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 드려야 할까요? - 황우석 사태 취재 파일
한학수 지음 / 사회평론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황우석 사태가 터졌을 때,  난 세상과 엇나가는 내 상식에 생애 처음 느끼는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황우석 선생의 연구가 온 나라를 흥분시키고 있을 때,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난자 채취의 위험에 대해서, 생명공학연구의 윤리법에 대해서, 성체줄기세포연구등 조명받지 못하는 분야에 대해서, 여성의 인권을 팔아 장애인의 희망을 살 수 있다는 이 미친 논리에 대해서  부담없이 말을 던졌다. 부담없이 말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그게 모두에게 당연한 상식이라고 아무 의심없이 믿었기 때문이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겐 조국이 있다'는 그의 말에 '저거 미친 놈 아냐?'라고 첫마디를 내뱉았다. 일본의 군국주의, 독일의 나치즘이 다시 과학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걸 보면서 '저 사람은 손재주는 능할지 모르지만 사유의 능력을 빵점이구나.' 싶었다. 손재주도 없다는 게 나중에 밝혀졌지만...

  그랬다. 나는 그의 말 하나하나가 좀 우스웠고, 어설펐기에 언론의 일방적 찬사가 좀 역겨운 정도였다. 그래서, 피디수첩 방송을 전후로 해서 난자채취 과정의 비윤리성이 드러나면서 나는 '저 분위기 파악 못하는 인간이 역시 사고 치는구나.' 정도의 감정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자고 난 다음날, 피디수첩이 돌을 맞고, 온 국민이 담당 피디들을 매국노라며 분노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아연실색... 나는 정말 할말을 잃었다. 분위기 파악 못한 건 황선생이 아닌 바로 나였던 거다. 사람들에게 이 사태에 대해서 말을 걸기가 겁이 났다. 설득 불가능! 도대체 내가 어디 다른 세상에 살다 온 거 아닌가? 아니면 우리집만 빼놓고 수돗물에 약 탔나?

  내 상식이 모두의 상식일 거라고 겁없이 깐죽대다가 완전히 박살난 기분! 그건 진실이 무엇이고 간에 다수의 사람과 공감하지 못하는 사고를 가진 나 자신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뒤 여러가지 해석들을 갖다 대면서 국민들의 정서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했지만 사실 지금도 2% 부족 상태이다. 

  물론 황 선생과 맞장 뜬 담당 기자들의 가슴조림에 갖다 대지도 못할 충격이지만 내 삶에서는 가장 섬뜩한 사건이었다. 그 사건을 이렇게 다시 책으로 보면서 온갖 희비가 교차했다. 제보자와 양심적 과학자들, 학자들에 대한 깊은 존경. 그리고 진실을 찾는 참언론인의 모습이 주는 감동에 온 몸이 떨렸다. 또,  온갖 인간군상들이 자기에게 조금 더 이익이 되는 길을 찾으려고 머리 굴리는 모습을 보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두 모습 모두가 날 것 그대로 인간이려니 싶었다.

  무지는 독이다. 하지만 독은 때로 치료약이 될 수도 있다. 황선생의 희대사기극에 놀아난 우리의 무지는 독이기도 하지만 이 독은 한국사회에 큰 약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그 독이 나에게도 크나큰 치료약이 되었듯이. 지식이 사람을 설득할 수 있다는 오만. 내가 옳기 때문에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상식적이지 않다는 오만, 한국 사회의 진보가 그래도 꽤 쓸만해서 조선일보가 써내는 소설같은 기사들에 속는 사람이 없을 거라는 오만... 나의 이런 오만이 다수의 정서에서 나를 너무도 멀리 떨어트려 놓은 게 아니었던가.

  다수가 옳다는 게 아니라, 다수의 정서를 읽고, 그 정서의 근원을 공감하지 못한다면 소수의 생각은 영원히 소수일 수  밖에 없다는 깨달음이다. 

  끝으로 나에게 그 큰 깨달음을 주기 위해 일상의 행복을 기꺼이 희생한 제보자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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