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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철학 - 지배와 저항의 논리
사카이 다카시 지음, 김은주 옮김 / 산눈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모든 생명은 날 때부터 폭력적이라고 한다. 우리가 그토록 거부해 마지않는 폭력은 우리 인간의 숙명이라고...
9.11 테러가 일어난 날, 그 사건을 뉴스로 접하면서 몸과 마음이 다 아팠다. 폭력과 폭력의 악순환, 이어지는 무고한 생명들의 죽음, 폭력이든 반폭력이든(이 구분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생명을 불쏘시개 삼아 일으키는 이 화염더미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느낌...
다음날 아침 사무실에 출근을 했을 때, 사무실 식구들의 화제는 단연 그 뉴스였다. 그런데 그 대화에서 나는 머리를 돌로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아, 어제 그 뉴스 보는 순간 속이 다 시원하더라. 부시 녀석 완전 한방 맞았지!"
"미국 놈들, 지네가 했던 짓은 생각도 안 하고 아주 난리더구만."
'어차피 거기 있던 놈들은 다 잘 사는 놈들인데, 뭐..."
국민적 여론이야 어찌 됐건간에 적어도 내 주위 사람들의 반응은 그랬다. 그런데 나는 왜 인간의 목숨이 더 민중적인 목숨과, 덜 민중적인 목숨으로 나뉠 수 있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 기준은 무언가? 미국인과 미국 외의 국민? 소득수준? 인종에 따라?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의 얄팍한 감정과 논리 앞에 나는 한없이 화가 났다. 무고한 생명의 죽음 앞에 어떤 이성적 잣대보다 마음 아파할 줄 아는 것이 내가 인간인 증거이다라고 생각하던 내게 동료들의 발언은 내 속에서 폭력과 반폭력, 폭력과 평화, 폭력과 저항 따위의 개념을 일순간 흔들어 버렸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폭력과 인간의 관계는?
그 뒤로 지금까지 그 질문은 줄곧 내 삶의 중요한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이 책 역시 그런 연장에서 읽게 되었다.
그러나 개념을 정리하고 폭력의 철학에 대한 역사를 이해를 돕기위해선 상당히 재미있게 쓰여진 책인데 나에게는 썩 와닿지 않는다. 여전히 '그래서?'라는 의문들만 가득하다. 나 자신이 무조건 폭력에 대해서 반대를 외쳐본 적도 없고, 오히려 폭력과 반폭력을 구분하는 것에 더 익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쉽게 답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 폭력적일 수밖에 없는 숙명을 타고 났다면 적어도 폭력 앞에, 폭력 안에서 자기가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찬찬히 들여다 보는 것부터 고민을 시작해야겠단 생각은 든다.
책 표지에 있는 노래 가사를 다시 들여다 보았다.
"생명은 하나, 인생도 한 번, 그러니 목숨 버리지 말자. 누군가 나라를 위해서라고 부추기면 파랑게 질려 꽁무니를 빼라. 도망쳐 숨어라"
'나라'가 아니라 '평화'이어도. '평화'가 아니라 '자유'이어도, '자유가 아니라 '안전'이어도, '안전'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이어도... 그런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