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스모그 -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기
데이비드 솅크 지음, 정태석 외 옮김 / 민음사 / 2000년 10월
평점 :
절판


작정하고 논의를 들어갑니다.  (@u@)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을 두고 "정보의 바다"라며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무한 정보의 바다에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가 있으며, 그것으로 무엇이든 다 만들 수가 있습니다. 간혹 티비로 보여지는 사건사고속의 뉴스는, 누구누구가 인터넷상에서 자료를 구해서 폭탄을 만들어 폭발을 시켰다느니 창고에 완성품의 탱크가 있다는 등의 이야기를 흘려 보낸다. 이렇게 보여지는 모습에서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절대시하게 되었으면, 어느 노랫말 처럼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환상에 사로잡혀져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누군가로부터 시작된 일방적 사고가 장미빛 미래로 비쳐줬기 때문입니다.

"일단 당신이 커뮤니케이션의 형식을 비동시적으로 만든다면, 또한 다양성과 선택 가능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 (정보)고속도로는 마술처럼 묘사되는 능력들을 가능하게 할 것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삶을 더 쉽게 좋게 만들기 위해 작동하는 기술을 대변한다.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리키기만 해라. 그러면 빠르게! 당신은 그것을 얻을 것이다(152쪽)"

하지만 지은이는 이러한 장미빛 미래에 딴지를 건다. 그는 세상 사람들이 한면만 본다고 안타까워한다. 그가 이렇게 안타까움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그의 경험적 세계관에서 축출된 사고에서이다. 그는 정보가 힘이라는 생각에, 정보기기 판매업자의 "정치, 문화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의 핵심 내용을 문서 형태로 제공하는 연방 뉴스 서비스Federal News Service(18쪽)"를 받지만, 그가 원하는 만큼의 만족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원하는 기사를 스크렙 하기 위해서 간단한 버튼 조작을 하였지만 "한 문단에 매달리고 있는 동안 프린터는 12개의 사본을 인쇄해 놓(20쪽)"았습니다. 즉 기기는 "내 능력이 자신의 성능과 같아지기"로 설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조금의 편리성을 위해서 기기를 설치 해 놓았지만 사람이 읽어 내려가는 속도보다 더 많은 정보의 양의 인쇄하는 프린터는 또다른 스모그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지은이는 이러한 경험으로 인하여, 과연 인터넷(주1)이라는 무한 정보가 가지는 질적인 면이 무조건 옳은지에 대한 검증을 합니다.(주2)

우리는 지금 정보 비만이라는 경고에 직면하게 되었다.

우리는 무엇을 데이터 스모그라 하여야 하는가? 이런 점에서 지은이는 조금 어슬프게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예기치 못했고 환영받지 못하는 우리 주변 환경"="정보 시대의 유해한 쓰레기들을 표현하는 것(33쪽)"이라 합니다. 즉 예기치 못했고 환영받지 못하는 정보 시대의 유해한 쓰레기들을 데이터 스모그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보가 일순간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닙니다. 또한 예전부터 정보는 존재해 왔으며 우리에게 모두 환영을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지은이가 말하는 정보 시대의 유해한 쓰레기들을 표현한다는 자체는 지극히 주관적이며, 정보 시대라는 말도 그럴듯한 이미지의 포장에 불과합니다. 정보가 어느 한 순간에 소중하지 않거나 힘이 안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예전과 지금은 다른 점은, 거시사에 대한 논의를 하던 이론가들이 미시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혹은 물건을 하나더 팔아먹기 위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정보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으며 이러한 접근이 쉽다는 점입니다. 즉 정보의 쉬운 접근성이 데이터 스모그를 만들어 낸다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쉬운 접근성에는 쉬운 창조성을 포함됩니다. 인터넷은 상방향성을 지향하면서, 스스로를 창조자 내지 발견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문단에 등단하거나 높은 창작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 편안하게 적으면 되고, 아름답다고 여겨지는 장면이나 자연을 담아내기 위해서는 고가(高價)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간의 용돈이 있으면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여 누구든지 사진을 찍을 수가 있습니다. 즉 쉽게 표현하는 자유는 엄청난 양의 정보를 생산하게 되었으며 우리들에게 기준점을 제시해주지 못하는 정보의 홍수 속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옛날에는 통제로서의 정보가 악용(?)되었다면-이는 권력자들의 통치 수단으로 보는 단편적 세계관입니다- 지금은 누구든지 정보를 표현하게 하여 스스로를 정보 속에 가두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주3))

옛날에는 정보에 다가가기가 쉽지 않았거나 이렇게 표현의 욕구가 충만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스스로를 드러내는 문화가 크게 자랐다. 즉 누구든지 작가가 되어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표현의 자유는 다양성이라는 일면을 얻었지만 어느 기준점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표현을 하되, 그 표현을 평가하는 기준이 없는 것입니다. 글을 쓴다는 행위는 문단에 등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지워버렸으며, 사진사는 비싼 기계로써 사진을 찍어야만 되는 것이 아닌 아담한 현실을 아름답게 포착해 놓아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되는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정보의 양적인 생산이 데이터 스모그라는 이면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앞서서는 평가 기준으로서의 정보를 말하였지만 그 가치의 진실성에 대한 점으로 본다면 분명 데이터 스모그를 읽어 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지은이는 이러한 정보를 읽어내는 눈을,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에 맡겨버립니다.

"궁극적으로 무엇이 신호의 자격을 갖췄고 또 무엇이 단지 잡음일 뿐인지 결정하는 것은 주관적인 경험이다. 각 개인들이 무엇이 잡음인지를 판단해야 하며, 개인적인 여과 기제를 고안해야 한다. 그러나 탐구하지 않는 사람은 확실히 스모그에 지속적으로 기여하고 또 그 속에서 나머지 사람들과 함께 질식될 것(236쪽)"이라는 판단은 너무나 쉽습니다. 모든 것은 주관적인 판단이라고 말하는 지은이의 냉철한 시선은 정보의 진위 여부와 어느 것이 사회적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한 평가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는 결론을 내립니다. 즉 지은이는 너무나 많은 정보의 표현과 그 속에서 가치 여부를 몰라서 방황을 한다는 명제에서 비켜서 있습니다. 그가 보기에는 수많은 정보를 스스로의 주관적 판단으로 취득을 하면 그만이겠지만-여기에는 정보가 양적으로 팽창한 상황을 나타낼 뿐이다-지금의 상황은 그 금(線)을 넘어섰다. 내 주관적 판단으로 정보를 골라내지만 그것의 진실성에 대한 의문, 가치에 대한 평가를 내리지 못하기에 얼마만큼의 유용성을 지는가는 또다른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은이의 세계관은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으로 보았습니다. 연방 문서 서비스를 쉴새 없이 해 주는 기계적 가치는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흘려보내는 정보를 프린터합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공인들이 펼치는 정보에 대해서 상당한 신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앞서서 말했지만 누구나가 작가인데, 그 신뢰성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너무 욕심을 부리지 말고, 원하는 것만 골라라고?

지은이는 이러한 대안으로, 사람들의 도덕성에 호소를 합니다. "정보화 시대에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장황하거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정보를 사회로 뿜어내는 사람들은 정지 신호에서 자동차 문을 열고 도로에 쓰레기를 내버리는 몰상식한 사람"이기에, 이렇게 하지말자 합니다. 그는 획일성과 통일성으로 다양성을 죽일려고 하는가? 정보화 시대의 명제는 일방적인 정보의 흐름에서 상방향성을 지니게 된 것을 말합니다. 누구나가 정보 제공자가 될 수 있으며, 이를 가공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가공하는 방법은 하나의 수단이며, 제공자의 취향에 따라서 다양하게 표현될 수가 있습니다. '앞뒤를 가리지 않고 장황하거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정보'만 없어진다면 데이터 스모그가 사라지게 된다고 정말로 믿는다면 그는 순진합니다.

조금 더 진지하게 다가가서 넓은 시야로 깊은 성찰을 이루어내었으면 하는데, 지은이의 고찰은 강물위의 배처럼 상당히 붕 떠 있는 느낌입니다.

지은이는 몇 몇 대안을 내어놓지만 진부하기만 합니다.(231쪽 ~263쪽)

<끝>

주1)지은이는 인터넷이라는 특정한 매체를 선정하여 데이터 스모그 현상을 분석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위의 인터넷이라는 설정은 잘못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무한 정보의 인터넷에 처한 저의 상황으로 보아서는 이 보다 더 적절한 환경이 없을 듯 하여, 재설정을 하였습니다.

주2) 연인간에 헤어지면, 많은 아쉬움도 남겠지만 그 사람의 하나하나가 미워보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즉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에 우리는 또다른 면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지은이 역시, 누구보다 먼저 정보에 대한 힘을 믿었으며, 여기에 환상을 가지고 접근한 다음에 콩깍지가 벗겨진 것입니다. 고슴도치의 사랑처럼 너무 가까이 다가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경우라 하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은이 세계관도 한 면을 지향한다고 인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도 정보의 환상과 데이터 스모그를 스스로 조화시켜, 자기만의 색깔로 만들어 내는 작업을 하시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주3)위의 논의는 상당히 무서운 표현입니다. 어떠한 논증도 없이 저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정보를 통치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글쓰기는 분명 멀리해야 할 부분입니다.


덤입니다 ^^;

첫째 : 지은이는 이러한 테이터의 스모그 현상이 이루날 수 있는 이유는 2*4효과(124쪽)로 설명을 하지만 조금은 부족하다. 이런 표현을 조금더 쉽게 설명을 나름대로 설명을 한다면 '티핑(Tipping :균형을 깨트리는 것)포인트'라는 개념을 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티핑포인트 가기 ->(http://www.aladin.co.kr/catalog/book.asp?UID=1142832195&ISBN=8988295528)

둘째 : 데이터 스모그에 대한 환상이 나와 지은이 사이에 조그마한 강이 있음을 느낀다. 내 관심사가 인테넷이기 때문에 여기에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지은이는 아직 이러한 기술적인 발전의 시기에 놓여져 있지 않고 선상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인터넷보다는 일상사에 피어나는 스모그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너무나 깊은 강을 만들어 내며, 스스로 인터넷에 피어나는 데이터 스모그를 정리하도록 만든다.

우리앞에 펼쳐진 인터넷은 무한 정보의 양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인터넷상의 도메인 갯수를 80억개로 추정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이 보다 더 많이 늘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랭키닷컴 기준에 의하면 인터넷뉴스 사이트가 77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종합지나 스포츠 신문, 컴퓨터 관련 신문은 제외한 경우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루에 몇 개의 신문을 보면서 정보를 얻고 있나요? 다른 신문을 보지 못해서 불안하지는 않으신가요?

지금 인터넷을 통해 티핑 포인트를 먼저 설명해 보겠습니다. 싸이월드나 도깨비 뉴스, 엠파스 블로그 등이 엄청난 잠식력으로 성장을 하였습니다. 싸이월드는 수익 모델이 없다하여 한동안 전전긍긍을 하였지만 네이트와의 합병을 통해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도깨비 뉴스는 기존의 식상한 신문에서 벗어나 참신하고 발빠른 뉴스를 보도하여 불과 생긴지 반 년(年) 정도 밖에 되지가 않았지만 순위 200 안에 들었습니다. 엠파스의 블로그는 용량의 무제한으로 인하여, 네티즌들은 벽이 없는 블로킹blocking을 통해 무제한 스크렙을 한다. 즉 개인의 블로그를 만든 다음에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스크렙을 하는 것이다. 싸이월드의 인기나 도깨비 뉴스의 잠식율은 분명 일정 수준의 곡선을 그리다가 기하급수적(-이 부분이 티핑 포인트가 된다)으로 발전한 상황이다. 엠파스의 블로그는 처음에는 많은 정보가 돌아다니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중복-스크렙 기능-됨이 넘쳐난다.

아래의 그래프 참조

데이터 스모그

 

 

 

 

 

 

 

 

위의 그래프에서 보여지듯이 일정 기간 동안 그 변화는 미비하지만 티핑 포인트 지점을 지나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즉 시간과 정보의 관계가 정비례 관계를 넘어서 버리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변변히 일어나고 있으며, 개인의 성장이나 성숙과도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다시 정리를 하자면, 싸이월드와 도깨비 뉴스가 그들만의 차별성으로 존재한다면 그 가치는 인정되며, 높은 정보를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엠파스의 블로그 처럼 무제한적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우리는 어디에 접속을 하여 자기만의 공간을 마련하거나 정보를 얻어야 할 것인지 고민을 하게 된다. 아울러 수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더미에서, 급기야 손이 떨리는 불안 증세를 느끼게도 될 것이다.

예전에도 데이터 스모그는 존재했다. 하지만 지은이의 말처럼 주관적인 판단으로 선택이 가능했다. 여기에는 정보에 대한 가치가 묵시적으로 인정을 받았으며, 상방향성이 아닌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정보를 얻든 그것은 소중한 가치로 인정받을 수가 있었다. 이를 상업적으로 활용한 사람은 돈을 벌었으며, 공부를 한 사람든 학자가 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정보 제공자라는 점이다. 과연 정보에 대한 가치 평가를 어떻게 내리는가와 수많이 접하는 정보를 어떻게 선택할 것이라는 갈등에 놓여져 있다라고 보여집니다.

지은이의 기여는 "데이터 스모그"라는 실체를 알린 점에서는 분명 큰 기여를 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7여 년 전(前)의 정보는 그 가치를 많이 잃었다고 보여집니다. 데이터 스모그에 대한 명확한 실체를 다시 설정하고 이를 극복하는 대안을 고민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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