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년도 더 된 일이다.
대학 친구 하나가 대구의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고 연락이 왔다. 반가운 마음에 술 한 잔 하는 핑계로 얼굴을 보게 되었다.
“명함 한 장 줘 봐.”
자리에 앉자마자 내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 때 친구가 술집 앞에서 나눠준 미용실 광고지 귀퉁이에다가 전화 번호를 적어주며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명함으로 버려지는 종이에 대해서 얘기를 했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주고받는 명함 한 장이 내 환경적 사유를 자극하는 거리가 된 건 그때부터였다.
명함이 환경적 사유만 던져준 건 아니었다. 우리 사회에서 명함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이등 시민으로 산다는 걸 의미한다. 무위도식하는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명함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결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란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명함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중요한 그림자 노동, 자립 노동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 경우가 더 많다. 명함 없는 농부의 노동, 명함 없는 주부의 노동…….
오랫동안 명함 없이 살아도 불편함 없이 잘 살았다. 명함을 달라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메모지에 전화번호를 적어주곤 했다.
그런데 요즈음 새로 일을 시작하게 된 뒤 명함을 달라는 사람이 부쩍 많아졌다. 그런데 번번이 메모해주기가 귀찮아 꾀를 냈다. 미리 메모를 해 두면 필요할 때 건네주면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버리는 자투리 종이를 잘라서 메모를 했다. 그랬더니, 근사한 명함이 되었다.
내 손으로 만든 명함, 내 이름 하나 드러내려고 귀한 종이를 낭비하지 않아도 되는 명함이었다. 받는 사람들도 좋아한다. 신선하단다.
십 년 전 친구에게 받았던 그 신선한 자극을 내가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게 기쁘다. 이런 기쁨이 담겨 있는 명함 건네기, 그대도 한 번 해 보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