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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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를 읽은지 한 달도 넘었습니다. 이상하게 책 읽은 느낌을 적기가 힘들었습니다. 그건 엄마에 대한 생각들이 다들 대동소이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제 한국경제신문에서 신경숙님의 인터뷰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자는 이렇게 썼습니다.  "모두에게 '엄마'는 성역이다. 하지만 늘 굳건하게 우리를 돌보고 지켜줄 거라고 믿었던 성역도 언젠가 우리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늘 잊혀진다."

 

이제 내일 모레면 일흔이 되는 엄마를 아직도 수퍼우먼쯤으로 여기며 영원히 내 옆에 존재할 거라고 믿는 오해는 지금도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으로는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는 진실입니다. 받아들일 수도 없고요. 엄마없는 삶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신경숙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멀리 있는 존재들에게 예의를 차리느라고 가까이 있는 존재들에게는 오히려 무심합니다. 저만 해도 엄마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라 치면 '다음에'라고 미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순간순간이 다음인데, 약속한 '다음'이 과연 언제나 다시 오겠어요?....신은 모든 곳에 존재하지 못해서 대신 어머니를 내려보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말은 감동적이기도 하지만 엄마를 고단하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는 신을 대신해서 우리를 보살피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즐겁고, 소위 잘나가는 때에는 신을 잊었다가도 어렵고 힘들때 신에게 간절히 기도 드리며 매달리는 것처럼. 힘들고 지칠 때 찾게 되는 존재, 나를 위해서는 언제나 기꺼이 '당연하게'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생각되는 존재가 엄마이겠지요. 나는 엄마를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설 속의 가족은 지금의 나는 엄마의 사랑없이는, 희생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다는 것을 이제야 -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 깨닫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가족은 엄마의 부재를 통해서 엄마의 존재를 깨닫습니다. 엄마 없이는  내가 할 수 있는게 거의 없다는 것을. 엄마의 부재가 가져다 주는 공황을 느낍니다.  내 삶에서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많은 부분을 차지했는지 어떻게 그걸 모를 수가 있을까요? 그러나, 나는 소설 속의 가족을 비난할 수가 없습니다. 나도 역시나 그렇게 살았으니까요.  가족은 엄마의 고단한 삶을 이제야 이해합니다. 그리고, 간절히 바랍니다. 지금 엄마만 돌아와준다면 엄마의 희생이,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말하겠다고...고맙다고 말하겠다고...

 

친정엄마를 만나러 가는 기차에서 이 책을 읽었습니다. 아이들과 같이 떠나는 즐거운 기차여행에서 나는 주책없이 계속 눈물을 흘렸습니다. 예전에 엄마에게 날렸던 비수같은 말들을 기억해냅니다. 만약, 내 딸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를 상상해봅니다. 상상만으로도 나는 마음이 아파서 살 수 없을 것 같은데,  친정엄마는 어땠을까? 죄송하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친정엄마를 이해하게 됩니다. 이제 엄마가 힘들 때, 외로울 때 그 하소연을 들어주는 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했던 엄마도 엄마이기 이전에 여린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신경숙작가는 인터뷰의 말미에 이렇게 말합니다. 시대가 갈수록 잔인하고 흉포해지는 것을 보면서, 그럴 때일수록 가족끼리 보듬어야 하는데, 어머니의 마음으로 감싸고 보듬어야 하는데, 사회가 그러질 못한다고.  상황이 나쁠수록 극단적인 말을 지양하고, 애를 써서라도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야한다고.

 

마음이 고단할 때, 힘들 때, 아플 때 제일 먼저 찾는 사람, 엄마.  

엄마에게 말할 순 없겠지만, 엄마, 엄마가 내 엄마여서 얼마나 고맙고 다행인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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