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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매진 1
마키무라 사토루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1년 9월
평점 :
절판
이 이야기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대중 드라마로서도 손색이 없을 만큼 이야기 구성이 상업적 재미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엄마와 딸’이라는 소재로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 자식을 위해 삶을 바친 엄마. 엄마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 그러다가 두 사람의 정서적 화해... 이런 류가 아니라 독립된 인격체로서 두 사람이 각각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이다.
엄마인 미츠코는 1급 건축설계사로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잘 나가는 커리어 우먼이다. ‘나를 상처 입힐 수 있는 건 나뿐이야,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도 나뿐.’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녀는 남자는 ‘쾌락의 상대’라고 말하며 결혼은 멋모를 때 한 번 해 봤던 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돈의 힘으로 당당함을 사는 인생의 깊이가 얕은 인간은 절대로 아니다.
남편과 이혼한 뒤 딸과 자립하기 위해서 딸을 책상다리에 묶어두고 건축설계사 시험 준비를 하며 세상에 맞서 온 여성이다. 자신을 에고이스트라고 비난하는 남편을 향해 ‘집이나 부모나 애를 위해 나를 쓸 생각이 없어요. 마지막 순간에 누구 때문에 지독한 인생이었다고 하진 않겠어요. 난 내 인생을 완전히 살 거야, 그걸 애한테 보여주는 게 교육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 할 만큼 자신의 삶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마흔 중반의 여성들이 20대의 젊은 여성들에게 느끼는(느끼라고 세상이 몰아붙이는) 젊고 아름다운 육체에 대한 동경 따위가 전혀 없다. 그녀가 평하는 젊음이란 이렇다. ‘젊다는 건 주위의 모든 것이 불안하고, 어떤 일을 해도 창피한 결과가 나오고, 자신감은 한 조각도 찾을 수 없는 암흑 시대.’ 그래서 그녀는 마흔 중반의 자신의 삶에 대해 ‘최소한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기술, 바로 이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개성과 능력, 잘 통하는 친구, 가족, 연인, 내가 봐도 기분 좋은 사고 방식, 젊음과 맞바꿔 얻는 마음의 평화. 난 지금의 내가 좋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녀의 딸인 유우는 정 반대의 성격이다. 모험이나 불안한 상황을 회피하며, 기업의 경리 업무를 담당하는 여사원으로 일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 사람의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사랑받는 것으로 인생의 의미를 채우길 원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타인의 눈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비칠까를 늘 신경 쓰면서 좀더 착한 사람으로 행동하려고 한다. 연애를 할 때도 상대에게 늘 맞춰주고 배려하는 애인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우는 한심하고 나약한 여성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삶에 대해서 성실하다. 보이기 위한 착함이 아니라 자신을 진심으로 감동시키는 착함을 찾아낼 줄 알고, 연애와 결혼이 저절로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진 못한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좀더 자기를 긍정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어떻게 하면 진심으로 행복할 수 있는 일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한다.
그녀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느리지만 진지하다.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감동적이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 무얼까 고민할 줄 아는 유우는 겉으로는 정 반대여도 근본은 엄마와 닮아있다. 연인과 힘들게 헤어진 다음에도 상대를 탓하지 않고, 삶의 전반을 통찰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성실한 유우의 매력이다. 실연하고 난 뒤 유우의 독백은 진한 감동이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선택할 수 있을 리 없어. 미래의 목표도 없이 이렇다 할 이미지도 없이 소중한 인생을 뒤로 미뤄놓고 그저 사랑에 빠져서, 취해서 그때 그때 좋은 사람으로 보이도록 살아온 대가야. 그렇게 게을리 살아온 대가야.’
이 작품을 처음 잡았을 땐 이렇게 성격이 고정된 두 사람이 어떻게 변해 갈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완성도 높은 캐릭터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흥미로워진다. 두 사람의 연인인 남성들의 심리묘사는 여성 작가의 그것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꽤 섬세하고 날카롭다.
열 한 권이나 되는 꽤 긴 장편임에도 엄마와 딸의 좌충우돌 인생은 시종일관 삶에 대한 진지한 깨달음으로 쉬지 않고 와 닿는다. 두 사람이 던지는 메시지는 우리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일이건, 사랑이건, 결혼이건, 모두에게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고 말해준다. 끊임없이 자신의 미래를 그려나가며 그것을 이루기 위한 노력만이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인생의 정답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매일 행복한 나를 이미지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