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랑
이언 매큐언 지음, 황정아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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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원제가 무엇일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읽었다. "이런 사랑"이라, 영어로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궁금했는데 "Enduring Love"이다. 어딘지 허전하다. 차라리 '이런 사랑'이 더 책에 어울린다.

이언 매큐언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과학저술가인 조와 키츠를 연구하는 교수 클라리사와의 사랑, 조를 극단적으로 사랑하는 제드 패리의 사랑이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사고하는 조와 아이를 낳을 수 없지만-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 클라리사는 7년동안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이이다.  이 둘이 어느날 피크닉을 나선다. 행복한 피크닉 장소에 고장난 열기구가 등장한다. 바구니 안의 아이를 구하기 위해 조를 비롯한 남자들이 풍선의 줄을 잡아당기지만, 공교롭게 불어온 돌풍으로 하늘로 붕 뜨게 된 그 시점에서 그들은 '우리'보다는 '나'를 택하게 되고 맨 마지막까지 줄에 매달렸던 사람은 줄에서 떨어져 사망하게 된다. 그 사망현장에서 조와 패리는 마주친다. 패리는 조를 만난 순간부터 사랑을 하게 된다.

 

마침내 나는 깨어났어요. 사랑 덕분에 나는 이처럼 살아 있음을 느끼고 이처럼 예민해집니다. <p.137>

 

패리의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막무가내이고, 자신을 사랑하는 조의 마음을 이제야 깨닫게 되었으며,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계시이니 그 분께 인도하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는 말도 되지 않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다. 조의 집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전화하고, 편지하고, 조의 손짓하나에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해 낼 수 있다고 믿는 조의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폭력적으로 바뀔 수 밖에 없는 치명적인 결함을 내포한 집착이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 밖에 없는 무서운 사랑이다. 이름하여 "드 클레랑보 신드롬".

 

내 사랑은 단단하고 격렬하며 '아니오'란 답을 받아들이지 않을겁니다. 내 사랑은 꾸준히 당신을 향해 나아가서 당신을 소유하고 인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 사랑은 또한 하느님의 사랑이며 당신의 운명입니다. 당신의 부정과 거부와 논문과 책은 모두 지친 어린 아이의 작은 발길질입니다. 이건 시간문제일뿐이고 때가 되면 당신은 고마워할 겁니다. ... 내게 당신의 분노와 쓰라림을 보여 줘요. 난 상관없어요. 난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말아줘요. <p.192~195>

 

영원할 것 같던 조와 클라리사와의 사랑은 열기구 사건으로 인해, 아니 패리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것같은, 온통 패리에게 집중되어 있고, 불안해하는 조의 모습을 클라리사가 견디지 못하면서 서서히 금이 간다.

가끔 신문에서 접하는, 한 사람에게 집착하는 스토커로 인해 사랑도 인간관계도 깨질 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조와 클라리사의 사이에서 확인하게 된다. 조와 클라리사도 그 수순을 밟고 있다. 

 

둘은 서로 사랑하고 있는데, 지금 이 순간은 어쩌다 서로 다른 정신적 우주에 놓이게 된 것뿐이고 그저 서로에게 바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게 다다. 상황은 바뀔 테니 지금 한순간의 기분이 시키는 대로 섣불리 여기서 의미를 끌어낼 이유는 없다. <p.118>

 

우리 피부 점막 사이에 작은 먼지나 티끌이, 아니면 정신적인 것이면서도 해변의 모래처럼 손으로 만져지는 무언가가 끼어 있는 것만 같았다. <p.145>

 

사랑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와 클라리사의 사랑. 그들은 결국 위기를 극복한다. 7년을 이어온 사랑이 쉽게- 아니 쉬운 것은 아니었을지도 - 끝날 수도 있었다. 조가 패리를 사랑하지는 않았지만, 패리의 일방적인, 위협적인 사랑만으로도 '조와 클라리사의 사랑'이 쉽게 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사랑이 대체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만든다. 영원한 사랑은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지도.

 

패리의 그 이상한 신념. 조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 확신, 아무리 아니라고 설명해도 받아들여지 않는 그 벽. 그게 무섭다.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청년 패리. 그는 우울했고, 외로웠고, 사랑을 몰랐으며, 친구도 없었다. 물론 그가 그토록 외치던 하느님의 사랑도 따지고 보면, 그가 창조해 낸 신이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하나님'은 아니다. 그래도 어찌 되었든, 이언 매큐언은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어떻게 제대로 믿어야 되는가? 그리고, 이렇게 잘못 입력된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나...

 

후~ 책을 읽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이런 사랑'.... 이런 지독한 사랑의 패리는 여전히 갇혀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조에게 사랑의 편지를 보낸다. 가엾은 조가 헤쳐나올 길은 정말 없는 것일까? 사랑,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한 아이의 우울한 결말을 보면 늘, 지금의 내 부모노릇을 뒤돌아보게 된다. 언제나 문제는 사랑받지 못한 존재였다는 데 있다.

 

 

<책에서>

 

마치 방 안에 함께 있는 사람 하나가 감정이란 감정은 모두 독차지하고 있을 때 그러하듯, 난 공허하고 무감각한 중립 상태에 빠진 느낌이있다. <p.159>

 

진의 슬픔을 보자, 나 자신의 상황은 복잡할 것 없는 원소들로, 단순한 분별력만으로 정리되는 주기율표로 바뀌었다. 사랑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안다면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법. 당신도 이런 고통을 겪게 되리라. 그러니 돌아가서 사랑을 지키려고 노력하라. 다른 모든 건, 패리도 포함해서, 다 대수롭지 않을 뿐. <p.160>

 

나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불안감을 애써 감춰야 한다. 그들의 눈을 통해 난 나 자신을 본다. 내가 어렸을 때 어른들을 어떻게 생각했던가. 그때 그들은 늙다리 패거리로 보였다. 퍼질러 앉아 있는 걸 너무 좋아하고, 쓸데없는 잡담을 너무 즐기며, 그 무엇도 갈망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 나의 부모님, 부모님의 친구들, 삼촌과 고모들, 다들 저 멀리 있는 더 중요한 사람들의 더 중요한 일에 맞춰서 살아가는 사람들 같았다. 물론 그건 아이의 편협한 시각에 불과했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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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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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p.21>
 
34세의 젊은 여자, 마리 -콩스탕스는 신문광고를 낸다.
 
이렇게 신문광고를 내면, 누가 연락을 해올까? 혼자 책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보통사람은 아닐테고, 사는 게 바빠서 책 읽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전화를 해올까? 우선, 책을 읽고 싶으나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에릭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거나, 백작부인처럼 기력이 쇠해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우선 책을 읽어 드립니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드립니다가 아니라 젊은 여성에 방점을 찍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40대의 성공한 사업가인, 너무나 바빠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나, 교양은 있는 척하고픈 미셸 도트랑 같은 사람. 그래서, 별 제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을 발음하면 묘하게 에로틱한 상상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마리-콩스탕스가 만난 사람들은 일단, 소통이 단절된 사람들이다.
 
14세 소년의 장애아인 에릭은 마리가 읽어준 모파상의 '손'이라는 소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에릭은 마리를 통해 문학에 대해, 또 그 나이의 소년처럼 성에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부끄러운 듯, 흘끔거리는 그 시선에서  그가 이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게 되는 8살 소녀는 부모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아예 부재중이나 마찬가지이고, 엄마도 아주 바쁜 부동산개발 업자이니, 부모와 아이와의 대화통로도 막혀있다. 마리와 아이는 책에서처럼 밖으로 즐거운 소풍을 나서지만, 그게 그만, 그녀가 아이를 납치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마리는 경찰서로 연행을 당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장군부인. 그리고, 오로지, 마리의 책 읽는 행위보단 마리에 더 집착하는 미셸과 근엄하기 짝이 없는 전직판사가 읽어주길 강요하는 책- 오, 아주 엽기적인, 퇴폐적인 그 내용이란-하며,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대상은 이렇듯 겉으로는 평범한 듯 보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건 관계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존재이니, 마리가 책읽어주는 대상이 우리와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은 아니지 않을까?
 
그녀의 책 읽기는 결국, 그녀의 책 읽어주는 행위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뒤흔들려고 하는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 인물에 의해 중단된다.
그녀의 책 읽어주는 행위 - 음, 어떤 의미에선 순수하다고 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 는 이렇게 해서 끝을 나는데, 과연 그녀는 처음 광고를 냈을 때, 에릭과 같은 혹은 미셸과 같은 아니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감탄하는 할머니를, 혹은 사드백작의 내용과 같은 글을 근엄하게 듣는 전직판사와 같은 인물을 만날 것을 기대했을까, 아닐까?  
 
 
아마, 지금 이순간 마리처럼 광고를 낸다면, 또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기재한다면 수많은 스팸메일이나 전화에 시달려야하지 않을까? 편지로 오고가는 시절이니까 그래도, 이정도이지 않을까?
 
또록또록한 말소리는 어떤 음색일까?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콩스탕스의 목소리는 청량한 목소리일까?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처럼 청아할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매료되니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전직판사처럼, 보이지 않아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생각하기도 싫다. 누군가 읽어주는 '듣는 독서'보단 내 눈으로 '읽는 독서'가 더 좋다. 유명한 성우나 목소리 좋은 유명인이 읽어주는 시낭송보다는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시가 훨씬 더 와닿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책에서>
 
그렇지만 듣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걸 염두에 두었어야지! 그 삶의 감수성이라든가 정신상태 같은 걸 말야.<p.62>
 
 
책이란, 우리가 이 세상과 온몸으로 접촉은 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와 이 세상을 맺어주는 마지막 끈이므로 <p.238>
 
나같이 늙은 사람은 시대에 뒤져 있는지라 때로는 미처 읽을 시간이 없었던, 그러나 그걸 맛도 못 보고 죽기는 실은 그런 작품들이나 고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데...그렇구 말구, 독서라는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미처 다 만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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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마 키 2 - 스티븐 킹 장편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87
스티븐 킹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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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자작나무는 아직도 공포영화를 못본다. 이건 남녀노소 나이여하를 불문하는 것 같다. 스티븐 킹은 처음이다. 그저 나는 약간의 추리가 곁들인 -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소설쯤을 상상했다. 특히 나는 유령이나 귀신 등이 나오는 것은 절대 못본다. 하다못해 납량특집으로 출연진을 놀라게 만들어 그걸 보고 즐거워하는게 목적인 TV의 오락물조차  싫어한다. 저렇게 놀라는 게 뭐가 웃기다고...전설의 고향도 무쟈게 싫어하는 나이다.

아이들 때문에 낮에는 책을 읽을 수 없기에 내가 주로 책을 읽는 시간은 새벽 1시부터 4시 정도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잠들고 난 조용한 밤에 늘 독서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쟝르이다. 절대로 무서운 거 읽지 않는 내가 어쩌다가 새벽에만 듀마키를 읽게 되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듀마키의 해변에서 자라는 그 식물이 서서히 내 심장을 죄어오는 느낌. 아, 정말 싫다.

 

잘나가는 건축없자 에드거가 어느 날 사고를 당한다. 사고의 결과는 끔찍해서 그는 한 쪽 팔을 잃는다. 아내도 잃었다. 에드거는 그 힘든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인들의 천국 플로리다로 요양을 떠난다. 인적 드문 섬 듀마키. 공식적으로 늘 거주하는 사람은 셋. 아흔이 가까운 할머니 엘리자베스- 섬의 주인이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 - 엘리자베스를 돕는 전직 변호사 -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머리 속에 총알을 박고 사는 남자, 그리고, 외팔이 에드거이다.

 

저주 받은, 혹은 신비한 그 섬의 빅 핑크라는 집에서 에드거는 새로운 능력을 발견한다. 도대체 그 천재성은 갑자기 어디서 불현듯 나타났는지...팔을 잃고 그는 천재화가라는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림은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무언가 일어날 듯 일어나지 않는 그 공포. 책을 읽는 내내 느꼈던 그 감정은 어젯밤 드디어 폭발하고 말았다. 그리고, 책을 집어 던지고 가족이 있는 방으로 피신했다.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집에서 키우는 스킨다서스의 줄기가 내 목을 조이는 꿈, 그 줄기에서 뻣어나온 뿌리가 점점 커지는 꿈.

 

인적 없는 그 섬. 밤이면 수많은 조개들이 유령처럼 속삭이는 그 곳에서 에드거는 어떻게 혼자 살 수가 있을까? 그런 강심장이니까 주인공인가?

 

나는 끝내, 2권 엘리자베스가 죽던 사건과 그 이상한 글씨가 나오는 장면에서 책을 집어던졌다. 아마도 나는 이 책을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다. 아, 뭐야! 진짜 너무 무서워.

 

<책에서>

 

"...그동안 부디 당신이 삶을 살고 삶이 당신을 살아갈 수 있기를." <p.151>

 

인간은 발작을 꾸밀 수 없고 산고를 조작할 수 없도다. <p.175>

 

그때 우리가 어땠는지 잊었나요

우리가 아직 일류이고,

입 안 가득 사과를 물고 하루가 열리던 시절

 

시간을 걱정해 봐야 소용은 없겠지만

우리는 소매 속에 속임수를 숨긴 채

위험한 고비들을 넘겼죠

 

목장은 그대로 우리의 일용한 양식이었고

우리한테는 속도계도 필요 없었어요.

얼음과 물만으로 칵테일을 만들던 시절이거든요......

 

더 빠르고 싶지는 않아요.

당시과 함께라면 지금보다 더 푸르지도 않겠어요, 오 당신

당신만이 내 인생의 전성기였으니. <p.219~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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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서] [잼보리 영어동화] 서평단 알림
Splash in the ocean : Student Book 1 + Activity Book 1+ Hybrid CD 1(Paperback) - 신개념 하이브리드 영어동화 잼보리(Jamboree)
언어세상 편집부 지음 / 언어세상(외서)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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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 다닐 때 배웠던 영어는 참으로 입을 떼기엔 역부족이다라는 것을 언제나 실감하게 된다.

아이들 동화책에 나오는 수많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국어시간에 배우는 건 아니므로, "I am tom. Your are a girl."로 시작하는 영어가 실생활의 입떼기와는 거리가 있다.

작년 성탄절 즈음에 아주 예쁜 카페엘 간 적이 있다. 추운 겨울밤, 마당있는 커피숍은 낭만 그 자체였다. 그 앙증맞은 풍경 속에, 나무에 걸린 눈사람 인형.

우리 아이, "Daddy, snowman is on the tree." 라고 말했다나. 남편이 나에게 묻는다. "너, 저 상황을  영작해봐라." 나, 머리 속으로 무쟈게 굴린다. 눈사람이 나무 위에 매달려 있으니까...이러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나에게 영어는 "쉬운 영어로 쉽게 표현하는게 중요한 거야. 그게 실력이거든." 맞는 말씀. 학교 선생님에게 편지라도 보낼라 치면, 우리 아이가 이만저만해서 아프다는 걸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서 노트에 적어보내나 고민하면, 딸아이는 이렇게 말한다. "Mummy, I'm sick. I'm coughing now." 이렇게 표현하면 될껄 symptom이 어쩌구 이런 어려운 영어만 생각나니...

내가 배운 영어는 이랬다. 어려운 단어는 많이 아는데 실생활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영어.

그걸 구거절절 알기 때문인지 요즘 나오는 영어책은 재미있는 것들이 꽤 많다.

[splash in the ocean]에 나오는 수많은 의성어들. 일단 네이버의 영어 사전엔 없는 단어들이 많다. wobble도 flappy도 (flippy도 자세한 설명은 들어있지 않았다) scritchy도 설명이 없는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문맥 상으로 대충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학교에선 배워보지 못한 단어들. 그러나, 영유아의 놀이로 배우는 영어에는 나와있으니 참으로 달라도 많이 다르다.

영어로 말하기에 별 부담이 없는 우리 딸아이에겐 좀 쉬운 편이나 그래도 꽤 재미있어 했다. 영어를 전혀 모르는 우리 아들은 그림만 재미있게 본다. 이런 책들을 어렸을 때부터 접하면 우리 세대가 느끼는 영어 울렁증은 사라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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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3미터
페데리코 모치아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림원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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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신열이 나고 아팠다. 그리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약간의 미열탓인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책 속의 바비와 스텝도  불같이 뜨거웠던 - 영원히 지속될  것 같았던 -  사랑의 끝에서 많은 밤들을 한숨과 아쉬움으로 잠들지 못했을 것이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팠겠지? 지금의 나처럼.

 

책을 읽으면서 오래 전에 보았던 정우성과 고소영의 '비트'를 생각했다. 줄거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오토바이를 타던 잘생겼지만 불량스럽고 우수어린 - 책에서의 표현처럼 "십 점 만점에 칭찬"인 멋진 정우성과 아주 예쁜 고소영은 책 속의 바비와 스텝을 연상케한다.

비교적 최근에 보았던 권상우와 김하늘의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떠올리면서 책을 읽었다. '엄마 친구 딸'인 공부잘하고 착실하고 얼굴도 착한 김하늘과 멋지고 잘생겼지만 학교에서보다 거리에서 더 알아주는 권상우와 그 친구들을 책 속의 등장인물에 짜맞춰가며 읽었다.

 

상류층의 모범생 여자 아이 바비와 거리의 불량 아이 스텝.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아이가 얽히고 설키면서 사랑을 하지만, 나는 수많은 등장인물로 바비와 스텝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게 바로 10대 청춘들의 삶이리라. 정신없는 등장인물과 -기성세대의 눈엔  별반 중요해보이진 않지만  그러나 - 그들에겐 아주 중요한 수많은 사건들. 한 번도 부모의 뜻에 어긋난 행동은 하지 않았을 모범생 바비는 - 그들의 눈에는 - 너무나 멋진 스텝에게 자꾸만 끌린다. 아마도 한 번도 감행하지 못한 일탈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오토바이 타는 솜씨 하나는 가히 예술인 스텝이 지금처럼 변한 계기를 읽으면서 덩치는 어른이지만 아직 아이인 스텝이 감당하기엔 너무 가혹했으리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마 그런 상황이라면 나라도 스텝처럼 변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었을 것이다. 갑자기 어느 날 중요하게 생각했던 세상의 것들이 아무 의미도 없어지는 것. 자포자기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서 스텝은 바비를 만났다. 그러니, 그들은 얼마나 서로를 사랑했을까?

 

'비트'의 강렬함은 있지만 줄거리를 기억못하는 것처럼 내 고교시절도 추억의 한자리로 기억나는게 대부분이다. 아마 갓 10대를 넘겼다면, 이 소설은 더 와닿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시선으로 바비와 스텝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는 이제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일 것이다. 딸아이가 만약 바비라면 나는 과연 스텝에 빠져 있는 걸 이해할까?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아이때문에 지금까지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바비처럼 변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바비가 사랑했던 스텝을, 그 때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그 아이는 백 점 만점에 칭찬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부모의 입장에서 보는 스텝은 백 점 만점에 낙제점일 게 뻔하다.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바뀌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요즘 아이들은  이렇게까지 강하게, 진하게 사랑을 표현하나 싶어 걱정이 앞서게  된다. 

 

어쩌면 "성장한다는 것은 더 이상 시속 200킬로로 달릴 수 없다는 말이야"<p163> 처럼 바비와 스텝 역시 청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랐기 때문에 "난 행복해. 내 인생에서 이렇게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 너는?"    "너무 좋아" ... "손가락으로 하늘을 찌를 정도로?"   "그것보다 훨씬 더, 적어도 하늘 위 3미터에 닿을 정도로."<p508>라고 표현했던 그들의 사랑도 끝이 나지 않았을까? 불같이 뜨거웠던 그들의 사랑도 어른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식어갔다. 그것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리라. 그저 성장해가는 과정의 일부분일지도.

 

책 제목을 처음 접하고 하늘 위 3미터는 무엇을 의미할까를 생각했다. 닿을 듯 닿을 수 없는 거리. 그래서 안타까운 거리라고 생각했다. 책에서처럼 너무 좋아서 행복했던 거리라기 보단, 닿을 수 없기에 안타까운 거리를 작가는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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