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세계, 막스 피카르트


도심 한복판에서 별안간 당혹스러워질 때가 있다. 휴대전화를 목에 걸고 혹은 귀에 대고 서로를 지나치는 인파 속에서, 무어라 무어라 끊임없이 발신되는 말들의 홍수 속에서, 자동차 소리와 온갖 기계들의 소음 속에서 길을 잃고 허둥거릴 때, 되묻게 된다. 이 넘쳐나는 소리들 속에서 우리는 정작 소리를 잃어가는 것은 아닐까. 침묵으로부터 말을 분리시킴으로써 우리의언어는 버림받은 고아의 말이 되어가는 것이 아닐까......
도심에서 지쳐 돌아와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펼친다. 「침묵의 세계는 한번에 완독할 필요도 속독할 필요도 밑줄쳐가며 주석을 달 필요도 없는 책이다. 필요와 효용성이 가치의우선 척도가 된 오늘날, 아무런 효용성도 생산성도 없는 ‘침묵‘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가장 무용한, 동시에 참으로 유용한 책.
‘나‘라는 덧문이 너무 자주 여닫혀 소란스러워질 때, 아무 문단이나 펼쳐 허공에 띄워놓고 그 느릿느릿하고 절제된 사유가 만 - P215

드는 아름다운 소롯길을 걷는 즐거움이란! 그러나 그 즐거움의이면에는 이 지독한 소음의 세계로부터 버림받은 자의, 아니,
철저히 버려져 자유롭기를 원하는 자의 응집된 고뇌가 있다.
그리하여 얻어진 소금결정 같은 말들이 소란스런 내 혀를 각성시킨다. "침묵하는 풍경, 그것은 인간의 얼굴 속에 들어오면말하는 침묵이 된다. (...) 오늘날 인간의 얼굴에는 어떠한 바다도산도 없다. 얼굴이 더이상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서 밀쳐내버린다. 얼굴에서 나무들이 베어져나가고, 산은 파여없어지고, 바다는 말라붙었다. 그 텅 빈 얼굴 속에 거대한 도시가 세워졌다." 하나의 페이지를 허공에 띄워놓고, 시간과 사랑과 꿈과 보이지 않는 신의 얼굴을 상상하다가 나는 오래 전나를 이루었던 바다와 숲이 그리워진다. 자연의 소리가 속삭이던밀어를 떠올린다. "침묵해요. 당신이 나의, 내가 당신의 말을 들을 수 있도록 !" - P216

당신과 나 사이에 웅덩이가 있다. 어떤 말씀. 어떤 행위가 있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아득한 심연의 웅덩이-‘침묵의 세계‘ 가우리 사이에 놓여 있다. 고여 있는, 그러나 내부로부터 부드럽게 유동하는 그 세계로부터 말이 자라나고 말의 봉오리가 벌어진다. 침묵의 웅덩이 속에서 두근거리는 말의 구근. 침묵에 젖줄을 댐으로써 육체를 얻은 인간의 말은 침묵에서 나와 다시 침묵으로 돌아간다. 말의 어머니인 침묵을 경청하는 시간이 우리 - P216

에겐 얼마나 절실한가. 그리하여, 침묵 자체가 말하게 하는 일!
그러니 내 혀가 창조해야 할 것은 언어가 아니라 침묵일지도 모른다. - P217

알렙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사람들은 창이 넓은 집을 좋아한다. 큰 창을 가져볼 기회가 드물었지만 나 역시 커다란 창문이 있는 집을 꿈꾼다. 창은 햇빛과 만나면서 비약적인 매혹의 순간을 낳는다. 창문 앞에 놓인꽃병 하나를 생각해보자. 오전에서 오후에 이르까지 시시각각변화하는 빛의 질감과 각도에 따라 꽃병은 제 속에 간직한 무수히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빛과 창의 마술 속에서 꽃병의 형상은 깊은 우물이, 아름다운 여체가, 다알리아 구근이, 주름살 빼곡한 노파의 옆얼굴이 된다. 흙의 질감과 그것을 구워낸 불의열기가 느껴지고 그 열기가 전해주는 규정할 수 없는 슬픔과 사랑이 ‘꽃병‘이라는 딱딱한 기표를 무화시킬 때, 권태로운 생의한순간이 돌연 싱싱해진다. 그리하여 나는 창을 사랑하고, 창앞에 놓인 사물들이 그들에게 규정된 이름과는 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순간들을 사랑한다. 기표와 기의가 교란되는 순간의 즐거움. 이를테면 오독(誤讀)의 즐거움?! - P218

보르헤스의 소설은 나에게 오독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한다.
그의 여러 단편집 중 픽션들』과 『알렙은 정교하게 세공된 꽃병이 놓여 있는 창을 바라보는 일처럼, 여러번 읽어도 매번 새롭다. 그 즐거움의 어느 굽이에서 나는 돌연 머릿속이 텅 비는 서늘함을 느끼고, 그 자체로 ‘미궁‘인 세계의 다양한 이면들과만난다.
그의 소설에는 신, 영원, 우주, 시간과 신비라는 형이상학적주제가 넘쳐나지만 그가 보여주는 형이상학의 세계는 고답적이지 않다.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사유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직관과 상상력으로 육박해가는 알 수 없는‘ 존재의 ‘알수 없는 근원. "그리고 나는 ‘알렙‘을 보았다. (...) ‘알렙‘의 직경은 2 또는3센티미터에 달할 듯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기의 축소 없이 우주의 전공간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하나의 사물은 무한히 많은 사물이었다. (...) 나는 모든 각도에서 ‘알렙‘을 보았고,
‘알렙‘ 속에 들어 있는 지구를 보았고, 다시 지구 속에 들어 있는 ‘알렙‘을 보았다. 나는 나의 얼굴과 내장들을 보았고, 너의 얼굴을 보았다." - P219

죽은 애인의 사촌 집 지하실에서 발견한 알렙은 동전 크기만한 무한 시공체이다. 터무니없는 상상이라고? 때로는 터무니없는 상상력이 그 터무니없음‘의 힘으로 ‘어떤‘ 진실에 육박해가는 법이다. 알렙을 발견하는 순간의 행간을 읽어가면서, ‘일중일체다중일(中切多中 하나 속에 일체가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다)‘을 말한 동방의 현자를 떠올리는 것은 내 오독의 편향일까. 꽃병 속에 화엄이 있고 당신의 얼굴 속에 알렙이 있다. - P220

빈센트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 
어빙 스톤


겨울 전등사에 갔다가 소나무 밑둥치에 붙어 있는 매미 유충의 껍질을 보았다. 검지 한마디만한 바싹 마른 얇은 껍질에는여섯 개의 발이 오롯하게 남아 나무껍질 틈새에 단단히 발톱을박아넣고 있었다. 오랜 시간 땅속에 머물다 지상에 나온 어느날자신의 등을 가르고 여름햇살 속으로 날아올랐을 매미는 짧디짧은 생의 시효를 다하였을 것인데, 겨울바람 속 메마른 껍질하나가 증거하는 생의 흔적이 아찔하다. 
차갑고 어두운 겨울숲 밑자리, 매미 유충의 껍질로부터 돌연끼쳐오는 빛과 열기의 폭풍. 나는 고흐를 떠올린다. 그가 그려낸 해바라기와 붓꽃과 아를르의 지글거리는 태양과 타는 밀밭, 꿈틀거리는 나무들엔 또다른 빛이라고 할, 어둠이 스며 있다. 그의 화폭에서 터져나오는 자연의 광휘는 지독히 인간적인 통증으로부터 피어난다. 우리가 ‘예술혼‘이라고 칭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삶으로부터 분리된 예술에 대한 이상화된 열 - P221

망이 아니라 벼랑 끝에 부려진 생의 매순간을 끌어안아 창조의힘으로 전이시키는 견인주의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어빙 스톤이 이 책에서 그려내고 있는 고흐의 생애가 감동적인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는 고흐를 위대한 예술혼을 부여받은‘ 천재화가로 이상화하지 않는다. 한 인간으로서, 사랑하고사랑받기를 원했고 어둡고 가난한 땅에서 소외된 이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길 원했으며 굶주림과 외로움, 때로 배신감으로절망하는 고흐의 맨얼굴을 보여준다. "난 태양을 그릴 땐 태양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회전하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보리밭을 그릴 땐 보리알 안에 든 원소 하나하나가 영글어 터지는최후의 순간을, 사과를 그릴 땐 사과의 즙이 표피를 밀고 나오려는 것을 중심에 있는 사과씨들이 그 자신의 결실을 맺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을 느끼게 만들고 싶어." 절망과 희망이 깍지끼고 자신을 밀어가는 ‘산것‘들의 치열한 리듬- 운동성이야말로 최초이자 최후의 생의 조건 아니던가. - P222

고흐가 처음 그림을 그린 때로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기까지의 9년 동안 그가 남긴 그림은 879점이었다. 1년에 거의100점의 그림을 그린 셈인 화가로서의 그의 지상의 9년은 그무시무시한 열기만으로도 자신을 내파(內破)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또 그리면서, 그를 이해한 유일한 벗이었던 동생 테오에게 고흐는 쓴다. "어디까지가 습작화이고 어디부터가 본격적인회화인지 잘라말하긴 어려워. 그저 할 수 있는 대로 많이 그리고, 결점도 갖고 우수함도 가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되기로하자." 생의 매순간은 생의 전부이다. 영원이란, 찰나에서 찰나로 거듭나는 생의 매순간이다. - P223

「창백한 푸른 점」 
칼 쎄이건


고등학교 1학년 지구과학 시간이었다. 암청빛 칠판에 선생님이 분필로 작은 점 하나를 ‘쾅‘ 찍었다. "이것이 지구다!" 맙소사. 저 작은 점 속에 깃들인 숱한 생명 중의 하나가 ‘나‘ 라니! 호명할 수 있는 태양계의 별들을 모두 그려넣어도 칠판 한구석에동전 크기만하게 옹크린 저 세계 속에 내가 있다니! 칠판이라는우주 위에 작은 점 하나로 치환되어 나타난 지구는 열여섯의 나를 미열에 시달리게 했다. ‘나‘를, ‘인간‘을, ‘지구‘를 중심에 놓고 사고하는 데 길들여진 내게 암청빛 칠판이 보여준 거대한 우주는 어떤 막연한 두려움과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그리움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던 것 같다.
천문학자 칼 쎄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은 우리가 일상의 속도 속에서 잃어버린 우주에의 꿈을 복원시킨다. 동시에 이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란, ‘인간‘이란 무엇인가의 화두를 던진다. 또다른 그의 저서 『코스모스』에서 비유하고 있는 바, 약 150억 - P224

년의 나이를 가진 우주의 역사를 달력의 1년으로 줄인다면 지구의 탄생은 9월 중순 어느날 일어난 사건이며 그후 10일쯤 지나최초의 생물이 싹트며 인간의 조상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12월 마지막 날의 마지막 15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지구가 탄생하기 훨씬 전에 무수한 별들이 있었고 인간이 탄생하기 전에 무수한 생물들이 이 별의 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구를 중심으로 우주가 존재하고 있는 듯한, 인간을중심으로 생명들이 존재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종종 빠진다.
우리가 속해 있는 은하가 수천억을 헤아리는 수많은 은하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는 사실, 이 평범한 우리 은하 속에만도 4천억개 가량의 별들이 존재하며 그 가운데 지구는 극히 미미한 창백한 푸른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경쟁과 정복과 착취로 얼룩져온 인간의 역사는 무슨 의미일지. 이 작은 점 위에 빼곡하게 구획된 지독히 인간중심적인 영토들 인종, 국가, 민족, 지역과 가족의 성곽이 서로를 경계하며 벌이는 아귀다툼은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사랑하기에만도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도 짧다. - P225

별을 바라보자. 저 무한의 빛들이 지지배배거리며, 자그락거리며, 몸 비비는 소리를 들어보자. 우리가 머무는 이 찰나의 순간에 닿기 위해 무수한 별들의 몸을 스쳐 수십, 수백만 광년을달려온 저 별빛. 어쩌면 저 별은 시간의 터널을 통과해 내게 닿는 사이 이미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오래 전 죽은 별이 오늘의 내게 보내오는 속삭임. 사랑하라..... 사랑하라..... 사랑을하러, 나는 날마다 이 별로 온다. - P226


장 그르니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크고 작은 상처를 입는다. 타인에 의해 생긴 것이든 내 속의 무수한 나에 의해 생긴 것이든, 상처는 우리의 ‘살아 있음‘을 증거하는 물질성이며 환영(幻影)이다. 가장 권태로운 삶 속에서도 상처는 끊임없이 환생한다. 살아 있으므로,
우리는 상처의 영혼을 불러내고 치유를 위한 비나리를 거듭할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운명이자 선택받은 존재들인 셈이다.
일상의 어느 결에서 문득 상처가 만져질 때, 한권의 책이 나를 치유하는 경험은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상상력을 자극한다거나 새로운 지식을 준다거나 정신을 각성시키고 들끓게 하는 좋은 책은 종종 있으나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책은 그리많지 않다. 장 그르니에의 『섬」은 내 상처의 덧난 자리에 고요하고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치장이 없는 맨얼굴로, 말보다는 침묵으로, 섬세하지만 결코 도망가는 법 없이 섬의 뿌리가 나의환부에 닻을 내린다. 그 순간, 뿌리와 환부가 만나는 그 순간이 - P227

그르니에의 글에서는 인식과 사유 이전에 영혼에 직접 손을 내미는 방식으로 온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름다운 에쎄이들은
‘문학적‘이기보다는 ‘음악적‘이다.
그리하여 나는 선율을 읽듯, 내 젊은날의 어느 캄캄한 모퉁이를 지날 때 주문처럼 떠오르던 아름다운 멜로디를 읊조려보는것이다. "나는 혼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낯선 도시에 도착하는 것을 수없이 꿈꾸어보았다. 그러면 나는 겸허하게, 아니남루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되면 ‘비밀을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228

나는 샤먼이 되어, 내가 기억할 수 없는 아득한 미래의 어머니가 되어, 몇개의 문장을 입속에서 굴려본다. 말들의 틈에서유연하게 파동치며 배어나온 빛살이 내 혀끝에 둥근 환약 한알을 올려놓는다. 나는 머뭇거리며, 마침내는 주저없이 그것을 받아 삼킨다. 아, 내가 상처라고 믿었던 것들의 영원한 흥취와 덧없음이라니! 나는 애초에 상처로 지어진 집이며 그리하여 새로이 얻은 상처란 없는 것이다.
세계의 헛됨을 아는 그르니에의 문장이 만드는 지극히 아름다운 울림 속에서 나는 느릿느릿 산보를 한다. 가장 일상적인것들이 보여주는 낡음 속에서 빛나는 ‘공(空)‘의 매혹. ‘비어 있음‘은 슬픔도 쓸쓸함도 그 무엇도 아닌 것이며, 아무것도 아닌그 무엇인가의 힘으로 우리는 다시 세상을 껴안는다. "나는 저 - P228

꽃이에요. 저 하늘이에요. 저 의자예요. 나는 그 폐허였고 그 바람, 그 열기였어요." 그르니에가 사랑한 고양이 물루가 창틀에 턱을 괴고 속삭이듯이. - P229

「유마경」


"거사님, 이 병은 무엇으로 인하여 일어났습니까?" "일체중생이 병들었으므로 나도 병들었습니다. 만약 모든 중생이 병에 걸리지 않을 수 있다면 그때 나의 병도 없어질 것입니다."
오래 전 내가 유마힐에게 매혹된 것은 문학서나 철학에쎄이들에 간혹 인용되던 이 문답 때문이었다. 그것은 어떤 ‘통증‘을동반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으며 동시에 인간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환기하는 전언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상상했던 유마힐은 일체의 생명 가진 것들의 고통에 민감하게 동참하고 함께 아파하는, 섬세한 영혼의 시인이자 대속자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실제로 이 경을 읽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른 빛깔의유마힐을 만났다. 스스로 최고 경지의 불법을 얻었으면서도 재가신도로 남아 중생이 앓는 병을 함께 앓으면서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 유마힐은 자기의 방에 수많은 방을 들인 광장의 구도자였다. 다른 경전들이 보이는 비교적 순연하고 온건한 말하기 방 - P230

식이 아니라 쾌도난마하는 논객이며 자유분방한 비판자로서의유마힐. 그는 어떤 보살의 권위에도 주눅들지 않고 심지어 붓다앞에서조차 논리정연한 설법과 영감에 가득 찬 게송을 노래할줄 안 자유로운 철인(哲人)이었다.108『불가사의해탈법문』이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는 이 유쾌하고 판타스틱한 불경은 『천일야화』만큼 재미있고 『우파니샤드만큼 상서로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동시에, 듣고 읽는 이로하여금 의외의 친밀감을 경험하게 한다. 이는 아마도 이 경전이대승불교의 사상 위에 성립된 것이라는 역사적 맥락과 연결될터이지만, 신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이미 깨달은 자보다는 깨달음에 들고자 소망하는 이들에 대한 공경의 자세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P231

여러 종교의 많은 경전들이 인간의 상상력의 문학적 보고라고 할 수 있지만 「유마경」은 인간사의 다양한 곁가지들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을 촉발시킨다. 이를테면 지혜의 상징인 문수사리와 유마힐이 벌이는 문답과 토론의 장에서 나의 사회학적 상상력은 겅중겅중 시공을 건너뛰어 철학의 황금기를구가하던 옛 그리스의 아크로폴리스로 건너간다. 자유분방한비판과 토론의 문화 속에서 비옥하게 영글던 언어의 열매들과절대권위에 물음표를 던지는 열린 정신들이 그립고, "그대는 어찌하여 여자의 모습을 바꾸지 않는가"라고 묻는 사리불에게 남녀를 차등지어 분별하는 그릇된 분별심을 깨닫게 하는 천녀의 - P231

설법이 또한 통쾌하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며 생사가 곧 열반 인, 번뇌를 품은 일체중생의 몸을 부처의 씨앗으로 귀히 여기는 지극하고 도저한 정신들이 그립다. "‘님만 님이 아니라 기룬 것은 다 님이다‘라고쓴, 설산의 고독과 광장의 싸움을 온몸으로 실천한 만해의 눈빛처럼. - P232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전태일 평전


모란공원에 간다. 그곳엔 내가 태어나던 해에 죽은, 아직도스물두살인 전태일이 있다. 그리고 문익환, 박영진, 박래전, 성완희, 문송면, 김귀정, 조영래..... ‘민주열사 묘역‘에 들어서는데 낯익은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밥이 되지 않고, 알콩달콩 생활의 잔재미를 북돋우지도 못하는 ‘기억을 더듬으며 저들과 나는 왜 이곳에 오는가. 5월과 11월이면 밀린 부채를 탕감하듯 나는 왜 서둘러 묘지를 찾는가. 묘지 부근에서 유독 살지게 자라는 나무들, 붉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움켜쥔 적단풍나무 줄기에 이마를 댄다. 어떤꿈을 덜고 어떤 꿈을 더하러 우리는 묘지로 오는가……
고백하건대, 어떤 ‘책‘을 읽고 눈물 흘려본 기억이 있다면 내겐 이 책이 유일하다. 그것은 좋은 책이라든지 감동적인 책이라든지의 범주를 넘어선, 날것 그대로의 아픔과 분노가 촉발시킨 눈물이며 그때의 눈물은 카타르씨스의 둥근 포용성이 아니라 - P233

날카로운 예각으로 나의 내부를 찢으며 온다. 어린 스물에 『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은 그렇게 와서 내 바깥의 ‘나들‘
을 깨닫게 하고 인간에 대한 예의와 ‘인간적인‘이라는 말이 빚는 빛과 그늘의 웅덩이를 들여다보게 하였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나는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조금만 참고 견디어라.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초등학교조차 졸업할 수 없었던 삶의 조건 속에서 전태일이 남긴 빼곡한 일기속에는 인간에 대한 절망과 분노와 탐구와 희망과 고통받는 어린 생명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있다. 지극한 사랑을 품은 댓가로 그는 스물두살의 나이에 분신 산화하였다. 1970년 11월 13일. 그리고 시작되었다. 그 이전엔 아무도 말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대자적 인식이 인간의 조건을 각성한 ‘노동운동‘의 격류가. - P234

우리는 흔히 ‘평균적‘으로 살 만해졌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두가 배불러도 단 한명의 굶주린 이가 있다면 이것은 잘못된 일이다. 바로 이 땅에서, 가까이 북녘에서, 몸팔러 고향을 떠나온이국의 노동자들 속에, 제3세계에 가해지는 숱한 폭력과 착취속에, 이 막돼먹은 세계 속에 순연한 ‘긍정‘이 놓일 자리는 불행히도 없다. ‘자기부정‘과 ‘부정‘을 ‘부정‘하여 도달한 ‘긍정‘의좁은 문이 있을 뿐. 고치를 뚫고 나오는 나비처럼, 스스로를 태운재 속에서 다시 생명을 얻는 전설의 새처럼.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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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자기의 몸은 자기의 것이면서 모든 시간의 것이 됩니다. 석류나무는 올해도 저 좋은 곳에 둥근 열매를 매달았을 것입니다. 너무 쓸쓸해보였던 가지 끝이거나 여기쯤 매달면 담장 밑이 환해지겠다 싶은 곳이거나 자꾸만 그리워서 여러번 들여다본 어느 꽃자리쯤에, 둥글지만 닫혀 있지 않은, 자기의 방을 가졌으나 살풋하게방문을 열어놓은, 붉은 열매의 몸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세상에! 하나의 열매 속에 이렇게 여러 개의 방이 있네요. 그 각각의방 속에 또 빼곡히 들어찬 보석 같은 붉은 방들! 그것들은 나를따스한 핏물이 스며든 구체적인 인간의 육체로, 포기할 수 없는꿈으로 안내합니다. 모든 존재는 홀로이며 동시에 겹쳐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아프게 나를 바라보던당신에게 나는 쓰고 싶었던 것일까요. 겹침의 틈새, 나 자신이면서 동시에 당신인 시간에 대해,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내게 겹쳐져 있는 모든 틈새를 열어보는 일에 대해. - P162

이제 막 서른을 넘어섰을 뿐인 당신이, 옛날엔반짝이는나뭇잎만 봐도 막 가슴이 두근거리곤 했었는데, 라고 말할 때, 그 옛날엔..... 이라는 말의 슬프고 아득한 질감. 꿈없는 시절을 배회하면서 한 생이 늙고 ‘꿈없음‘에 적응하기 위해 제 꿈의사지를 절단해가면서 우리는 한사람의 공인된 ‘사회인‘이 되어갑니다. 이 무모함, 이 유전되는 결핍의 궁극에서 맞닥뜨리게되는 야누스는 완전한 ‘일탈‘과 완전한 ‘적응‘의 두 얼굴을 쳐들고는 봤냐? 내 얼굴 봤냐? 냉소하며 빙글빙글 웃곤 하지요. 그럴 때면 문득문득 솟구치는 살의. 그러나 내 살의는 나조차도해치지 못하고 스러지곤 합니다. 생의 한 페이지에 견고한 갑골문자만 또 가득 새겨지지요. 갑골 속에서, ‘파각‘이라는말을 앙다물어 발음해보며 하루가 힘겹게 저물던 날들입니다.
아, 저것, 불현듯 만나진 종루 위의 만다라, 둥글고 커다란 법고 앞에서 한 비구니의 자줏빛 가사 자락이 펄럭이며 소리를 띄워올립니다. 그 소리의 주름을 따라 겹겹이 포개어진 꽃잎들이 열리며 만다라화가 피어나기 시작합니다.  - P170

내가 아는 한 지상에서 가장아름다운 것은 물과 바람입니다. 보탠다면 너무 강렬하여 빠닥빠닥하지 않은 빛살, 일테면 새벽빛이나 저녁빛 같은 것. 그리고 나무들.
이른 새벽 피어오르는 산안개는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진 참으로 아름다운 경전입니다. 체(體)를 입었으나 체(體)가 없는, 가붓하게 제 몸을 띄워올려 바람의 길 위에 몸을 부린 저자디잔 물방울들 사이로 내가 아는 모든 이름들이 스며들고 흘러갑니다. 새벽빛 속에 반짝거리기 시작하는 나뭇잎들이 순간, 몸을 띄워 천지사방 흩날릴 것도 같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소멸의 이름으로 산안개는 피어오르고 까마득히 흩어져 자취를 남기지 않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이처럼 지극하게 공양되는 예불을 찬찬히 지켜보며 나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말을 문득중얼거려보는 것입니다. ‘나‘는 본시 없고 ‘나‘가 없었던 적도 - P174

없으나.....
이 아름다운 예불의 마지막에 즈음하여 나는 참으로 순하여지고 이미 없는, 이미 흩어져 사라진 흔적을 향해 지극한 합장을 올렸습니다. 허공을 향해 드리는 합장. 아, 그러고 보니 이와비슷한 합장의 기억이 내게 두 번 더 있습니다.
한번은 저 운문산 꼭대기의 기도 도량인 사리암에서였지요. 어머니에서 누이에 이르기까지 이래저래 나는 불연이 깊은 사람이지만 내게 있어 불교의 매혹이란 그 종교적 입성 때문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지극하고 치열한 아름다움 때문입니다. 나는 고착된 형상을 입은 절대자를 믿지 못합니다. 붓다도 예수도참으로 아름다운 구도의 인간들이었으나 그들에게 절대의 신격과 권좌가 부여되는 순간 나는 매혹을 잃습니다. 번쩍이는 금물을 입은 불상이나 북적거리는 십자가의 상징은 이 땅을 지배하는 다른 상징들, 내가 참으로 혐오해 마지않는 부와 권력과 관습의 힘 속에 천박해져가는 여타의 사회적 상징체계들과 다를것이 없습니다. - P175

최북단 마을의 자그마한 학교인 명파초등학교 운동장을 오래도록 서성거렸습니다. 수업시간인지 사위가 고즈넉합니다. 저아이들은 무엇을 꿈꾸고, 배우고, 질문하고 있을까요. 아득한북방으로부터 날아와 송지호의 갈대숲에 내려앉는 철새떼의 날갯짓 소리를 그저 말없이 듣습니다. 새들이 비상하는 순간의 날갯짓 소리는 우주를 유랑하는 집시별들의 무위를 닮아 있습니다. 아름답다.……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화진포 바닷가를 오래도록 서성입니다. 긴 세월 바다가 빚어놓은 눈부시게 희디흰모래사장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무어라고 자꾸 속삭입니다. 가만히 귀기울이니 그것은 백두에서 시작되어 금강과 설악을 거쳐 남으로 흘러내려가는 백두대간의 능선과 나누는 밀어 같습니다. 그들의 밀어에 또 가만 귀기울이니 사람아, 사람아,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간간이 섞여 들립니다. 멀리 고갯마루에 내어건 내 마음이 울적해져 동해를 굽어보고 있구요. 강원도 땅에들 때면 언제나 그러했듯이, 인간인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기도가 간절해집니다. - P206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하이네 • 브레히트 · 네루다/김남주 옮김


책은 사람에 의해 잉태되고 자라고 죽음을 맞는다. 동시에 ‘어떤‘ 책은 사람을 잉태하고 젖을 물리고 자라게 한다. 여기 한권의 책이 있다. 작가도 사라지고, 수배지의 어둠과 싸우며 이시편들을 번역한 이 땅의 시인도 사라지고, 출판사도 사라진책 한 권의 책에 관계된 모든 것이 죽음 저편으로 사라진 뒤에도 오래도록 내 서가에 이 책은 꽂혀 있다. 오월이 오면, 나는이 책을 다시 뽑아든다. 활자의 룰을 따라 ‘읽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만지기‘ 위해, 참혹한 어둠속에서 잉태된 낡은 겉장에 손을 얹고 이 책이 나를 때리던 상처의 기억을 향해 손을 내민다. 오늘을 묵상하기 위해, 꿈꾸기를 거세당하지 않고 미래로돌아가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이 시들을 읽어주기 바랍니다" 라고 시인 김남주는 쓰고 있다. 책의 초판 발행일인 1988년 8월그는 9년째 감옥에서 싸우고 있었다. 싸우는 사람들. 어떤 의미 - P209

에서 모든 인간은 자기 앞의 생과 싸우는 전사들이다. 꿈꾸기위해, 자유로워지기 위해, 행복해지기 위해. 삶에 대한 사랑이유무형의 폭력과 맞닥뜨려질 때 지독한 분노와 증오와 싸움이촉발된다. 그리하여 시대와 나라는 다르더라도 부조리와 폭압의 현실 앞에 아름다운 전사들이 있었다.
하이네는 쓴다. "거인 안테우스는 그의 발이 어머니인 대지에닿아 있는 동안에는 막강한 힘을 쓸 수 있지만 헤라클레스가 그를 들어올리자마자 힘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시인도 마찬가지다. 현실의 대지를 떠나지 않는 한 막강한 힘을 내지만 공상에빠져 푸른 하늘을 떠돌아다닌다면 그 순간 무력해지고 말 것이다." 브레히트는 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되겠기에." 네루다는 쓴다. "아픔보다 넓은 공간은 없다. 피를 흘리는아픔에 견줄 만한 우주도 없다" 라고 - P210

너무도 명백한 폭력의 시대가 이 땅을 시시로 훑고 갔다. 진실로 살아 있기를 원했던 많은 사람들이 시대의 이름 앞에 살해당했다. 시인 김남주도 그렇게 죽었다. 이제 우리는 그때를 단지 ‘그 시절‘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식하든 그렇지 않든, 냉소의 이름이든 회한이나 야합이나 대중추수의 이름이든, 인간정신의 점진적 ‘죽임‘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는 말했 - P210

다. 살아남으라고, 살아서 세계의 무의미와 싸워야 한다고. 그러나, 불행히도, 세계는 무의미하지 않은 것이다. 인간이 저질러온 너무도 많은 죄 의미들이 들끓고, 죽을 때까지 싸워도무의미에 도달할 수 없을지 모른다. - P211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나는 조르바를 사랑한다. 그는 육체의 즐거움을 정신의 즐거움으로 도약시킬 줄 아는 놀라운 마법을 지녔다. 이성과 교육으로부터 어떤 수혜도 받지 않은 이 늙은 노동자는 일상적인 남자, 여자, 꽃핀 나무, 냉수 한컵, 빵 한조각도 처음 보는 경이로운 수수께끼처럼 열정적으로 바라보고 만지고 냄새맡는다. 조르바를 거치면 일상의 모든 것이 신성한 야만으로 돌아간다.
"당신이 바라는 만큼 일해주겠소. 거기 가면 나는 당신 사람이니까. 하지만 산투리(그리스의 현악기) 말인데, 그건 달라요. 산투리는 짐승이요. 짐승에겐 자유가 있어야 해요. 춤도 출 수있소. 그러나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마음이 내켜야 해. 나한테 윽박지르면 그때는 끝장이오. 당신은 내가 인간이라는 걸 인정해야 한다 이겁니다." 인간이라니. 무슨 뜻이냐고? 단호하게.
조르바는 말한다. "자유라는 거지" - P212

뜨겁고, 치열하게 생에 밀착해 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자유. 생의 가장 밑자리까지 질주함으로써 생을 정복하는 조르바의 자유를 나는 사랑한다. 춤추고 싸우고 일하고 산투리를 연주하는 곡괭이와 산투리를 함께 다룰 줄 아는 손을 가진 조르바는 야성의 영혼을 가진,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람‘이었다. 『영혼의 자서전에서 카잔차키스는 고백한다.
"내 영혼에 깊은 자취를 남긴 사람을 대라면 호메로스와 부처와니체와 베르그쏭과 조르바를 꼽으리라. (...)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생명에의, 불사(不死)를 향한 힘의 흐름과 파괴에의 죽음을 향한 힘의 흐름을한 몸 속에 넣고 너무도 유쾌하게 생을 가로지르는 조르바. 긍지에 찬 모습으로 백정의 춤과 전사의 춤을 추고 있는 조르바.
카잔차키스의 영혼은 ‘춤추며 싸우는‘ 조르바를 만나면서 근육질과 뜨거운 피가 가득 찬 심연을 얻었으며, 그 육체성의 뺄속에서 빛나는 마법이 시간이 무르익는다. - P213

자기 내부에 존재하면서도 자기를 초월해 있는 것을 구하기위해 평생을 싸웠던 작가 카잔차키스는 『돌의 정원에서 이렇게쓴다. "(...) 그리고 우리 식물과 동물과 인간은, 혼례의 행렬에들어 있는 우리는, 신비스러운 침실을 향해 전율하며 돌진하는것이다. 우리 하나하나가 혼례의 성스러운 상징을 가지고 간다." 영원한 청년이며 혼례의 신랑인 조르바가 못 박히고 일그러진 손으로 꽃 한송이를 만지듯 섬세하게 산투리의 줄을 고르 - P213

는 것을 나는 바라본다. 그리고 듣는다. 날마다 죽으라. 날마다태어나라. 중요한 것은 자유가 아니고 자유를 위한 싸움이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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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어떤 특별한 경험, 이를테면 비밀의 화원을 남몰래 들어서는 두려움과 호기심과 환희를 유발했으며 그렇게 나는 당신의 첫 자취와대면하게 된 셈이지요.
돌담을 끼고 돌다 대문을 들어서 안채를 지나 또다른 작은 문을 통과해 뒤꼍에 이르기까지, 열살배기 아이에게 그 집은 출구와 입구가 분간되지 않는 이상한 정원이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 나선형으로 한바퀴 돌았다 싶은 곳에 작은 정원을 지닌 사랑채가 마치 비밀의 정원 속에 든 가장 이윽한 비밀의 화원처럼돌연 눈앞에 나타났지요. 아, 설명할 수 없는 기품이 느껴지던아담한 사랑채 마당에 찬란히 흔들리고 있던 백일홍 꽃그늘! 단단하게 다져진 흙마당에는 군데군데 푸릇한 이끼가 돋아 오래된 청동거울의 표면처럼 비밀스러웠으며, 그 비밀 위에 차마 비밀로 덮어둘 수 없어 나무 한그루로 자라나고 만 어떤 아우성이 그토록 붉게, 그토록 처연하게, 푸른 하늘을 만지며 붉디붉은 꽃자국을 내고 있었습니다. - P24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가장 평화롭고 완벽한 느낌의 낮잠. 많은 이들은 가장 아름답거나 가장 고통스럽던 기억의 편린으로부터 자기 생의 팔할을 이미 완성합니다. 그리고 그 극단의추억은 유소년기를 거치면서 흔히 가장 왕성한 에너지로 자신의 무의식에 각인되곤 하지요. 의식하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한인간의 가장 내밀한 지향, 혹은 내밀한 거부의 근원에는 이 추억의 힘이 있다고 나는 종종 생각합니다. 그것은 로고스로는 도달할 수 없는 세계이며 언어로 표현할 방도가 없는 원체험의 세계이지요. 이를테면 내가 종종 바다를 그리워하여 병을 앓게 되는 것은 내 유년의 어느날 바로 그 순간의 기억이 나를 이루는 질료들을 건네오기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간질이며, 아주 오래된, 어쩌면 이미 사라진 부족의 방언을 중얼 - P25

거리며 내 존재의 근원을 찔러오는 그리움.....
저 고택 사랑마루에서의 낮잠과 백일홍과의 만남이라는 바로 ‘그 순간 그 ‘순간‘은 기우뚱거리며 걸어온 서른 해의 내삶이 어디로 흘러가야 할(혹은 어디로 흘러가게 될 것인지를가능하게 하는 낮별의 세계이며, 난파되었다고 느끼는 모든 순간들에서 나를 지탱해온 근원의 닻이 되어주곤 합니다. 空(공)으로부터 출발하여 공을 향해 가는, 내게 짐지워진 삶이 궁극적으로 공한 것이라 할지라도 공을 완성해내기 위해 가득 차 있어야 하는 삶의 역설을 견인해낼 수 있는 근원의 힘. 세상에 태어나 내가 얻을 수 있었던 최대의 축복이 어린날의 그 체험의 순간들이었다는 것을 불현듯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시간이 얼마쯤이나 흘렀을까..... 나는 낮잠에서 문득 깨어났습니다. 흙마당이 풍기는 아득한 냄새와 담장 건너 솔숲으로부터 불어오는 솔바람 냄새, 미열처럼 떠도는 희미한 꽃내음... - P26

저 요요한 고택.
사백여년 전 당신이 일찍 죽을 운명을 지니고 세상을 향해 첫울음을 던진 저 집과 내가 첫인연을 맺은 지 이십여년이 지났습니다. 강릉 초당마을. 난설헌(蘭雪軒) 허초희(楚姬)의 생가. 솔숲 언저리에 맞춤하게 자리잡은 저 단정한 미음자 고택은 당시의 양반집들이 흔히 그러했을 등등한 기세가 없습니다. 솔숲이 허락하여 내어준 자리에 숲과 하늘을 공경하기 위해 지어진사당처럼, 아담한 미음자의 담장은 하늘을 향하여는 열려 있으나 인간에 대하여는 완고하게 닫혀 있는 듯도 보입니다.
그 열살 이후, 내성적이고 소심하며 도대체 무엇인가 꼭 되어야겠다는 소년기의 열망도 내 것으로 품지 못하고 머리가 커가던 세월 동안 저 고택을 참 많이도 드나들었습니다. 내가 살던교동집에서 초당마을까지는 버스를 타고 내려서도 꽤 걸어야했던 만만치 않은 거리였지만 저 고택은 내게 쉼터가 되어주고은밀한 기도처가 되어주곤 했지요.  - P27

그런 날들의 음화 속에는 흔히 부엌에서 혼자 우는 엄마가 있있으며, 결국은 다시 풀게 될 짐을 꾸리고 있는 엄마가 있었고,
항구에서 고기를 받아 시내로 들어오는 버스를 타며 끝끝내 차장에게 내 버스값을 물지 않던 엄마가 있었고, 그 북새통 속에서 울고만 싶었던 내가 있었고, 친구들과 길을 가다 함지박을이고 지친 모습으로 돌아오는 엄마를 외면한 나에 대한 자책이있었고, 남자아이를 낳으려다 뒤늦게 나를 낳아 친구들 엄마에비해 너무 나이가 든 늙은 엄마를 창피해하던 나의 속죄가 있었고, 얼굴도 모르는 큰오빠가 돌연히 죽지 않았다면 내가 태어나지 않았을 거라는 이상한 피에 대한 분노가 있었고, 천신만고끝에 얻은 남동생에게 돌아가는 유별난 사랑에 대한 질투가 있었고, 피해의식이 있었고... - P28

한 여자가 있었느니, 제 이름을 가지지 못한 조선의 여자들속에서 이름과 자와 호까지 가진 여자가 있었느니, 타고난 재능때문에 오히려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있었느니, 이반의기질을 가진 가게 안에서는 평등한 지복을 누렸으나 당대의 제도와 관습 속에서 피폐해질 수밖에 없었던 여자가 있었느니, 스물일곱의 나이에 요절한 백설과 난향을 사랑한 여자가 있었느니, 사랑을 소망하였으나 인간의 세상에서 사랑을 얻지 못한 여자가 있었느니, 어머니가 되지 못하였으나 어머니였던 한 여자가 있었느니...... - P29

당신을 알아가면서 나는 더러 아프고 연민하고 분노하고 또더러는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 여러 겹의 마음이 세월의 베틀속에서 직조해낸 옷감 한필을, 옷감 속에 촘촘히 스며 있는 어룽거리는 무늬들을 오래 바라봅니다. 그 무늬들 중 가장 아프고가장 아름다운 몇개를 눈짐작으로 골라내고 나는 속삭입니다. 걸어나와보라고. 떠올라와보라고. 시인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로부터 아름다움의 의지를 발견하려는 자이며 그리하여 고통스러운 자들이지만 그리하여 또한 유쾌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노래합니다. 무늬가 떠오릅니다. 나는 그 무늬의 결들중 가장 아름다운 봉우리 하나를 눈을 감고 만집니다. - P29

구슬꽃은 하늘거리고 파랑새는 나는데
서왕모는 수레 타고 봉래섬으로 가네
흰 봉황 수레에 오색 깃발 휘날리고
붉은 난간에 기대어서 구슬풀을 뜯네
푸른 무지개 치마는 바람에 날리고
구슬 고리와 노리개는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데
흰 옷 입은 선녀들 쌍쌍이 거문고를 뜯고
구슬나무 위에는 봄구름이 향그러워라
동틀 무렵에야 부용각 잔치는 끝나고
푸른 바다의 청동은 흰 학을 탄다네
보랏빛 퉁소 노랫소리에 무지개가 날리면
이슬 젖은 은하수에는 새벽별이 떨어지네

-「신선세계를 바라보며(望仙謠)」 - P30

자신의 죽음의 때를 알고 죽기 직전, 자신의 모든 시를 불태워버리라고 한 유언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남겨진 당신의 시편들에서 가장 흔히 만나게 되는 판타지의 세계. 당신은마치 선계의 일상을 살다 온- 사는 사람처럼 선계를 재현해놓고 있으며 그 선계의 일상은 너무 리얼하여 오히려 그 세계가환임을 증거하는 슬픈 역설을 내비치곤 합니다. 두루뭉술하 - P30

고 낯익은 현실의 어떤 풍경을 스윽, 긋고 들어가 쭈그리고 앉아서 촘촘한 세촉으로 그려내었을 때 그 낯익은 현실세계 속에숨어 있는 너무나 낯설고 비현실적인 세계를 돌연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지독히 비현실적이어서 지독한 현실감을 띠게 되는 원더랜드, 그 원더랜드는 그러나 인간의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하는 시간 - 새벽별이 떨어지고 동이 트고 나면 사라집니다.
사람들은 흔히 당신의 선계 시편들을 일러 현실의 고통을 견인하기 위한 도피처요 위안처였다고들 합니다. 당신이 그려내는 선계는 유토피아요 이상향인 셈이지요. 그렇습니다. 이상향이되, 나는 그 유토피아가 현실로부터 출발하여 동경하게 된 한번도 가져본 적 없는 꿈의 세계가 아니라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듯이 원형의 고향인 유토피아로부터 출발하여 하계로 유배온 자가 부르는 노래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 P31

그리하여 그것은무지개 저편을 꿈꾸는 노래라기보다 실향민의 노래, 유민의 노래라고 말이지요.
당신은 고향 - 유토피아의 기억을 간직한 자. 사회 경제 문화적인 차별의 차디찬 납골당 주인들인 인간계에 적응하기엔 당신의 기억의 뿌리가 너무 깊은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기억의뿌리-모든 생명 가진 것들의 평등화엄의 세계를 이미 알고 있는 자가 부르는 노래. 당신의 선계에는 혼백과 숨과 교감이 살 - P31

아 있는 우주만물이 등장합니다. 나는 그 세계를 ‘어머니 땅‘ 인고향이라고 부릅니다. 어머니 땅을 이루는 무수한 이름들, 꽃새 바람 무지개 구름 나무 바다 은하수 별∙∙∙∙∙∙ 타나토스를 끌어안은 지극한 에로스의 세계인 자연과 우주의 질료들은 엉기고간질이며 속삭이고 상승하며 하강하면서 환環)을 이루고 그것은 물질적 환(幻)의 세계를 이루어냅니다. 불사의 여선(仙)서왕모(母)가 기린 수레(車)를 타고 축제를 주관하러 봉래산으로 갑니다. 그녀의 수레를 끄는 기린은 생명 있는 것은밟지도 먹지도 않는다는 상서로운 동물이며 봉(鳳)은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한, 하늘과 땅과 물속의 만물을 한몸에 표상한, 그 모든 것이 합쳐 이루어진 새지요. 그 몸에는 타자화된 질료가 없습니다. 지극한대자연의 세계, 평등화엄의 세계는 당신의 고향이자 유토피아이며 실향의 탄식이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부터이가 나는 ‘문득‘ ‘그저‘ 하게 되었습니다 - P32

인간의 최초의 시는 존재다.라고 누군가 말했듯이 이 ‘문득‘ 이루어진 교감의 세계는 존재의 ‘기억‘으로부터 연원하는 듯합니다. 여러 점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들. 때로 어떤 결과 겹 사이의 벌어진 틈새로 아득한 그리움의 파동이 생겨나는 순간이 불현듯 닥칠 때가 있지요. 이미 알고 있음이 분명한데 기억할 수없는 어떤 세계에 대한 그리움, 그 틈새는 그 ‘어떤‘ 맛과 향기 - P32

와 촉감이 육체의 깊은 곳에 아로새겨진 자들이 망각한 육체의 문자를 찾아나서는 세계이며, 그리하여 아득한 그리움을 동반하는 세계인 듯합니다. 우리의 육체 속에 수백억 개의 세포들이 우주거품처럼 심연의 질서를 이루며 존재하고 있듯이, 또한 동일한 그 육체 속에 심연의 호흡을 삼키는 블랙홀들이 존재하고있듯이. 그리하여 생은, 영원한 신비지만, 그 신비는 ‘지금‘ 잊고 있는 것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 발원된 형태라는 생각을 나는 또 ‘문득‘ 하곤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미 칠팔세에 「광한문옥루전상량문」을 지었다는 뭐 그러그러한 기이는 차치하고라도, 어린날 내게 저 고택에서의 완벽한 낮잠이 무어라 설명할수 없는 근원적인 그리움을 파생시키듯이, 당신에게 있었을 어떤 ‘체험‘이 당신의 기억을 끊임없이 불러일으켰을 것이라는.
그 세계가 당신의 선계일 것이라는.
- P33

시인은 ‘이미 존재하는 세계와 불화하며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이들입니다. 이들이 창조해내는 세계에는 가장 낮은 것 속에 든 가장 높은 봉우리와, 가장 거대해 보이는 것 속의 가장 작은 속삭임들과, 가장 미천해 보이는 것 속의 위대한 전언이 공존하며, 무엇보다 인간의 세상이 추구해야 할 의롭고 아름다운것에 대한 갈망이 존재합니다. 그리하여 시인은 열망하고 두리번거리고 귀기울입니다. 아파하고 연민하며 공경하고 분노합니다. 골방과 광장이 공존하며 사랑과 투쟁이 공존하는 시인의 거처에서 당신은 가난한 처녀의 탄식을 아파하며 모순된 사회제도를 비판합니다. - P37

당신은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온 하계의 질서란 계급과 계층 간의 끝없는 쟁투와 착취의 역사였으며, 다수 민중에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가 가장 폭압적인 형태이거나 세련된 방식으로 그 외연을 바꿔온 것에 다름아니라는 것을. 나는또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살았던 봉건적 왕조시대나 내가 살고있는 자본주의시대가 지배와 피지배 계급간의 여전한 쟁투의장이라는 것을. 더구나 이 척박한 현대의 자본주의는 내외적인식민지를 필연적으로 요구하며 이 별은 끊임없이 강자의 문법에 의해 구획되고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을. 이 살벌한 약육강식의 문법 속에서 선진제국에 의한 제3세계의 가혹한 착취가 소문 - P37

없이 진행되고 있으며 일국 내 빈익빈 부익부와 다수 민중에 대한 착취가 민주(民主)의 외피를 쓰고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것을. 계급의 불평등과 인종의 불평등, 그리고 성의 불평등은 하계를 지배하는 가장 심각한 불평등체계이며 이중, 삼중으로 타자화되어 있는 연옥의 미로라는 것을.
이 연옥의 미로를 통제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적 사고체계인 것 같습니다. 한 가족 안에서의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가장(家長)이데올로기는 한 국가 안에서의 가장이데올로기로, 국가와 국가간의, 민족과 민족 간의 가장이데올로기로확대되며 종국에는 이 별에 대하여 가장의 폭압적 권위를 행사하려고 합니다. 이 지독한 가부장제의 유령들. 이들이 주관하는 카니발에서 자기의지와 무관하게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예외없이 약자이며 특히나 여성과 아동, 그중에서도 피억압계층의 여성과 아동들입니다. - P38

당신은 당시의 명문대가 ‘규수‘들이 흔히 그러했던 안락이 보장된 여자의 길을 걷지 않은 사람. 당신의 여러 시편에서 보여지는 봉건제도의 피지배계층에 대한 연민과 불합리한 신분제도와 제도적 특혜, 그 자신 여성으로서 받아야 했던 봉건적 남존여비의 고질적 병폐에 대한 분노와 비판은 억압과 지배를 거부하는 본래적 기억 - 지극히 여성적인 힘의 평등 화엄의 세계를 꿈꾸는, 참된 시인의 근원자리일 것입니다.
나는 이제 당신이 속삭이는 사랑과 관능의 노래를 들으러 갑니다. 선계와 하계의 틈새에서, 그 틈새의 원심력을 지탱해가며 흔들리는 푸른 잎사귀들, 붉고 흰 꽃으로 벙그러지는 환한 몸의 세계로. - P39


가을의 호수는 맑고도 넓어
푸른 물은 구슬처럼 빛나는데,
연꽃으로 둘린 깊숙한 곳에다
목란배를 매어두었네
님을 만나 물 건너로
연밥 따서 던지고는,
행여나 누가 보았을까봐
한나절 혼자서 부끄러웠네

연밥을 따면서 - P39

정중동(靜中動)이라 하였습니까. 고여 있는 듯 보이는 맑은호수 속에서 물살은 끊임없이 몸을 뒤척입니다. 하늘이 흘러가고 구름이 흘러가는 호수 속으로 한 여자가 흘러듭니다. 목련으로 엮은 배를 호수 깊숙이 매어두고 그녀는 이윽히 기다립니다.
기다림은 정(靜)한 것입니까. 고요한 듯 보이나 뒤척이는 마음이 앉은 듯이 보이나 달려가는 마음이 기다림이겠지요. 건너편물가에 님이 보입니다. 연꽃향과 물내음이 어우러진 물가에서, 습윤한 향기를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님을 기다리던 그녀의 체액이 맑아집니다. 맑아져서 드디어 흐르는 체액, 흐르는 물살.
여자는 배를 저어 님에게 갑니다. 님이 오기 전에 내가 먼저 갑니다. 그리고 흐르는 사랑의 시간. 여자가 들이마신 연꽃의 향기는 꽃의 영혼 쪽입니까, 꽃의 몸 쪽입니까. 지극한 사랑을 향해 있을 때, 영혼은 몸과 함께 흐르며 몸 또한 영혼과 함께 흐릅니다. - P40

그것은 타자의 시선에 대하여 생기는 것이 아니라자기 몸의 축제에 즐거이 적극적으로 임한 이가 자신의 몸이행한 비밀스러운 즐거움 앞에서 은근히 얼굴이 달아오르는 부끄러움이며 자꾸만 미소가 떠오르는 부끄러움입니다. 나는 이러한 부끄러움을 아는 몸이야말로 자연스러운 관능에 좀더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이것은 사랑 없이 단지 육체의쾌만을 위해 다른 몸과 만날 때에는 느낄 수 없는 감정입니다.
마음이 적극적으로 발현되지 않는 육체의 행위에서 우리가 흔히 헛헛함과 결핍을 느끼게 되듯이. 삶의 본능으로서의 관능의에너지는 이렇듯 육체의 만남이 끝난 뒤에도 한나절을 그 여운속에서 나와 님의 몸과 마음과 말을 어루만집니다. 서로에게 스며든 몸의 향기를 이윽히 눈감고 듣습니다. - P41

이 솔숲에서는 모든 계절이 사라지고 하오의 시간부터 저물녘을 지나 동트기 직전의 시간만 남습니다. 하루분의 자투리 태양빛을 머금고 숲이 온통 일렁이는 이 시간은, 생명 입은 것들이 그 생명의 미약한 박동만으로도 지극히 귀하여지는 시간. 이때의 빛은, 나무의 근육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수관과 체관의 은밀한 교합을 도우며 뿌리를 타고 아래로 스며듭니다. 상승하며 폭발하는 빛이 아니라 하강하며 어루만지는 그 빛의 길을따라 나는 당신의 유배지였던 하계를 지나 더 깊은 하계로 접어듭니다. 그곳에서 부용봉을 거닐고 있는 당신의 그림자를 만납니다. 나는 징후를 기다립니다. 어스름이 깊어지고 달이 자기의말을 하기 시작하고 소금내음을 품은 밤바람이 불어옵니다.
그 어둠속에, 붉디붉은 자국을 내며 흔들리는 백일홍 꽃나무! 나는 그 아래 흩어진 나뭇가지들을 줍습니다. 흩어진 당신의 뼈를 줍습니다. - P42

태양빛이 강렬한 수직성을 갖는 빛인 데 비해 달빛은 구부리는 빛이지요.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빛이 종종 내 속의 공격성을일깨운다면 달빛은 그 빛이 가장 무르익었을 때에도 보듬어 소생시키는 부드러운 힘 쪽에 있습니다. 태양은 명징하게 빛나는형태를 고수하지만 달은 자라나고 소멸하는 만물의 생멸의 주기 속에 함께 있습니다. 자라나는 달, 죽는 달, 소생하는 달은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남루한 중얼거림을 받아안습니다. 그리하여 달님을 향해서라면 인지상정의 남루한 고통과 소망들을입밖에 내어 말할 수 있게 되지요. "그대 천상의 달 안에 나의한쪽 심장이 의지하여 쉬고 있도다/내 그러함을 깨달으니/내가 자식들의 고통으로 인하여 우는 일이 없게 하여주오" (우쉬따끼 우파니샤드)라고, 내 님이 진창을 밟으실까 걱정하는 간절한마음으로 "달하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정읍사)라고.
산 것들의 남루를 끌어안으면서 달의 시간은 따스한 에로스의 시간이 됩니다. 상처로 아픈 것들이 달의 피를 마시고 안식과 생성에 듭니다. 나는 달의 꿀을, 달의 피를 받아 마시고 당신과 나의 몸의 시간으로 갑니다. - P51

우주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세계는 율동이며모든 생명체는 끊임없는 몸 바꾸기의 과정에 놓인 댄서들인 셈입니다. 개체의 아트만 속에 우주적 호흡인 브라만이 숨쉬며 동시에 그 역이 성립하는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역동성. 세계가 비극이라면, 그것은 ‘죽음‘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삶‘에 인간 스스로 부여한 오만한 의미들과 부질없는 욕망들 때문일 것입니다. 운명이 허락한다면, 나의 죽음의 순간이 지극한 고요와평화 속에서 오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의 세계가 창밖 저 겨울 나뭇가지를 환하게흔들고 지나가네요. 섬세한 운율을 짚으며, 공기의 결들을 타고, 마른 나뭇잎 한장 떠오릅니다.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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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내 누이는 나에게 스물아홉을 건너기 전에는 첫시집을 묶지 말라고 했다.
스물아홉. 그녀에게, 나에게, 비탈에 선 낱낱의 나무들에게, 꽉찬열을 향해 가는 가파른 고갯길인 그 아홉은 어떤 의미였을까.
열아홉에 대관령이 아팠고 스물아홉에 침묵한 바다가 아팠다.
그 스물아홉부터 느리게, 머뭇머뭇거리면서 이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어떤 의미의 통과제의 같은 것이었을까. 시로 풀어내기엔 너무 습하거나 달뜬 것들, 혹은 너무 메마른 것들의 나신을별판 쪽으로 밀어올려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기록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 청춘이 내 의식에 남긴 빛과 그림자의 환한 구멍들에 대해, 그리고 나는 내 벗은 영혼을 심문하고 싶었을 것이다. 나와 우리의 자유, 나와 우리의 평화는 어떤 속삭임으로 영접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누구나 스물아홉의 강을 건넌다. 건너왔다. 누구나 ‘홀로‘ 스물아홉의 강을 건넌다. 건너왔다. 홀로 건널 수밖에 없는 강이므

로 이 글쓰기가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위로를 서른을 훌쩍 넘긴 지금 나에게 선물한다. 내가 나 자신을 이해해가는 과정의 편린들이며 내가 당신과 만날 수 있기를 열망한 소망의 흔적들. 그리고 이제야 간신히, 나는 나의 운명을 사랑할 줄 알게 된 것이며 운명을 반역하는 운명이 모든 삶의 틈새에서 어떻게 스스로의호흡을 여닫는지 들여다볼 그림자 하나를 지니게 된 것이다.
목숨이 허락된다면, 또다른 아홉 즈음에 이르러 나는 또 느리게, 머뭇머뭇거리면서 어떤 통과제의의 기록을 남기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내가 사랑한 늙은 나무에게, 자신의 주름 속에서 날마다 젊어지는 바람에게 물에게, 이 글들이 욕된 것이 아니기를.
여리고 귀하고 눈물겨운 것들, 내가 사랑한 당신들께, 산 것들의 위대한 남루 앞에 이 책을 바친다.

2002년 3월 김선우

도동 항구에 내립니다. 훅, 전신으로 끼쳐오는 바람, 바닷길 내내 마음의 오장육부를 드나들던 숨소리가, 징글징글하고 사무치게 뼛속을 밝히던 숨소리가놀랍게도 일시에 화르륵 걷힙니다. 육지로부터 따라온 숨소리를 마술처럼 걷어내며 내 온몸에 가득 들어서는 바람, 손끝, 발끝, 머리카락 한올에 이르기까지 온몸 구석구석에서 소용돌이치며 이 섬의 바람이 내 몸을 허공에 띄웁니다. 돌연 나는 인간의 말을 배우지 않은 어린아이처럼 천진해지고, 말의 문법을 버린 야인처럼 자유로워집니다.
바람 속에서, 나는 문득 중얼거립니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 - P12

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 항구에 발을 디디는 순간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 문득 떠올라온 것은, 그것이 카잔차키스의 말이기 이전에 바람의 말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든 것을 상대로 자신을 던지며 사랑하고 괴로워하고 싸우는 바람. 그러면서 점점 투명해지고 점점 더 가벼워져서 저 단단한 섬대나무의 속살에까지 스며드는 바람. 스며들었다가 어느 순간 유쾌하게 폭발하며 나무들을 가볍게 띄워올리는 바람. 나는 그리스인이기 이전에 크레타인이다,라고 말하는카잔차키스의 마음을 이 섬에 와서 비로소 알 것 같습니다. 카잔차키스가 사랑했던 크레타 섬에도, 오로지 이 섬의 것이다.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바람이 있었을 것이라고. - P13

울릉도의 바람. 그것은 이 섬의 모든 귀퉁이로부터 자신의 길을 엽니다. 그 바람은 오각형의 단단한 별을 닮은 이 섬이 처음빚어질 때, 그러니까 한 이천오백만년 전쯤 신생대의 어느 시기에 바닷속에만 갇혀 있기가 지루해진 바람족(族)들이 한바탕 축제를 벌이듯 와글거리며 바닷속 깊은 곳으로부터 화산을 터뜨려 올렸을 그때부터 한번도 이 섬을 떠나지 않은 듯한 바람입니다. 그것은 아름답게 늙어가고 있는 바람이며 늙으면서 날마다 젊어지는 바람입니다.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으로 바닷속으로부터 솟구쳐오른 자신의 몸 구석구석을 쓰다듬고 들여다보며환희에 젖는 아름다운 관능의 바람입니다. 그러니 먼 훗날, 이 - P13

섬이 당신을 불러 무연히 이곳에 발디디게 되었을 때, 지도나관광안내판 앞에서 서성거리지는 마세요. 다만 온몸의 구멍들을 활짝 열어놓고 바람에게 길을 물으세요. 마음이 갈피를 잃고부대끼는 가슴뼈 깊숙한 곳으로부터 귓불의 미세한 솜털들까지 바람 속에 나부끼게 그저 놓아두십시오. 다만 그렇게 바람이 이끄는 대로 걸어가다보면 어느 순간, 당신은 저동항에 있을 것이고 내수전 밤바다에, 천부와 황토구미에, 나리분지와 성인봉 꼭대기에 있게 될 것입니다. - P14

흔히들 섬을 일컬을 때 고립과 고독을 먼저 떠올리곤 합니다. 나는 이 섬에서 지극히 고독해진 땅의 지극한 풍요로움을 만납니다. 나는 떠돌면서 유목을 꿈꾸는 자이지만 이 섬의 사람들은 동해의 고도에 정주해 있으면서 이미 아름다운 유목민들입니다. 철따라 다른 이름의 바다생물들이 찾아들고 울릉국화 울릉양지꽃 섬노루귀 섬현호색 섬백리향 섬바디 섬말나리꽃이 철따라 피어납니다. 울릉도 말고는 다른 어느 곳에도 없는 자생식물이 마흔일곱 가지나 된다는군요. 봄이면 명이나물 취나물 참나물 등 온갖 산나물과 약초들이 지천인 산에는 향나무 솔송나무 너도밤나무 섬개야광나무 섬잣나무 동백나무 섬댕강나무들이 철따라 다른 빛깔의 수액을 뿜어올릴 터. 시시각각 변하는 산빛과 바닷빛과 하늘빛과 바람의 빛깔을 이윽히 바라만 보아도 유목의 나날은 흥성스러울 듯합니다. - P16

먹고 마시고 소비하는 일에 길들여진 육지의 인간들이 남긴 쓰레기들이 눈에 띄기 시작합니다. 몇천톤의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부두가 만들어진다는 소문, 골프장과 스키장이 만들어진다는 소문, 이런 소문들이 두렵습니다. 벌써 이 섬의 자생식물인 섬개야광나무는 울울한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으며 섬백리향 군락지에는 자생하는 백리향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이어도‘라고 하는 이 섬의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비경을 보고자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아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얻어가야 할 가장 그윽한 것은, 자연의 섭리를 섬기고 그 섬김의 힘으로 스스로 평화로움을 얻는 공경의 마음일 것입니다. 훗날 이 섬이 당신을 부르거든, 온몸으로파도에 흔들리며 뱃길이 자주 묶이는 작은 배를 타십시오. 그렇게 어렵게, 귀하고 낮은 마음으로 발디뎌야 하는 ‘섬김‘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만, 바람에게 길을 물으십시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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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은 『법률」에서 젊은이들이 의복, 거동, 춤, 운동, 노래 등을 제멋대로 이랬다저랬다 바꾸게 내버려 두는 것이야말로국가에 가장 해롭다고 보고 있다. 새로운 것을 뒤쫓고 새것을 만든 자들을 흠모하면서 자기 판단을 때로는 이 입장으로 때로는 저입장으로 바꿔 감으로써 이로부터 풍속이 타락하고 모든 옛 제도가 무시되고 경멸당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에서든, 물론 빤히나쁜 일은 예외이지만, 변화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계절의 변화, 바람과 음식과 기분의 변화가 다 그렇다. 그리고 하느님이 어느 정도 장구한 세월을 견뎌 가게 허락해 줘 아무도 그 기원도 모르고,
바뀐 적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경우 말고는, 어떤 법도 진실로 신뢰받고 있는 것이 아니다. - P476

이성은 우리에게 늘 한결같은 길을 가라고 명하지만, 그렇다고 항상 같은 걸음으로 가라고 하지는 않는다. 현자는 인간적인정념들이 정도를 벗어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규범을 저버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정념이 걸음을 서두르거나 늦추도록 허용할 수 있으며, 뻣뻣하고 무감각한 거인상(巨人像)처럼한자리에 붙박여 있지 않아도 된다. 아무리 덕의 화신이라 해도적을 공격하러 갈 때는 저녁 먹으러 갈 때보다 심장 박동이 빨라질 것이다. 나아가 덕은 뜨거워지기도 하고 감동받아 움직이기도해야 한다. 이런 까닭에 나는 때때로 위대한 인물들이 지극히 고귀한 계획과 그지없이 중요한 일에 임하면서 잠조차 줄이지 않을만큼 완벽하게 평상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을 보고 매우 비범한일로 새겨 두었다. - P477

 판단력은 모든 일에 사용되는 도구이며 어디서나 관여한다. 그런 연유로 여기서 하고 있는 시험 (essai)들에서 나는 어떤 종류의 기회이든 다 이용한다.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라도 나는그것에조차, 멀찌감치서 여울의 얕은 곳을 가늠해 가며 내 판단력을 시험해 본다. 그러고 나서 내 키에는 너무 깊은 것으로 드러나면 물가에 머무른다. 그 너머로 건너갈 수 없음을 아는 것, 그것이바로 판단력이 보여 주는 특징적 자질 중 하나요, 나아가 가장 자랑할 만한 자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보잘것없고 하찮은 주제를 가지고도 나는 그것에 몸체를 부여할 수 있는 무엇, 그것을 받쳐 주고 지탱해 줄 무엇을 찾아보려 애쓴다. 때로는 그 자체로는더 찾아낼 것이 없는 고상하고도 진부한 주제로 판단력을 산보시키기도 한다. 하도 다져진 길이어서 다른 사람의 발자취를 밟으며걸을 수밖에 없어도 말이다. 그럴 때는 가장 나아 보이는 길을 선택하거나, 수많은 오솔길 중 이것 또는 저것이 가장 잘 고른 길이 - P527

었다고 말하는 것이 판단력의 활동이다.
나는 우연히 주어진 논제를 취한다. 어떤 것이든 내게는 똑같C이 좋다. 그리고 그것들을 끝까지 개진할 생각도 전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어떤 것도 그 전부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전부를 보여 주겠노라 약속하는 이들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각각의 사물이 지닌 수많은 지체와 얼굴 중에서 나는 하나만 취해때로는 핥아 보기만 하고 때로는 스쳐 보며, 또 때로는 뼈까지 꼬집어 본다. 바늘로 찔러 본다. 가장 넓게가 아니라 할 수 있는 한가장 깊이. 그리고 내가 가장 즐겨 하는 것은 익숙지 않은 관점으로 그것들을 포착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좀 덜 안다면 375 어떤 소재는 속속들이 다뤄 보겠다고 덤볐겠지만 말이다. 그저 여기서는이 단어, 저기서는 저 단어, 저들의 저서에서 떼어 낸 편린들을 흩뿌리면서, 계획도 약속도 없이, 그것들을 가지고 뭔가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없이, 거기에 집착하지도 않고, 마음에 들 때는 달리 생각해 보려 하지도 않으며, 의심과 불확실, 그리고 무지라는 나의 주된 상태로 물러나 버린다. - P528

우리가 때로 우리 자신을 고찰하는 데 마음을 쓰고, 남들을 살피거나 우리 밖에 있는 사물들을 알려고 들이는 시간을 우리 자신을 탐색하는 데 쓴다면, 우리 존재라는 이 피륙이 얼마나연약하고 결함 많은 조각들로 이루어진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그 무엇으로도 만족할 줄 모른다는 것, 바로욕망 자체와 상상으로 인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우리 능력 밖이라는 것은 우리의 불완전성에 대한 특별한 증거가아니겠는가? 인간의 최고선을 찾기 위해 철학자들 사이에 줄곧이어져 온 대단한 논쟁이 그 좋은 증거이다. 이 논쟁은 아무런 결론도 의견 일치도 없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또 영원히 계속될것이다.


원하는 것이 우리 것이 되지 않는 한
다른 무엇보다 절실해 보인다.
얻고 나면 또 다른 무엇을 원하게 되며
똑같은 갈증으로 우리는 다시 목이 탄다.
루크레티우스 - P541

하느님의 법보다 넉넉하고 온화하고 호의적인 것은 없다. 하느님의 법은 우리처럼 죄 많고 가증스러운 자를 당신에게로 부른다. 우리가 아무리 비열하고 더럽고 진흙투성이이며 또 앞으로도그럴 수밖에 없는 존재일지라도, 하느님의 법은 두 팔 벌려 우리를 품에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만큼 더욱 그 보답으로 하느님의 법을 바른 눈으로 바라봐야 한다. 나아가 그 용서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하느님의 법에 호소하는그 순간만이라도 과오를 미워하고, 그 법을 어기게 한 정념을 미워하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플라톤은 말한다. 신들도, 선인(善人)도 악인의 선물은 받지 않는다고.


재물을 바치는 손이 결백하기만 하다면,
과자 한 조각, 반짝이는 소금 한 덩이로도
호사스러운 희생물보다 더 확실하게
페나테스의 분노를 가라앉히리라.
호라티우스 - P568

나는 사람들이 우리 수명을 정하려 드는 방식을 받아들일수가 없다. 내 보기에 현인들은 일반적인 견해에 비해 수명을 아주 짧게 본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자 자신을 막아서는 사람들에게 소 카토가 말했다. "무엇이라고? 내가 아직 삶을 버리기에 너무 이르다는 비난을 들어야 할 나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의 나이 겨우 마흔여덟이었다. 그는 그 정도 나이에 이르는 사람 수가 극히 적다는 것을 생각해 그만하면 충분히 원숙해지고 늙었다고 여긴 것이다. 자연적 수명이라고들 하는 그 무슨 흐름인지 하는 것이 그보다는 몇 해 더 살게 해 주리라며 스스로 위로하는 자들은 그렇게 해 보라고 둘 일이지만, 누구라도 자연적으로 피할수 없게 되어 있어 그들이 믿고 싶어 하는 그 흐름이라는 것을 언제라도 중단시켜 버리는 저 수많은 사고를, 자기들만은 비켜 가는 특권이라도 누리고 있다는 말인가. - P5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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