계단에서 추락하는 모습을 본 적도 있다. 이런 극적인 종류의 기억은 필요할 때면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내게 대화 전체를 당시의 모든 몸짓과 뉘앙스를 그대로 살려 현재로 불러올 수 있는 기억력은 없다. - P177

물론, 내가 쓴 단편들 중 진짜로 일어난 일은 하나도 없다나는 자서전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내 글 대부분은 내 삶에서 일어났던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비록 희미할지라도 어느 정도는담고 있다. 그러나 어떤 단편에 담긴 실제 환경이나 가구를 자세히 떠올리려 해보면(어떤 꽃이 있었더라? 어떤 향이 났더라? 등등), 기억나는 게 전혀 없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며 그에 대해꾸며내야 한다. 이야기 속에서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고, 무엇을하며, 그래서 뭐라고 대꾸하고, 그다음에는 그 사람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따위 말이다. 나는 등장인물들이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를 만들어낸다. 물론 그 대화에는 언젠가 내가 특정한 상황에서 들었던 어떤 특정한 구절, 또는 한두 문장이 담길수도 있다. 심지어 그런 문장이 단편의 시작점이 되기도한다. - P179

플래너리 오코너는 한 에세이에서, 작가가 스무 살이 넘으면삶에서 그리 큰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썼다. 스무 살 이전에이미 소설을 쓰기에 충분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녀 말에 따르면, 차고 넘친다. 이후에 작가가 창조적 삶을 살기에 충분한 일을 겪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내 경우는 이 말이 맞지 않는다. 이야기 ‘소재‘로 떠오르는 대부분의 것들은 내가 스무 살 이후에 겪은일들이다. 사실 나는 아버지가 되기 전의 삶에 대해 별로 기억하는 게 없다. 내가 스무 살이 되기 전까지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내 삶에서 뭔가 일어났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윽고 내 인생에서 뭔가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 P180

지금 나는 진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달과 조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영향은 그런 식으로 내게 다가왔다. 창문을 활짝 열었을 때 밀려오는 바람처럼 말이다. 그시점까지 나는 내 삶에서 모든 게, 비록 정확히 어떻게 될지는모른다 할지라도, 내가 희망하는 대로 또는 원하는 대로 어떻게든 잘 풀릴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순간 빨래방에서, 그건 전혀 진실이 아님을 깨달았다. 나는 내 삶의 대부분이 어지럽고 시시한 일로 이루어졌으며, 희망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그전까지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 - P182

던 걸까? 그 순간 나는 내가 사는 삶이 그토록 동경하던 작가들의 삶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고 알았다. 나는 작가라면 토요일을 빨래방에서 허비하지 않으며, 아이들의 요구와 변덕에 전전긍긍하며 귀중한 시간을 쓰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안다, 알아, 감금, 실명, 고문이나 이런저런 형태를 띤 생명의 위협처럼 창작활동에 훨씬 더 심각한 방해를 받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해도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맹세하건대, 이 모든 일이 그 빨래방에서 일어났다-나는 앞으로도 이런 책임과 당혹스러움 속에서 살아야 할뿐 별다른 변화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상황이 변할 수는 있겠지만, 절대로 더 좋아지지는 않을 터였다. 나는 그 사실을 알왔지만, 내가 그걸 감내하고 살 수 있을까? 그 순간 나는 조정이필요함을 알았다. 눈높이를 낮춰야 할 터였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내게는 통찰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통찰력이 뭐? 통찰력은 그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통찰력이 있으면 삶이 더 고달파질 뿐이다. - P183

오랫동안, 아내와 나는 우리가 열심히 일하고 올바른 일을 하려 애쓴다면 올바른 결과가 있으리라 믿어왔다. 삶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나쁜 방법은 아니다. 열심히 일하기, 목표, 좋은 의도, 성실, 우리는 이게 미덕이라 믿었으며 언젠가는 보상을 받으리라 생각했다. 우리는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오리라 꿈꿨다. 하지 - P183

만 결국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선가 아마도 아이오와시티나 아니면얼마 지나지 않아 이사한 새크라멘토에서였던 듯한데, 우리의꿈은 부서지기 시작했다.
아내와 내가 신성하게 또는 가치 있게 여겼던 관점, 모든 정신적 가치들이 시간이 흐르며 부서져갔다. 우리에게 뭔가 끔찍한일이 일어났다. 다른 가족들에게서는 일어나는 걸 본 적이 없는뭔가였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없었다. 하지만 그건 부식이었고,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없었다. 우리가 보고 있지 않던 사이,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이 운전석에 앉은 것이다. 지금은 말도 안 되는 소리로 들리지만, 아이들이 고삐와 채찍을 잡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던 것과 같은 일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 P184

나는 내가 들인 소위 문학적 노력에 따르는 가시적인 결과물을 보고 싶었다. 퇴짜 편지, 공허한 약속, 기약 없이 원고지와 씨동만 하는 일은 사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부러 그리고 필요에의해, 한 번이나 최대한 두 번이면 마칠 수 있는 글들만 썼다. 지글 내가 말하는 건 초고이다. 나는 끈기를 가지고 고쳐썼다. 하지만 그 시절엔, 비록 시간이 걸리기는 했어도 고쳐쓰는 시간을무척이나 기다렸다. 나는 기꺼이 그 시간을 쓸 용의가 있었다.
어떤 면에서 볼 때, 나는 작업중인 단편이나 시를 서둘러 끝마칠 필요가 없었다. 뭔가를 끝낸다는 건 다른 걸 시작할 시간과 확신을 찾아내야만 한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초고를 마친 뒤 끈기 있게 고쳐썼다. 아주 오랜 시간처럼 느껴지던 기간동안 원고를 집에 두고 이걸 바꾸고, 저걸 더하고, 다른 뭔가를 빼는 식으로 가지고 놀았다.
거의 이십 년 동안, 나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글을 썼다. 물론 좋은 시기도 있었다. 오직 부모만이 느낄 수 있는 성숙한 기쁨과 만족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독약을 먹겠다. - P187

한동야 나는 여전히 벽에 막혀 있었고, 어느 방향으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만약 한때 내게 정열이 있었다면, 그것은 꺼진 상태였다.

영향, 존 가드너와 고든 리시. 그 둘에게 나는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 하지만 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건 내 아이들이다. 아이들이 내 삶과 글을 만들고 움직인 가장 큰 요인이다. 알겠지만, 나는 여전히 내 아이들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 비록 이제는 앞날이 상대적으로 더 명확하고주위도 조용하지만 말이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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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어스는 통나무를 받침대 위에 놓았고, 이마의 땀방울이서늘하게 느껴지고 해가 완전히 질 때까지 한동안 톱질을 했다. 현관등이 켜졌다. 마이어스는 작업하던 통나무가 완전히 잘라질때까지 톱질을 했다. 두 토막 난 나무를 차고에 가져다놓고, 집에 들어가 욕실에서 씻은 다음, 자기 방의 테이블 앞에 앉아 공책에 썼다. 오늘 저녁 내 셔츠 소매에 톱밥이 묻어 있다. 달콤한 향이난다.
그날 밤, 마이어스는 오랫동안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었다. 마이어스는 침대에서 나와 창밖으로 나무가 쌓인 뒤뜰을 보았고, 그러다 계곡 그리고 이어진 산맥으로 눈을 돌렸다. 구름에 달이일부 가려져 있었지만 봉우리들과 흰 눈이 보였고, 창문을 열자 달콤하고 시원한 공기가 들어왔으며, 저멀리서 강물이 계곡을따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 P47

이튿날 아침, 마이어스는 밖으로 나가 작업을 시작할 수 있도록 어서 부부가 집을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마이어스는 뒤뜰로통하는 계단에서 솔이 마이어스를 위해 놓아둔 듯한 장갑 한 켤레를 발견했다. 마이어스는 해가 중천에 오를 때까지 톱질을 하고 도끼질을 했으며, 이윽고 집에 들어가 샌드위치를 먹고 우유를 약간 마셨다. 그리고 다시 밖으로 나와 작업을 재개했다. 어깨가 아프고 손가락이 욱신거리고 장갑을 꼈는데도 쪼개진 나무가시가 손에 박히고 물집이 부어올랐지만, 마이어스는 계속 작업을 했다. 마이어스는 해가 지기 전에 이 나무들을 모두 자르고쪼개기로 결심했다. 마이어스에게 이건 생과 사의 문제였다. 난이 일을 끝내야만 해. 안 그러면...... 마이어스가 생각했다. 마이어스는 작업을 멈추고 얼굴의 땀을 소매로 닦았다. - P48

내 아버지 이름은 클레비 레이먼드 카버다. 아버지 가족은 당신을 레이먼드라고 불렀고, 친구들은 C. R. 이라고 불렀다. 내 이름은 레이먼드 클레비 카버 주니어다. 나는 이름 뒤에 붙은 ‘주니어‘라는 부분이 싫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개구리라 불렀고, 그건 괜찮았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나를 주니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내가 열세살인가 열네 살 때, 나를 그렇게 부르면 이제 대답을 하지 않겠노라고 선언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계속해서 나를 주니어라고 불렀다. 그뒤로 아버지는 나를 ‘닥Doc‘이라 불렀다. 그때부터 세상을 뜨던 1967년 6월 17일까지 아버지는 나를 닥 또는 아들이라불렀다 - P143

아버지가 세상을 떴을 때, 어머니는 그 소식을 알리려고 내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당시 나는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서, 인생의목표 사이에서 잠시 쉬며 아이오와 대학의 도서관학과에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아내가 전화를 받았을 때 어머니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했다. "레이먼드가 죽었어!" 아내는 잠시 어머니가 내가죽었다고 말하는 걸로 생각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계속 이야기를 하며 어느 레이먼드가 죽었는지 확실하게 밝히자 아내가 말했다. "다행이네요. 전제 레이먼드가 죽은 줄로만 알았어요." - P144

그 시절, 나는 내 가족을 부양하고 생활을 꾸려나가려 애쓰고있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일이 연이어 일어나서, 우리는 여기저기로 이사를 다녀야만 했다. 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계속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느 크리스마스에 나는 아버지에게 작가가 되겠노라고 말했다. 차라리 성형외과 의사가되겠노라고 말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뭐에 대해서 쓸 거냐?" 아버지는 알고 싶어했다. 그러고는 나를 도와주겠다는 듯 - P154

이 말했다. "네가 알고 있는 걸 써. 우리가 낚시하러 갔던 일에 대해 써." 나는 그러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그러지 않으리라는걸 알았다. 아버지가 말했다. "네가 쓴 걸 보내주렴." 나는 그러겠노라고 말은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그 시절에 낚시에 대한건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아버지가 특별히 관심이 있어 보이지도, 내가 당시 쓰던 글들을 이해할 것 같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버지는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쨌든, 내가 쓰는 유의 글을 읽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윽고 아버지가 세상을 떴다. 나는 멀리 아이오와시티에 있었고, 아직 아버지에게 못다한 말들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안녕이라는 말도 하지 못했고, 아버지가 새로 시작한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듯하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다시 기력을 되찾아 아주 자랑스럽다는 말도 하지 못했다. - P155

스물두 살의 아버지가 담긴 사진


10월. 여기 축축하고 낯선 부엌에서
나는 당혹스러워하는 젊은 아버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부끄러운 듯이 웃음지으며, 아버지는 한 손에는
가시달린 노란색 농어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칼즈배드 맥주병을 들고 있다.

청바지에 데님 셔츠 차림으로, 아버지는
1934년형 포드의 앞쪽 펜더에 몸을 기대고 있다.
자식에게 굳세고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아버지는 낡은 모자를 귀 너머로 젖혀 쓰고 있다.
평생 아버지는 용기 있게 살길 원했다.

하지만 두 눈, 그리고 죽은 농어가 매달린 낚싯줄과
맥주병을 힘없이 잡은 두 손은 아버지의 진실을
드러낸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하지만 제가 어찌 아버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할 수 있겠 - P157

습니까. 저 역시
제 술병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낚시할 곳은 알지조차 못하니 말입니다.


이 시는 아버지가 죽은 게 시의 처음에서처럼 10월 October이 아니라 6월June이라는 점만 빼면 모두 사실이다. 나는 여운이 있기를 원했기에 1음절보다 긴 단어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사실 그것보다, 이 시를 썼을 당시 느꼈던 감정에 어울리는 달을 원했다. 낮은 짧고, 빛이 희미하고, 공중에는 연기가 맴돌고, 사물이 소멸하는 때를 원했다. 6월은 밤과 낮이 모두 여름다우며, 졸업식이 있고, 우리 결혼기념일이 있으며, 내 아이 가운데 하나의 생일도 있다. 6월은 아버지가 죽기에 적당한 달이 아니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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