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접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9월부터 환경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활동가로 일을 한다. 오랫동안 환경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데다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어서 기분이 좋다. 기존에 해오던 일도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었지만, 내 마음을 흡족하게 만드는 일은 아니었다. 마음을 가득 채우기엔 늘 2% 모자랐다. 그러나 그나마 그 일을 오랫동안 해올 수 있었던 건 모자라는 2%를 돈이 채워주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쓰는 시간을 여유롭게 가지고 남는 시간만 일해도 꽤 고소득을 올릴 수 있는 일이었다. 일을 하면서 번 돈으로 책도 사고, 집도 사고, 차도 샀다. 그 뿐인가? 어머니께 생활비를 꼬박꼬박 드리는 착한 딸도 되었고, 이런저런 시민단체에 착실하게 후원하는 바람직한 시민도 될 수 있었다. 별다른 불만을 가질 까닭이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지난 가을부터 그 일이 벌어다주는 돈으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딱 하나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건 바로 ‘일을 하면서 행복한 나’였다. 그 깨달음을 얻은 순간, 지금껏 돈이 채워주었던 2%를 일하는 행복함으로 가득 채워줄 일을 찾아 나섰다. 그래서 일년을 헤맨 끝에 지금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내 선택이 너무도 멋진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의 지지와 축하를  기대하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새롭게 시작한 일에 대해서 모두 하나같은 반응을 보였다. 

 

  “수입이 너무 많이 줄어드는데 어떻게 해?” 
  “버는 만큼 쓰고 살면 되지, 뭐.” 
  “지금 당장은 그렇다 치고, 나이 들면 어쩌려고?” 
  “뭐가 걱정이야, 그 때도 좋아하는 일 하면서 밥 먹고 살면 되지.” 
  “넌 혼자 몸이라서 좋겠다. 그렇게 속 편한 소리 할 수도 있고.” 

 

 

  사람들은 일이 자아를 실현하는 장이라는 말 따위, 도덕교과서에나 나오는 문구라고 믿는다. 힘들고, 재미없고, 적성에 맞지 않아도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돈을 버는 일은 행복하지 않더라도 일단 돈을 많이 번 다음 그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나는 내 주위에서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행복을 사는 사람을 단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일은 아무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한다. 하기 싫은 일에 찌들린 사람은 가족들에게 돈벌어다주는 만큼의 행복을 강요한다. 그렇게 살다 어느 순간부터는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그 깨달음은 이미 너무 늦어버려서 자기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을 찾아 나서기보다 돈 그 자체를 행복이라고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한다. 돈이 곧 행복이고, 돈이 곧 꿈인 세상이 시작되는 것이다. 

 

 짧지 않은 내 삶의 경험에 비추어보건대, 행복은 ‘돈’이 아니라 ‘행복한 일’과 함께 온다.  일을 배우면서 성장해가는 나,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 일을 통해서 바라보는 세상……. 그것이 우리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전부이다. 

 

 

 나이가 적어서, 결혼하지 않아서 철딱서니 없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며 쉰을 훌쩍 넘긴 내 큰언니의 말을 덧붙인다. 

 “축하한다. 정말 잘 됐다.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서 얼마나 좋아? 돈 좀 못 버는 거? 그게 무슨 문제야?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해. 살아보니, 사는 건 적당히 불안해야 늘 생기가 돌아. 돈도 늘 모자란 듯 벌어야 충만한 소비를 할 수 있고. 일하면서 즐거운 삶, 그게 최고의 인생이지. 그걸 마흔도 안 되어서 깨닫다니, 역시 내 동생은 똑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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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9-19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도 벌고 하면 좋지요.. 하하
산딸나무님, 새로운 일.. 하고 싶은 일 하게 된 것 축하합니다.
저도 지역환경단체일을 한 5년정도 했답니다.


산딸나무 2008-09-19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한사님의 축하가 정말 큰 힘이 되는 걸요.
앞으로 더 행복한 모습 보여드릴게요.

진진 2008-10-10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족한 2%를 채운 행복이 보여요.
행복 바이러스를 전해 주는 언니 고마워요.

산딸나무 2008-10-1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랑씨?
영랑씨의 행복바이러스도 제게 잔뜩 퍼졌는 걸요.
나도 고마워요.
덕분에 행복해요.
 
십중팔구 한국에만 있는! - 인권 운동가 오창익의 거침없는 한국 사회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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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참 갑갑하다.

'먼 나라', ' 이웃 나라' 이야기들도 아니고, 바로 내가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는 이 나라 이야기니 숨이 턱턱 막힌다.

내 일상 속으로 너무도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들이 니토록 나를 불편하게 하는 존재라니...

주민등록 번호, 종교를 강요하는 학교, 돈봉투, 명함, 영어광풍...

이 모든 것들이 너무 익숙한 내 삶이 자꾸 눈에 밟혀서 죽을 만큼 불편하다.

그러나, 살아야지.

살아내야지. 씩씩하게.

어디 먼 나라로 떠난다고 해서 그 나라엔들 십중팔구 그 나라에만 있는 환장할 것들이 어디 없으랴?   

눈에 보이는 것부터, 거슬리는 것부터, 짜증나는 것부터, 어처구니 없는 것부터, 억울한 것부터

하나하나 바꿔내다 보면 살만해지겠지.

그렇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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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9-19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람들이 사는 걸 멀찌감치서 지켜보는 편이지요..


산딸나무 2008-09-19 17: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늘 멀찌감치서 지켜보다
요즘 그 가운데로 들어서려고 하니까 마음이 좀 힘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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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날 선 사유가 가능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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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여자 큰여자 사이에 낀 두남자 - 장애와 비장애, 성별과 나이의 벽이 없는 또리네 집 이야기
장차현실 글 그림 / 한겨레출판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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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도 평범해서 아름다운 가족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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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간다는 것이 이토록 축복이라니...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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