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분석하길 좋아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평가에 잘 휩쓸리지 않고, 보편의 늪으로 등 떠밀리지도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보면 참 속편하게 산다는 소릴 종종 한다. 그러나 그거야 말로 속 모르는 소리. 나는 그 놈의 분석력과 합리성 때문에 늘 속 끓이며 살았다.
어릴 때부터 가까운 친구들에게 뜻하지 않은 상처를 종종 받았다. 특별히 모난 성격도 아니고, 말을 밉살스럽게 하는 것도 아니고, 배려나 이해를 잘 못하는 것도 아닌데 친구들은 뜬금없이 나를 비난하곤 했다. 그 비난의 내용은 주로 이런 것이다.
“너 같이 잘난 인간한테는 말해봤자 소용없지.”
“그래, 네가 어려운 일이 뭐가 있니? 그렇게 똑똑한데.”
“어이구, 잘나셨어. 어련하시려고.”
친구들의 반응이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내가 뭘 잘못했나? 왜 저러지? 틀린 말 한 적 없는데……. 그러나 그들의 화를 풀기 위해 일단 미안하다고 사과부터 한다. 기분이 풀릴 때까지 계속 빈다. 그렇게 빌고 또 빌어서 상대의 기분을 풀어놓은 다음에야 내 생각을 돌아볼 여유를 얻는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하다. 정말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러나?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억울함마저 생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난 척 한 적도 없고, 내가 똑똑하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데 왜 이런 소릴 들어야 하는지. 그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두렵고. 나도 모르게 상대의 반응에 주눅 들곤 했다. 이젠 나를 욕하는 상대가 미운 게 아니라, 저 친구가 왜 나를 욕하는지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먼저 하게 됐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며 살다가 삼십대를 다 보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한 가지 깨닫게 되었다. 사람들이 내게 화를 내는 까닭이 내가 그들의 말을 공감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란 것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먼저 문제를 만들지 않는 것, 그리고 만들어진 문제는 정면 돌파해 나가는 것, 같은 문제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원인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합리적인가? 지금까지 그 방식대로 문제없이 잘 살아왔다.
그러니 친구들이 일상적으로 털어놓는 얘기들에 좀처럼 공감하지 못한다. 해결책이 없는 연애문제며, 집안 문제며, 부부싸움 같은 이야길 듣고 있노라면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고 문제를 즐기며 살아가는 그들의 방식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그들이 털어놓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런저런 합리적 방법들을 조언한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뜻대로만 되는가? 아무리 조심해도 인생 앞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데 내 성향이란 것이 엎어져 아프다고 하소연하는 친구들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네가 엎어진 원인이 뭘까?”라며 분석하는 꼴이니……. 내 친구들은 그걸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엎어진 일만으로도 부끄럽고 속상한데,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며 옷을 툭툭 털어줘도 모자랄 판에 빤히 들여다보며 돌멩이를 제대로 살피라는 둥, 다리 힘을 더 주었어야 한다는 둥의 얄미운 소릴 해대고 있으니 내가 어찌 욕 얻어먹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겠는가?
늘 정답만을 얘기하는 나, 내가 하는 말이 틀리지 않았음이 오히려 그들의 화를 돋운 것이다. 사람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힘은 공감에 있지, 올바른 원인 분석에 있지 않다는 걸 어린 나는 몰랐다. 내 분석력과 합리성은 내 삶에서나 통하지, 타인에게는 무용지물이란 것을 몰랐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잣대로 이해해 주는 지혜, 그걸 우린 공감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친구들이 내게 간절히 원했던 것, 그게 바로 공감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내게 모자랐던 게 무엇인지 깨달아서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