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남 지방 윈난성 중부의 소농민 숲은 향수를 느끼며 복원하는 장소가 아니라 농민들이 활발하게 이용하는 곳이다. 이러한유형의 숲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고 청소되어야만 하는 재해로 여겨진다. 재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지저분하게 어질러진 상태이고, 때로는 화가 치밀 정도으로 그러하다. 그것은 움직이고 있는소농민 풍경이지 향수에 의해 재창조된 곳이 아니다. 불쾌할 정도로 어수선함에도 많은 방식에서 항상 젊고 개방적인 그 숲은 일본 중부의 소농민 숲과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 생물종은 다를지라도 코피싱된 참나무와 소나무가 숲의 건축 양식을 형성한다. 윈난 - P331

성의 송이버섯은 일본의 송이버섯과 성향이 다르다. 윈난성의 버섯은 소나무만큼이나 참나무에서도 잘 자란다. 그러나 그것은 농민 -참나무 -소나무 -송이버섯 집합체를 훨씬 더 눈에 띄게 한다.
아마도 여기서도 그러한 숲이 부활할 수 있었던 이유가 소농민의 독창성 때문만이라고는 할 수 없고, 대변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일본 중부에서 매력적으로 요약된 소농민 숲의 역사를 학자뿐 아니라 산림관리인과 시골 주민에게서도 들었다. 일단 그 담론을 배우자 내 작업은 쉬워졌다. 나는 보고 듣기만 하면 됐다.
그렇게 훈련받았기에 나는 소농민 숲의 역사에 대한 바로 그러한 생각이 윈난성에서는 혼란과 방어적인 태도를 유발했을 때 깜짝놀랐다. 모두 소농민이 좋은 산림관리인이 되기를 원했지만, 그렇게되는 방법은 전통적인 관리인 방식이 아니라 그들이 알고 있을 현대의 기업가적 경영 기술을 통해서였다. 소농민 숲은 오래된 곳이 아니라 지방분권의 결과로 등장한 근대적 사물이었고, 숲 전문가들의 목표는 근대적 합리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 숲의 상태가 나빴다면, 그것은 과거에 실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는 그러한 실수의 이야기였다. - P332

내가 추슝이족자치주의 시골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은 일본에서 배워온 나의 질문을 한결같이 싫어했다. 마을 임원들은 행정 범주의 변화에 관한 국가 관련 이야기를 간략히 말해주었지만, 일반 주민은 그러한 범주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마침내한 남자 노인이 말을 했는데, 그의 말이 내 마음속에서 좀 더 생산적인 비교를 할 수 있게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중국의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풍경은 ‘녹색 강철의 필요에 따라 벌채되었다. 일본의 메이지 시대에 행해진 산림 벌채 또한 녹색 강철에 관한 것이 아니었던가?
- P334

윈난성 중부의 숲은 대체로 엉성하고 젊다. 마치 교란된 것처럼 보인다. 등산로가 침식된 산비탈을 지나간다. 상업적 수목이 금지되었음에도 땅에서 나무 꼭대기까지 모든 것이 사용된다. 상록 참나무가 관목부터 코피싱된 나무 모습으로까지 걸쳐 존재하는 이 풍경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숲은 개방되어 있어서 소나무가 참나무와 공존한다. 참나무와 같이 소나무는 용도가 많다. 때때로 소나 - P334

무에 구멍을 뚫어 송진을 얻는다. 화장품 업체에 팔기 위해 송가루를 모은다. 그래서 일부 소나무[잣나무에는 상업적으로 가치있는 식용 씨앗이 열리기도 한다. 각 가정에서는 키우는 돼지 축사에 깔기 위해 솔잎을 수집한다. 그런 후에 솔잎과 함께 섞인 돼지 배설물은 작물에 뿌려지는 주요 비료가 된다. 초본 식물은 돼지 사료로, 그리고 사람이 먹을 음식 및 약초로 쓰기 위해 채집된다. 돼지 사료는 날마다 집 밖에 있는 아궁이에서 나무로 불을 지펴 끓인다. 그래서 사람이 먹을 음식을 다른 연료로 요리하는 가정에도 큰 무더기의 장작이 쌓여 있다. 양치기들은 작물 재배를 하지 않는 것이 확실한 땅이라면 어느 곳이든 소와 염소를 데려가풀을 먹인다. 송이버섯을 포함한 많은 야생 버섯이 상업적 목적으로 채집되기 때문에 숲에는 많은 발자국이 남아 있다. 어떤 지역에는, 불법이지만 활발한 불법 목재 거래에 이용되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숲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 지역의 나무들은 가늘고 키가 작다. 마을의 오일 산업을 위해 처음으로 심어진 이국적인 유칼립투스가 길을 따라 퍼져 있다. 용감한 중국 학자들이 시도한 적이 있다 해도, 이 숲은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농민의 지혜가 담겨 있다고 홍보하기는 힘든 숲이다.
지저분한 소농민 숲은 외국인 환경보전론자들을 만족시키는 - P335

하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들은 위태로운 자연을 구하기 위해 윈난성에 모여든 자들로, 그곳이 황무지일 것이라는 자신들의 상상에서 어긋나 있는 이유를 과도한 공산주의 때문이라고 섣불리 탓했다. 젊은 중국인 학자들과 학생들은 이러한 외국인들의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문화대혁명 때 홍위병들이 윈난성의 언덕을 남벌했다고 내게 말한 젊은 도시인이 한 명 이상이었는데, 사실은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문화대혁명은 잘못되어 보이는 모든 것의 원인으로 돌리기 쉬운 희생양이다. 산림 훼손을 문화대혁명의탓으로 돌리는 현상의 핵심은 모든 사람들이 이 젊고 개방된 숲의결함을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살펴보면 윈난성 중부의 소농민 숲과 일본 혼슈 중부의 소농민 숲이 공유하는유사성이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참나무-소나무 숲은 아마도 한창때는 현재의 옹호자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심미적으로나 생태적으로 덜 완벽했을 것이다.  - P336

 윈난성의 참나무 -소나무 숲은 아마도 비평가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더 나은 상태일 것이다. 그렇게 침식된산비탈은 참나무, 소나무, 송이버섯이 살기 좋은, 그래서 농민들만이 아니라 많은 종류의 생명체에게도 유익한 활기 넘치는 재생의장소다.
시간의 지연이 괴상하게도 비슷하다. 윈난성 중부의 숲은 중국이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기 위해 국가 자원을 최대한 동원했던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의 중국 대약진운동 기간동안 고통받았다. 나이 든 마을 주민이 언급했던 ‘녹색 강철‘의 일부는 농민들이 중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냄비를 녹여 금속을 - P336

기부했던 뒷마당 용광로의 연료로 사용되었다. 보호된 숲도 있었지만 그다음 10년간 중앙정부는 외환을 늘리기 위해 수출할 목적으로 이러한 숲에서 목재를 잘라냈다. 40-50년이 지나고 나서 소나무는 헐벗은 공간을 차지했고, 참나무 그루터기에서 싹이 나 나무가 되었다. 소농민 숲은 꽃으로 뒤덮였고 송이버섯은 숲의 성공을 알리는 신호 중 하나였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 중부의 숲은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수십 년간 이어진 일본의 급속한 산업화 기간 동안 고통받았다. 40-50년 후 소농민 참나무-소나무 숲은 오늘날 그들에게 기억되고 있는 모양의 완벽함을 이루었다. 중국에서처럼 초기의 교란이후 농민들은 다시 자라는 나무를 자신들을 위해 이용하는 방법을 배웠다. 서로 맞물리는 숲의 이용이 함께 잘 들어맞는다.  - P337

풍경은 알아볼 수 있게 되었고 점점 더 안정적이며, 따라서 조화로운 것처럼 보였다. 참나무는 건축 자재, 장작, 숯을 공급했고, 소나무는 송이버섯만이 아니라 목재, 테레빈유, 솔잎, 신속하게 불이 붙는 연료를 제공했다. 20세기 초반 일본의 살아 있는 소농민 숲은 오늘날윈난성 중부의 숲과 조금 닮은 것 같다.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메이지 유신이 이룩한 근대화와 중국의 대약진운동의 실패를 성급하게 구분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은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만약 소농민 숲들이 각각의 맥락에서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인다면, 그것은 바라보는 관점이 근경인지 원경인지, 그리고 - P337

국과거지향적인지 미래지향적인지에 따른 차이일지도 모른다.
사람과 나무는 되돌릴 수 없는 교란의 역사에 갇혀 있다. 그러나 몇몇 종류의 교란이 일어난 후에는 많은 생명을 양육하는 유형의 재성장이 뒤따랐다. 소농민 참나무-소나무 숲은 안정성과 공동 서식의 소용돌이였다. 하지만 그러한 숲은 종종 국가 주도의 산업화와 동행하는 산림 벌채와 같은 대재앙에 의해 작동되었다. 맞물리는 작은 소용돌이는 교란이라는 큰 강의 내부에 존재한다. 그 소용돌이는 복원을 이루어내기 위한 인간의 재능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확실한 장소다. 그러나 숲의 관점 또한 존재한다. 온갖 모욕에도 부활은 아직 멈춘 적이 없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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