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5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배부른 자의 글은 믿지 않는다.'

20대 초반 작가지망생이었던 내 일기장에는 어느날 그런 문장이 쓰여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선언이지만, 과연 그 시절의 생각을 단순한 치기로만  넘길 수 있을까? 난 지금도 공지영보다는 공선옥의 작품이 수월하게 읽히고, 더 쉽게 공감이 되는 걸... 

그동안 공지영의 글은 빼놓지 않고 읽었지만 늘 뒤끝이 좀 개운치 않은 느낌이 있었다. 작가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 대해서 부채감만으로 글을 쓴다는 느낌, 자기 것이 아닌 세상을 굳이 선망하고, 자신의 삶을 부정한다는 느낌,

한 때 우리 사회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구분만이 존재하던 시절, 계급만이 담론이던 시절을 나는 기억한다.  그 시대의 사랑은, 그 시대의 종교는, 그 시대의 예술은, 늘 삶의 이류로 취급당했다. 그러다 보니 내 속에서 일어나는 솔직한 고민과 번민은 늘 입 밖으로 나오기 전에 자기 검열을 받아야만 했고, 스스로 고민들에 붉은 줄을 그은 날은 소시민적이고 나약한 자아를 호되게 비판하곤 했다.          

물론 내 청춘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 당시의 내 생각과 행동은 나로서는 시대의 물음에 최선을 다해 답했던 시간들이었으니. 그 때의 버거운 생각들을 싸그리 비난하기엔 시대가 지운 짐이 너무도 많았으니까.

아마 추측하건데, 공지영도 시대와 불화하는 자아를 고통스럽게 숨죽이며 살았던 젊은이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글에서 그러한 조짐을 읽었다. 그래서 나와 맞지 않는 서걱거림이 있었지만 늘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안타깝고, 이 사람이 조금더 편안하게 글을 쓰길 바랬다. 

그러다가 '수도원 기행'에서 이 작가가 달라지는 게 보였다. 드디어 자기 검열 없이 자기 얘기를 하기 시작했구나 하는 느낌...  그가  시대의 아픔이나 타인의 아픔이 아닌,  자신의 아픔을 보기 시작했다는 생각... 

그 때 받은 느낌이 틀리지 않았나 보다. 이번 작품은 한층 더 깊어진 내면이 담겨있다.  그가 시대의 부채감을 떨치고, 자기의 내면에 솔직해지고, 더 깊이 자기 속으로 내려가서 끌어올린 한바가지 시원한 물 같다. 나도 모르게 작가의 치열한 글쓰기에 오래도록 박수를 보냈다. 

타인의 저울로 잴 수 있는 고통만이 진정한 고통으로 인정받는 세상에서 깃털의 무게도 잴 줄 아는 사람, 그래서 그 깃털에 눌려 질식하는 삶도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주는 사람. 작가는 그런 사람이어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 작품을 통해서 공지영은 진정한 작가가 되었다고 감히 말하련다.

사형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글이라고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을 더 본질적으로 사람을, 삶을 이야기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일, 그게 인생이 아니던가. 한 묶음의 기도서같은 글, 한 편의 잠언같은 글, 한 권의 철학서...

오랜만에 아름다운 글을 만나서 실컷 울었다.

그가 이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했다고 했지, 그의 행복한 시간...

이 책을 읽는 내내, 눈물 흘리며 우는 내내 나도 행복했다.  나의 행복한 시간...

그래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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