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8학군 페어팩스의 열성 부모들 - 평범한 부모들의 남다른 자녀교육 다큐멘터리
김경하 지음 / 사람in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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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 EBS의 '공부의 달인'을 챙겨서 본다. 공부 잘하는 아이는 역시 다르다. 의지가 정말 대단하다. 부모가 아무리 이끌어 주어도 자발적으로 하고자 하는 아이를 따라갈 수는 없다.  방송을 보면서 그런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없이도 척척 알아서 하는 '될성부른 아이들'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책에서, 미국의 부모들은 아이가 대학을 가든 그렇지 않든 아이의 행복이 우선이지만, 아시아의 부모는 아이의 성공이 우선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아시아의 여느 부모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아이가 성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니 말이다. 그래서인가, 아이가 커 감에 따라 육아의 관심이 점차 교육쪽으로 옮아간다.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이면 사춘기가 온다고 말하는 엄마가 많다. 이 시기가 되면 아이는 더 이상 엄마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4학년 슬럼프 현상'이 그것이다. ... 초등 4학년은 기본 해독 능력을 마치고 공부의 내용으로 이동이 되는 시기이다. 영어 교육을 예로 들어 이야기한다면, '읽기를 배우는 것'에서 '배우기 위해 읽는 것'으로 이동하는 시기이다. 읽고 쓰고 셈하고 이후의 학습에 필요한 도구를 배우는 것이 1학년부터 3학년이라면, 4학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학습내용이 등장한다. 3학년까지 학습 습관이 잡혀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내용 학습을 위한 기본 지식이 다져져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p.288~289>

 

'그래, 엄마가 끌고 가는데는 한계가 있어. 아이가 스스로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게 중요한거야.' 다짐하게 된다.  

 

우리 사회에서 자녀 교육이 어려운 이유는 서로 지나치게 간섭하고 평가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서로의 다양한 결정에 유연해지면 나름 옳다고 생각하는 최선의 방식대로 아이들은 다양하게 성장한다. <p.269>

 

그런 것 같다. 자녀 교육의 어려움이 바로 지나치게 간섭하고 평가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큰 아이를 5살 까지 외국에서 키웠다. 아이가 5살이 될 때까지 나는 아이에게 12시에 끝나는 유치원을 빼곤 무얼 가르치기 위해 어딜 가본 적이 거의 없다. 토요일에 한 번 가는 집 앞 발레 학원이 전부였다. 그래도 나는 조바심 내본 적도 없고 아이 키우는 것에 만족하며 살았었다. 그리고, 한국에 온 지 2년. 학습지보단 내가 가르치는 것에 익숙해서 여전히 한글과 수학은 내가 가르친다. 그렇지만, 자꾸 조바심이 난다. 과연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이제는 학습지를 해야하지 않을까? 좋은 수업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뭘 안 시키는 건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둘째가 유치원에 입학하면서 아이의 친구 엄마들과 자주 만나게 된다. 그러면, 나만 못알아 듣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교구가 좋고, 어떤 학원에 다니는 게 좋고....아, 한국에서 아이 키우는 건 이래서 어렵구나 깨닫게 된다.  좋은 교재, 책, 교구를 보면 다 사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어쩜 그리도 잘 아는지.... 아마 한국은 세계에서 교구와 학원이 가장 다양하게 구비된 곳이 아닐까?

 

언제쯤 뭘 하고 언제까지는 뭘 끝내야 하는 식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아이 키우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미래이기 때문일 것이며, 수많은 경험자가 있어서 섣불리 조언하고 예단할 수 있지만, 누구도 우리 아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아니기에 참고는 될 수 있어도 정답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내 아이를 내가 양육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방향대로 따라하는 경우가 숱하게 많다. 그것은 아마도 아이에게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의 미래가 어찌 될 지 알 수 없기에 느끼는 불안감 때문일 수도, 아니면 아이 키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걸 하지 않으면, 혹시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에 대한 불안감과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하는 자기 만족.

 

경쟁이 심해서 성적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우리 나라 같은 교육환경에서는 아이의 다름이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다. 아이마다 잘 하는 게 있고, 아이마다 좋아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해주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일까?  책 속에 열거된 부모들은 아이들을 신뢰하고 아이에게 적합한 교육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나도 우리 아이들을 무한히 신뢰하고 기다려주는 엄마이기를... 아이와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육아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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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래 : 세상은 백성의 것이다 샘깊은 오늘고전 9
작자미상 지음, 윤기언 그림, 김기택 글, 강명관 해설 / 알마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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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을 무렵, 우리의 정치권은 정당간의 첨예한 대립, 정당내의 계파간 갈등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다.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도 없고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치려는 자도 없었다. 그리고, 전직대통령은 검찰에 불려간 직후였다. 참담하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 홍경래가 그토록 바꾸기를 원했던 세상과 얼마나 합치하는가를 고민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지도자란 진실성, 덕, 좋은 성품을 가진 자라고 한다. 과연 우리는  진실되며, 덕을 갖추어서 낮은 자리에 있는 자를 측은하게 여기며, 좋은 성품을 갖춘 그런 리더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홍경래가 살았던 조선후기에는 아마도 그런 지도자는 많지 않았으리라. 가진 자는 더 갖게 위해 가난한 백성을 더 고난에 빠뜨리기에 바빴던, 양반이 주인인 세상. 어느 특정 지역이기 때문에 제아무리 학문과 무예가 출중해도 인정받을 수 없으며, 왕후장상의 씨는 따로 있어서 선택받은 자들만이 호의호식하는  세상.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도 산 입에 거미줄 칠 수 밖에 없어서 거리로 떠돌거나 노비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세상. 그런 세상에서 희망을 품는다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을 그 시절엔 어쩌면 세상의 틀을 깨는 것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을지도.  홍경래는 벌써 어린 나이에 지혜가 출중하고 배포가 컸고 소망하는 바도 컸다. 그런 그였기에 세상을 바뀌기 위해 도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혜택을 누리는 소수를 제외한 다수의 불만이 크더라도 낡은 제도와 관습을 갈아엎는다는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준비했던 일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틀어지는 것을 보면서,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없이 일찍 치뤄진 거사는 어쩌면 처음부터 그 결말은 이루어지기 어려웠음을 보여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서두에 훌륭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꼭 성공하는 것만이 훌륭하다고 해야 하는가? 실패한 삶은 훌륭하다고 말할 수 없는가에 대해 썼다. 훌륭하다는 것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본다. 훌륭하다는 것은 무엇일까? 성공한 삶이란, 실패한 삶이란 무엇인가? 가까운 우리의 역사를 보더라도 실패한 3.1 운동이 있고, 4.19 민주화운동이 있고, 광주 민주항쟁이 있다. 그것은 모두 위에서 부터 발현된 것이 아니라, 아래로 부터,  평범한 백성이 들고 일어난 사건들이다. 그 실패한 사건들이 결국은 세상을 한 발 더 사람사는 세상. 더불어 사는 세상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한 원천이었을 것이며, 정치인들에겐 백성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일깨워준 사건일 것이다. 그래서, 실패했지만 홍경래의 난을 통해서 우리는 존중받지 못한 삶, 공평하지  않은 사회는 결국은 터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만약 홍경래의 난이 병란으로 끝나지 않고, 성공했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에서 살고 있을까? 글쎄... 퀘스쳔 마크를 찍어본다. 성공한 쿠데타가 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니더란 것을 우린 역사를 통해 비근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책일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었는데 책이 아주 얇아서 적잖이 당황했다. 그래서 아쉬웠지만, 알고 보니 초등학생을 위한 인문서란다. 보통 우리가 말하는 성공했다는 의미에서 많이 비껴나간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기 때문에 실패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홍경래를 아이들이 만난다는 것. 과정보단 결과가 주목받는 사회에서, 모두가 성공을 위해서만 내달리는 지금. 아이들이 결과보단 과정을, 실패했지만 그 속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고, 가치있는 삶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어쩌면 다음 세대는 지금보다 따뜻한 세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 쓰면서도 허황되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본다. 우리의 아이들은  진실되고 덕이 있는 좋은 성품을 갖춘 멋진 어른으로 자랐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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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들의 실패
로저 로웬스타인 지음, 이승욱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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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예전에 천재들의 실패를 읽고 리뷰를 썼더니, 가끔 절판된 책을 사고 싶으니 책을 팔라는 쪽지를 받았다. 거절하기가 난처했다. 그런데, 이 책이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이 되었다. 이젠 쪽지 받을 일 없어 마음이 편해졌다.   

가상의 시뮬레이션과 현실의 차이는 얼마나 큰지를 실감하고 있는 중이다. 실험실에서 행해진 실험이었다면, 컴퓨터 속에서 행해지는 가상현실이었다면 충분히 예측가능했을테고 위험이 닥쳐도 대응했을텐데, 세상 밖으로 나오니 수많은 상호작용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다. 정말 이 고통의 끝은 어디일까? 회복되기는 할까?  미래가 어떻게 될 지 알 수없는 암담함, 두려움이 공포스럽다. 그래서, 이 책이 재출간되었을것이다.  

LTCM의 천재들이 만들어낸 수식의 세계는 아름다워보이지만, 과거의 수치로 계산된 것은 미래를 반영하지 못했다. 점쟁이들이 과거를 맞추긴 하지만 미래를 맞추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의 사태는 LTCM의 몰락을 재생반복, 아니 확대재생산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만큼 닮은 점이 많다.

이전에 쓴 리뷰를 다시 옮겼다.

 
나는 기본적으로 위험회피자이다. 나름 주식도 해보고, 적립식 펀드도 해보고, ELS도 해보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은행의 예금과 기껏해야 CMA나 발행어음정도로 만족하고 있는 상태에서 헤지펀드라니 너무도 나와는 거리가 먼 내용이다. 그래도, 몰라서 못하는 것과 알면서 안하는 것은 차이가 있으며, 무엇보다 모르는데도 무작정 따라하는 것은 더 위험하니 알아서 나쁠 것 없다는 생각으로 읽었다.

 

노벨경제학자(머턴과 숄스)와 최고의 수재들로 구성된 100여명 남짓이 모여 헤지펀드와 기타파생상품을 거래하는 회사,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LTCM).

불과 9개월여만에 45억달러(한화4조5천억규모...아마 1998년 한화기준으론 얼추9조쯤 되지 않을라나)를 날려버린 믿기지 않는 사실을 성장에서 몰락까지 요약한 내용이다.

 

너무나 위험해서 종종 국제적 투기거래로 알고 있는 헤지펀드는 사실 미래의 위험을 헤지(피하기)하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보유하고 있는 자산의 반대포지션을 취하여 위험을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간구된 것이 지금은 위험의 대명사가 되었다.

 

LTCM은 주로 차익거래를 통해서 이익을 실현했다. 시장은 대체적으로 불안정하기 때문에 늘 스프레드(이자율등의 차이)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 차이를 찾아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미국정부에서 발행하는 채권과 러시아에서 발행하는 채권은 위험도가 다르다. 그렇게 나라간의 위험도와 이자율, 환율, 주가 등 정상에서 벗어났다고 판단되는 것을 찾아서 이익을 실현하는 것이다. 수재들이 모여있는 이 집단에서의 거래는 기존의 금융기관보다 더 세련되었고, 더 논리적이었으며, 그들의 차익거래는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그래서, 월가는 그들에게 완전 매료되어, 서로 돈을 빌려주기에 바빴고, 어떻게든 투자에 끼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렇게 완벽해 보이던 펀드들도 아시아발 금융위기(IMF)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저자의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과거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의 파고를 앞으로도 정확히 계속하게 될 것이라고 보장해주지는 않았다....인생이란 논리학자들의 함정이다. 왜냐하면 인생은 대체로 이성적이지만 반드시는 아니고, 일반적으로 상식적이지만 가끔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실제보다 좀더 수학적이고 규칙적으로 보인다. 그 정확성은 그대로 드러나 있지만, 그 부정확성은 감추어져 있었다. 인생의 거친 야성이 잠복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바로 이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고, 그들은 대체로 옳았지만, 늘 옳았던 것은 아니었으며, 그 무시무시한 극단의 위험을 고려하지 못했기에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그 몰락을 막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던 장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하다. 메릴린치,골드만삭스, UBS, 살로먼 스미스 바니,리만 브라더스,뱅커스 트러스트 등의 수장들, 그린스펀, 버핏의 이름까지.. 세계금융을 쥐락펴락하는 인물들이 다 나오니 울렁증이라도 걸린듯 어지럽다. 그런 별들이 모두 모여 머리를 맞대고 LTCM의 파산을 막기위해 필사적이었으니 LTCM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IMF이전에는 세계의 경제가 그렇게 유기적인 관계에 놓여 있는 줄 대부분의 사람들은 몰랐다. 나 역시도...태국의 바트화 폭락이, 러시아의 모라토리움이 우리 경제에 그렇게 충격을 가할줄이야...아마, 그 당시 우리나라 환율이 2000원쯤 하지 않았었나 싶다. 지금도 이 환율을 보면 공포감이 느껴진다.

 

누구나, 적립식펀드에 가입하고, 브릭스니 인도친이니 하면서 해외펀드에도 가입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그러니, 집에서 살림하는 나도, 경제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 하나...재테크의 가장 기본은 "지지 않는 게임을 하는 것, 이익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손실을 보지 않는 것은 더 중요하다는 사실과 역시나 차입거래, 즉 남의 돈은 무섭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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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고 지고! : 자연 끼리끼리 재미있는 우리말 사전 1
박남일 지음, 김우선 그림 / 길벗어린이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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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말이 하도 예뻐서 아이들보다 제가 더 호들갑을 떨었습니다. 이제 다섯 살인 아들에게 읽어주니 슬그머니 자리를 떠버립니다. 당연하죠. 다섯 살 아이에겐 별 감흥이 없겠죠. 

하지만, 저는 단어 하나 하나 문장 하나 하나를 곱씹으며 흐뭇해하며, 어머 이런 말도 있었네 하며 읽게 됩니다.  

해돋이 때 처음 솟는 가녀린 햇빛은 햇귀. 수많은 화살이 날어오듯, 내쏘는 햇빛은 햇살. 사방으로 확 퍼지듯 넓게 뻗치는 햇살은 햇발. 작은 햇귀가 쑥쑥 자라나 햇살이 되고, 햇살이 부채처럼 펼쳐져 눈부신 햇발이 되지. 네 꿈도 햇발처럼 활짝 펼쳐 봐! <p.9>  

초승달이 조금 자라 조각달 되고, 조각달이 더 자라 반달 되고....달도 ' 한 달'을 재는 시계! 달이 돌리는 시계는 '음력', 해가 돌리는 시계는 '양력' <p.17>  

오랜 가뭄 끝에 비가 내렸어. 그럼, 다디달게 느껴져서 단비. 모낼 무렵에 고맙게도 비가 내렸어. 그럼, 꼭 필요할 때 내렸다고 목비. 바쁜 봄에 내리는 비는 비를 맞더라도 일하라고 일비. 덜 바쁜 여름철에 내리는 비는 집에서 낮잠이나 자라고 잠비. 추수 끝난 가을에 내리는 비는 떡 해 먹는다고 떡비. 때맞춰 내리는 비는 하늘이 주는 축복이야. <p.28~29>

아, 이렇게 예쁘게 설명하는 사전, 이 세상에 또 있을까요? 이렇게 고운 단어가 있는데, 그동안 잊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해와 달과 별, 바람과 구름, 비와 눈, 그리고 들과 강과 바다에 대한 아름다운 우리 말들을 들여다보면서 잊었던, 몰랐던 단어들을 배웁니다. 목비, 잠비, 일비, 떡비는 처음 들어보는 비이름입니다. 

이제 일곱 살인 우리 딸아이가 이렇게 아름다운 말들을 알게 된다니 다행입니다. 아이가 책에 나오는 예쁜 우리 말을 자연스럽게 말하는 날이 오리라 생각하니 뿌듯합니다.  아직은 우리 아이보다 제가 더 좋아하는 책이지만 언젠가 알게 되겠죠? 새털구름, 양떼구름, 작달비, 채찍비, 도둑눈, 설밥, 가람, 볕뉘, 선바위와 너럭바위, 황소바람, 건들바람, 남실바람 따위를 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느낀거지만 우리 말은 배워도 배워도 끝이 없는 듯 합니다. 그리고, 우리말이 아무리 곱고 예뻐도 사용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리겠죠. 안타깝지만, 국어보다 영어가 더 중시되는 지금의 상황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고마운 책입니다. 첫번째 사전인 재고 세고! 수와 양에 대한 우리말 사전도 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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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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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를 읽은지 한 달도 넘었습니다. 이상하게 책 읽은 느낌을 적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건 엄마에 대한 생각들이 다들 대동소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 한국경제신문에서 신경숙님의 인터뷰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모두에게 '엄마'는 성역이다. 하지만 늘 굳건하게 우리를 돌보고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성역도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늘 잊혀진다."

 

이제 내일 모레면 일흔이 되는 엄마를 아직도 수퍼우먼쯤으로 여기며 영원히 내 옆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 오해는 지금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입니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요. 엄마없는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신경숙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존재들에게 예의를 차리느라고 가까이 있는 존재들에게는 오히려 무심합니다. 저만 해도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라 치면 '다음에'라고 미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순간이 다음인데, 약속한 '다음'이 과연 언제나 다시 오겠어요?....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못해서 대신 어머니를 내려보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엄마를 고단하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신을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피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고, 소위 잘나가는 때에는 신을 잊었다가도 어렵고 힘들때 신에게 간절히 기도 드리며 매달리는 것처럼. 힘들고 지칠 때 찾게 되는 존재, 나를 위해서는 언제나 기꺼이 '당연하게'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존재가 엄마이겠지요. 나는 엄마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설 속의 가족은 지금의 나는 엄마의 사랑없이는, 희생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 깨닫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족은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엄마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엄마 없이는  내가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것을.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 주는 공황을 느낍니다.  내 삶에서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지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소설 속의 가족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역시나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가족은 엄마의 고단한 삶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엄마만 돌아와준다면 엄마의 희생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하겠다고...고맙다고 말하겠다고...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떠나는 즐거운 기차여행에서 나는 주책없이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전에 엄마에게 날렸던 비수같은 말들을 기억해냅니다. 만약, 내 딸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를 상상해봅니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아파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친정엄마는 어땠을까? 죄송하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친정엄마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제 엄마가 힘들 때, 외로울 때 그 하소연을 들어주는 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했던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경숙작가는 인터뷰의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시대가 갈수록 잔인하고 흉포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럴 때일수록 가족끼리 보듬어야 하는데, 어머니의 마음으로 감싸고 보듬어야 하는데, 사회가 그러질 못한다고.  상황이 나쁠수록 극단적인 말을 지양하고, 애를 써서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야한다고.

 

마음이 고단할 때, 힘들 때, 아플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 엄마.  

엄마에게 말할 순 없겠지만,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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