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철학을 음미한 사람이 있었나? 음미해볼 만할 텐데. 산다는 것이 움직이는 것, 세계라는 낯선 여행지를 여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겠는가. 움직인다는 것(동물의특권)은 어쩌면 지성의 열쇠다. 식물의 뿌리(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식물의 임)는 식물을 땅에 치명적으로 고정시킨다. 식물은 어쩌다 뿌리가 내려진 장소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그곳으로흘러오는 양분을 빨아들여야 하는 운명이다.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의 말이다. 하지만 한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일에 대해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한 장소에 머문다는 것이 그곳과 하나가 되어 그곳이 위험에 처할 때 함께 위험에 처하는 것이라면, 여행자가 되었다는 것은 아무 가진 것 없는 사 - P340

같이 되어 새로 세우고 새로 배울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것이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으로서의 나 자신을 나는 그렇게 여행하는동안 알아보기 시작했다.), 특정 장소에만 존재하는 기억과 풍경 간의 조응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사건에 대한 기억이 존재하려면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남아 있어야 하고 사건을 같은프레임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커뮤니티가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움직인다는 것과 한곳에 머문다는 것이 꼭 반대말은 아니다. 예컨대 정해진 노선을 돌면서 여러 곳을 거점으로 삼는비정주민들은 정처 없이 앞으로만 움직이는 비정주민들과는 다르다. 변화한다는 것과 움직인다는 것이 꼭 비슷한 말인 것도아니다.  - P341

움직이는 것이 그저 변화를 따라잡거나 앞지르는 것이라면, 움직임의 반대말은 정주가 아니라 정체일 것이다. 나는 새편을 들겠다고 말하고 싶지만, 내가 새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휴가 때뿐이었다. 평소의 나는 다섯 살 때 살던 지역에서 지금도살고 있다. 오랫동안 한 지역의 여러 장소들을 지켜보고 있던나는 그런 장소들이 완전히 바뀌는 상황을 목격할 수 있었던반면에, 잠시 와서 살다가 떠나갈 사람들의 대부분은 자기가 와있는 지역의 동네, 시내, 도시, 생태, 경제, 기후가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었다. 풍경을 지나가고 있는 사람은 자기가 풍경보다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풍경이 변하지 않는다고 느끼지만,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이 변하고 있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포터마에 와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 - P341

지 않은 채로 떠났다면, 과거의 결이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빨리 풀려버리고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조용하기만 한 곳이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것 같다.
돌처럼 단단한 정체성의 토대로 받아들여진다고 하는 조상의 나라가 그때 내 눈앞에서는 무수한 변신의 강이 되어 흘러나가고 있었다. 아일랜드인들에게, 그리고 아일랜드계미국인들에게도 모종의 단단한 토대로 받아들여지고 있을 아일랜드가 나에게는 그저 단절된 것들과 속도를 높이는 것들의 연속인 듯했다. 아일랜드 그 자체가 식민과 탈식민, 탈출, 도피, 해외 이민, 유출과 유입, 호황과 불황, 개발과 방치, 문화의 변용과전유를 옮겨 나르는 모종의 흐름인 듯했다. 다음 세대 사람들은농촌문화를 쓸어내고 농촌문화의 가톨릭 신앙을 새롭게 바꾸고 ‘유럽공동체‘와 세계시장을 흡수하고 해외 이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었고, 그들이 그렇게 넓혀놓은 구멍으로 세계가 쏟아져들어올 것이었다. 나는 버스를 타고 포터마를 떠나면서 창밖을내다보았다. 바람 한 점 없는 오후였고, 푸른 풀밭 위의 모든 가축들은 마치 성탄화 속 동물처럼 그 지극한 고요함 속에 머물러 있었다. - P342

지도로 그려질 수 없는 어떤 땅에 시간과 기억이 펼쳐져 있는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름에 캐나다 여행으로 시작된 긴 여행이 겨울에 과테말라 여행, 늦봄에 아일랜드 여행으로까지 이어지던 그때, 세 가지 풍경은 나의 기억에서 세 가지 꿈을 불러냈다. 그렇게 세상 곳곳을 떠돌다 보면 언젠가 기억의 땅에도 가닿지 않을까, 새로운 장소를 요령껏 찾아다니다 보면 의식의 길에서 벗어나 헤매고 있었던 것들을 찾아낼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 그때였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면,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장소를옮기는 평범한 여행이 시간 여행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꿈의지도를 구할 수는 없지만, 꿈의 땅이 지도로 그려져 있지도 않겠지만, 꿈의 땅을 지도로 그릴 수도 없겠지만, 낯선 나라에서낯선 베개를 베고 잠드는 밤에만 꿀 수 있는 꿈을 꾸기 위해 여행하는 여행자들이 있었을 것이고, 지금도 있을 것이다. - P371

캐나다에서 로키산맥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친구와개가 뜻밖의 사고를 당한 적이 없다는 듯 살아 있을 때의 모습그대로 내 꿈에 자주 찾아와준 덕에 로키산맥이 낯설게 행복한그리움으로 물들었지만, 과테말라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줄곧가족과 관련된 악몽에 시달렸고 나중에 되돌아보면서도 그 장소가 그토록 불안했던 것이 얼마만큼이나 꿈 때문이었는지, 그저 그 장소가 꿈을 얼어붙게 만들었을 뿐이었는지 잘 알 수 없었다. 장소마다 그 장소를 거처로 삼는 꿈이 따로 있다면, 로키산맥을 거처로 삼은 꿈은 친구의 꿈, 과테말라를 거처로 삼은꿈은 가족의 꿈, 아일랜드를 거처로 삼은 꿈은 남자들의 꿈이었다. 나를 사랑했던 남자들과 내가 사랑했던 남자들과 다른 여러 남자들이 꿈에 너무 많이 나타났다.  - P372

거의 잊고 있었는데 마치 어제 만난 듯 또렷하게 나타난 남자도 있었고, 마치 그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내가 한창 좋아하던 때의 모습으로 나타난 남자도 있었다. 한 친구는 내 책들을 전부 꺼내 내가어렸을 때 살던 집 뒤편 말 목장에 하나씩 내려놓았다. 푸른 잔디가 책의 액자 같았다. 그 친구에게 보낸 엽서에는 사람들의꿈을 꾸면서 혼자 여행 중이라고 적었지만, 여행의 마지막 구간을 지날 때는 여자들이 여행의 시간을 채워주기 시작했다. 여자들을 만나러 가는 시간 여행이었다.
이렇게 꿈의 땅을 탐험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지만, 장소에 의미를 불어넣어주는 과거를 깨어나게 하는 것도 시간 여행이다. 팀 오툴이라는 친구는 자기 친구를 만나러 위클로에 가 - P372

서 친구 어머니로부터 아일랜드의 시간(Irish time)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친구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시간이라고 하면농장 시간도 있고 시골 시간도 있고 관청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세 가지 시간이 포개져 있어서 누구냐에 따라, 어디냐에 따라시간이 달랐다. 시간을 정해서 만나고 싶으면 상대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아야 했다. 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사람이 어떤시간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과거와 이어져 있느냐를보여주는 것 같았다.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시간을 선택하는사람도 있었고 새로 만들어진 시간을 선택하고 시계를 맞추는사람도 있었다. 지금이 언제인지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을 언제로 정할 것이냐가 나의 정치적 입장, 내가 과거를 대하는 자세였다. - P373

꿈의 시간, 시계의 시간, 역사의 시간. 아일랜드에 와있는 동안에는 줄곧 과거의 한 지점으로 돌아간 듯했다. 낡은관행이나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목격할 때마다, 기억의 길이와행동의 여유를 목격할 때마다, 더블린에서 말이 끄는 수레를 목격할 때마다, 10년 전으로, 아니 50년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 웨스트포트의 관광기념품 가게에서 여름 아르바이트를 하는 브라이드라는 아일랜드 여자한테 그 여자의 가족 이야기를 듣던나는 40년 전에 그 여자와 똑같은 상황에 처했던 내 엄마를 생각했다. 브라이드가 결혼을 한 것도 아니면서 따로 집을 얻어서 나가자 남은 가족들이 모욕감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는데, 내가사는 미국에서는 거의 없어진 상황이었다. 당신이 사는 미국 - P373

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하지 못한다, 라고 브라이드는 나에게 무심히 말했다. 내가 다년간의 고민 끝에도달한 결론이기도 했다. 하지만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기는 아일랜드도 마찬가지인 듯, 과거가 미래를 누르고 있었고, 내 과거도 거기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에서 가장 먼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준 것은 은둔자의 존재였다. 지금! 은둔자라니! 은둔성자 안토니가 세상을 떠난 것이 대략 355년이었다. 중세의 회화나 문헌에는 그런 은둔성자들이 자주 등장한다. 아서 왕 전설을 차용하는 중세 로맨스에서는 위험에 빠진 처녀나 길을 묻는 기사가 도움을 받기에 편하도록 깊은 숲속에 은둔자가 사는 것으로 되어 있고(그런 숲은 이제 베어진 지 오래인 것 같다.), 중세 전기에는 스켈릭스 같은 아일랜드 오지가 실제로 은둔자들과 소규모 수도원들의 활동 무대였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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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극단 사이의 중간 길이 있다. 숲을 지나가는 길이ㄷ 언어와 이미지는 거짓말이나 참말이 아니라 무언가를 그린그림이다. 그려져 있는 것이 그리려고 했던 것에 완벽하게 상응하기는 불가능하지만, 다시 그리기와 고쳐 그리기는 가능하다. 그리려고 했던 것에 가닿기는 불가능하지만 그리려고 했던 것에 다가가기는 가능하다. 니체에 따르면, 진리란 은유라는 사실을 망각당한 은유다. "진리란 은유법들과 수사법들의 기동부대요. [.....] 은유와 수사를 통해 고양되고 변모되고 미화된 상태•로 오랫동안 통용됨으로써 불변성, 진정성, 규범성을 얻은 인간관계들의 총체요, [......] 닳고 닳은 탓에 감각적 위력을 잃어버린 은유들이다."  - P239

메타포가 그리스어라는 특정 언어에서 기원하는 단어이자 그리스라는 특정 지역에서 운행하는 교통수단이라면(자연사박물관 장(章)에서도 한 번 했던 이야기다.), 진리란 그저 맥 빠진 메타포다. 뉴에이지 신도들은 은유를 모르는 사람들, 갖가지 모순된 것들이 글자 그대로 진실이기를 바라는 사람들, 절대적 진리를 간직하고 있을 절대적 출발점 또는 절대적 종착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다. 어쩌면 그들은 여행을 멈출 수있는 곳을 찾아다니는 여행자들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들과 나의 차이는 그들은 여행을 그만하고 싶어 하고 나는 여행을계속하고 싶어 한다는 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 P239

세로로 길다는 것은 나무가 또 하나의 직립 생명체인인간과 비슷한 점이다. 킬라니의 나무들에서도 고대인들과 증언자들의 당당함이 느껴졌다. 뿌리와 가지로 땅과 하늘을 연결해온 존재들, 온몸으로 땅과 하늘을 감당해온 존재들이었다. 그렇게 그 나무들을 바라보던 나는 온갖 재난과 격변 속에서 하나의 장소를 지킨다는 것, 하나의 진실이 아니라 하나의 장소를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무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보기는 어렵지 않다. 고대 그리스신화에는 나무가 되는 인간이 많이 나온다. 두 발이 땅속에 박혀서 움직이지 않게 되고 두 팔이 축복기도를 하듯 들어 올려진 상태로 굳어지고 그렇게 나무로 변하면 엄청난 평화가 느껴진다. 수백 년이 지나도록 중력에 시달릴 일이 없다. 초현실주의 - P240

사진작가 만 레이(Man Ray)는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레드우드숲에 갔을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받았다. "고대 이집트 때도 살아있었던, 자연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생명체들이다. 따뜻한 색감의 목피는 살처럼 물러 보인다. 그들의 고요는 포효하는 폭포들과 나이아가라보다, 그랜드캐니언에서 치는 천둥의 메아리보다. 터지는 폭탄보다 웅변적이지만, 그들의 웅변에는 아무 위협도 없다. 내가 있는 낮은 곳에서는 100미터 남짓한 높이에서 재잘거리는 나뭇잎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전쟁이 터지고 몇 달 동안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다니던 때가 기억났다. 공원에는 프랑스혁명 때도 살아 있었을 것 같은 나이 많은밤나무가 있었는데, 아주 자그마한 나무였지만, 나는 그 나무밑에서 걸음을 멈추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무로 변해서 그렇게 있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 P241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도 관광지였다. 늑대를잃고 시를 얻은 숲은 관광지인데, 유럽에서 자연 하면 떠올리는것이 바로 그런 관광지의 풍경, 늑대는 다 없어지고 자연 그대로의 숲도 거의 없어진 풍경이다. 러시아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에 따르면, "자연과 대면하겠다고 생각한 유럽인은 친구들, 아니면 가족들과 함께 시골 별장 또는 작은 여관에 갔다가 혼자 저녁 산책을 나간다. 산책 중에 한 나무와 마주친 유럽인에게 그 나무는 역사의 소개로 안면을 트게 되는존재, 역사가 증인으로 내세우는 존재다. 나뭇잎들이 바스락거릴 때, 의미들이 함께 바스락거린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 P242

은 즐거우면서도 차분하다. 삶에 활력을 주는 만남이었을 뿐 삶을 바꾸어놓는 만남은 아니었다. [......] 반면에 자기 집에서 걸어 나와서 한 나무와 마주친 미국인에게 그 만남은 대등한 두존재 간의 만남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와 나무라는 존재가 어떤소개장도 없이 각자의 원초적 능력만 가지고 대면한다. 둘 다 과거가 없는 존재이고, 둘 중 어느 존재의 미래가 더 위대할지는아직 미정이다. 미국인은 자기 손으로 지은 집으로 돌아오면서충격과 공포를, 아니면 최소한 당혹을 경험한다. 세상은 유럽일 것이고 자연은 관광지일 것이라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못한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당혹과 충격을 경험하겠지만, 불안정한 번역, 곧 문화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은 상징물을 선호하는 미국인이라면 그런 만남에서 희열을 경험할 것이다. 내가 지금보다 나이를 덜 먹었을 때는 유럽을 부러워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유럽은 문화가 있는 곳, 모든 사람, 모든 장소에 기나긴 역사와 전통이 달려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유럽에 가면, 유럽에서 내려지는 인간의 정의가 너무 협소하고 너무 인위적이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243

아침에 클레어 해변과 모허 절벽행 버스에 오를 때도 장신의 여성과 함께였다. 나에게 상세지형도를 사게 했던 서퍼청년은 꼭 클레어에서 모허 절벽을 보라고 했지만, 나는 충동적으로 라틴치에서 내렸다. 다시 혼자 걷고 싶어서이기도 했고, 여자가 본인의 일정을 혼자서 용감히 소화해 나가는 여행 대신 나를 따라다닌다는 훨씬 쉬운 여행을 택하지 않기를 바라서이기도 했다. 내린 곳은 모허 절벽까지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이었지만, 대상의 진가를 알아보는 데는 대상이 막간에 바뀌어버린 무대처럼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게 하는 것보다는 대상이주변 풍경으로부터 서서히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훨씬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모래 바닷가를 지나시내 중심가, 시내 중심가를 지나 단조로운 국도, 단조로운 국도를 지나 비포장도로를 걷는 내내 시야는 해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몇 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지도상으로는 탑 하나가 나와야 할 때였다. 바다에서 멀지 않은 안길로 들어온 나는 눈에띄는 사람에게 탑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 P284

망각이 기억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일랜드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려면켈트족이 항상 아일랜드인이었던 것도 아니고 아일랜드인이 항상 켈트족이었던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해야 하고, 옛날에는 목축 부족이었던, 그리고 그 후에 몇 번이나 크게 변해온 아일랜드인들에게 지금의 보수적이고 완강한 전통은 임의의 선택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망각해야 한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피(종족의 실체성)를 부정하면서 피보다 더 유동적이고 피보다 더 파악하기 힘든 시작점을 제시한다. 동아프리카의 뼈로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고, 그렇게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연구도 있다.  - P304

생물학자들과 함께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면, 피라는 체내의 박동은 태고의 바다에서 원시 생물들에 부딪히는 체외 파동이 된다. (피와 바닷물은 아직 염분을 공유하고 있다.) 인간의 시작점을 찾는 인류학자들은 유인원이 아프리카의 초원으로 걸어나온 시점, 곧 두 발로 똑바로 걷는다는 의미에서의 보행이 시작된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그들이 보행을 인간다운 인간의 시작점으로 꼽는다는 것이 마음에 든다. 숲을 떠난인간이 숲에 있던 나무처럼 직립 보행한다.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하늘을 향하는 나무. 인간의 시작점을 찾아 그렇게 점점 더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고정된 한 점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로 걸어가는 사람이 나온다. 아니,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 P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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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여행을 좋아할 수 있는 이유는 눈으로 본 것의 기억이 몸으로 느낀 것의 기억보다 훨씬 오래가기 때문인 것 같다.
여행 그 자체는 근사한 것들에 둘러싸인 고생스러움의 연속일뿐이다. 낙원행 기차를 타기 위해 폭염 속에서 질주하기도 하고, 점점 무거워지는 배낭을 메고 알프스의 절경 속을 지나기도하고, 복통에 시달리면서 옛터의 장엄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중에 기억에 남는 것은 그런 고생스러움이 아니라 눈으로 본 근사한 것들이다. 여자들이 출산의 고통을 기억할 수 있으면 대체 누가 둘째를 낳겠느냐고 엄마는 언젠가 세 번째 자식의 셋째인 나에게 말했다. 내가 태어난 것은 망각 덕분이고 내가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시각적 기억의 우위 덕분이라는 뜻이다. 켄마어에 도착해서 자고 일어나니 무릎 한쪽과 근육 한 곳과 발 두 쪽이 말도 못하게 망가져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얼마나 망가져 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걷다가 그 정 - P229

도까지 망가져본 적은 처음이었다. 켄마어와 킬라니 사이의 산맥들을 하나하나 넘는, 사흘 전부터 기대했던 멋진 도보여행은결국 버스여행으로 바뀌었다. 거친 바위를 타고 쏟아지는 작은폭포들은 구불구불한 강물이 되어 휙휙 지나갔고, 강가의 오크나무들은 강물처럼 구불구불한 가지를 하늘로 뻗어 올리고 있었고, 진달래가 무더기로 공세를 펼치고 있었다. 버스는 구불구불하고 오르내림이 많은 복잡한 산길을 달렸고, 시야는 기습적으로 계속 바뀌었다. 아일랜드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보지 못했던 길들지 않은 자연의 복잡다단함이 풍경의 윤곽 자체에 깃들어 있었는데, 나에게는 그 복잡다단함을 풀어낼 기회가 없었다. -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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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에게는 모든 감각이 글자 그대로 비할 데 없는 감각, 곧 전에 느껴보지못한 감각이고, 어린아이가 느낀 그 첫 감각들이 마음의 원재료, 곧 마음의 바탕 이미지가 된다. 지구의 풍경이 태고의 화산활동과 판구조 이동을 통해 만들어졌듯 사람의 마음은 태어나서 첫 15년 동안 느낀 감각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그 후의 인생은 이미 만들어진 풍경에서 길을 찾고 지도를 그리고 흔적을 더듬고 묻혀 있는 것을 파내는 여생이 아닐까, 나중에 다시 볼 때는 처음 보았던 때와 비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자주 해보게 된다. - P170

내 유년기의 집이 그렇게 추웠다는 것, 7번가 너머가 내 유년기의 따뜻한 에덴동산이었다는 것은 지금도 내게는 경악과 경이를 불러일으킨다. 대개의 사람들에게 유년기는 그런 경이와 경악의 혼합물이다. 벌거벗은 아이는 유년기라는 주어진 세계를 살아나가는 동시에 그 세계로부터 자기만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나간다. 운이 좋은 아이는 좀 더 따뜻한 세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는 운이 좋은 아이였다. 외부의 세계는 감각의 범위를 넘을 수 없지만, 내면의 세계는 어마어마하게 넓다. 생각해낸 것들, 기억해낸 것들이 펼쳐져 있는 밝은 곳도 있고, 아직 기억해내지 않은 것들이 감추어져 있는 어두운 곳도 있다. 내가 어릴 때 살았던 7번가, 내가 어릴 때 읽었던 책들은 내가만들어나가는 세계의 첫 재료이자 주어진 세계를 벗어나야 하 - P170

는 나의 첫 피난처였다. 7번가는 내가 꿈속에서 자주 찾아가는길이기도 하다. 7번가에 서 있으면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 길에 서 있어도 7번가에 서 있는 것 같다. - P171

7번가 한 구간의 가로수 역할을 하는 키 큰 소나무들도 이 사유지의 일부였던 것 같은데, 그곳 소나무의 낮은 가지들이 나에게는 집의 일부였다. 내가 그곳에서 수풀을 모아서 만든 집은 트리하우스보다는 흙바닥의 새 둥지에 가까웠다. 그때 나는 항상 그곳 언덕에서 작은집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 같다. 보물을 숨길 수 있는 속 빈나무둥치를 찾아내기도 하고 낮에 들어가 있을 수 있는 바위틈이나 올라가 있을 수 있는 나무를 찾아내기도 했다. 그때 내가 마련했던 가장 좋은 집은 7번가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 부근에서발견한 거대한 옛날식 장미나무였다. 수십 년간 버려진 채 마구 자란 덤불은 전체 넓이가 큰 거실만 했다. 덤불 중심의 나무줄기까지 낮은 터널이 있었고, 나무줄기 속은 동굴처럼 텅 비어있었다.  - P174

한밤중에 언덕으로 달려가서 가파른 비탈의 아직 식지않은 풀에 드러눕는 날들도 있었다. 바닥에 누워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무중력 공간에 떠 있는 느낌이었고, 별들을 올려다보고 있는 느낌이라기보다는 깊은 우물 같은 무한한 하늘을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 당장이라도 그 우물 속에 빠져버릴 것 같은느낌이었다. 무한합이 주는 희열과 공포를 처음 경험한 순간이었다.
유년기가 처음 느껴본 감각들, 처음 당해본 고통들로이루어진 세계라면, 우리에게 유년기는 잃어버린 세계일 수밖에 없다. 유년기가 집이라면, 우리는 집을 잃은 난민일 수밖에없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집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 - P174

이기도 하다. 우리 안에 한번 뿌리내린 집은 영원히 우리를 놔주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가 몸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물체라는 식의 생각은 내면이라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집을 은폐하는 픽션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집은 최초의 판단 기준이다. 다른모든 대상의 가치는 집을 기준으로 가늠된다. 우리가 간 곳이더운 곳인가 추운 곳인가, 붐비는 곳인가 조용한 곳인가, 윤택한 곳인가 각박한 곳인가는 우리가 어디서 왔느냐에 좌우된다. 내 마음이 이런 모양으로 만들어지던 때를 돌이켜보면, 나를 나로 만들어준 것, 교외 끝자락의 콩가루 가정보다 더 내 집처럼느껴진 것, 가끔 막연하게 들려오는 가족사와 종족사보다 더나라는 존재의 바탕으로 느껴진 것은 그때 나를 둘러싸고 있던풍경이었던 것 같다. 캘리포니아의 풍경이 나를 만들어주었다는 것은 글자 그대로의 의미로도 사실이다. 나는 이곳의 작물을먹었고, 이곳의 물을 마셨다. 캘리포니아 와인을 벌컥벌컥 마신것은 세 살 때부터였다. - P175

내가 엄마에게 물려받은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는 언어능력에서부터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에 이르기까지 온갖 차원의 대답이 나올 수 있다. (사회정의에 대한 관심은 엄마가 아일랜드공화국의 조상들에게 물려받은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엄마는 현금인출기가 없던 시절에 비상금을 리엄 오플래허티(LiamO‘Flaherty)의 『기근(Famine)』 (오래된 녹색 표지의 소설책이었다.)에보관하는 사람이었고, 막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유대인 시부모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본인의 오빠와 아빠의 - P175

이름을 따서 데이비드‘라고 짓는 사람이었다. (열혈 국민주의자였던 엄마의 할아버지가 아일랜드 국민주의자 겸 시인 토머스 데이비스(Thomas Davis)처럼 되라고 지은 이름이었다. 친척들이 전하는 이야기에따르면, 엄마의 할아버지는 지명수배자가 되어 가명으로 아일랜드를 탈출한신(新)페인당원이었다.) 내가 물려받은 것들 중에 찻잔 몇 개, 성파트리치오 축일의 소소한 습관들, 모종의 감상주의는 아일랜드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고, 실수에 대해서, 정의에 대해서, 성교에 대해서, 내 몸에 대한 권리에 대해서 불안해했던 면은 가톨릭의 유산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물려받았다고할 수 없는 다른 많은 것이 있다. 내가 가진 가장 중요한 것들은물려받은 것이 아니라는 뜻이라기보다 내가 어떤 비주류 문화를 물려받았는지, 그리고 그 문화가 주류 문화와 어떻게 다른지모르겠다는 뜻이다.  - P176

엄마와 외삼촌은 가톨릭 학교를 나오고 세례성사를 받고 교리문답을 통과하고 견진성사를 받은 당당한아일랜드계 미국인이다. 다시 말해 두 사람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 관심과 애정과 요구 사항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나라를 여러 차례 다녀온 사람들, 각자 그 나라에 가서 먼 친척을수소문하기도 하고 선조의 고향을 둘러보기도 하는 사람들, 하지만 선조의 이름을 우리 자식들에게 알려주지는 않는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에게 아일랜드는 고향이었지만, 우리에게 아일랜드는 그저 다른 나라였다. - P176

기억하고 망각하는 방식도 유행을 탄다. 20세기 들어 한동안은 반짝이는 백색 도시 같은 유토피아적 미래를 앞당기기 위해 과거를 내팽개치는 멜팅포트 방식의 문화 동화주의가 유행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그런 식으로 냅다 밀어붙이는 경향에 반발하면서 뿌리, 핏줄, 종족, 차이, 기억, 땅속처럼 어두운과거 등을 강조하는 방식이 유행하고 있다. 하지만 희망을 강조하는 논의나 역사를 강조하는 논의 둘 다 복잡하게 얽힌 현재를 위한 장소를 고려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아니,
장소 자체를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역사를 강조하면서 종족을 고려하는 논의라고 해도, 새로운 토양에 심어진 하이브리드 또는 돌연변이를 고려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나를 키운것은 나의 실제 부모라기보다 캘리포니아 교외의 새로운 토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담론이었던 생태지역주의(bioregionalism, 현장의 역사, 현장의 자연을 배움으로써 현장의 일 - P178

부가 되는 철학)는 유행 담론의 끝없는 부침 속에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가 새로 유행하면서 어느새 버려진 듯하다. 요컨대 종족과 지형의 화합물로서의 정체성을 제안하는 화학 같은것은 나온 적이 없고, 뿌리와 뿌리 없음 사이의 균형잡기 담론같은 것도 나온 적이 없다. 7번가는 내가 아직 꿈에서 보는 곳,
내가 꿈에 자주 가는 곳들 중에 진짜 존재하는 두어 곳 중 한곳이다. 내가 찾아간 아일랜드는 그 7번가를 닮은 곳이기도 했고 나의 첫 길이었던 그 7번가로부터 이어지는 길이기도 했다. - P179

아직은 아일랜드라는 곳이 있고 페루라는 곳이 있고 캘리포니아라는 곳이 있고 영국이라는 곳이 있지만, 이제는이 네 곳에서 그저 스페인어와 영어라는 두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감자와 블루스, 그리고 혼혈이 이 네 곳의 내용물을 완전히뒤섞어놓았다. 리듬과 감자의 로큰롤이 온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이때, 종족을 말하면서 장소를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종족과는 전혀 다른 그 무엇을 말하고 있다는 뜻, 아니면 자기 집(home)이 어디인지, 자기 땅(native)이 어디까지인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었던, 세상이 더 단순 명확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뜻이다. - P206

두 발이 길에서 걷고 있다. 나의 두 발이 가파른 길에서 북쪽으로 걷고 있다. 발 위에는 다리가 있겠고 한참 더 위에는 머리가 있겠고 머릿속에는 여러 역사가 있겠지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길에서 보이는 풍경은 나머지 풍경을 가리는 덤불과 가파른 경사면뿐이다. 지금 세상에는 나 하나, 그리고 길 하나뿐이다. 돌아야 할 모퉁이와 넘어야 할 언덕이 자꾸 나타나는 좁은길, 멀리까지 내다볼 수 없는 길이 지금은 나의 길이고, 이런 감각들과 이런 생각들의 덩어리가 지금의 나다. 지금 내가 볼 수있는 것은 시야의 가장자리에서 움직이고 있는 손과 발, 그리고눈앞의 길 하나뿐이다. 나머지는 전부 신앙의 영역이다. 나라는한 사람이 이렇게 걷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에게도 이름이 있고 과거가 있고 나름의 생활이 있습니다. 조상들도 있습니다. 그 조상들 중에서 절반은 아일랜드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그나라가 지금 이 사람이 걷고 있는 길의 동쪽과 북쪽에 한참 더 - P209

펼쳐져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신앙고백이다. 믿을 때도 있지만 잊을 때도 있다. 아일랜드라는 이름은 알지만 여기가거기가 맞는지 확실히 알지는 못한다. 나의 것이라고 칭해지는세계가 어딘가 있지만, 그 세계가 없어졌다 한들 여기서 이렇게혼자 걷고 있는 나는 그 세계가 없어진 사실을 알 수 없을 테니,
지금 나의 것이라고 칭해질 수 있는 것들은 지금 내 배낭 속, 아니면 내 호주머니 속에 있는 것들이 전부다. 나는 지금 여행 중이니, 짐은 버릴수록 좋다. 내 나라니 내 세계니 하는 정주와 기억의 말들마저 버린 여행자는 눈앞의 풍경을 그저 좌우로 양분하는 길을 갈 뿐이다. 길은 어떤 장소가 아니라 다른 장소로 떠나는 방법이자 장소와 장소를 이어주는 긴 끈이다. - P210

걸음은 몸 전체를 깨어나게 한다. 쉴 때 깨어 있는 곳은 피부뿐이니, 쉴 때 할 수 있는 일은 감각뿐이다. 몸을 움직일 때 비로소 몸속을 감각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라면 몸속 또한 여행을 통해 탐험할 수 있는 곳들 중 하나다. (보이는 피부 밑에보이지 않는 뼈와 근육과 장기가 있다는 말은 몸이 쉬고 있을 때는 그저신앙고백일 뿐이다.) 하지만 여행은 나라는 존재를 내 피부까지로좁히는 면도 있다. 여행하는 나에게는 내 피부 바깥의 모든 것이 내가 알 수 없는 낯선 대상, 낯선 타인들의 세계로 느껴진다는 뜻이다. 나라는 존재가 나의 세계, 나의 것이라고 칭해질 수있는 세계로 넓어져 있었다는 것을 나는 여러 번의 여행을 통해서 비로소 배울 수 있었다. 나라는 존재는 독립적이고 자족적이고 내면적인 존재라는 논의가 많지만, 나라는 존재가 살아갈 - P210

수 있으려면 나의 세계, 나라는 존재를 받아주고 길러주고 거들어주는 세계가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는 나의 세계라는 동심원들 안에 머물러 있었다. 가장 안쪽 원이던 나의 집은 나라는 한 마리 짐승에게 마치 달팽이의 껍질처럼 아늑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다음 원이던 나의 친구들은 나의 여러 가능성을 끌어내주었다.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비로소 해보게 된 생각들, 해보게 된 말들이 있었다. 다음 원은 내가 사는 동네였다. 어렸을 때 살았었고 커서도 계속 꿈에 나오는 7번가로부터 불과 50킬로미터 거리에서 살고 있는 나에게는마치 두 번째 피부인 듯 친숙하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정주의 세계, 전(前) 코페르니쿠스 세계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동심원의 가장 바깥쪽에서는 가계와 종족의 원이 더없이 희미한 파문을 그리고 있었다. - P211

나의 세계, 나의 것이라고 칭해지는 세계는 많은 경우내가 내 손으로 정성들여 세우는 세계이니만큼, 나의 세계가 끊임없이 불러내는 나라는 존재는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일, 내가 보는 풍경, 내가 먹는 음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 나의 세계, 그렇게 세워놓았던 세계를 토대만 남기고 없애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 중에는 나의 세계를 세울 필요가 없다. 여행 중에 마주치는 낯선 세계가 나의 낯선 가능성들을 불러내기도 한다. 외부의 세계는 내 피부가 감각하는 범위를 넘을 수 없는 데 비해서 내면의 세계는 내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모든 일을 포함하는 넓디넓은 곳이라는 말은 내가 앞부분에서 한 번 했던 말이 - P211

다. 하지만 외부의 세계가 감각의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의 몸은 그저 나의 토대일 뿐이니, 나의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지가 나의 세계로 뻗을 때 나는 나의몸보다 훨씬 큰 존재가 된다. 무언가를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나의 내면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머물게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나라는 존재의 일부가 되게한다는 것이다.
피부가 국경이라면, 피부라는 국경은 열린 국경이다. 밖이 안에 의해 감각되기도 하고 안의 일부가 밖으로 빠져나가기도 하고 밖이 안을 자극하기도 하고 안이 밖의 일부를 흡수하기도 한다. 하지만 피부가 글자 그대로 폐쇄된 국경인 면도 있다. 몸의 3분의 2를 구성하는 물은 몸 밖으로 흘러 나가 존재의 수원에 가닿고자 하니, 피부가 없다면 몸은 별개의 국가로 존재하는 대신 세계 만국의 일부가 되어 사라져버릴 것이다. - P212

혼자 여행할 때 나라는 존재는 몸 하나만 남은 존재, 피부라는 국경안에 갇힌 존재다. 여행의 좋은 점은 휴대할 수 있는 것들, 나의세계를 떠날 때 챙길 수 있는 것들, 낯선 세계에서도 통용되는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는 데 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수도 있겠구나, 존재가 세계로 뻗는 데 필요한 언어들, 장소들,
관습들, 행보들, 친구들을 새로 사귀면서 새로운 세계를 세울•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도 여행의 좋은 점이다. 몸 하나로 여행 중이라는 것은 현재와 단절되었다는뜻이고, 현재와 단절되었다는 것은 과거를 마음껏 회상할 수 있 - P212

다는 뜻, 실현되지 않은 다른 결말들을 상상할 수 있다는 뜻이다. 현재에 실현되지 못한 시간들은 외부의 세계가 두 번 다시불러내지 않을 수도 있는 내면의 세계로 남는다. 현재의 세계는감옥 같은 세계든 궁전 같은 세계든 내가 벗어날 수 있는 세계일 것이다. 머릿속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 해도 몸으로는 벗어날수 있을 것이다. 이번의 여행은 내가 세운 현재를 벗어나 아직실현되지 못한 다른 시간들을 찾아가는 내 몸의 여행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떠난 여행이었다. -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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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했지만, 참상 속에 나비가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세상을 좋게 만들기 위해 애쓰는 우리는 세상의 좋은 것을 맛보면 안 되는것일까? 혁명가들과 활동가들이 줄곧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는질문이다. 케이스먼트는 대답한다. 좋은 것을 맛보자. 청옥색과 유황색 나비를 잡으러 다니자. 강에서 수영을 즐기자. 일기를 쓰자. 정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끝없는 과업에는 휴식의 시간이 필요하다.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 아도르노의 세대는 나치의 유대인 (그리고 집시, 동성애자, 나치 반대자)홀로코스트가 유일무이한 대량학살이라고 믿는 세대였다. 그세대에게 아일랜드의 크롬웰, 아르메니아의 터키인들, 케이스먼트의 두 보고서는 이미 망각 속에 묻힌 과거였고, 캄보디아, 과테말라, 르완다는 아직 예견되지 못한 미래였다. 아우슈비츠 안에 시인이 있었다. 수감 중에 단테를 인용한 프리모 레비 같은작가도 있었다. (레비는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수용소를 규탄하는 서정적인 책을 썼다.) 그런 참혹한 순간에도 경험에는 어떤 복잡한 면, 단순화될 수 없는 면이 있을 것이라고 케이스먼트의 나비는 말하는 듯하다. - P104

아일랜드 토착어의 복잡한 문법을 하나하나 익혀가는 사람들이 일구어낸 혁명. 케이스먼트의 푸투마요 나비처럼 경이롭다. 경이로운데, 좀 난데없다. 지나치다. 시문학 자체에 그런 중력과 무중력이 공존하는 것 같기도 하다. 국민적 차원의봉기가 있으려면 먼저 국민적 정체성이 있어야 하는 것도 사실이고, 아일랜드 문화의 융성이 부활절 봉기로 이어지던 그때만큼 시문학의 정치적 중력을 확실히 느끼게 해주는 경우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아일랜드공화국 선언」의 서명자 일곱 명 중에서 세 명은 시인, 두 명은 교사, 한 명은 음악가, 한 명은 노조원 겸 역사가였다. 케이스먼트는 봉기의 실질적, 즉각적 결과만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그의 가장 큰 잘못은 그렇게 봉기의 상징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시인처럼 계산하지 않고 정치가처럼 계산했다는 것이었다. 그가 봉기에서 수행한 역할은 부활절 주일의 전국 봉기를 취소시킨 것, 이로써 봉기가 부활절 월요일에 더블린에서만 시작되게 만든 것이었다. 그가 시인의 생각을 이해했더라면, 아니, 그가 외부 지원이 없으리라는 소식을 전하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가 아예 상륙하지 않았더라면, 많은 것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 P108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예전에 그곳에 살았을 사람의 유형도 아니고, 7년 전 애인의 유령도 아니었다.(전에인과는 그 여행에서 돌아오고 1년 만에 두 사람의 삶이 다른 곳을 향하고있음을 더 이상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헤어졌다.) 그때 나를 괴롭히고 있던 유령은 7년 전에 나였던 여자의 유령이었다. 리로부터전 애인의 가족사를 들어서였는지, 전 애인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보게 되어서였는지, 그때 나는 과거를 그리워하면서 심한 상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 서늘한 우울을 떨쳐버리려면 전 애인과 헤어지고 나서 생긴 좋은 일을 하나하나 되뇌어야 했다. 하지만 그 창문 앞에서 갑자기 나는 옛날의 나 자신이 여기 죽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여자의 모든 꿈들. 그 여자의모든 실현되지 못한 계획들이 여기 죽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있었다. 모든 인체 세포가 7년에 한 번씩 새것으로 바뀐다면,
7년 전에 여기 있었던 그 여자, 지금의 나보다 어리고 소심한 그여자가 물리적인 의미에서 내게 남긴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 여자와 나를 이어주는 것은 한 장의 여행사진에 매달려야 할 정도로 희미한 기억뿐이었다. - P152

어느 한낮, 나는 로어링워터만()의 끝자락인 발리드홉에서 밴트리를 향해 출발했다. 그렇게 혼자 걷는다는 것이 애초의 계획이었지만, 실현될 수 없는 계획이라는 것도 곧 알게 되었다. 아일랜드 지도를 펼쳐놓고 여행의 경로를 정할 때만 해도, 서해의작은 도시들을 하나하나 답파한다는 계획이었다. 밴트리, 켄마어, 킬라니, 트랄리, 리스타월, 글린, 그렇게 남쪽에서 북쪽으로올라가는 지명들 자체가 근사한 느낌을 주었다. 기대 자체가 큰기쁨이고, 계획은 기대의 기쁨을 누리는 좋은 방법이다. 내가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을 좋아했던 것은 둘째 오빠와 함께 가출 계획을 세웠던 여덟 살인가 아홉 살 때부터였다. 그때의 가출은 산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리라고 짐작되는 물건의목록을 적는 데서 끝났다. 이 아일랜드 여행도 출발에서부터 어긋났다. - P155

하지만 여행한다는 것, 어딘가로 가고 있다는 것은그 자체로 깊은 충족감을 준다. 이야기 중에는 여행 이야기가많고, 삶은 여행이 될 때 비로소 이야기가 된다. 여행은 왜 우리에게 그토록 깊은 충족감을 주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우리가삶을 여행에 비유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어딘가로 가고 있을때는 시간이 버려진다는 느낌보다는 시간이 채워진다는 느낌,
시간의 흐름이 공간의 리듬을 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만약에우리가 삶을 여행에 비유하지 않았다면, 예컨대 나무가 자라는과정에 비유했다면, 길에서 운명을 느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57

하지만 우리는 삶을 여행에 비유하고 있고, 길에서 운명을 느끼고 있다. 길을 떠난다는 것은 한곳에 머물러 있었다면 만날 수없었을 온갖 위험과 온갖 기회를 만난다는 것, 낯익은 운명을뒤로 하고 낯선 운명들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다. 길은 그저 약속, 어겨진 것도 아니고 지켜진 것도 아닌 약속이다. 길이 나라라면 길기는 이 세상의 땅을 모두 합친 것보다 길면서 좁기는건물 하나만큼 좁은 이상한 나라다. 이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있고 이 나라를 다스리는 법이 있다. 견고했던 것들, 고정되어있던 것들이 이 나라에서는 유동하고 변화한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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