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신화 속의 여성들
김화경 지음 / 도원미디어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페미니스트인 나는 남성들로 부터 늘 공격당하며 산다. 물론 그들은 내가 자신들을 공격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런 공격들은 청소, 빨래의 문제에서 부터 시작해서 성과 정치, 사회 모든 분야에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데, 특히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가방끈 길이가 길다고 자처하는 지식인 남성들의 어줍잖은 논리들이다. 그들의 학식이 깊고 넓어서 반격하기 힘들다는 게 아니다. 그들은 그들이 들이대는 역사적 근거와 인문, 사회학적인 그 모든 자료들이 바로 남성들이 권력을 잡고 있는 가부장적 사회의 산물이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술 취한 사람이 마치 '나는 술 취하지 않았다'고 하는 것처럼, 그 말이 바로 술에 취한 자신의 생각에서 나온 논리란 것을 모르는 것처럼, 지적인 근거를 들이대며 '나는 페미니스트를 싫어하는게 아니다.'고 말하는 남성들을 상대하기란 한마디로 '우이독경'이다.
그래서인지 페미니즘적 기운이 풍기는 책들을 대할 때면 반드시 작가의 성별을 확인한다. 그리고 남성작가가 쓴 책이라면 열에 아홉은 다시 제자리에 놓아둔다. 이런 내 독서습관을 편협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 독서습관은 바로 어줍잖은 지식인 남성들의 페미니즘 흉내내기 덕에 생긴 것이니까.

그런데 그런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남성이다. -이름만 보고 여성이라고 오해하는 독자도 있으리라 싶지만- 그리고 이 책은 명백히 페미니즘을 옹호하고 있는 책이다. 그런데도 내가 편협한 내 독서습관을 깨고 이 책을 주저없이 산 것은 몇가지 까닭이 있다.

첫째, 지은이에게 4년동안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지은이가 교수로 일하고 있는 대학, 학과를 졸업했다. 비록 내용전달의 기교가 별달리 없어서 무지하게 잠왔던 기억은 있지만(아마 전공필수도 몇개 날린 걸로 기억한다) 아직도 잊을 수 없었던 것은 김화경교수가 보여준 자기 전공에 대한 높은 탐구력과 해박한 지식이었다. 교수가 설화연구에 권위자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그가 페미니스트였다는 기억따윈 없다. 그러나 학문의 세계는 그 속에서 거짓없는 진리를 탐구하는 이에게 모든 세계로 통하는 문을 열어준다는 믿음이 있다. 저자가 평소에 자기 전공분야에서만큼은 어떤 편견도 없이 학자다운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머리글에서 만난 지은이의 말 때문이었다. '남성들은 자신들이 가진 권력의 절대성이나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취향과 입맛에 맞는 여성상을 창조하였다는 것을 빼놓을 수없다.' 지은이가 적어도 신화의 세계에서 드러나는 여성신들의 모습이 남성의시각으로 왜곡되어서 전달되고 있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알리려고 한다면 의심을 거두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차례만 훑어 보아도 알 수 있는 자료의 풍부함이 너무도 매혹적이었다. 당위를 따지는 페미니즘 저서들은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하지만 남성들의시대를 바로 뚫고 들어가서 그 역사 속에서 여성의 정체성을 뽑아 내는 책들은 흔치 않다. 적어도 이 책에 제시된 자료들은 남성의 역사를 치고 들어가는데 훌륭한 무기가 될 만했다. 책을 읽고 나서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기쁘고 행복했다. 인간의 삶과 꿈이 그대로 투영되는 신의 세계에서 살아서 숨쉬고 있는 여신들을 만나는 것은 최근에 누려보지 못한 행복한 여행이었다. 내가 여성임에 감사를, 그리고 그 느낌을 찾아준 저자에게 감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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