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락방의 미친 여자』를 공동 집필하는 동안 위와 같은 소설들을 다수 읽으면서, 이 소설들이 제인 오스틴이나 샬럿브론테, 엘리자베스 배럿 브라우닝 같은 작가들이 보다 감추어진 식으로 발언했던 항변을 어떤 식으로 강조하는지 깨닫고 놀랐다. 그러나 오스틴, 브론테, 배럿 브라우닝의 주인공들과 달리, 페미니즘 소설의 주인공들은 이성애 관계에 헌신하며 ‘그후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다‘는 식의 삶을 사는 결말을 맞이하지 않았다. 그들은 미치거나,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거나, 이혼하거나, 독신으로 지내면서 자신의 저자들에게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페미니스트들이 양성 간의 전통적인 관계를 도전적으로공격하면서 이혼율이 급증했던 시기 동안) 결혼 제도를 비판할기회를 제공했다. - P238

1970년대에 가장 폭넓게 읽힌 소설 중 하나는 미국의 전통적 여성성을 비판한 작품으로, 그 여성성의 모순은 우울증에 걸린 주인공/서술자를 광기로 (그리고 자살 시도로) 몰아간다. 실비아 플라스의 『벨 자』는 원래 1963년 런던에서 빅토리아 루커스라는 필명으로 출간되었다. 저자가 자살하기 채 한 달도 안남은 시점이었다. 그녀가 죽고 난 후 그녀의 남편도 그녀의 어머니도 영국에서 그녀의 이름으로 이 작품이 발표되도록 허락하는 것을 주저했으며, 미국에서의 출간에 대해서는 한층 더 불안해했다. 이 소설은 마침내 1971년 미국에서 출간되면서 엇갈린평가를 받거나 열혈 독자들을 감동시켰다. 이들 열혈 독자 다수는 이 작품의 플롯이 플라스 자신의 애틋한 개인사를 따르고있고 그녀의 불길한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하고 있었다. - P239

1960년대 초반 플라스가 이 암울한 내용을 썼을 때 그녀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명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와 그녀의 작품(시와 산문) 모두는 1970년대 페미니즘을 구성하는 내용을 구체화한다. 1950년대식의 고정된 여성의 역할들과 거리두기라든가, 섹슈얼리티(‘처녀성‘과 그것의 상실)라든가 심지어 밀릿의 『지하실에서처럼 "여성이기에 죽는 것"이라는 은밀한 생각을 하며 역겨워하는 반응 등이다. 운명의 변덕스러운 장난인지, 미래는 그렇게 떠오르는 것인지, 1963년 『벨 자』가 발표되고 나서 한 달 뒤에 베티 프리단의 『여성성의 신화』가 출간되었는데, 이는 플라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불과 일주일이 조금 지난 시점이었다. 두 책 모두 "이름 붙일 수 없는 문제"와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밀릿의 『성 정치학』과 함께 이 세 책은 실비아 플라스의 강렬한 비극적 인생 이야기가 그랬던 것처럼, 1970년대의 페미니즘을 탄생시켰다. - P244

이 소설의 출간은 플라스의 자살 사건을 둘러싸고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던 미스터리까지 더해지면서 일종의 문학적 폭동을 촉발시켰다. 로빈 모건의 1972년 첫 시집 『괴물』에 실린 시 「규탄」은 테드 휴스에게 플라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여긴 페미니스트들에게 공격 무대를 마련해준다.


당연히, 많은 말을 쏟아내지 않고서
내가 어떻게
비난할 수 있을까
테드 휴스를
영국과 미국의 온 문학계와 비평계가
장황하게 부인해왔던 사실
실비아 플라스를 죽인 자가 그자 아닌가? - P245

그러나 일부 독자들은 어쩐지 플라스가 지금도 살아 있을 것같다는 환상을 여전히 버리지 못한다. 얼마 전 <런던 리뷰 오브북스)는 플라스 서한집 완전판의 서평 「여든여섯의 플라스」를 실었다. 그 글을 쓴 조애나 빅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맺었다.


실비아 플라스는 결코 죽지 않았다. 1963년 겨울에 그녀는 살아남았고 지금도 피츠로이 스트리트에서 살고 있으며, 『벨자』와 ‘남편이 멋지고 완벽한 남자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배신자에 바람둥이임이 밝혀지는 내용의 1964년 소설 『뒤늦은 반응』으로 돈을 벌어 건물을 통으로 사들였다. 그녀는 패션브랜드 아일린 피셔의 옷을 자주 입고 다니며, 페이버 출판사의 파티가 열리면 가장자리 안락의자에 앉는다. (...) 미투 운동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관심이 있다. (…) 소설 집필은 몇 년전 그만두었고 시는 느긋하게 쓰고 있다. 이제 퓰리처상과 부커상에 노벨상까지 받았으니까. 그녀는 너무나 대단한 대가가 되어 가까이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녀가 화장실에서 백발을 벗고있고 당신은 립스틱을 바르는 동안, 당신은 거울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보고 수줍게 미소 짓는다."
-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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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보기 안경


돋보기 안경을 새로 맞춰 썼더니 당신의 얼굴 날내 나게 화안하다

보이던 부처님이 어디 가셨다 괜한 짓 했다

옛날국수 가게


햇볕 좋은 가을날 한 골목길에서 옛날 국수 가게를 만났다 남아 있는 것들은 언제나 정겹다 왜 간판도 없느냐했더니 빨래널듯 국숫발 하얗게 널어놓은 게 그게 간판이라고 했다 백합꽃 꽃밭 같다고 했다 주인은 편하게 웃었다 꽃 피우고 있었다 꽃밭은 공짜라고 했다

부드러운 빠듯함


이 大雪중에 운문사 뜨락 그 소나무는 어쩌고 있을까 가지 끝까지 닿아내린 하늘 활짝 펴들고 있는, 고요히 팽팽한 그 소나무는 지금 어쩌고 있을까 버팅기지 않고 積雪의 무게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 안고 있으리라 그런 사이엔 부드러운 빠듯함이 있다 머리가 나쁘지 않다는 걸 그때 알았다 운문사 뜨락 그 소나무 한 번도 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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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택의 창작 작품들이 마땅히 받을 만하다고 생각했던 찬사둘 거의 받지 못했던 반면, 그녀의 동시대 여성 작가 다수는 페미니즘 소설로 독자를 사로잡으며 꽤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손택 세대의 작가들은 1970년대에 발표한 소설들을 통해 케이트 밀릿의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개념과 손택의 "성차별주의적 세뇌" 개념을 조명하며 여성을 순종적인 얼간이로보는 밀러와 메일러의 생각에 반대했다. (밀릿과 손택의 두 개념은 젊은 여성들이 문제 많은 사회제도에 굴복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 여성 작가들은 등장인물의 행복을 파괴하는 사회화 과정을 주제로 삼았다. 토니 모리슨, 앨릭스 케이츠 슐먼, 에리카 종, 리타 메이 브라운, 마거릿 애트우드, 매릴린 프렌치는 - P221

여성의 온전한 인간성을 파괴하는 사고방식에 의해 여성의 삶이 어떻게 일그러지는지 묘사했다.
1970년대의 페미니즘 소설은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겪게 되는 모욕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소설들은 생리의 시작을 둘러싼 비밀주의, 클리토리스 자위 행위의 은밀한 발견, 이성애관계 내에서 맺는 (일반적으로 불만족스러운) 첫 성경험, 성에관한 이중 잣대가 주입하는 굴욕감, 사랑과 남성의 보호에 대한과대평가, 여성의 신체에 대한 만연한 페티시즘, 그리고 성희롱, 불법 낙태, 가정 내 학대, 강간 등을 묘사한다. 이성애, 결혼 제도, 핵가족이 소녀와 성인 여성의 삶을 시들게 만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 P222

토니모리슨의 감동적인 첫 소설 「가장 푸른 눈』(1970)에 나오는 열한 살 난 피콜라 브리드러브보다 더 가슴 아픈 강간 피해자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폭력적인 근친 강간을 당하기 전부터 이미) 백인의 미적 기준을 내면화함으로써 파멸해가는 인물이다. 자신이 사랑스럽지 않다고 확신하는 한편 푸른 눈의 백인 배우 셜리 템플의 사진에 매료되어 있던 피콜라는 "[자신이]못생겼다는 사실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애쓰면서 "푸르고 예쁜눈"을 갖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 자란다. 그녀의 어머니 브리드러브 부인 역시 "인간의 생각의 역사에서 가장 파괴적인 생각 중 하나", (백인이 규정한) 육체적 아름다움이 미덕이라는 생각에 오염되어 있다. 극장에 갔다가 임신하게 된 그녀는 백인 배우 진 할로와 "거의 똑같이" 머리를 곱슬곱슬 만 상태였는데, 그때 사탕을 깨물어먹다가 입안에서 치아 한 개가 뽑혀져 - P222

나왔다. 그 순간 그녀는 "그냥 못생긴 상태로 지내기로 마음을 굳히며" 결국 "머리카락은 예쁘지만, 맙소사, 외모는 못생긴" 딸을 낳았다.
토니 모리슨은 랜덤하우스 출판사에서 일하고 두 아들을 키우면서 이 첫 소설을 썼다. 그녀는 오하이오주 로레인에서 "흑인은 지상의 인간이라고 생각하지만, 백인이 지닌 인간성의 질과 존재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의심했던 부모의 손에 성장한다.
"그러니 나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주의적인 가정에서" "어린아이가 감당할 몫 이상으로 백인에 대한 경멸감을 품고 자라난 셈이었다."52 이런 생각은 언젠가 집주인이 그녀의 가족을 쫓아내기 위해 불을 질렀을 때 더 심해진 것이 틀림없는데, 물론 열심히 일하던 그녀의 아버지는 불을 끄고 이사 가기를 거부했다. - P223

마거릿 애트우드는 『신탁받은 여자』에서 동시대 작가들이 동화, 로맨스 영화, 할리우드 아이돌, 포르노그래피에 가했던 공격을 확장한다. 애트우드의 이 유머러스한 메타 픽션은 여자 곡예사를 굶겨 거식증에 걸리게 하는 데 궁극적으로 실패한 이야기들과 깡마른 여자 주인공들을 정조준한다. 깡마르고 폭압적인 (딸을 위한다고 케이크를 얼릴 때 설사약을 넣는) 어머니에게 반항하는 여자 주인공 존 포스터는 자신이 매트로포비아, 즉어머니를 두려워하고 증오하는 공포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걸알게 되고, 이 공포증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는 일로 이어진 - P231

다. 맨 처음 존의 "출렁거리는 넓적다리"와 "불거져 나온 지방덩어리"는 어린이 무도 발표회에서 그녀가 나비 역할을 못 하도록 방해한다. 그녀는 "둥근 좀약처럼 생긴 사람과 누가 결혼하고 싶어할까?"라며 초조해한다. 하지만 열다섯이 된 그녀는모든 사람이 111킬로그램 나가는 그녀의 몸을 보고 시선을 돌리면 "시무룩한 쾌감을 느낀다." 몸통 둘레 치수 때문인지 그녀는 눈에 잘 띄지도 않고 남자들의 괴롭힘으로부터도 보호받는다. 그녀는 높은 줄 위를 능숙하게 걷는 과시욕 강한 핑크색타이즈를 입고, 반짝이는 작은 왕관을 쓰고, 새틴 슬리퍼를 신고, 아주 작은 핑크색 우산을 들고 있는) ‘패트 레이디‘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지만, 우리가 읽고 쓰는 것도 우리다. 유산을 물려받기 위해 체중 감량을 하고 난 뒤 존은 남자들과의 관계를 여러 차례 이어나가는데 그들은 모두 매혹적인 바이런풍 남자들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모두 따분하고 재미없는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진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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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녀는 날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하게, 붉은
하늘의 상처처럼,
그녀를 죽인 기관차처럼ㅡ
그 웅장한 무덤, 밀랍의 집 위를 나는
붉은 혜성처럼.


웅장한 무덤. 여성들이 갇혀 있는 역사의 무덤을 말하는 걸까? 곤충학 교수(『뒁벌과 그들의 생태』의 저자)였던 그녀의 죽은 아버지가 어쩐지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은, 그녀의 상상 속웅장한 무덤일까? 그녀가 여덟 살 때 죽은 아버지인데도? 밀랍의 집은 또 어떤가. 실제 벌집을 가리키는 것에 더해, <레이디스홈 저널>의 지면 속에서 영원히 손짓하며 유혹하는 1950년대의 가정생활이라는 가짜 집을 가리키는 것은 아닐까? 혹은 코트그린 그 자체, 남편이 런던에서 자신의 정부와 문우들과신나게 나다니던 동안 그녀가 두 아이와 함께 생매장당했던 그영국 역사의 환상이라는 바로 그곳일까? - P119

딸이 죽고 나서 1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났을 때 실비아 플라스의 어머니 오럴리아 쇼버 플라스는 실비아가 스미스대학교에입학했을 때부터 가족들과 주고받은 다정한 편지들을 신중하게선별해 모음집 형태로 엮었다. 「아빠」의 작가가 실은 사후에 발표된 그녀의 시들이 암시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 편지 모음집이「실비아 플라스가 집으로 보낸 편지』라는 책으로 출간되었을때, 뒤표지에는 강렬하고도 호의적인 단평이 실렸다. 플라스와동시대인이었던 에이드리언 리치가 쓴 세 문장짜리 글이었다.
"이제 젊은 여성 작가들은 마침내 실비아 플라스 내면에 있는명백한 자기 파괴자와의 동일시를 멈출 수 있게 되었으며, 무시할 수 없던 힘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 편지들을 통해 만나게 되는 인물은 생존자(작가가 된다는 것은 규율, 지칠 줄 모르는 헌신, 고된 작업에 대한 열정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던 생존자)다. 모든 이야기가 다 담긴 것은 아니지만 여기 이 편지들 속에서 드러나는 인물은 신화적인 여성 작가가 아니라 실체를 지닌 여성 작가다." - P126

말하자면 시의 주제는 결혼을 통한 가정생활과여기에서 생기는 불만들, 혹은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며느리가 된 여자들의 운명이다. 나이 많은 여성의 정신이 "단순한 사실의/칼날 아래 조각조각" 바스러지는 동안에도, 그녀의 반항적인 며느리는 "다른 식으로 성장한다." 열 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이 연작시의 다음 번 단락에서는 부엌에 갇혀 지내는 그녀가불화의 메신저인 "천사들"로부터 "꾸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분노를 느낀다. 천사들은 "참고 견디지 마라. (...) 만족하지 마라. (...)너 스스로를 구원해라. 다른 사람들이 너를 구원해줄 수 없다." (강조는 리치가 한 것이다.) 천사들의 이 명령은 분명 자신의 재능을발전시켜가면서도 세 아이를 키우느라 분투했던 리치 자신의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말일 것이다. 혹시 신부가 며느리가 되었을 때 먹게 되는 역겨운 썩은 웨딩 케이크를 자신도 먹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을 품었던 것이 틀림없다.  - P131

그 다음 여덟 개 단락은 에세이 같기도 하고 보고서 같기도하다. 어쩌면 리치도 베티 프리단이나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여성의 상황을 점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제2의 성이 된다는 것,
그리고 그 결과 가부장제 문화라는 기본법 아래에서 여성성의신화를 묵묵히 따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말이다. 그녀는 세 번째 단락 첫 문장에서 "생각하는 여자는 괴물들과 함께 잔다"고 주장한다. "그녀는 자신을 꽉 물고 있는 부리가 된다." 여성은, 특히 주제넘게 생각이란 것을 하는 여성은 정말 괴물일까? 그리고 생각하는 (여자) 괴물이 되는 것이 두렵다면,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하피‘의 부리에 꽉 물려 있다면, 우리 - P131

는 그와 비슷한 자연의 별종이 될까? 이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서로 소원해지고 서로의 적이 되며 서로의등 뒤에 칼을 찌르게 된다. "여성에 대한 인신 공격성 논리, 모든 낡은 칼 / 내 등에서 녹슬고 있는 / 내가 너의 등에 박아넣었어, / 나를 닮은 자, 나의 자매여."44 생각하는 여자들의 (그중 일부는 그녀의 독자이기도 할 것이다) 자매애에 적용되는 사항이그녀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혹은 바로 그것을 리치는 여기에서암시하고 있다.
「아빠」와 마찬가지로 「며느리의 스냅사진들은 마지막까지그 자체의 비통함에 갇혀 있는 시다. 그리하여 이 시는 문화를기록한 문서로서 대개 분노에 휩싸여 1950년대를 되돌아보면서, 그 시대의 스냅사진을 촬영하는 1960년대의 카메라 렌즈같기도 하다. 확실히 네 번째 단락에서 리치는 "글을 쓸 때 내삶은-장전된 총처럼 - 그곳 에머스트의 식료품 저장실에 서 있었다"고 한 에밀리 디킨슨에 대해 사색하는데, 그 순간이 하도 강렬해서 그녀 스스로가 카메라가 아니라 장전된 총을 들고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 할 정도다. 45 대개는 문학사에서 광범위한 인용구들을 그러모아 여성성의 신화의 규칙과 역할을 조명하고 있지만 말이다. - P132

그러나 니나 시몬이 인생에서 세 번째로 겪은 모욕은 무대 위에서 왕처럼 처신하던 사람도 결국은 취약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조명한다. 그녀는 뉴욕시 경찰이었던 앤디 스트라우드와 약흔하고 축하 파티를 열었는데 파티가 끝나자 그는 질투심에 눈이 멀어 그녀를 잔인하게 폭행했다. "그는 택시 안에서, 내 아파트 앞 도로에서, 건물 로비에서, 12층까지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안에서, 아파트 복도에서 나를 때렸다. " 그녀는 그에게 꽁꽁묶여 구타당하고 난 뒤 강간까지 당했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앤디 스트라우드와 결혼하기로 결정했고, 자신의 커리어와 금전 관리를 그에게 맡겼다.
왜 그랬는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다. 물론 시몬은 자신이 "고독과 불안 때문에 그 같은 일을 감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느꼈다. "앤디는 강한 남자였고 나는 그를 사랑했다. 나는 나 자신에게 그가 나를 더 이상 때리지 않을 거라고 믿으라며 다그쳤다." 그녀는 자신이 재능이 있긴 하지만 다른 "소녀처럼 욕망"을 지닌 "소녀"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 모든것을 원했다. 나는 전부를 원했다." 그녀는 남편이 "이건 이렇게 해야 해"라고 결정하는 "전통적인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 P139

시몬의 말마따나 "어느 흑인 여성이든 이 노래를 듣는다면울기 시작하든지 밖으로 나가서 누군가를 죽이든지 할 것이다." 시몬과 오래 함께한 기타리스트 알 새크먼은 피치스를 "니나 시몬이 되어가던 인물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당신이라면 그런 여자가 하는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순식간에 칼을 꺼내 들고, 다른 세 여자가 견디고 넘어갔던 모욕을 참지도 않으며, 다른 세 여자처럼 백인들의 손에 놀아나지도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물론 시몬이 백인의 특권을 부여받지 못하고 태어난 여성들에게 슬그머니 덧씌워지는 이 네 가지 스테레오타입(흑인 유모나 가정부, 비극적인 흑백 아이, 성적으로 방종한 여성이나 매춘부, 거친 여자)과 동일시할 수 있는 배우, 그런 혼합적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이 곡의 기저에 깔린 슬픔은 부분적으로 독백 형식에 있다. 이 네 여자가 대화할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까.
니나 시몬은 각각의 인물이 이름을 밝히기 직전, (매 구절마다 반복되는)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부를까?"라는 물음에 대해 어떤 토도 달지 않는다. 이름의 문제는 "당신들은 나를 시스더 세이디라고 부르지 않겠다고 했다"던 <망할 미시시피>로 돌아간다. 이는 흑인 여성에게 타격처럼 가해지는 언어가 이질적 - P147

손택은 눈에 띄는 외모와 말갈기처럼 긴 흑발의 소유자였다. (나이가 들면서는 흰머리가 줄무늬처럼 양쪽으로 흘러내렸다.)한 평론가는 그녀를 "마릴린"이나 "주다" (성 없이 이름만으로도 숭배자들의 머릿속에 곧장 떠오르는 매력적인 여성들)에 비교하기도 했다. 재키 역시 이런 범주에 들어맞는 이름일 것이고글로리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여성들 중 누구도 자신의유명한 외모에 걸맞은 지적 매력을 지니지 못했다. 오직 ‘수전‘만이 그런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점을 강조하듯 그녀의 첫 책인 "안티 소설" 은인의 <뉴욕 타임스>의 한 기자는 "이소설의 등장인물들은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지 않고 그러는 척만한다"고 말한 바 있다) 뒤표지에는 광고 문구 하나 없이 검은색 터틀넥 스웨터를 입고 사색에 잠긴 듯한 프랑스풍 저자의 호화스러운 초상만 실려 있다. - P165

다양한 문화적 법령을 모아 기록하면서 손택은 스스로 대중문화의 철학자로 변신했고 오스카 와일드 같은 역할을 떠맡았다. 그녀는 이렇게 선언한다. "캠프는 모든 것을 인용부호 안에넣어서 본다. 그냥 램프가 아니라 ‘램프‘다. 그냥 여자가 아니라 ‘여자‘다." "캠프는 양성적 스타일의 승리다.(‘남자‘와 ‘여자‘, ‘사람‘과 ‘사물‘을 서로 전환해서 쓸 수 있다.)" 이 두 단상(10번과 11번)을 쓰면서 자신이 페미니스트나 레즈비언이라고 커밍아웃하지는 않았지만) 손택은 본질적인 여성이란 존재하지않으며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여성"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던 199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이론적 개념을 창안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손택이 파리에서 시몬 드 보부아르의 강연을 주의 깊게 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여성은 태어나는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했던 보부아르의 견해를 들이마셨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 P166

《해석에 반대한다》를 발표할 무렵 손택은 역사학자 시어도어 로자크가 예리하게도 대항문화라고 불렀던 문화 운동의 진정한 조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전복적인 운동의 열혈 지지자로서 그녀는 샌프란시스코의 ‘플라워 칠드런‘ 히피‘로 대표되는 새로운 혁명의 옹호자뿐만 아니라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수행했던 역할에 몸서리치는 반전 운동가도 되어 있었다. 「캠프에 관한 단상」이 성별 구분에 저항하는 게이 미학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충격적이었다면, 1966년에 발표한 「미국에서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는 "캘리포니아의 새로운 아빠가 된 로널드 레이건과 백악관에서 돼지갈비를 씹고 있는 존 웨인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을 공격했다는 점에서더욱 괘씸한 글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결함을 나열하면서("근대의 제도 중 가장 잔혹한 노예제도", "토착 문화가 그저 적일 - P167

뿐인 나라", "자연 역시 적으로 삼는 나라" 그녀는 미국이 악명 높게도 "백인종" 문화를 신성시하는 곳이라고 언명했고, "백인종이야말로 인류 역사의 암덩어리이며, (...) 그들이 퍼져나가는 곳마다 자율 문명을 박멸하고 지구 생태계의 균형을 뒤집었다""고 결론지었다.
손택은 이런 "야후들의 나라" 같은 미국 땅에서 1960년대의 반항적인 젊은이들이 멋진 신세계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고 외쳤다. 그녀는 히피족에 대한 비평가 레슬리 피들러의 (그는 장발을 하고 마리화나를 피워대는 청년들이 "서구 남성의 급격한변모"를 가져오는 "새로운 변종"이라며 두려워했다) 공격에 답하면서, 자신이 "양성의 탈양극화"라고 불렀던 현상이 "성 혁명의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차기 단계"라고 하면서 찬양했다. "나자신의 경험과 관찰에 의하면, 재정의된 성 혁명과 재정의된 정치 혁명 사이에는 깊은 유사성이 존재한다고 증언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일부 젊은이들이 이해하고 있는 바와 같이, 현대 미국인의 성격 구조 전체야말로 (…) 방향 전환이 필요한 대상"이기 때문이다. - P168

그녀는 철저히 페일리다운 순간 속에서 자신의 모국인들을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했다. "정말이지 그들은 베트남의 시골들과 작은 냇물들을 과잉 살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여러분의미국 아니던가.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미국 벌판에 사는 파리와빈대, 나무, 물고기, 강, 꽃을 과잉 살상해오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유치원에서 단짝 친구에게 의지하며 지내다가 그 친구를죽이고 마는 웃자란 아이와 같다." 하지만 이 비유는 유효하지않다. 페일리는 미국인들의 계획이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대량학살에 가까운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대량학살genocide‘이란 단어를 좋아하지 않으니 단어는 내버려두자.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전쟁에서는 모두가 참가자이고, 사리에 맞는 군사적 두뇌를 가진 사람이 걸려드는 그다음 문제는 모든 사람이 군인의 표적 혹은 군인의 표적의 어머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한집에 산다. 한 가지 더, 군인의 표적은 모두 박멸되어야하므로 모든 사람은 반드시 박멸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결론에 이른다. " - P179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리카 종의 회상에 의하면 "1968년에는 ‘세상이 변화할 수 있다‘ ‘여성이 경제적 동등을 위해 그들의 남자 형제들과 아버지들과 (...) 싸울 수 있다‘는 위대한 희망의감정이 존재했다." 1968년, 불법 낙태 시술이 필요한 여성을 돕던 시카고의 한 지하 단체 회원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보호하기위해 단체 이름을 "제인"이라는 평범한 이름으로 내걸었다. (그다음 해에 "하우 Howe"라는 성을 붙이긴 했다.) "적절한 이름 같았다. 제인이라면 우리에게 어떻게how 해야 할지 알려줄 수 있었으니까." 1968년 가을, 셜리 치점이 자신의 역사적인 하원의원 당선을 자축하며 정치 활동 무대에서 "흑인이라는 사실보다여성이라는 사실 때문에 더 많은 차별을 받았다"고 용감하게발언했다.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산파 역할을 위해 다이앤 디프리마의 집에 와 있던) 오드리 로드가 남편 곁을 떠나 딸과 아들을 데리고 커밍아웃한 레즈비언의 삶을 살게 되리라는 것을깨닫고 있었다. - P187

1970년 여름, 2만여 명의 여성들이 미국 여성 참정권 획득5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뉴욕 5번가에 모여 사상 최대 규모의 ‘여성 평등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 행진의 지적 격렬함을 반영하듯 <타임>의 표지에는 화가 앨리스 닐이 그린 페미니스트 사상가 케이트 밀릿의 초상화가 실렸다.‘ 시위 행진 참가자들의핵심 요구 사항은 동등한 교육과 고용 기회, 그리고 임신 중단과 보육의 권리였다. 케이트 밀릿의 베스트셀러 『성 정치학의핵심 주장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여성이라는 종을 종속시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1971년 10월 운동가들과 이론가들은 하원에서 성평등 헌법수정안이 짧은 토론 끝에 통과되었다는 사실에 고무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틀림없이 신속하게 이 수정안을 국가의 법•령으로 삼게 되리라 믿었다. 그것은 이 수정안이 "이 법 아래에 - P197

서는 권리의 평등이 성별을 이유로 미합중국에 의해서든 개별주에 의해서든 부정되거나 약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단순한 확언이었기 때문이다. 이 수정안은 인종, 종교, 국적, 성별에 근거한 고용차별을 금지한 1964년의 민권법 7조를 확대하는 법안이 될 것이었다. 1972년과 1973년 그런 낙관론은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어떠한 교육 프로그램이나 활동도 성별을이유로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교육법 수정안 9조에서도확인되었고, 수정 헌법 14조가 보장하는 사생활의 권리를 근거•로 전국 임신 중단 합법화를 공포한 ‘로 대 웨이드 소송‘ 대법원7대 2 판결에서도 확인되었다. - P198

1970년 <타임>은 표지 관련 기사에서 밀릿을 "여성해방운동의 마오쩌둥"이라고 묘사하면서, 그녀가 어린 시절 그녀와 그녀의 자매들을 때리고 끝내는 버린 포악한 아버지와 맞서 싸웠고, 대학 교육을 받고 처음 얻은 일자리가 백화점 감자칼 사용 시연 일이었던 어머니와도 맞서 싸웠다고 설명했다. 밀릿과 마찬가지로 뉴욕 시위 행진에 참가한 여성들 중 일부는 자신의 어머니의 좌절에서 여성의 굴종이 빚어낸 고통스러운 결과를 처음 목격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자신의 어머니가 2차 세계대전 동안이나 그 후에 계속 일을 했기 때문에 용기를 얻은 여성들도 있었다. 성 정치 혁명을 일으킨 이 세대는 많은 여성 동지들의 삶을 방해했던 밀실 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가정생활을 부수고 나오기로 결심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의 어머니라면 좌절했을지도 모를 계획들을 실행해나갔다. - P198

1960년던 시인이자 페미니스트 비평가 레이철 블라우 뒤플레시는 일레인 쇼월터가 "대각성"이라고 명명했던 각성 체험을 생생하묘사한 많은 사람 중 하나다. "이 체험은 강력하고 활기를북돋고 의미를 밝혀준, 헌신과 확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1969년부터 1979년까지의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운동가 앤 스니토 또한 페미니스트 그룹들이 공통적으로 품고 있던 느낌에대해 회상했다. "지금은 되찾기 힘든 격노와 희망이 뒤섞인 느낌이었달까. (...) 우리는 모든 것이 변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좀 더 물질적인 차원에서 말한다면, 1970년대의 "현실과의 몽상적인 관계"는 여성의 건강과 관련된 제안, 정치 집회, 보육 센터, 매 맞는 여성들의 쉼터, 강간 위기 센터, 차별 철폐 정책, 페미니스트 예술 공동체, 서점과 출판사, 여성학 연구 프로그램, 무수히 많은 저널들을 만들어냈다. 수백만 여성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이 대각성 운동은 우리의 삶을 구체화하는 온갖 페미니즘들을 발생시켰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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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새벽 공기를 빠듯이 뚫고 지나와야 하루가 안심이 된다 새벽 공기의 내음을 아니? 그만한 향수를 나는 아직알지 못한다 노인인 내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젊은너를 내게 쏠리게 하는 그 비방을 비로소 고백한다 오늘도 화계사 솔숲을 지나왔다 눈이 내려서 새벽 정신 더욱 깔끔했다 하루를 너끈히 견딜 만했다


春窮


저녁 무렵 겨우 비가 내렸다 땅으로 함께 뛰어내렸던꽃잎들, 꽃잎들이 氣絶해 있다 맨살로 땅바닥에 찰싹 붙어 있다 이런 저녁엔 아무도 나를 찾아 떠나는 차표 한장 끊고 있지 않으리라 따뜻한 예감의 여린 발목 하나가멀리서 잠깐 서성이다 만다 지워진다

春泥


햇살들 초록 덧칠 쉬지 않고 있음을 눈치채기는 했으나 수렁이다 흐르지 않는다 좀체 튀어오를 기미가 없다그렇다고 가라앉을 수도 없는 지느러미 하나가 非夢似夢 멈추어 있다 흐를 수 없다는 것이 제일로 참기 어렵다너의 어깨에 滿開의 벚꽃들 허공 담아 져내리고는 있으나 정지된 화면이다 이따금씩 들판 끝자락 말아올리며갑자기 달려오는 마을 쪽 기계톱날 소리, 자지러지지만 금간 것 이내 아물고 그 다음 정적은 왜 그리 길던지 움직일 可望이 전혀 없다

한컷


그날 소쇄원 齊月堂 마루에 앉아 끝내 보지 못하고 온그 달을, 다시 그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내가 어젯밤 꿈 속에서 보였다 그걸 내가 보고 있었다 한 방 사진으로 찍어두면 그림이 되겠다 싶었다 그날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겠지 구름이 몰려오진 않겠지 조마조마했던가그랬다 할말이 있다면 지금 그립다! 이거다

놋수저


어머니 쓰시던 놋수저 한 벌을 간직하고 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오늘도 놋수저를 꽂는다 제삿날 메올리는 가 아니다 어머니의 고봉밥을 어머니의 놋수저로내가 먹는다 혼령의 밥을 내가 먹는다 어머니는 오늘도 내 밥이시다 죽이 아니라 밥이시다 어머니 가신 뒤 늘 배가 고팠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의 고봉밥에 놋수저를 꽂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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