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의 노래를 짓는 데는 아흔여섯 가지 방법이 있고, 그 하나하나가 모두 옳거니! 러디어드 키플링의 시 1885-19182
나는 생명에 대해 인류가 공유하는 비전인 움벨트 이야기를 우연히알게 됐다. 그런 것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매일같이 인간종 특유의 감각, 태고부터 내려오는 자연 질서에 대한 인간의 비전이 깊이 뿌리박혀 있는 우리의 고유한 감각에 딱 맞는, 생명의 세계에 대한 매우 특유한 인식을 품고 살고 있으리라는생각을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우연히 움벨트라는 개념을접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은, 과학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도 생명의세계에 질서와 이름을 짓는 방법을 생각해냈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하는 것뿐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동안 나는 정말로 모든 인류가 생명의세계를 바라보는 한 가지 방식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다른종족들의 왕왕 이국적이고 괴상한 분류 속에서 바로 그 공통된 지각의 가장 충만한 표현들을 보았다. 그리고 진화분류학자들(과학사에서그들이 겪은 안쓰러운 사정에 관해 내가 더 배울 일이 남아 있으리라고는 결 - P171
로 예상하지 못했던 바로 그들이 자기 분야를 거의 파괴해버린 이유를설명할 수 있는 한 가지가 바로 그 움벨트라는 것을 깨달았다. 달리는 설명할 수 없었던 그들의 행동을 움벨트의 존재가, 그리고 움벨트에 대한 그들의 끈덕진 충성이 해명해주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깨달음은, 움벨트가 진화분류학자들의 평판에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한 줄기 희망을 비춰준다는것이었다. 이 움벨트라는 경이로움을 되찾는 것은 우리가 가늠할 수있는 정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죽어가고 있는 생명의 세계(국제연합이 내놓은 최근의 한 추정치에 따르면 한 시간마다 약 3개의 종이 사라•지고 있으며, 연간 총계는 18,000~55,000종에 이른다)와 우리 사이의 점점 더 심해지는 단절에서 우리를 구해줄 마지막 최선의 희망이다. - P172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처음에 내가 찾고 있던 건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저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이 생명의 세계에서 질서를 발견하는 방식, 자기 주변 생물들의 이름을 짓고 체계화하고 개념화하는 방식에 관해 기존에 어떤 사실들이 알려져 있는지 알아보고싶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다른 종족들이 네발 달린 동물이나 숲속의꽃들을 어떻게 분류하는지 잘 아는 사람이 과연 있을지도 확신할 수없었다. 게다가 내가 그 일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그리확실한 생각이 없었다. 고백하자면 어떤 면에서 그 전체 과정은 뚜렷이 정의된 탐구라기보다는 종잡을 수 없이 떠돌아다니는 탐닉에 훨씬 더 가까웠다. 나는 오래된 책들과 옛날의 과학저널들을 들쑤시고다녔고, 이상한 것들, 잊힌 것들, 한 번도 제대로 알려진 적 없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어둡고 먼지 쌓인 도서관들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게 좋았다. 괴상한 동물과 이국적인 식물, 그리고 그보다 더 기이 - P172
해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들에 관한 글을 읽을 핑곗거리가 생긴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는 그 일에 착수했다.
괴상한 분류법과 이름들을, 말하자면 ‘잘못된 분류‘들을 보게 될거라 예상했건만 곧바로 내가 예상한 모든 것을 한참 넘어서는 것들을 보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괴상함이었다.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이 이상해서 인류의 대부분이 생명의 세계에 관해 한 말은 내가보았거나 알았던 생명의 세계와는 우주 하나만큼이나 동떨어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한 연구자에 따르면 남서부 사막지대에 사는 파파고 인디언은생물을 "생각하는 것",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 "나는 것", "가시가 있는 것" 등 놀랍도록 특이한 범주들로 분류한다고 한다. 식물계 안에꽃을 피우는 다양한 식물들이 있고 그 안에 다시 장미와 해바라기 등이 들어가는 범주를 만들었던 린나이우스가 이들의 분류를 알았다면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어떤 종류의 세계관, 어떤 종류의 삶의 방식이어야 이렇게 이상한 범주들을 이해하거나 활용할 수 있는 걸까? 왜 모든 생각하는 것들, 혹은 모든 가시 있는 것들을 한 부류로 모아놓은 것일까? - P173
인류학 기록들을 뒤지며 돌아다니던 나는 마침내 1960년대에시작된 다음 연구들 앞에 이르렀다. 1960년대는 상황이 겉보기처럼그렇게 불일치와 바벨 같은 난맥상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몇몇연구자들이 깨닫기 시작한 시기였다. 여러 민족 간 생명 분류법과 명명법에서 나타나는 다름에 초점을 맞추며 수년을 보낸 끝에 마침내무언가 변화가 일어났는데, 이는 과학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때는 바야흐로 민권과 사회적 해방과 더 민주적인 사유의 시대였다. 오랫동안 억압받아온 이들(여자, 그리고 연구 대상이 된 원주민을 포함해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모든 부류의 사람)이 조금은 더 존중받기 시작한때였다. 세계 각지의 야생에서 살아가는 야만인들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인류학자들이 조금 더 인간답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 P182
학계 자체에서도 경이적인 혁신이 일어났다. 이를테면 인간의 정신(겉으로 아무리 문명화되어 보이건 야만적으로 보이건 모든 인간의 정신)에는 인간의언어에 대한 보편문법이 존재한다는 노엄 촘스키의 가설이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런 들끓는 변화의 한가운데서 인류학자들의 마음에는뒤죽박죽인 민속 분류학에서 보이는 것이 차이만은 아니라는, 우리모두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통일시키는 무엇이 있을지도 모른다는가능성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물론 사용되는 이름, 묘사된 생물들, 갖 - P182
취진 질서에는 엄청난 다양성이 존재했다. 그러나 또한 일부 인류학자들은 생명 세계의 질서 짓기와 이름 짓기에서 뉴기니부터 뉴욕까중국부터 칠레까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뿌리 깊고 심오하고 근본적인 유사성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 인류학자들이 그 정신 없는혼란 속에서 무엇이든 발견했다는 것만도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해냈다. 지구 위 생명의 질서에 대한 인류의 비전이세계 각지에서 표현된 양상들을, 여태껏 보아온 인간의 움벨트에 대한 것 중 가장 풍부한 표현과 가장 완전한 그림을 찾아낸 것이다. 민속 분류학에서 인류학자들이 알아챈 가장 놀라운 일치 중 하나는 이 민속 분류학 저 민속 분류학 할 것 없이 어디서나 동일한 분류군들이 계속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눈치 못 채고 지나치기 쉽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의 집단이든 한결같이 ‘물고기‘라는 분류군을 가리키는 단어가 있기 마련이다. 이건 너무나 기본적이고 뻔한 일로 보여서 (사실상 필연적인 일로 보인다) 처음에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한다. - P183
오히려 물고기를 가리키는 수많은 단어들에 관심을 빼앗길 가능성이 크다. 몇 가지만 열거하자면 언어에 따라 물고기는 푸아송 poisson부터 바이vai, 피시fish, 아젠a-jen, 퓨스pyus, 마마야크mamayak, 이이yi, 후후huhu, 사카나sakana 등 다양하게 불린다. 하지만이 다양한 이름들 속에서 길을 잃으면 진짜 요점을 놓치게 된다. 바로 모든 언어에 실제로 물고기를 가리키는 이름이 존재한다는 요점말이다. 보편성은 구체적인 이름들이 아니라, 물에 젖어 있고 비늘이있으며 헤엄을 치는 그 존재들을 알아보았다는 데 있었다. ‘물고기‘라는 집단은 다시 또다시, 그리고 또다시 체계화되고 분류되고 목격되고 인지되었다. - P183
사람들이 한결같이 분류하고 명명하는 것만 있는게 아니라 한결같이 알아보지 못하는 것들도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특정 생물의 형태를 항상 알아보는 것처럼 어떤 생물 집단은 항상 알아보지 못한다. 항상 부재하는 것들, 다시 말해 우리 움벨트의 레이더 스크린에 한결같이 잡히지 않는 것들에는 결정적인 일관성이 있다. 인간은우리 기준에서 아주 작은 것들에게는 마음을 잘 주지 않는다. 몇 밀리미터 길이의 기생벌, 눈에 보이지 않는 박테리아, 목숨을 빼앗는바이러스 같은 것들 말이다. 이런 것들도 생물에 속하며 잠재적으로인간의 생명에 극도로 중요하지만, 민속 분류학에서는 공통적으로찾아볼 수 없다. 이 외에도 우리가 한결같이 알아보지 못하는 생물이많다. 각각을 구별해주는 결정적인 차이점이 인간의 감각에는 너무 - P185
왜일까? 왜냐하면 그것들은 우리의 움벨트, 우리 인간이 매일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감지한 세계의 풍경에서 높이 솟아 불타고 있는 봉화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전형적인 인간의 눈으로 그 세계를바라볼 때, 키 작은 관목들은 높이 솟은 나무들과 상당히 다른 존재로 우리 눈에 그냥 확 들어온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새들을 알아보지못하는 일이 결코 없고 박테리아를 알아보는 일도 결코 없다. 우리는꽃을 보지만 벌들에게는 너무나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이는 꽃들의자외선 무늬는 결코 보지 못한다. 전형적인 인간의 코로 우리는 장미의 달콤한 향기는 맡지만 개들이 즉각 감지할 수 있는 다른 많은 냄새는 맡지 못한다. 그리고 이건 다른 모든 종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류의 감각에 대해 서로 다르고 각자 고유한 움벨트가 존재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종의 움벨트가 그러하듯 우리의 움벨트는 매우 특유한장소다. 물고기가 헤엄치고 새가 날아다니는 움벨트, 우리의 감각에특화된 움벨트, 우리가 감지할 수 있고 우리가 알아차리는 경향이 있으며, 봉화처럼 활활 타오르는 움벨트. - P187
인간의 행동은 유동적이고 창조적이며 예측할 수 없지만, 우리가 생명의 세계를 인지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동안 우리의 움벨트는 근본적인 면에서 변함없는 상태로 남아 있다. 움벨트는 우리 존재의 확실한 한 부분이기 때문에 움벨트를 무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움벨트에 따라 사는 것은 그것이 우리가 들어본 적도 없는규칙을 따르는 일일망정 침대에서 굴러나오는 것만큼이나 쉽다. 뉴기니의 수렵인부터 마야의 농부를 거쳐 독일의 분류학자까지, 이 시각이 반투어나 표준 중국어로 표현되든, 브라질의 마샤칼리어 혹은라틴어 학명으로 표현되든 모든 사람이 심층적인 면에서는 아주 유사한 방식으로 생명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이 비전은 사람들에게 다윈이 보았던 분류군 속의 분류군, 린나이우스가 찾던 자연의 질서를 포착하게 하고 현실로 인지하지 않을수 없게 한다. 또한 자기네 지역의 산과 계곡을 모두 다 탐험한 뒤 지구의 나머지 지역에 사는 생물을 탐사하려는 열망을 품은 박물학자들 때문에 수백 척의 범선이 출항하게 한다. 인간의 움벨트는 심지어 - P209
인간의 깊은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분류학이라는 온전한 과학 분야하나를 탄생시켰다. 이 과학의 가장 사랑받는 전통은 단순히 학문적유산만도 아니요, 이 분야의 아버지인 린나이우스가 발명한 규칙들과 체계들만도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깊은 무엇이며,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된 애호와 전통이다. 나는 인류학의 세계에 뛰어들어 보고서야 이 강력하고 보편적인 생명의 비전이 또렷하게 그려진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움벨트가 지닌 진짜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이한 심리학의세계로 풍덩 뛰어들어야만 할 터였다. 그 세계에서 자신의 움벨트를완전히 도둑맞은 희한한 사람들에 관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어떤 비극적인 진실도 보게 된다. 이 사람들이, 다른 어떤 사람이라도 그렇겠지만, 움벨트를 잃어버림으로써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 P210
새로운 별 하나가, 아니 그보다는 태양이, 정신의 지평선 위로 떠올랐다. 이 태양은 과학적 확실성의 손가락으로 모든 정신적 능력을 하나씩 짚어주고. 그 무엇도 어둠이나 의혹 속에 남겨두지 않으며, 다만 진정한 정신의 과학을 발달시킬 뿐이다. O. S.와 L. N. 파울러「삽화가 들어간 골상학 및 생리학 자습서
우리의 움벨트를 곧바로 만들어내는 것일까?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사람이 토마토를 보거나 ‘검치호랑이saber-tooth tiger"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우리 측두엽에서는 뭔가 특별하고 뚜렷하며 정형화된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상측두고랑의허공을 가로지르며 신호들이 발사되거나, 외측방추이랑의 비탈 위로뇌우가 쏟아져 내리거나, 우리 두개골 속 커다랗고 물렁물렁한 호두처럼 생긴 덩어리 안 특정 협곡 안에서 또 다른 신경 네트워킹이 복잡한 조합을 일으키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J. B. R. 이낙타를 보면서도 낙타를 알아보지 못할 때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그 활동이다. 그의 좌뇌 측두엽이 도와주지 않으면, 코끝이 통통하고 목이 뱀처럼 길고 구불구불하며, 몸은 털로 뒤덮이고 등에는 불룩한 혹이 있는 이 동물이 ‘낙타‘라는 것을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 P228
한때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던 P. S.가 왜가리를 바라보며 그것이물고기라고 확신할 때도 비슷하게 뭔가 잘못된 발화가 일어나거나발생해야 할 어떤 정신적 번개가 전혀 일어나지 않으며, 이것이 병든 그의 뇌로 하여금 깃털로 덮이고 키가 크며 부리가 큰 그 새가 미끌거리고 비늘이 있으며 물속에서 숨을 쉬는 동물들만으로 가득 찼어야 할 머릿속 범주에 속한다고 믿어버리게 하는 것이다. 우리가 개한 마리를 보고서 그것이 바로 개임을 즉각 알아볼 때, 고양이나 비슷한 늑대나 전혀 다른 독수리가 아니라 바로 한 마리 개라는 걸 알아볼 때, 아마도 우리의 방추이랑과 상측두고랑 어디에선가 불꽃이튈 것이다. 또 날개를 펄럭임에 따라 무지갯빛으로 색깔이 변하는 아름다운 나비를 경이로움에 차 바라볼 때도 윙 하는 소리를 내며 기어가 돌아가기 시작할 것이다. - P228
그러니까 거기가 그 결정적인 회색질, 당신의 생명에 대한 비전, 당신의 움벨트를 만들어낼 수 있는 소용돌이와 똬리가 자리한 곳인 듯하다. 당신의 왼쪽 관자놀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딘가가 만약 그곳이 손상된다면 당신은 거위를 보고 당황하고 단풍나무를 보며 완전히 혼란에 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 결정적인 회색질이 멀쩡하고 건강하게 남아 있다면 당신은 움벨트가 지닌 온전하고 완전한 힘을 누릴 것이다. - P229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이건 대단히 장엄한 일이다. 그토록 분명하고 명백하고 그토록 사랑받는 어떤 것(자연 질서 안에서 분명히 구별되는 수많은 생명 형태들과 그것들이 거주하는 움벨트)을 골라내 거기에 손을 대는, 아니면 적어도 그 근처에 손가락 끝을 갖다 대는 일 말이다. 그런데 정확히 그것이 이 심리학자들이, 인간의 정신, 우리 뇌의 어두운 모퉁이들을 탐험하는 그 남자들과 여자들이 해낸 일로 보인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은 이 연구자들이 움벨트에 손상을 입은사람들을 연구함으로써 정말로 움벨트가 지닌 가장 심층적이고도 심오한 중요성이 무엇인지 밝혀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무작위적 현실로부터 질서 정연한 움벨트를 뽑아낼 수 있도록 생물을 분류하고 명명하는 뇌 영역을 지닌 채 태어난다는 것이 분류학자들에게 그리고우리 모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낸 것이다. - P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