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저녁, 바람이 좋아 옥상에 앉아 어머니께서 가꾸신 고추며 호박이며 들여다 보고 있는데 가족들이 하나 둘, 갑갑한 방을 빠져나와 옥상으로 올라왔다. 오빠들과 새언니와 딱히 궁금하지도 않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하고, 아이들 이야기를 하기도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어머닌 평상에 앉아 빨래를 개키며 친척들의 시시콜콜한 생활들을 들려주시고, 조카녀석들은 대여점에서 빌려온 '나루토'를 한 권씩 들고 복습 중이었다.

 그때, 갑자기 옛날 어렸을 적에 명절이나 친척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내게 얘기 한 자락을 청하시던 아지매 생각이 났다. 그 때는 용돈 받는 재미로, 칭찬 받는 재미로 책에서 읽은 전래동화를 어른들 앞에서 풀어내곤 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선 '말'이나 '대화'가 아닌 '이야기'를 가족들 앞에서 풀어내 본 적이 없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순간, 가족들 앞에서 의무방어전이 아닌 진짜 내 흥으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단 욕구가 들면서(사실, 이 흥도 조금은 의무감이기도 했다.) 조카 녀석들에게 만화책을 덮고 얘기 한 번 들어보라고 졸랐다. 고등학생이 된 큰 조카는 좀 귀찮다는 듯이, 중학생인 작은 녀석들은 손가락으로 여전히 읽던 페이지를 끼워들고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내가 한 이야기가 바로 양영순의 천일야화, 마지막 이야기였다.

 사실, 가족에 대한 넘치는 애정 따윈 애당초 허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사는 내가 지극한 형제애를 다룬 그 장면을 선택한 것은 가족들 앞이어서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을 읽는 내내 울고 또 울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려면 그 이야기에 흠뻑 젖어들어야 하는데 요 근래 읽은 이야기 가운데 나를 가장 매료시킨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얘기를 들려줄 때,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내가 울었던 그 장면에서 내 목소리가 떨려서 나왔기 때문에, 자칫하단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흐를 것 같았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도대체 내 속에 있는 어떤 무의식을 건드렸기에 이토록 오랫동안 나를 흔드는 것일까? 나도 내가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야기를 겨우 겨우 마치고 조카들에게 어떠냐고 물었더니, 모두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다시 읽던 만화책에 집중을 했다.

 그런데 언니와, 오빠의 표정들은 달랐다. 모두 내 이야기에 공감하며 나와 같은 기분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나와 내 형제들의 성장기의 정서에 맞닿아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비롭고 자애로우신 알라시여! 저희에게 또다른 하루를 열어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이라는 이 귀한 선물의 가치를 잊지 않도록 늘 일깨워주옵소서. 저희가 누리는 이 하루가 저희를 기억하는사람들의 간절한 염원과 기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하소서..."

 신에게 고백하지 않더라도 찬찬히 생각에 머물다보면 내 삶이 내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루도 내 걱정과 의지만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사랑하는 이의 염려와 지지와 바람과 기도로 내 하루의 삶이 온전히 이루어져 있음을... 내 의지와 노력은 그것들을 장작으로 해서 타오르는 불꽃임을...

 '오늘'이 이렇게 아름다운 날이구나. 그러고 보니 달이 참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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