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어주는 여자
레몽 장 지음, 김화영 옮김 / 세계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젊은 여성), 가정 방문하여 책을 읽어드립니다. 문학 서적, 문헌, 기타 서적'<p.21>
 
34세의 젊은 여자, 마리 -콩스탕스는 신문광고를 낸다.
 
이렇게 신문광고를 내면, 누가 연락을 해올까? 혼자 책 읽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보통사람은 아닐테고, 사는 게 바빠서 책 읽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전화를 해올까? 우선, 책을 읽고 싶으나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에릭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이거나, 백작부인처럼 기력이 쇠해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우선 책을 읽어 드립니다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드립니다가 아니라 젊은 여성에 방점을 찍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40대의 성공한 사업가인, 너무나 바빠서 책을 읽을 수는 없으나, 교양은 있는 척하고픈 미셸 도트랑 같은 사람. 그래서, 별 제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책 읽어주는 여자]라는 제목을 발음하면 묘하게 에로틱한 상상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어주는 행위를 통해 마리-콩스탕스가 만난 사람들은 일단, 소통이 단절된 사람들이다.
 
14세 소년의 장애아인 에릭은 마리가 읽어준 모파상의 '손'이라는 소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에릭은 마리를 통해 문학에 대해, 또 그 나이의 소년처럼 성에 눈을 떠가기 시작한다. 부끄러운 듯, 흘끔거리는 그 시선에서  그가 이제 세상을 향해 첫 발을 내딛였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듣게 되는 8살 소녀는 부모와의 소통이 불가능하다. 아버지는 아예 부재중이나 마찬가지이고, 엄마도 아주 바쁜 부동산개발 업자이니, 부모와 아이와의 대화통로도 막혀있다. 마리와 아이는 책에서처럼 밖으로 즐거운 소풍을 나서지만, 그게 그만, 그녀가 아이를 납치하기 위한 것으로 오해를 받으면서, 마리는 경찰서로 연행을 당하게 된다.
 
마르크스의 책을 읽어주길 바라는 장군부인. 그리고, 오로지, 마리의 책 읽는 행위보단 마리에 더 집착하는 미셸과 근엄하기 짝이 없는 전직판사가 읽어주길 강요하는 책- 오, 아주 엽기적인, 퇴폐적인 그 내용이란-하며, 마리가 책을 읽어주는 대상은 이렇듯 겉으로는 평범한 듯 보이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어떤 의미에서건 관계에 어려움을 갖고 있는 존재이니, 마리가 책읽어주는 대상이 우리와는 아주 동떨어진 인물은 아니지 않을까?
 
그녀의 책 읽기는 결국, 그녀의 책 읽어주는 행위를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뒤흔들려고 하는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 인물에 의해 중단된다.
그녀의 책 읽어주는 행위 - 음, 어떤 의미에선 순수하다고 보기 힘든 부분도 있지만 - 는 이렇게 해서 끝을 나는데, 과연 그녀는 처음 광고를 냈을 때, 에릭과 같은 혹은 미셸과 같은 아니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읽으며 감탄하는 할머니를, 혹은 사드백작의 내용과 같은 글을 근엄하게 듣는 전직판사와 같은 인물을 만날 것을 기대했을까, 아닐까?  
 
 
아마, 지금 이순간 마리처럼 광고를 낸다면, 또 전화번호나 이메일을 기재한다면 수많은 스팸메일이나 전화에 시달려야하지 않을까? 편지로 오고가는 시절이니까 그래도, 이정도이지 않을까?
 
또록또록한 말소리는 어떤 음색일까? 책 읽어주는 여자, 마리-콩스탕스의 목소리는 청량한 목소리일까? 은쟁반에 옥구슬 굴러가는 목소리처럼 청아할까?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모두 매료되니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전직판사처럼, 보이지 않아서 책을 읽을 수 없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생각을 잠시 했다. 생각하기도 싫다. 누군가 읽어주는 '듣는 독서'보단 내 눈으로 '읽는 독서'가 더 좋다. 유명한 성우나 목소리 좋은 유명인이 읽어주는 시낭송보다는 눈으로 읽어내려가는 시가 훨씬 더 와닿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책에서>
 
그렇지만 듣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걸 염두에 두었어야지! 그 삶의 감수성이라든가 정신상태 같은 걸 말야.<p.62>
 
 
책이란, 우리가 이 세상과 온몸으로 접촉은 하지 못할 때조차도 우리와 이 세상을 맺어주는 마지막 끈이므로 <p.238>
 
나같이 늙은 사람은 시대에 뒤져 있는지라 때로는 미처 읽을 시간이 없었던, 그러나 그걸 맛도 못 보고 죽기는 실은 그런 작품들이나 고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되는데...그렇구 말구, 독서라는 분야에서는 다른 분야에서나 마찬가지로 미처 다 만족시키지 못한 욕구들이 있게 마련이지요.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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