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곡선은 모양 때문에 우묵한 곡선 hollow curve 이라고 불리며, 특히 이 우묵한 곡선에는 이름이 있다. 이것은 윌리스의 우묵한 곡선Willis‘s hollow curve이다. 이름이 따로 있는 이유는 이 문제가 거의 한 세기 가깝게 논의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논의한 이들은 인류학자들이 아니라, 자신들이 일부러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계속 속들 속에 종들을 이렇게 배치하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전문 분류학자들이었다. 그들은 왜 자꾸만 이렇게 하는 것이며, 민속 분류학을 하는 일반 사람들도 왜 똑같이 하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 그것을 가장 잘 설명해줄 것은 움벨트이다. 움벨트는 우리에게 종들이 매우 특정한 방식으로, 상당히 윌리스의 우묵한 곡선을 닮은 방식으로 속들을 채우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다. 우리가 그런 그래프를 본 적이있든 없든 말이다. 그리고 분류학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지각이 알려주는 것에 좌우되는 움벨트의 포로들이다. - P208

인간의 행동은 유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가 생명의 세계를 인지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의 움벨트는 근본적인 면에서 변함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움벨트는 우리 존재의 확실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움벨트를 무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움벨트에 따라 사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 규칙을 따르는 일일망정 침대에서 굴러나오는 것만큼이나 쉽다. 뉴기니의 수렵인부터 마야의 농부를 거쳐 독일의 분류학자까지, 이 시각이 반투어나 표준 중국어로 표현되든, 브라질의 마샤칼리어 혹은 라틴어 학명으로 표현되든 모든 사람이 심층적인 면에서는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생명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 P209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이건 대단히 장엄한 일이다. 그토록 분명하고 명백하고 그토록 사랑받는 어떤 것(자연 질서 안에서 분명히 구별되는 수많은 생명 형태들과 그것들이 거주하는 움벨트)을 골라내 거기에 손을 대는, 아니면 적어도 그 근처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대는 일 말이다. 그런데 정확히 그것이 이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정신, 우리 뇌의 어두운 모퉁이들을 탐험하는 그 남자들과 여자들이 해낸 일로 보인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이 연구자들이 움벨트에 손상을 입은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정말로 움벨트가 지닌 가장 심층적이고도 심오한 중요성이 무엇인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작위적 현실로부터 질서 정연한 움벨트를 뽑아낼 수 있도록 생물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뇌 영역을 지닌 채 태어난다는 것이 분류학자들에게 그리고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낸 것이다. - P229

우리가 매일 움벨트의 렌즈를 통해 생명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나면 얼마 뒤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눈 닿는 모든 곳에서 움벨트가 미치는 효과와 힘과 영향이 보이는 것이다. 처음에 나는 이 보편적인 생명의 비전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것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점차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이때 나는 꼭 움벨트에 사로잡힌 여자 같았다. 매일같이 나는 책을 읽다가 혹은 장을 보다가 문득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야! 저기 그게 또 있네! 또 움벨트잖아!" 다음날 또 다른 상황에서는 메릴을 쿡쿡 찌르며 "당신 저것 좀 봐! 저것도 움벨트야!" 하고 말했다. 일부러 움벨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면서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조차 (어쩌면 그럴 때특히 더), 나는 움벨트를 발견하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움벨트를 가장 활발하게 가장 생동적으로 사랑하는 존재들이 바로 아이들, 이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경이로운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움벨트의 힘이 작동하는 모습을 목격하려고 뉴기니의 야생으로탐험을 떠나거나 지도에도 없는 멕시코 고원지대로 트레킹 여행을떠날 필요는 없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모습을 볼 수있다.  - P234

그러니까 움벨트는 자연탐구가나 분류학자가 생물의 질서를 이해하는 일만 돕는 것이 아니다. 움벨트는 우리 모두에게 강력하며 탁원한 쓸모를 지닌, 절대적으로 필요한 안내자이며, 그것이 없다면 낯설고 불확실해질 세계에서 우리가 현실에 굳건히 발붙이게 해주는닻이다. 아이들은 이를 알고 있다. 심지어 아기들도 이를 잘 알아서, 기저귀를 차고 앉은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도 생명 세계의 질서를 가능한 한 잘, 가능한 한 신속히 파악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우리도 모두 한때는 그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다 잊어버리고말았다. 움벨트를 갖는다는 건 세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안다는 것이고, 주변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분류학자들이 움벨트가 주는 비전에 그토록 필사적으로 매달리는것도, 우리가 우리 움벨트의 비전을 그토록 필사적으로 되찾고자 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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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랑의 고백이다. 나는 포르투갈어를 사랑한다. 쉽지 않은 언어다. 다루기 어렵다. 사유로 깊이 다루지 않으면 그 언어는 섬세함이 결여되거나 때로는 무분별하게 감정과 경계, 그리고 사랑의 언어로 바꾸려고 하는 이들에게 진짜 발길질로 대응하기도 한다. 포르투갈어는 글 쓰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도전이다. 사물과 사람에게서 피상성이라는 첫 꺼풀을 벗겨내며 쓰는사람에게는 특히 그렇다.
포르투갈어는 때때로 더 복잡한 생각 앞에서 반응한다. 또 때로는 문장의 예측 불가능을 염려한다. 나는 그 언어를 다루는 게좋다-말에 올라타 고삐를 잡고 천천히 달리거나 질주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포르투갈어가 최대한 내 손에 당도하길 바란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는 열망이다. 카몽이스*, 그리고 다른 중요한 시인들도 이미 완성된 언어의 유산을 영원히 남겨주기에 충분하지 않았다. 글을 쓰는 우리는 모두 "생각의 무덤"에 생명을불어넣는 무언가를 만든다. - P160

우리는 그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나는 심화되지 않은 언어에 도전하는 기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물려받은 것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만약 말하지 못하고 글도 쓰지 못한다면, 누군가 내게 어떤 언어를 갖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나는 정확하고 아름다운 언어인 영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언어 장애가 없고 글을 쓸 줄 알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은 지극히 분명한 포르투갈어로 쓰는 것이다. 나는 포르투갈어에 순결하고 순수하게 접근하기 위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조차 원하지 않았다. - P161

내가 그것을 위해 태어났고 그것을 위해 생을 바칠 수 있다고 느끼는 게 세 가지 있다. 나는 타인을 사랑하기 위해, 글을 쓰기 위해, 내 아이들을 기르기 위해 태어났다. "타인을 사랑하기"는 범위가 아주 광대한데, 거기에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나 자신을 용서하는 일까지 포함된다. 그 세 가지 일은 그것들을 인정하기에 너무 짧은 내 삶만큼이나 중요하다. 그러니 서둘러야 한다. 시간이 없다. 내 삶에 결정적인 순간을 단 1분도 허비할 수 없다.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내가 아는 유일한 개인적 구원이다. 사랑을 주고 또 때로는 그 대가로 사랑을 받는다면 아무도 길을 잃지않을 것이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태어났다. 말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열심히 유혹하는 여러 가 - P161

지 사명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글쓰기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사명을 좇아왔다. 어쩌면 글쓰기를 위한 배움이란 우리와 우리 주변 사람들의 고유한 삶인 데 반해 다른 일은 오랜견습 기간이 필요해서였는지 모르겠다. 내가 공부할 줄 모르는것일 수도 있다. 사실 글쓰기를 위한 유일한 공부는 글을 쓰는것이다. 나는 일곱 살 때부터 언젠가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해 연습해왔다. 그런데도 매번 글을 쓰려고 하면 마치 처음 같았다.나의 모든 책은 고통스럽고도 행복한 데뷔작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내가 완전히 새로워지는 이 능력을 나는 삶과 글이라고 부른다. - P162

내 아들들의 경우에는 그들의 탄생이 우연의 결실은 아니었다. 나는 어머니가 되기를 원했다. 내 두 아들은 나의 의지로 태어났다. 그 두 남자아이는 여기 내 곁에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이자랑스럽다. 나는 그 아이들 안에서 소생한다. 나는 그 아이들의고통과 불안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을준다. 내가 어머니가 되지 않았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혼자였을것이다. 그렇지만 내게는 후손이 있고 그들을 위해 날마다 내이름을 준비한다. 나는 그들이 언젠가 비행을 위해 날개를 펼칠 것을 아는데, 그러면 나는 혼자가 될 것이다. 그것은 숙명이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아이들을 키우는 게 아니라 그들 자신을 위해키우니까. 혼자가 되면 나는 모든 여자의 운명을 따를 것이다.
나의 사랑은 늘 남아돈다. 글을 쓰는 일은 엄청나게 강렬한 일이지만 그것은 나를 배신하거나 버릴 수도 있다. 언젠가 내 몫의 - P162

글을 썼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고, 멈추는 것 또한 배워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글에 관해서는 어떤 것도 장담할수 없다.
반면에 사랑에 관해서라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다. 사랑하는 일은 끝나지 않는다. 마치 세상이 나를 기다려준 것과 같다. 나는 나를 기다리는 것을 만나러 갈 것이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를 신에게 바란다. 늘 지금 이 순간을 살기를, 착각일지라도, 미래의 무언가를 가질 수 있기를.
시간은 쏜살같이 흐르고, 시간이 짧으니 서둘러야 하겠지만, 나는 인생이 영원할 것처럼 산다. 그러면 죽음이 반짝이는 무언가의 피날레가 될 테니까. 죽는 것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행위가 될 것이다. 나는 죽는 게 두렵다. 어떤 모호함, 어떤 뿌연 길이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삶과 죽음 모두를 강조하며 죽고싶다. - P163

내가 원하는 것은 하나다. 죽을 때 내 곁에서 손을 잡아줄 한사람을 갖는 것. 그렇다면 이승과 저승의 경계를 넘을 때 두려움없이 배웅받을 것이다. 나는 윤회가 있기를 바란다. 죽은 후에다시 태어나서 새로운 사람에게 살아 있는 내 영혼을 주고 싶다. 그렇지만 신중해지고 싶다. 윤회가 정말 존재한다면 현재 내가살아가는 삶은 완전히 내 것이 아니게 된다. 내 육체에 영혼이 주어진 것일 뿐. 나는 언제까지나 다시 태어나고 싶다. 다음 생에는 평범한 독자로서 내 책을 흥미롭게 읽을 것이다. 그 환생에서나는 그 책이 내가 쓴 글인 줄 모를 것이다. - P163

경고와 신호가 있다면 좋겠다. 그것은 직감처럼 찾아올까? 책을 펼치는 순간 찾아올까? 내가 음악을 들을 때 찾아올까?
내가 아는 가장 외로운 일 중 하나는 예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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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의 노래를 짓는 데는 아흔여섯 가지 방법이 있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옳거니!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1885-19182

나는 생명에 대해 인류가 공유하는 비전인 움벨트 이야기를 우연히알게 됐다. 그런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인간종 특유의 감각, 태고부터 내려오는 자연 질서에 대한 인간의 비전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의 고유한 감각에 딱 맞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매우 특유한 인식을 품고 살고 있으리라는생각을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움벨트라는 개념을접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 과학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세계에 질서와 이름을 짓는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것뿐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동안 나는 정말로 모든 인류가 생명의세계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종족들의 왕왕 이국적이고 괴상한 분류 속에서 바로 그 공통된 지각의 가장 충만한 표현들을 보았다. 그리고 진화분류학자들(과학사에서그들이 겪은 안쓰러운 사정에 관해 내가 더 배울 일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결 - P171

로 예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들이 자기 분야를 거의 파괴해버린 이유를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그 움벨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는 설명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동을 움벨트의 존재가, 그리고 움벨트에 대한 그들의 끈덕진 충성이 해명해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움벨트가 진화분류학자들의 평판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한 줄기 희망을 비춰준다는것이었다. 이 움벨트라는 경이로움을 되찾는 것은 우리가 가늠할 수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생명의 세계(국제연합이 내놓은 최근의 한 추정치에 따르면 한 시간마다 약 3개의 종이 사라•지고 있으며, 연간 총계는 18,000~55,000종에 이른다)와 우리 사이의 점점 더 심해지는 단절에서 우리를 구해줄 마지막 최선의 희망이다. - P172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처음에 내가 찾고 있던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방식, 자기 주변 생물들의 이름을 짓고 체계화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에 관해 기존에 어떤 사실들이 알려져 있는지 알아보고싶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다른 종족들이 네발 달린 동물이나 숲속의꽃들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도 확신할 수없었다. 게다가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리확실한 생각이 없었다. 고백하자면 어떤 면에서 그 전체 과정은 뚜렷이 정의된 탐구라기보다는 종잡을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탐닉에 훨씬 더 가까웠다. 나는 오래된 책들과 옛날의 과학저널들을 들쑤시고다녔고, 이상한 것들, 잊힌 것들,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어둡고 먼지 쌓인 도서관들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게 좋았다. 괴상한 동물과 이국적인 식물, 그리고 그보다 더 기이 - P172

해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들에 관한 글을 읽을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그 일에 착수했다.


괴상한 분류법과 이름들을, 말하자면 ‘잘못된 분류‘들을 보게 될거라 예상했건만 곧바로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을 한참 넘어서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괴상함이었다.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이 이상해서 인류의 대부분이 생명의 세계에 관해 한 말은 내가보았거나 알았던 생명의 세계와는 우주 하나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남서부 사막지대에 사는 파파고 인디언은생물을 "생각하는 것",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나는 것", "가시가 있는 것" 등 놀랍도록 특이한 범주들로 분류한다고 한다. 식물계 안에꽃을 피우는 다양한 식물들이 있고 그 안에 다시 장미와 해바라기 등이 들어가는 범주를 만들었던 린나이우스가 이들의 분류를 알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떤 종류의 세계관, 어떤 종류의 삶의 방식이어야 이렇게 이상한 범주들을 이해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걸까? 왜 모든 생각하는 것들, 혹은 모든 가시 있는 것들을 한 부류로 모아놓은 것일까? - P173

인류학 기록들을 뒤지며 돌아다니던 나는 마침내 1960년대에시작된 다음 연구들 앞에 이르렀다. 1960년대는 상황이 겉보기처럼그렇게 불일치와 바벨 같은 난맥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몇몇연구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러 민족 간 생명 분류법과 명명법에서 나타나는 다름에 초점을 맞추며 수년을 보낸 끝에 마침내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과학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민권과 사회적 해방과 더 민주적인 사유의 시대였다. 오랫동안 억압받아온 이들(여자, 그리고 연구 대상이 된 원주민을 포함해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모든 부류의 사람)이 조금은 더 존중받기 시작한때였다. 세계 각지의 야생에서 살아가는 야만인들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인류학자들이 조금 더 인간답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 P182

학계 자체에서도 경이적인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인간의 정신(겉으로 아무리 문명화되어 보이건 야만적으로 보이건 모든 인간의 정신)에는 인간의언어에 대한 보편문법이 존재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가설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들끓는 변화의 한가운데서 인류학자들의 마음에는뒤죽박죽인 민속 분류학에서 보이는 것이 차이만은 아니라는, 우리모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통일시키는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사용되는 이름, 묘사된 생물들, 갖 - P182

취진 질서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또한 일부 인류학자들은 생명 세계의 질서 짓기와 이름 짓기에서 뉴기니부터 뉴욕까중국부터 칠레까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뿌리 깊고 심오하고 근본적인 유사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인류학자들이 그 정신 없는혼란 속에서 무엇이든 발견했다는 것만도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해냈다. 지구 위 생명의 질서에 대한 인류의 비전이세계 각지에서 표현된 양상들을, 여태껏 보아온 인간의 움벨트에 대한 것 중 가장 풍부한 표현과 가장 완전한 그림을 찾아낸 것이다.
민속 분류학에서 인류학자들이 알아챈 가장 놀라운 일치 중 하나는 이 민속 분류학 저 민속 분류학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동일한 분류군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눈치 못 채고 지나치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든 한결같이 ‘물고기‘라는 분류군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건 너무나 기본적이고 뻔한 일로 보여서 (사실상 필연적인 일로 보인다) 처음에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 P183

오히려 물고기를 가리키는 수많은 단어들에 관심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언어에 따라 물고기는 푸아송 poisson부터 바이vai, 피시fish, 아젠a-jen, 퓨스pyus, 마마야크mamayak, 이이yi, 후후huhu, 사카나sakana 등 다양하게 불린다. 하지만이 다양한 이름들 속에서 길을 잃으면 진짜 요점을 놓치게 된다. 바로 모든 언어에 실제로 물고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존재한다는 요점말이다. 보편성은 구체적인 이름들이 아니라, 물에 젖어 있고 비늘이있으며 헤엄을 치는 그 존재들을 알아보았다는 데 있었다. ‘물고기‘라는 집단은 다시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체계화되고 분류되고 목격되고 인지되었다. - P183

사람들이 한결같이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 한결같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특정 생물의 형태를 항상 알아보는 것처럼 어떤 생물 집단은 항상 알아보지 못한다. 항상 부재하는 것들, 다시 말해 우리 움벨트의 레이더 스크린에 한결같이 잡히지 않는 것들에는 결정적인 일관성이 있다. 인간은우리 기준에서 아주 작은 것들에게는 마음을 잘 주지 않는다. 몇 밀리미터 길이의 기생벌,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 목숨을 빼앗는바이러스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도 생물에 속하며 잠재적으로인간의 생명에 극도로 중요하지만, 민속 분류학에서는 공통적으로찾아볼 수 없다. 이 외에도 우리가 한결같이 알아보지 못하는 생물이많다. 각각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인간의 감각에는 너무 - P185

왜일까?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움벨트, 우리 인간이 매일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감지한 세계의 풍경에서 높이 솟아 불타고 있는 봉화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형적인 인간의 눈으로 그 세계를바라볼 때, 키 작은 관목들은 높이 솟은 나무들과 상당히 다른 존재로 우리 눈에 그냥 확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들을 알아보지못하는 일이 결코 없고 박테리아를 알아보는 일도 결코 없다. 우리는꽃을 보지만 벌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이는 꽃들의자외선 무늬는 결코 보지 못한다. 전형적인 인간의 코로 우리는 장미의 달콤한 향기는 맡지만 개들이 즉각 감지할 수 있는 다른 많은 냄새는 맡지 못한다. 그리고 이건 다른 모든 종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류의 감각에 대해 서로 다르고 각자 고유한 움벨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의 움벨트가 그러하듯 우리의 움벨트는 매우 특유한장소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아다니는 움벨트, 우리의 감각에특화된 움벨트, 우리가 감지할 수 있고 우리가 알아차리는 경향이 있으며, 봉화처럼 활활 타오르는 움벨트. - P187

인간의 행동은 유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가 생명의 세계를 인지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의 움벨트는 근본적인 면에서 변함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움벨트는 우리 존재의 확실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움벨트를 무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움벨트에 따라 사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규칙을 따르는 일일망정 침대에서 굴러나오는 것만큼이나 쉽다. 뉴기니의 수렵인부터 마야의 농부를 거쳐 독일의 분류학자까지, 이 시각이 반투어나 표준 중국어로 표현되든, 브라질의 마샤칼리어 혹은라틴어 학명으로 표현되든 모든 사람이 심층적인 면에서는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생명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이 비전은 사람들에게 다윈이 보았던 분류군 속의 분류군, 린나이우스가 찾던 자연의 질서를 포착하게 하고 현실로 인지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또한 자기네 지역의 산과 계곡을 모두 다 탐험한 뒤 지구의 나머지 지역에 사는 생물을 탐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박물학자들 때문에 수백 척의 범선이 출항하게 한다. 인간의 움벨트는 심지어 - P209

인간의 깊은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분류학이라는 온전한 과학 분야하나를 탄생시켰다. 이 과학의 가장 사랑받는 전통은 단순히 학문적유산만도 아니요, 이 분야의 아버지인 린나이우스가 발명한 규칙들과 체계들만도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은 무엇이며,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애호와 전통이다.
나는 인류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고서야 이 강력하고 보편적인 생명의 비전이 또렷하게 그려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움벨트가 지닌 진짜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이한 심리학의세계로 풍덩 뛰어들어야만 할 터였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움벨트를완전히 도둑맞은 희한한 사람들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비극적인 진실도 보게 된다. 이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겠지만, 움벨트를 잃어버림으로써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 P210

새로운 별 하나가, 아니 그보다는 태양이, 정신의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이 태양은 과학적 확실성의 손가락으로 모든 정신적 능력을 하나씩 짚어주고.
그 무엇도 어둠이나 의혹 속에 남겨두지 않으며,
다만 진정한 정신의 과학을 발달시킬 뿐이다.

O. S.와 L. N. 파울러「삽화가 들어간 골상학 및 생리학 자습서

우리의 움벨트를 곧바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람이 토마토를 보거나 ‘검치호랑이saber-tooth tiger"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우리 측두엽에서는 뭔가 특별하고 뚜렷하며 정형화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상측두고랑의허공을 가로지르며 신호들이 발사되거나, 외측방추이랑의 비탈 위로뇌우가 쏟아져 내리거나, 우리 두개골 속 커다랗고 물렁물렁한 호두처럼 생긴 덩어리 안 특정 협곡 안에서 또 다른 신경 네트워킹이 복잡한 조합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J. B. R. 이낙타를 보면서도 낙타를 알아보지 못할 때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그 활동이다. 그의 좌뇌 측두엽이 도와주지 않으면, 코끝이 통통하고 목이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하며, 몸은 털로 뒤덮이고 등에는 불룩한 혹이 있는 이 동물이 ‘낙타‘라는 것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 P228

한때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던 P. S.가 왜가리를 바라보며 그것이물고기라고 확신할 때도 비슷하게 뭔가 잘못된 발화가 일어나거나발생해야 할 어떤 정신적 번개가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이것이 병든 그의 뇌로 하여금 깃털로 덮이고 키가 크며 부리가 큰 그 새가 미끌거리고 비늘이 있으며 물속에서 숨을 쉬는 동물들만으로 가득 찼어야 할 머릿속 범주에 속한다고 믿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개한 마리를 보고서 그것이 바로 개임을 즉각 알아볼 때, 고양이나 비슷한 늑대나 전혀 다른 독수리가 아니라 바로 한 마리 개라는 걸 알아볼 때, 아마도 우리의 방추이랑과 상측두고랑 어디에선가 불꽃이튈 것이다. 또 날개를 펄럭임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색깔이 변하는 아름다운 나비를 경이로움에 차 바라볼 때도 윙 하는 소리를 내며 기어가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 P228

그러니까 거기가 그 결정적인 회색질, 당신의 생명에 대한 비전, 당신의 움벨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용돌이와 똬리가 자리한 곳인 듯하다. 당신의 왼쪽 관자놀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가 만약 그곳이 손상된다면 당신은 거위를 보고 당황하고 단풍나무를 보며 완전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회색질이 멀쩡하고 건강하게 남아 있다면 당신은 움벨트가 지닌 온전하고 완전한 힘을 누릴 것이다. - P229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이건 대단히 장엄한 일이다. 그토록 분명하고 명백하고 그토록 사랑받는 어떤 것(자연 질서 안에서 분명히 구별되는 수많은 생명 형태들과 그것들이 거주하는 움벨트)을 골라내 거기에 손을 대는, 아니면 적어도 그 근처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대는 일 말이다. 그런데 정확히 그것이 이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정신, 우리 뇌의 어두운 모퉁이들을 탐험하는 그 남자들과 여자들이 해낸 일로 보인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이 연구자들이 움벨트에 손상을 입은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정말로 움벨트가 지닌 가장 심층적이고도 심오한 중요성이 무엇인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작위적 현실로부터 질서 정연한 움벨트를 뽑아낼 수 있도록 생물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뇌 영역을 지닌 채 태어난다는 것이 분류학자들에게 그리고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낸 것이다. -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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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선 스튜를 거의 먹지 않는 것을 보고는 진심으로 걱정하는 것 같았다(메스꺼움을 잘 느끼던 임신 3개월의 나에게는 그 비린 풍미가 좀 견디기 어려웠지만 차마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그는 매우 유럽 할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신사다웠고 심지어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락없는 마이어, 억누를 수없이 흘러넘치는 마이어였으며, 완전히 잊혀가던 분류학을 구해낸다는 거의 불가능해 보이던 과제를 스스로 떠맡은 1950년대의 그와 똑같은 마이어였다.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가 그런 도전적 과제를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그날 점심을 먹으며 내게 했던 말만 봐도 알 수 있다. "나는 내가할 자격이 없는 일들을 차례로 하나씩 해왔지만, 내가 그 일을 할수 있다고 확신했고, 정말이지 내게는 그 일을 할 능력이 있었다네. - P134

움벨트(생명의 세계 및 그 세계의 질서에 대한 지각)는 우리가 보는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각자에게 단순하고 객관적인 현실처럼 여겨진다. 너무나 단순명료하게 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그걸 한 번 보는 것만으로도 "아하!" 하고 이해할 수 있다. 명백히 눈에보이는 것은 어차피 모두가 동의할 것이므로 그걸 이해하기 위해 과학적 실험을 한다는 것은 완전히 요점에서 벗어난 일일 뿐 아니라 불필요한 일로 보인다. 그러니 분류학이 합리적인 과학이 되지 못하고끝나지 않는 열띤 논쟁 상태로 떨어진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아등바등하고 있는 분류학이라는 과학의 입장에서 볼 때 가장 파괴적인 사실은 아마도, 여러 변이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어떤 면에서 모든움벨트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진화의 발견에서 아무 영향도 받지 않은 생명의 세계라는 점일 것이다. 진화분류학자들이 알고 있는사실과는 정반대로 그들의 움벨트는 불변하는 생명체들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비전이 어찌나 큰 확신을 심어주는지 분류학을 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그 반대임을 증명하는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항상 변화하는 종조차도 단 한 문장의 정의로 깔끔하고 수월하게묘사할 수 있다고 계속 믿었던 것이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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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시력을 가진 사람도 한쪽 눈이 다른 쪽보다 더 잘 보이고 그런 이유로 더 민감한 것이라고. 그는 그것을 주도하는 눈이라고 불렀다. 그 눈은 더 민감하기 때문에 낯선 물체를 잡아내지 배출하지는 않는다.
그 말인즉 시력이 더 좋은 눈이 더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그 눈은 더 강하면서 더 약하고, 우리 몸에서 가장 약한 부분을 상처내거나 할퀴는 먼지 알갱이가 일으키는 참을 수 없는 고통보다더 현실적일 수 없는, 상상과는 거리가 먼 문제를 끌어당긴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눈만 그럴까? 잘 보는 사람, 그러니까 힘 있는 사람은 가장 많이 느끼고 가장 고통받는 사람일까. 그를 괴롭히는 가장 극심한 고통은 눈 속의 모래알만큼이나 현실적이다. - P44

한 친구에게 말했다.
"삶은 내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해."
그녀가 내게 말했다.
"그렇지만 너도 삶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다는 걸 잊지마."
"그래." - P45

베른의 겨울, 무덤이 열린다. 여기에 들판이 있고 수많은 풀이있다. 새로운 나뭇잎, 나뭇잎들, 어찌들 바람과 헤어지는지. 재채기가 계속 나온다. 창밖에선 감기에 걸린 세심한 봄이 재채기를 한다. 손가락에는 거미줄이, 정원에는 연못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노란 꽃, 노르스름한 작은 꽃들에게서 어찌나 새 금속 냄새가 나던지. 이파리들과 이파리들, 너희는 어떻게 산들바람과 헤어질까? 그 투명한 틈새 어디에 나를 숨겨야 할까? 나는내 사색의 장소를 잃었다. 그러나 내가 하얀 드레스를 입고 뛰쳐나간다면...... 빛 속에서 길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고 또 길을 잃는다- 다른 장면으로 천천히 뛰어 들어가 다시 길을 잃는다- 어떻게 내 것의 부재 속에서 봄을 찾을까?  - P48

호자, 제일 까만드레스를 다림질하렴. 연속되는 조용한 장면들 위로 특히 다른 장면 위로-다시 또 다른 장면 위로 한 세기 그리고 다른 세기, 고요하고 투명한 또 다른 세기에 유일하게 가능한 자아인 나는 거의 움직이지 않는다. 오! 불친절한 봄이여. 어쩌면 이 새로운 시대로 인해 봄이 뛸지도 모른다, 길 없이 이 새로운 세상을 가로지르면서, 수많은 빛나는 재채기와 온갖 풀과 함께. 나는 심장이 뛰는 곳, 네 공허의 유일한 지표인 곳, 봄, 오직 그곳에서만숨을 헐떡이며 멈출 것이다. 나는 검은 옷을 입고, 너는 황금색옷을 입고, 나는 머리에 한 송이 꽃을 꽂고, 너는 머리에 천송이 - P48

꽃을 꽂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알아볼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더 잘 알아보기 위해 나는 한 손에 책을 들고 다른 손에는 망설임을 든다. 나는 키가 크고, 감기에 걸렸다. 너는 손수건과 재채기로 나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가증스러운 텅 빈 하늘 한가운데에서 나는 숨을 쉬고 또 숨을 쉰다. 나는 너의 눈먼 바람으로,
교만한 개화로 인한 나의 재채기로 너를 알아볼 것이다.
이 잠든 봄에 시골에서는 염소들이 꿈을 꾼다. 호텔 테라스에는 수족관에 물고기가 산다. 언덕 위 외로운 동물들. 며칠이, 며칠이, 며칠이 가고- 시골에는 바람과 염소들의 파렴치한 꿈, 수족관에 사는 배 속이 텅 빈 물고기들이 있다-너는 느닷없이 봄이 되면 하늘을 날아오르려고 하는, 혼자 뛰어오다가 벌써 붉어지는 동물이다. 그렇다, 여름이 올 때까지 그리고 가을에 10만개의 사과가 익을 때까지. - P49

 그러니까 직감이 발달한 바람의 방향을 아는 지혜가 있는, 직관적인 통찰력을 가진, 죽음을 경험한, 웅덩이를 알아채는, 불안하게도 행복한 적응력을 상실하는 심장 말이다, 적응력을 상실한 존재가 내 원천인 것을 알게 됐으니까. 우리는 모기가 나타나면 소나기가 온다는 것을 안다. 나는 건강한 머릿결을 위해 새 달에 머리를 잘라야 하고,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이름을 말하면 지연과 커다란 불행이 따르고, 가구 다리에 악마를 빨간 줄로 묶어 어쨌든 내 악마를 잡을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절대 중앙에 서 있지 못하고 수 세기 전부터 그늘에, 왼편에 서 있는 내 심장으로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낯선 존재이고 그의 순수함만으로도 그가 자연스럽다는 것을 안다.
아니다, 사실들이 내게 직접적으로 반박하더라도 나의 간접적인이 마음은 옳다. 파세이토는 틀림없이 죽음을 가져오고, 흐릿한 눈에 겁에 질린 얼굴은 스스로 차오른 만월을 본다. - P59

우는 것에도 좋은 방법이 있고 나쁜 방법이 있다. 나쁜 방법은 멈추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고통이 해소되지 않는 것이다. 그런 방식은 당신을 지치게 하고 고갈시키기만 할 뿐이다. 어떤 친구가 내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건 배고픔의 고통에 시달리는 아이의 울음과 같은 것이 아니냐고. 그렇다. 그런 유의 눈물이 나면 참는 편이 낫다. 운다고 나아지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강한 척하고 맞서는 게 더 낫다. 힘들기는 하지만 핏기 없이 보일정도로 창백해지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러나 늘 강해야 하는 것만은 아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존중해야만 한다. 그것은 부드러운 눈물이자 우리가 누릴 권리가 있는 정당한 슬픔이다. 그 눈물은 천천히 흐르고, 입술에흐를 때면 짜고 맑은 맛이 느껴지며, 더 깊은 고통을 만든다.
우는 남자는 감동적이다. 그는, 그 투사는 자신의 싸움이 때로는 헛되다는 것을 인정했다. 나는 우는 남자를 존중한다. 나는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있다. - P65

나도 그런가?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나는익명으로 비밀스럽게 지내고 싶다. 가능하다면 말없이 말하고싶다. 마리아 베타니아는 내 책을 통해 나를 안다. 나는 <조르나우두 브라질>로 명성을 얻었다. 장미꽃도 받았고, 언제가는 그만둘거다. 되어버린 것이 되기 위해서. 왜 나는 이렇게 쓸까? 그렇지만 나는 위험하진 않다. 점점 더 사이가 돈돈해지는 자매들을 제외하고도 내게는 친구들이 있다. 나는 보통 친근한 편인데 그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하다. 나는 침묵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한때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는 말하지 않고도 소통한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게 있다. 나는 그걸 갖게 될 것이다. 그것은 누구에게도 허락을 구하지 않는 일종의 자유다. - P77

아니, 아직 붉지는 않았다. 거의 밤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밝았다. 본래의 모습대로 붉게 보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색이 없는 따뜻한 빛이었고, 그녀는 멈춰 있었다. 아니다, 여자는 땀을 흘리지 못했다. 그녀는 메말랐고 투명했다. 밖에는 깃털이 달린 박제된 새들만이 날아다녔다. 그러나 그것은 눈에 보이는 더위였고, 그녀가 더위를 보지 않기 위해 눈을 감았다면 느린 환영이 찾아왔을 것이다. 그 환영이 상징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그녀는 거대한 코끼리들이 다가오는 것을 봤다. 견딜 수 없이 따스하고 부드러운 속살은 젖어 있지만 피부는 마른 덩치크고 순한 코끼리들이었다. 자기 몸을 옮기기가 힘들어 발걸음은느리고 무거웠다. - P104

달콤한 여자들과 함께 엄습하는 인도의 향. 공동묘지의 패랭이꽃 향기다. 모든 것이 그렇게 갑자기 변할까? 밤도 비도 물속의 썩은 나무도 없었던 사람을 위해, 진주밖에 없었던 사람을 위해 밤이 올까, 나무가 마침내 썩을까, 공동묘지엔비를 맞아 생기발랄한 패랭이꽃이 피어 있을까, 말레이시아에서 시작된 비가 내릴까? 절박함은 꼼짝없지만, 그 내면에는 이미 떨림이 있다. 여자는 그 떨림이 자기 것임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녀를 태운 것이 오후 끝의 뜨거운 열기가 아니라 인간의 열기라는 사실을 그녀처럼 모두가 지각하지 못한다. 다만 그녀는이제 무언가 달라지리라는 것을, 비가 오거나 밤이 오리라는 것을 감지한다. 그러나 그녀는 누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전에 다이아몬드 같은 두눈이 눈물 두 방울로 녹아버린다. 마침내 하늘이 잠잠해진다. - P107

라이노라이프 식자공에게


오타가 너무 많아서 죄송합니다. 일단은 제가 오른손에 화상을입었어요. 또 다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교정하지 말아주세요. 구두점은 문장의 호흡입니다. 그리고 제 문장은 그런 방식으로 숨을 쉬지요. 혹시 제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신다고 해도 그것마저 존중해주세요. 저 역시 저를 존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쓰기는 저주입니다. - P114

아니, 그저 단순한 부탁이 아니야. 내가 간절히 빌게.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마. 한 잔은, 알겠어, 너에게도 의지할 곳이 필요하니까, 너는 부끄러움 때문에 사람에게 의지하는 대신에 술을택했지.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너에 대해 하는 말이 두려워. 네가 전보다 세 배는 더 많이 마신다는 것 말이야. 네 생명을 단축시키지 말아줘. 삶을 살아, 삶을 살아야 해. 어렵지, 힘든 일이야, 그렇지만 삶을 살아야 해. 나 역시 삶을 살고 있어. 수도자인 네가 신실하게 믿는 신의 이름으로, 조금만 마시길.
내 말을 믿어봐. 내게도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어. - P115

많은 사람이 눈에 띄기를 원한다. 그것이 얼마나 삶에 제약을 주는지 알지 못하고. 내 작은 유명세는 내 수줍음에 상처를 낸다. 그래서 하고 싶었던 말조차 더 이상 할 수 없다. 익명은 꿈처럼 달콤하다. 내게는 그 꿈이 필요하다. 게다가 나는 더 이상 글을 쓰고 싶지 않다. 현재 나는 돈이 필요해서 글을 쓴다. 나는 입을닫은 채 있고 싶다. 내가 절대로 쓰지 않는 것들이 있고, 나는 그것들을 쓰지 않고 죽을 것이다. 그것들은 절대 돈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내 안에는 커다란 침묵이 있다. 그 침묵은 내 언어의 샘이었다. 침묵에서 그 어느 것보다 가장 귀한 것이 나온다. 그러니까 침묵, 그 자체 말이다. - P117

대부분 가정에서 한 청년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러니까 공부시키기 위해 치르는 희생을 당신이 아셨으면 합니다. "초과" 라는 말이 나타날 때마다 얼마나 깊고 치유되기 힘든 상처를 얻는지를요. "초과"로 분류된 어느 젊은 여학생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겨서 그녀에게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갑자기 방향을 잃은 듯한 느낌과 허무함을 느꼈다고 말했지요. 그때 그 여학생 곁에 있었던, 합격을 거부당한 다른 남학생들과 여학생들도 몸을 숨기고 역시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그들은 시위하기 위해 저항하기 위해 길에 나올 수조차 없었습니다. 경찰들이 그들에게 폭력을 쓰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요.
대학 입학시험 준비를 위해 지불하는 교재 비용을 알고 계십니까? 정말 비쌉니다. 아주 힘들게 사고, 할부로 사지요. 이 모든것이 결국 소용없는 일이라는 것입니까?
이 글이 젊은 학생들의 저항 행진을 상징하기를 바랍니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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