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남성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한편으로는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에선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진 것이 아니냐는 은근한 반론이 이어진다.

  여성들이 다시 호주제, 취업문제, 결혼제도 등을 들먹이면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 ‘그래도’라면서 또 다시 반론이 시작된다. 이 때,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근거들로 등장하는 것이 주로 가사노동에 대한 이야기이다. 한마디로 사회는 좀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집 안에서는 이미 여성이 우위에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집안일을 얼마나 잘 도와주는지 아느냐고 하면서 자기 집에서만큼은 남녀평등이 이루어졌다는 남성들이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남성들은 캐물을 것도 없이 가사분담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면 된다.

  도와준다? 집안 일은 인간이라면 누구나가 살아가면서 반드시 해야만 하는 기본 노동이다. 그런데 자기 몫의 일을 하는 것을 ‘도와 준다’고 말한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사람들의 사고 방식은 이미 ‘가사노동’은 여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다.

  이런 남성들의 인식을 수치로 보여주는 보고서가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통계청에서 그저께 펴낸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보고서에 따르면 초혼연령이 높아지고 동갑·여성 연상 부부도 늘어나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여성의 상당수는 여전히 가사에 대한 남녀 공평 부담을 원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가사를 부인이 주도하는 가정은 2002년 88.9%에 달한 반면 공평하게 분담하고 있다는 가정은 8.1%에 그쳐 과거와 비교할 때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자기 몫이 가사노동을 자기가 알아서 하는 남성이 열에 하나도 안 된다는 말인데, 그럼 나머지 아홉은 아이에서 자라기를 멈춘 피터팬들인가? 우리나라가 네버랜드도 아닌데, 피터팬들이 이렇게 넘쳐나다니, 안타깝다.  

  키가 크고, 몸무게가 는다고 성인이 저절로 되는 건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성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돈을 잘 번다고 성인이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성인은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결정하고 실천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 땅의 남성들이 피터팬신드롬에서 깨어나, 진정한 성인이 되는 날이 빨리 오길 바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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