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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
강명관 지음 / 길(도서출판) / 2006년 9월
평점 :
품절
책장을 수월하게 술술 넘길 수 있었던 책이다. 다 읽고 나니 ‘옛글에 빗대어 세상을 말하다’는 제목이 이 책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싶게 제목이 내용과 맞춤하다.
인권, 전쟁, 계급... 우리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문제들을 고전을 끌어와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다. 그러니 결국 ‘고전’ 보다는 ‘현실’에 무게를 두고 있다고 하겠다. 저자의 따뜻한 눈이 세상의 곳곳을 스치면서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들을 던지고 있다. 특별히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으니, 그냥 조근 조근 풀어내는 그 얘기를 가만히 듣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편안하게 읽어갈 수 있었던 이 책에서 딱 두 군데 언짢아지는 부분이 있었다. 굳이 짚지 않아도 될 것 같았으나 좋은 책이기에 더욱 걸리는 부분이었다. 저자에 대한 나의 오해일 수도 있으나 책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권리이므로 짚어보고 싶다.
‘고문, 미국, 이라크’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벼슬 높은 양반이 패물을 잃어버려 종을 추달하였다. 종은 매를 이기지 못해 자기가 훔쳤노라고 자백을 했다. 그 종을 가두고 난 뒤 양반은 두 아들을 불러 잃어버렸다는 패물을 내어보였다. 놀라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는 아무개가 매를 못 이겨 자복한 것이라며, 억울한 백성이 많을 테니 너희도 벼슬길에 오르거든 매로 사람을 다스리지 말라고 한다. 두 아들은 나중에 아버지의 말을 새겨들어 훌륭한 목민관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 고문의 문제를 짚고 있다. 근데 나는 훌륭한 목민관을 위해 가르침을 준 그 억울한 종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하다. 물론 그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을 테니 저자가 굳이 그 종의 인권을 들먹이는 것은 좀 우스워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책의 전체 맥락을 생각한다면 어째서 그 억울한 종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그냥 넘어갈 수 있단 말인가?
매우 불쾌하다.
두 번째 불편함은 ‘칼날처럼 도덕적 기준을 적용하는 근본주의는 인간을 옥죈다’를 읽으면서 들었던 감정이다.
도덕주의자 조광조를 얘기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이 시대의 성매매에 나는 찬동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조광조의 그 금욕적 태도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다. 바람직한 인간의 성은 그 중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이 구절에서 내내 무언가 묵직한 것이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다. 조광조의 금욕적 태도의 반대가 성매매라... 참 이해할 수 없는 논리다. 여성인 내게 금욕의 반대는 단순한 쾌락을 위한 자유로운 성관계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성매매를 통한 것은 아니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성매매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금욕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란 말인가? 저자의 본의를 일부러 비딱하게 해석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음에도 이 글은 너무도 위험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내가 고전을 즐겨 읽고 감동하는 것은 과거의 문장들이 남성의 것이기 이전에 인간의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전을 읽고 전하는 사람이 남성의 눈만을 가지고 사회를 본다면 얼마나 위험한가?
그러나 이 책은 재미있다. 저자의 솔직담백한 글 솜씨도 참으로 매력적이다. 부디, 이런 찜찜함이 나 하나에 그쳐서 이 책의 매력이 감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