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번은 서양의 역사를 면밀히 연구한 끝에, 유럽이 종교적 자유의 정립을 위한 건전한 모델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징기스 칸의종교는 우리의 외경심과 찬송을 받아 마땅하다"라고, 《로마 제국 쇠망사》의 마지막 권에서 그는 과감하게 주장했다. 기번은 몽골의 진중에서는 다른 종교들이 ‘자유와 조화‘ 속에서 공존한다고 설명했다.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크 야사 Ikh Yasa (위대한 법률)를 준수하는 한, 칭기스칸은 ‘가장 적대적인 부족의 예언자와 성직자의 권리를 존중했다는것이다. - P15

몽골이 벌인 정복전쟁의 참상은 여러 책과 영화에서 잘 다루어졌으나,
법률 제정가인 칭기스칸의 역할은 대체로 보아 별로 탐구되지 않은 상태다. 생애 만년에 그는 온 세상의 종교 지도자들을 자신의 야영지로 불러들였다. 이는 서로 반목하는 종교들 사이에 지속적인 평화를 수립하기위한 계획의 일환이었는데, 사실 여러 종교 사이의 호전적인 적대감이 인류를 크게 괴롭히고 있었다. 그는 원래 자신의 영적 정수를 찾기 위해 종교에 귀를 기울였으나 이것이 결국에는 사회 내에서 종교가 수행하는 역할을 이해하는 탐구과정으로 확대되었다. - P23

그는 오늘날 글로벌한 세상에서 우리가 겪는 것과똑같은 문제를 많이 겪은 통치자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적 다원주의는 자주 극단화와 갈등을 빚고 있다. 신앙의 자유와 광신자들의 행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 것인가? 이런 광신자들이 민간 사회의통제에서 벗어나 사회의 주인이 된다면 그 다음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어떻게 해야 한 종교의 추종자들이 다른 종교의 신자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서로 자신만이 유일하게 참된 종교라고주장하며 경쟁하는 종교들을 사회 내에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게 할수 있을까? 종교의 한계는 무엇인가? 이런 문제들에 답을 찾기 위한 칭기스 칸의 탐구는 800년 전 못지않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급한 사안이다. - P24

칭기스칸은 처음에는 정주 문명의 종교 기관들을 매우 회의적인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거대한 사원, 엄청난 부, 화려한 의식 행렬 등을 자랑하는 대규모 종교들은 가짜에 불과하다고 의심했다. 그렇지만 이 이상한 기관들의 지도자들이 하는 말은 듣고 싶어 했다. 많은 저술을 남긴 13세기의 학자 겸 연대기 작가 바르 헤브라이우스Bar Hebraeus는 이렇게 썼다. 칭기스칸은 ‘고매한 현자들‘을 소환하여 여러 언어로 된 그들의 성스러운 경전을 읽어달라고 했고, 그런 다음에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들의 종교를 저마다 설명하고 토론하게 했다. 수도자, 신부, 점성술사, 마법사, 예언자, 연금술사, 점쟁이, 현자, 점술가, 허풍선이 들은 몇 달에 걸쳐넓은 강을 건너고 높은 산을 지나 먼 곳의 국경을 통과하여 마침내 그의유목 캠프에 도착했다. - P40

산간의 숲 지대인 캉가이는 풍성한 생명의 어머니였지만, 수목의 생장한계선 위의 높은 산간 지대는 커다란 암석과 험준한 절벽이 영원한 눈과 얼음을 헤치고 비죽 튀어나와 있는, 어떤 생명도 살지 못하는 땅이었다. 이런 남성적 요소가 대지에 딱딱한 뼈를 제공했다. 여성적 숲과 남성적 암벽은 함께 모든 존재의 기원을 형성했다. 그것들은 남성, 여성, 불멸이라는 3대 영혼으로 구성된 우주를 형성했다. 그리하여 모든 피조물은두 개의 필멸하는 영혼과 하나의 불멸하는 영혼을 갖게 되었다. 몽골의신앙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뼈에 남성적영혼을 살과 피에 여성적 영혼을, 그리고 마음과 심장에 불멸의 영혼을지니고 이 세상에 태어난다. - P61

부르칸 칼둔의 협곡과 암석 노두는 그에게 피신처를 제공했고 동시에 그가 공포, 커다란 희망, 소망, 욕망을 은밀하게 속삭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주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어린 소년과 산 사이의 친밀감이 부족의 남자 친척들에게서 얻지 못한 유대감을 대신하게 되었다. 그친척들은 그를 거부하고 스텝에서 굶어 죽도록 내다버린 매몰찬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산은 믿을 만한 친구이자 안내자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신임하거나 믿는 일이 별로 없었고, 그 대신 그가 사랑하는 부르칸 칼둔과 함께할 때 가장 편안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원칙, 가장 중요한 관계가 그 산의 등성이, 숲, 그림자에서 생겨났다. - P66

서쪽은 케레이드족이 통제했고, 동쪽은 타타르족이 버티고 있었다. 두 부족은 과거에 여러 번 서로 합쳤으나, 케레이드족이 번번이 그 결합을 깨트리고 나왔고 이제 두 부족은 철천의 원수 사이였다.
타타르족은 아버지 예수게이를 죽인 데다 자신의 부족에 치명적인 적이었으므로, 테무진은 과거에 케레이드족의 통치자인 토르길 옹 칸에게충성을 바친 집안의 내력을 상기시키면서 그에게 접근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손쉬운 선택이었으나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타타르족과 케레이드족은 서로 비슷한 생활방식을 영위했지만 한 가지뚜렷한 차이점이 있었다. 타타르족과 기타 동쪽의 부족들은 중국을 적절한 문명의 모델로 숭배한 반면, 케레이드족은 서쪽을 지향하면서 셈어에서 기원한 알파벳을 사용하여 글을 썼고 기독교를 공식 종교로 받아들였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여 케레이드족에게 붙었을 때, 그는 이런 차이점을 알지 못했거나, 알았더라도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흘러가면서 그 선택은 그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가 창건한 국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 P78

스텝 부족들은 암석이나 산등성이에 비문을 새김으로써 하늘과 소통했다. 비문은 하늘과 햇빛을 향해 노출되어 있어야지, 마치 수치스러운 비밀이나 되는 양 건물 내부나 책갈피 사이에 숨겨져 있어서는안 되었다.
국가가 후원한 공식 기념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6세기경에 산스크리트어와 소그디아어로 기록된 비문이다. 전자는 인도의 성스러운 언어였고, 후자는 페르시아와 연관된 교역의 언어로 셈 알파벳을 사용하는문자였다. 이 두 언어로 기록된 석비는 기단을 이루는 거북-용의 등 위에 올려져 있는데, 이 동물은 국가의 힘과 권위를 상징했다. 원래의 장소에서 옮겨져 지금은 체체르레그의 산간 마을에 모셔진 이 석비는 찬란한 - P92

불교 사원의 안마당에 평온하면서도 장엄한 모습으로 서 있다. 이 사원은 20세기에 몽골의 많은 종교 건축물을 파괴한 사회주의의 광풍을 운좋게도 모면했다. 이 비석이 박물관으로 옮겨져 1400년 동안이나 살아남은 메시지를 보존하여 그 자체가 역사가 되었다는 사실도 그것이 보존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비석에 중국, 인도, 페르시아, 투르크, 셈의 여러요소가 혼재한다는 사실은 테무진 탄생 이전 500년 동안 스텝 지역에번창했던 문화가 아주 복잡하고 다원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최초의 비문들을 가리켜 ‘법률의 돌들(놈 상nom sang)‘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놈nom은 법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노모스nomos에서 유래했고상 sang은 돌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상sang에서 나온 것이다. 몽골족은이 어구를 ‘도서관‘의 의미로 채택했는데, 현대 몽골어에서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비문은 그 비석의 건립을 후원한 칸의 신성함을 확증한후, 그의 통치에 역사의 축복과 영계의 승인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 P93

투르크의 텡그리는 테무진이 텡게르라고 부르며 숭배했던 것과 똑같은하늘이었다. 우주의 절대자이며 초연하고 신성한 존재인 텡게르는 인간의 일상사에 거의 개입하지 않는다. 텡게르는 지상의 어떤 사람에게 사람들의 세속적인 일들을 대신 관리하라고 위임하는데, 그가 곧 칸이다.
사람들은 통치자의 행동을 통해 신성한 존재의 생각과 말씀을 알 수가있다. 텡게르는 통치자로 지명된 칸의 권력을 강화해줄 필요가 있을 때에만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톤유쿠크의 기념비 비문은 예전에 투르크족이왜 그토록 불운을 겪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면서 하늘이 틀림없이 이렇게 말했다고 주장한다. "나는 너희들에게 칸을 주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그 칸을 버렸다." 비문은 그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사람이 아무도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 P100

테무진은 스스로 판단하여 어떤 조언은 받아들일 수 있고 또 어떤 조언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비석의 정신적 가르침, 예를 들어 하늘과 땅의 중요성, 부족 간 단결의 필요성, 도시가 미치는 부정적 영향 등에는 동의했지만, 투르크족의 고립주의와 반외세 정서는 거부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스텝 부족들이 먼 땅에서 수입하는 제품과 물품 없이는 훌륭한 생활을 영위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군사력과 전투에서의 승리를 바탕으로 제국을 건설했지만, 제국을 지키고 확장하기 위해서는 교역을 장려하고 촉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103

자주 바뀌는 테무진의 소규모 추종자 부대는 자발적으로 그에게 합류한사람들과 포로로 잡힌 사람들이 적당히 뒤섞인 부대였다. 그들은 우량카 - P108

이, 타타르, 타이치우드, 잘라이르, 바룰라스, 올쿠누드, 콩기라드 등 여러 씨족과 부족 출신의 목축꾼과 사냥꾼으로 이루어진 혼성 부대였다.
그들은 스텝의 다인종적 단면을 보여주는 부대인 만큼 다양한 정신적·종교적 관습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들은 주변 문명들의 여러 주요 종교에서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그런 종교들의 믿음과 실천에다가 그들 자신이 판단하여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애니미즘의 믿음을 가미했다. 이 무렵테무진의 추종자들은 현대적 의미의 세계 종교-불교, 이슬람교, 도교, 기독교의 진정한 신자라고 할 수는 없었으나, 스텝 사회는 그들 주변에까지 전파된 이런 종교들의 여러 요소를 흡수했다. - P109

소그디아인은 다른 많은 신앙과 접촉함으로써 다양한 종교들과 교류하고 또 그들 모두와 상업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그디아인은 ‘빛의 종교‘를 신봉했는데, 역사적으로는 그 종교의 예언자인 마니의이름을 따서 마니교라고 불렀다. 오늘날 영어를 비롯한 많은 언어권에서
‘마니교적인 Manichaean‘이라는 단어는 경멸어로 사용되며,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어 바라보는 편협한 세계관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 용어는 세상을 오로지 선과 악의 단순한 관점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모욕하는 - P132

언어로 널리 사용된다. 또 때때로 사람들이 잘못된 혼동을 일으켜 ‘마키아벨리적 Machiavellian‘이라는 단어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긴다. 최근에는 모든 유형의 종교적 근본주의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이나, 비양심적이고 음험하고 사악한 정치적·종교적 행동이나 기업 활동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원래 마니교는 아주 생동감 넘치면서도 독특한 종교였다. - P133

마니교 신자들은 고대 바빌로니아의 사상을 빌려왔다. 즉, 땅은 ‘물의 바다‘이고, 하늘은 ‘빛의 바다‘인데 그곳에는 ‘지식의 신‘이 산다. 위구르족은 통상적으로 자신들의 종교를 ‘세계 바다 world Ocean‘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리스어로는 탈라사 Thalassa, 산스크리트어로는 사무드라Samudra, 투르크어로는 텡기스, 몽골어로는 달라이라고 칭한다. 그들의 종교가 모든 예전 종교들의 강을 하나의 커다란 바다로 포섭했으므로그렇게 부른 것이다.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합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위구르족은 마니교의 신앙을 모든 지식의 강들이 유입되는 커다란 ‘세계바다‘에 비유했다. ‘세계 바다‘는 순수, 지식, 힘, 평화, 산호와 진주 같은바다에서 나오는 구체적인 보물을 상징했고, 바다 자체의 초자연적 힘을구현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 P138

한 기사에 따르면 위구르족은 ‘강인하고 정복될 수 없는‘ 부족이었는데, 왕자들과 평민들 사이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 P141

그러나 마니는 우수한 엘리트의 존재를 믿었고 붓다, 예수, 그 외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가르친 평등사상은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선택된소수 엘리트가 일반 대중보다 더 우수하므로 이들이 대중을 통치해야한다고 가르쳤다. 위구르 국가가 강성해지고 그 지도자들이 마니교를 점점 더 잘 이해하게 되자, 엘리트 가문들은 그들의 욕구를 정당화해주는이 철학의 유혹에 빠져들었다. 경전의 실제 의미들(일부는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든 내용이었다)에 혼동이 발생하면서, 엘리트 그룹은 마니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식으로 경전을 자기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 P142

위구르 문자는 고대 시리아어에 바탕을 두고 있었고,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과도 관련이 있는 소그디아 알파벳에서 유래했다. 이 아람어, 히브리어, 아랍어 등은 글을 쓸 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써나갔다. 그런데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려는 듯이, 위구르족과 몽골족은 알파벳을 수직으로 세워서 중국식으로 위에서 아래로 써내려갔다. 그들의 문자 체계는 아시아에서 유럽에 이르는 뿌리에 바탕을 두고있었는데, 이런 방식 때문에 스텝 생활에 국제적 분위기가 스며들었다.
송나라 궁정에서 파견한 중국의 사절 조공은 이 문자 체계가 중국의 피리 악보 표기법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26이 혼성 문자는 몽골이 세상을 바라다보는 새로운 창이 되었고 또 역사에 연결시키는 귀중한 연결고리가 되었다. - P144

몽골 국가의 공식 수립 이태 전인 1204년, 테무진은 나이만 궁정 출신인 타타 통가 Tata Tonga라는 서기를 채용하여 그에게 위구르 알파벳을 몽골어에 맞추어보라고 지시했다. 타타 통가는 아직 소규모인 몽골 궁정에 다른 필경사들을 데려와 테무진의 아들들과 입양한 타타르 출신 아들 시기-쿠투쿠 등을 비롯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에게 문자 교육을 실시했다. 겉보기에 단출한 조치들은 앞으로 이어질 수십 년 동안 엄청난파급효과를 일으키게 된다. 테무진 주위의 소규모 측근 그룹이 제국의궁정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이 측근들은 소규모 서기 집단에서 언어학교들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다른 종교들과 서로 갈등하는 지적전통에서 왔으며 철학과 문학을 공부한 훈련된 지식인들을 주위에 다수거느리게 된다. 이런 허약한 시작에서 차츰 스텝 학자들의 집단이 생겨났는데, 이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새로운 지식인 계급이 된다. - P145

마침내 마니교도들은 대부분의 기독교도, 무슬림, 중국 학자들에 의해 몽골 역사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세기 뒤에 몽골족이 불교로 개종하자, 불교 수도자들은 이 증오 받는 종교를 아예 언급하지 않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나 학자들이 기록된 역사에 독점권을 행사했음에도 불구하고몽골족은 그들의 신화와 민화 속에 역사의 검열된 부분을 보존했다.
그리하여 기이하고 흥미로운 한 몽골 이야기는 테무진과 예언자 마니를 연결시켜 마니 칸이라는 초자연적 인물을 만들어내고서, 그 인물이
‘황금과 순은으로 된 몸‘을 가지고 있다고 몽골 기도에서 묘사했다." 예언자 마니는 채식주의를 가르치고 동물의 학살을 엄금했는데, 마니 칸은야생 동물의 보호자, ‘모든 짐승의 영주‘가 되었고 또 ‘그의 권능 안에서수만마리의 동물을 부리고 있었다. - P152

기독교는 케레이드족의 전원적 생활방식에 잘 맞는 종교였다. 스텝 유목민들은 목동과 목축에 관한 성경 속 이야기들을 잘 이해했고, 척박한환경에서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에게는 법률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식했으며, 더 나은 삶을 얻고자 끊임없이 구도 행위에 나섰다. 케레이드족은 이동 예배당과 랍반rabban이라고 불리는 사제와 함께 이동했다.
랍반은 히브리어 랍비 rabbi에서 나온 말인데, 사제들은 미래를 예언하고,
별점을 치고, 병자들을 치료하고, 잃어버린 동물을 찾아주고, 날씨를 통제하고, 시리아어로 쓰인 기독교 경전을 낭송했다. 풍성하게 늘어진 겉옷을 입은 그들은 향을 피우고 등을 켜고서 정교한 의식을 수행하며 칸과그의 통치를 칭송했다. - P158

칭기스칸은 타타르족, 케레이드족, 나이만족의 붕괴가 그들이 전장에서 보여준 전략적 열등함 탓만은 아니라는 점을 알았다. 내부의 권력투쟁과 잦은 반란, 형제와 형제,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내홍이 결국 부족의힘을 약화시켰던 것이다. 칭기스칸은 예전의 부족, 씨족, 귀족이 존재하는 한 자신의 나라가 결코 안전하지 않으리란 것을 알았다. 타타르족을물리친 이후에 그는 귀족 남자들은 추방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원칙으로삼았다. 그들은 결코 그에게 충성을 바치거나 믿음직한 존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장래에 이런 배신행위가 벌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새로운 정치 조직을 수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 P182

테브 텡게리 사건은 유혈 낭자한 선례가 되었다. 몽골의 칸이 국가나칸보다 더 높은 권위를 주장하는 종교 지도자를 살해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으나 결코 마지막은 아니었다. 종교보다 칸을 우선시하는 이 정책은 그 후 1258년에 바그다드에서 이슬람 칼리프와 그 아들들을 처형하는 데 동원되었다. 또 추종자들이 신성하다고 인정한 이스마일리 아사신의 이맘을 살해할 때에도 이 정책이 활용되었다. 나중에 등장한 몽골 통치자들은 교황을 초대하여 그의 행위를 심사하려 했으나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만약 교황이 몽골족의 초대를 받아들였더라면 교황도 살해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라이벌 정치 지도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칸에게 도전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살려두지 않았다. - P191

몽골족의 전통 종교 의식은 게르의 중심에 위치한 불에 집중되었다.
가족들, 주로 어머니가 과거와 미래의 가족 수호신들이 그 불 속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며 불에다 기름 덩어리를 봉헌했다. 예전 칸들의 왕실 캠프는 왕실의 상징으로서 불을 숭배했지만, 칭기스칸은 이 전통을 따르지 않았다. 그의 불은 부하들이 숭배하는 장소였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계에 소속되어 있었으므로 군부대 내에서 그들이 거행하는 불의 예배는한 가계의 숭배에서 모든 가계의 숭배로 확대되었다. 나아가 국가를 예배하는 한 가지 방식이 되었고, 그리하여 그들의 유대와 단결을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칭기스 칸의 영도 아래, 게르의 중앙에 놓인 화로는 이러한 국가 의식의 중심이 되었고, 군대와 국가의 법률과 도덕적 권위를 상징하게 되었다. - P212

몽골족은 전투에 나서기 전에 깃발에 마유를 뿌리며 세정식洗淨式을올렸다. 칭기스 칸의 부하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그런 유사한 의식에서 자무카가 했다는 말은 기록되어 전한다. "나는 바람에 나부끼는 내 깃발에 봉헌을 바치고, 모든 전사가 쳐다볼 수 있도록그것을 머리 위로 높이 쳐듭니다. 나는 쇠가죽 북을 쳐서 일천 명의 병사가 돌격하는 듯한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등에 검은 줄이 있는 내 군마에 올랐습니다. 나는 가죽으로 된 내 가슴방패판의 줄을 꼭 조여 맸습니다. 나는 칼집에서 내 칼을 뽑아 들었습니다. 나는 적의 이름을 표시한화살을 활시위에 얹어놓았습니다. 우리 모두 싸우다가 죽읍시다." - P215

10년 전 처음으로 나이만족을 정복했을 때, 칭기스칸은 패배당한 적진에서 서기들을 데려오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훨씬 더 많은 서기가 필요했다. 그가 통제하게 된 수백 군데 도시와 수천 군데 마을을 관리하기위해서는 대규모 행정 요원 집단이 필요했다. 무섭게 확장되는 제국의 행정 수요를 맞추기 위해 그는 종교 지도자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들은대개 교육을 많이 받았고, 문자에 익숙했으며, 성문법을 해석하고 시행하는 일에 능숙했다. 탐욕과 착복을 일삼는 전형적인 귀족들과 달리, 그들은 원칙과 이상에 헌신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반 대중과소통하고 지도하는 방법을 알았다. 칭기스칸은 도움이나 안내를 받을수 있을까 싶어서 중국의 기성 종교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종교계 인사들을 널리 구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궁정 내에서 문화와교육을 널리 추진하는 데 도움을 주고 또 선량함의 길을 구현하여 좋은관습과 인자한 통치가 전대의 수준을 능가하게 하려는 데 있다." - P236

칭기스칸의 궁정은 마법의 돌을 가진 몽골 샤먼, 도교 연금술사, 독경하는 불교 승려와 점성술가, 기도하는 물라, 노래하는 기독교인, 유교의궁정 의례 담당관, 티베트의 점술가, 다양한 종류의 독립적인 심령술사와강신술사, 영혼을 불러온다고 소문이 났거나 마법의 술수를 부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독심술사 등 다양한 영적 위력을 지닌 사람들을 불러들 - P243

였다. 칭기스칸의 캠프는 유목민의 대학과 같은 특성을 지녔으며, 다양한 언어, 문화, 종교를 지닌 학자들로 이루어진 정신적 동물원의 종합판과 같았다. 그 캠프는 밝은 노란색, 하얀색, 반짝이는 오렌지색, 핏빛 적색, 아주 진한 검은색으로 된 제의祭가 넘쳐났다. 하루가 염주, 북, 공, 호루라기, 나무 종 같은 종교적인 소리로 시작하여, 신들린 채 모닥불 옆에서 깃털 장식을 달고 춤을 추는 샤먼, 불태운 양의 어깨뼈에 생긴 금을읽는 주술사,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점성술사, 지골을 던져서 운수를알아보는 병사들의 소란스러움으로 끝났다. - P244

무슬림, 불교도, 기독교도 들이 뒤섞여 있는 카라키타이의 정복은 칭기스 칸이 종교적 파벌주의의 파괴적 힘을 최초로 만난 사건이기도 했다. 그의 반응은 단순하면서도 공정했다. 그는 카라키타이에서 해방시켜달라고 요청해온 무슬림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의 신자들에게도 ‘기도의요청‘을 다시 한 번 허락했다. 칭기스칸은 새로 해방된 땅의 각 도시와마을에 전령들을 보내, 자신의 법률을 널리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그 내용을 들어서 알도록 했다. 그는 "각자 자신의 신앙을 지키며 그 신조를따라야 한다"라고 선포했다. 이것은 그때 이후 그가 추진한 정복에서 기본적인 원칙이 되었다. 그는 평생 동안 신하들을 위해 이 원칙을 지켰다. - P251

카라키타이의 무슬림들과 달리, 화리즘의 주민들은 몽골족을 해방의영웅으로 환영하지 않았다. 그러자 몽골족은 이 새로운 적들에게 경멸감을 보였다. 한 무슬림은 몽골족의 인식을 이렇게 묘사했다. "주택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락하고 유약한 족속이다. 땅을 경작하고 가축 떼처럼 일하는 노예인데,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의 상급자가 사치스럽게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다." 몽골족이 볼 때, 사마르칸트, 부하라, 오트라르의 주민들은 염소 떼나 양 떼와 마찬가지로 금방 겁을먹고 쉽게 남의 지시를 따르고, 언제나 처분 가능한 존재들이었다. - P272

칭기스칸이 무슬림 지도자들을 소환한 것은 그들의 학생 혹은 제자가 되려고 함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불렀다. 지상에서하늘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정복한 사람들의 종교들을 검토하고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아내 그 오류를 시정해주는 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상인들이 벌레 먹은 사과나 금 간 보석을 자세히 살피듯이, 그는 무슬림 지도자들을 면밀히 심사했다. 그의 임무는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하고, 사악한 자를 징벌하고, 미덕 높은 자를 보상하고, 모든 사람이 올바른 길로 들어서도록 유도하는 것이었다. 그에게 온 사람들 중에 몽골 침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조용히 하여라!" 한 유지급 이맘은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의 추종자들에게 말했다. 칭기스 칸은 "지금 - P280

불고 있는, 신의 전능의 바람이다. 그리고 우리는 말할 권한이 없다." 그 후 여러 달 동안 칭기스칸은 자칭 신의 사람들과 지혜의 교사들을 만나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그들의 실천에 대해 질문하고, 그들의 업적을 검토하고, 그들의 도덕을 시험했다.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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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놈이 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한다. 모든 걸 돈으로만 판단하는 Mr.Yao 때문에 그와 관련된 에피소드만 나오면 속에서 부글부글 김이 끓어오른다. 그리고 아들 Jason은 말해서 뭣하랴. 에피소드를 읽어갈수록 미국 내 인종 차별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끼게 되는데 그 와중에 Mia에게 삶을 건강한 삶을 생각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 CH13 ]

만취한 남자 손님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던 Mia는 Calivista를 더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목록을 작성한다. 

1. 방탄 유리를 위아래로 설치하기

2. 보안 카메라 설치하기

3. 경찰서에 연락하는 비상 버튼을 설치하기


Mr.Yao가 모텔에 들렀을 때 Mia는 자신이 세운 계획을 말하지만 돈이 많이 든다며 단호하게 거부한다. 함께 따라온 Jason이 Mr.Yao와 아빠가 세탁기를 확인하러 가자 보안 카메라 설치가 나쁜 아이디어가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왜 함께 있을 땐 말하지 않았느냐 Mia는 따지면서 그를 겁쟁이라고 생각한다. 

Mr.Yao가 돌아오자 Mia는 마지막으로 그를 설득해보지만 그는 더 차갑고 냉혹만 말만 던진다.

"You know what's the diffence between a good employee and a bad employee? It's not whether they're hardworking or even whether they're smart. It's whether they know their place."

주제 파악하란 소리로 들리는 건 나뿐은 아니겠지.


 [ CH14 ]

 Mia는 비어있는 강당에 피아노 한 대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안 좋았던 기분이 나아졌다. Mia가 중국에 있을 때 고모?이모?의 친구가 선생님이어서 일요일마다 공짜로 레슨을 시켜주셔서 피아노를 배웠다. 피아노를 오래 치지 않아서 기억이 안날 줄 알았는데 막상 치니 기억하고 있음에 놀랐고 덕분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헌데 하필 그 때 Jason이 다가와 말한다.

”You learned to play like that in China? But my father said thhere’s nothing in China except piles of dirt and trash.” he said. “Your father’s a liar,” I said angrily. “He said that you guys like to sit around and spit on the floor.” “That’s absurd!” I exclaimed. “How’d you learn to play piano if you had no money?” Jason asked.


[ CH15 ]

운명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Mia의 부모님... Mia는 결국 분하지만 받아들여야했다. 데스크 앞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고 가짜로 문구를 써서 놓았다. Billy Bob이 자신의 차에도 가짜 경고 시스템 스티커를 붙여놓았다고 보여주어 Mia는 웃을 수 있었다. 

갑자기 Ming 삼촌의 친구라며 찾아온 Li 삼촌은 자신이 Carlsbad에 있는 Ray's Burgers 집에서 일을 했는데 손님들에게는 두툼한 패티에 풍부한 재료가 든 햄버거를 주면서 직원들에게는 오직 흰 빵에 마요네즈에 고기도 양상추도 없는 것을 먹였다고 말했다. 


[ CH 16 ]

Mia는 학교에서 나온 햄버거를 데워 Li 삼촌에게 가져다준다(마음도 예쁘지). 아빠는 오래 전 실수로 만들어진 동전을 모으고 있었는데 희소성 때문에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아빠에게 가장 값진 선물은 Mia겠지. 아빠가 막상 그렇게 이야기하니까 간질거리기도 했지만 나는 그런 감정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해서 Mia가 부러웠다. Mia는 물질적으로는 부족할 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따뜻한 부모님이 계셔서 마음이 충만하겠다 생각했다.


"Sometimes a mistake is actually an opportunity, but we just can't see it right then and there."


실수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실수를 하게 되면 자책감이 늘고 나는 왜 이리 엉망인가 잘하는 게 없나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실수란 걸 해보지 않으면(실패라고 생각해도 좋다.) 개선의 여지도 없는 것이 아닐까. 자만감에 빠질 수도 있고 말이다. 실수나 실패를 통해서 배우는 것도 분명 많다.


[ CH 17 ]

지난번에 세탁기가 고장이 나더니 이번엔 TV 케이블이 고장나서 수리 기사를 불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수리 기사는 Lupe의 아빠였고 거기서 Mia는 Lupe를 만난다. Lupe는 학교에서 이야기했던 것과는 달리 집의 규모가 크지도 않았고 개 3마리와 사는 것도 아니고 트램펄린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 CH18 ]

Lupe는 Mr.Yao가 어떤 사람인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모텔을 미국 전역에 몇 채나 소유할 정도로 부유한 사람이었는데 자신과 아빠에겐 막 대하는 못된 인간이라고 Mia에게 고백했다. 그러면서 이 나라에는 두 개의 롤러코스터가 있는데 하나는 좋은 롤러코스터로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좋은 학교에 가고 좋은 곳에 취업해서 돈을 많이 벌어 잘 먹고 잘 사는 경우, 반대는 나쁜 환경에서 태어나 좋지 않은 학교에 가고 나쁜 곳에 취업해서 돈을 못 벌어 못 먹고 못 사는 경우다. 


[ CH19 ]

알고 보니 Lupe는 3살 때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온 이민자였다. Mia와 Lupe는 비슷한 처지임을 알게 된 만큼 내적 친밀감이 상승했고 그동안의 벽을 허물고 급격히 친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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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11-18 2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루페와 미아가 서로 거짓말 했었다는게 슬프면서도 웃겼어요!
아이들에게 리트리버 키우는 집이 이상적으로 생각되었었나봐요.ㅋ
화가님 열심히 읽고 계시군요.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는게 습관이 되서 이젠 힘들지는 않네요. 계속 응원합니다.🙋‍♀️

건수하 2023-11-19 08:38   좋아요 2 | URL
미미님 매일 조금씩 읽는 습관을 갖고 계시군요. 저는 언제쯤…… (먼산) ^^;

미미 2023-11-19 11:55   좋아요 1 | URL
귀찮은 날은 한 페이지라도 읽자! 마음 먹었는데 그런 날은 아직 없었어요ㅋ
(아예 안 읽은 날이 있다는 거 안 비밀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1-19 16:41   좋아요 1 | URL
그쵸. 둘 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어서 짠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렇더라구요ㅠㅠ 리트리버가 고급 품종인가요? 제가 개 품종은 잘 몰라서ㅠㅠ 아무튼 저도 매일 최소 한 챕터씩 읽고 있어요. 안 그러면 밀리고 다시 읽으려면 힘들어서ㅎㅎ 한 챕터는 분량이 그리 길지 않아서 부담스럽지는 않습니다. 미미님도 힘내시고요. 수하님도 힘내세요!ㅎㅎㅎ

건수하 2023-11-19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루페가 왠지 좀 거짓말 했을 것 같았는데… 예감이 맞아서 괜히 기쁘네요 :)

good/bad employy 부분 정말 ㅠㅠ

거리의화가 2023-11-19 16:42   좋아요 2 | URL
야오씨 나올 때마다 울화통이 터져요! 그런데 저런 인간들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니 한숨이ㅎㅎ 그래도 미아가 당차고 씩씩해서 다행이에요^^
 

잠자냥 님 서재의 현암사 이벤트 글을 보고 나서 집에 있는 현암사 책들을 확인해봤더니 3권이 전부였다.

원래 한 권이 더 있었으나 이사올 때 팔아버려 지금은 3권이 다다. 


내가 가진 책들 중에는 돌베개, 글항아리, 역사비평사, 너머북스, 한길사의 책이 많았다. 창비 책이 의외로 많았다는 것에 놀랐고... 민음사는 세계문학전집과 잃시찾, 민음사 고전 시리즈들이 좀 있어서 자리를 제법 차지하고 있었다. 


<슬픔의 위안>은 지금 잠깐 읽으니 역시 내 취향은 아닌데 왜 샀지 떠올려보니 아마도 함께 읽는 책이어서 구매를 한 듯~ 그래도 남은 2권은 나름 재밌게 읽었기 때문에 돈값은 한 책이었다.

공교롭게도 지난 달 페이퍼에서 언급했던 <이상과 모던뽀이들> 책 출판사가 현암사 일줄이야... 




<조선과 만나는 법>은 하필 78페이지의 쪽수가 설명문을 보여주느라 안보인다. 이덕무는 학자로서도 명망이 높았으나 다독가로서도 유명했던 분이었다. 78페이지에 이덕무가 나오니 왠지 기쁘달까^^ 게다가 이미지 속의 글도 근사하지 않은가. 



<슬픔의 위안>의 78페이지다.



트위터를 접어서 이벤트 참여는 하지 않을 것 같다. 



이번 주는 일이 터져 계속 바빠서 매일 책도 몇 쪽 읽지 못하고 지냈다. 다행히 일은 마무리했지만 팀원이 얼마 뒤 퇴사를 하는 관계로 주중에는 서재를 들락날락할수 없을 것 같다. 

어제는 결혼기념일이어서 연차를 썼고 태안에 가서 칼국수랑 조개구이를 먹고 왔다. 하필 추운데 눈까지 오락가락하고 강풍주의보까지 발효되어 무슨 눈태풍을 보는 줄 알았다. 



이 비주얼 실화인가. 가격은 무려 4천원! 심지어 저 나박김치도 최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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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1-18 10: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생각보다 정말 없네요?!
그런데 저 뒤의 책꽂이 정갈….
아니 4천원이라고요?!?!?!
기념일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19:38   좋아요 0 | URL
근데 예상은 했어요^^ 현암사는 약간 제가 사기엔 애매한 책들이 많아서ㅎㅎㅎ 일부러 정갈한 책꽃이를 골라 찍은 것이라고나할까. 방바닥에 놓인 책들이 한가득입니다ㅋㅋㅋ
저 칼국수 진짜 대박입니다. 알고 보니 주말에 가면 웨이팅 1시간이 기본이라네요-_- 점심시간 살짝 지나 갔는데도 10분 정도 기다렸답니다.

은오 2023-11-18 11: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재 친구분들이 거의 다 의외로 현암사 책이 별로 없으시다고들....ㅋㅋㅋㅋㅋ
저와의 결혼기념일이 아니라 축하는 못드리겠지만.. 맛있는거 많이 드시고 오셨군요!! 😆

잠자냥 2023-11-18 12:20   좋아요 3 | URL
넌 그 많은 기념일 챙기기 힘들겠다…..

은오 2023-11-18 12:53   좋아요 3 | URL
....신청을 많이 했지 받아들여진 적은....
챙길 기념일 0개 가성비결혼신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1-18 19:38   좋아요 1 | URL
ㅋㅋㅋ 현암사 책보다는 돌베개 책들이 훨씬 많습니다! 원래 먹는 게 남는 거 아닙니까. 은오님 맞춤법 많이 올리셨던데 이제 공부하러 고고해야겠어요!ㅎㅎㅎ

페넬로페 2023-11-18 11: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칼국수 비주얼!
와 끝내줍니다.
날씨가 추워져 조개구이랑 칼국수가 더 맛있어 보여요.
책이 눈에 안 들어오네요.
결혼 기념일, 축하드려요^^

거리의화가 2023-11-18 19:41   좋아요 1 | URL
비주얼만이 아니고 맛도 좋았습니다. 일단 조개들이 많이 들어있어서 조개살 분리하여 먹는데도 시간 제법 걸리더군요ㅎㅎㅎ
사실 겨울이면 생각나는 음식이 조개구이라서 얼마전부터 노래를 불렀더니 남편이 검색해놨나보더라구요^^; 헌데 강력한 칼국수 때문에 조개구이가 밀릴 줄이야ㅎㅎㅎ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11-18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ㅋㅋㅋㅋㅋㅋ 칼국수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렸네요.
결혼기념일 축하드립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19:42   좋아요 0 | URL
칼국수 진짜 저 가격이 믿기지가 않았어요ㅠㅠ 맛도 좋고 양이 푸짐해서 더 좋았습니다.

새파랑 2023-11-18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4천원이 저정도라니 ㅋ
저도 갑자기 현암사 찾아보니 소세키 전집이랑 프루스트 말곤 없네요..

책보다는 역시 먹는게 좋죠^^

거리의화가 2023-11-18 19:43   좋아요 1 | URL
그쵸. 4천원으로 요즘 아메리카노 한 잔도 애매한 가격!ㅋㅋ 현암사 책은 타겟층이 좀 애매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역시 먹는 게 남는 것입니다^^

미미 2023-11-18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술이 없어 조금 아쉽지만 4천원이라니!! 놀랍습니다!
추운 날 완벽한 음식이군요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1-18 19:44   좋아요 1 | URL
술은 간절히 원했으나 차를 끌고 가서 혼자만 먹기 애매해서요. 오늘 많이 마셨습니다!ㅋㅋㅋ
역시 추울 때는 칼국수와 조개구이만한 게 없네요^^

책읽는나무 2023-11-19 0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현지 음식들이 싸긴 싸네요.
사천 원이라니.....다들 놀람!
그리곤 저 위의 화가 님의 책장 속 책들에 흠칫 더 놀랐겠죠.ㅋㅋㅋ

거리의화가 2023-11-19 16:34   좋아요 1 | URL
태안 현지 맛집인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시장 안에 있어서 현지인들도 많았는데 대기줄이 있는 것을 보면 이미 알려진 맛집인가봅니다^^ 아무튼 저리 푸짐한 양에 가격이 착해서 놀랐네요.
ㅋㅋㅋ 책장 속 책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책꽂이여서 자주 찾는 곳입니다.
 
파묻힌 여성 - 여성의 눈으로 본 선사시대, 젠더 고고학의 발견
마릴렌 파투-마티스 지음, 공수진 옮김 / 프시케의숲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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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사례를 통해 젠더 불평등에 대한 인식을 깨뜨리고자 한다. 그러나 거기서 얻어진 결론은 새로울 게 없었다. 저자가 그동안 투쟁해온 여성의 역사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려는 점은 이해했으나 그럼에도 핵심의 비중이 적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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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11-18 10: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 읽으셨군요!! 고생하셨습니다. 기대한 책이었는데.. 어쨌든 저도 끝까지 읽어볼게요!!

거리의화가 2023-11-18 20:15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제가 원래 점수를 짜게 주는 편이라! 읽을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23-11-18 11: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려요! 저도 부지런히 읽어가고 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20:15   좋아요 1 | URL
단발머리님께서는 저보다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던져주실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미미 2023-11-1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화가님 완독 수고하셨습니다^^

거리의화가 2023-11-18 20:16   좋아요 1 | URL
미미님도 완독 축하드려요^^
 

4장

저자가 가부장제 등에 의한 여성들의 지난한 싸움에 대한 역사를 왜 다루는지 이해하지 못했는데 선사학과 고고학에서의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사회적 배경을 설명하기 위함임을 어느정도 이해했다.

남자는 물론 여자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특히 역사와 선사시대에서 각자의 역할을 복원해야 한다. 지난 60여년간 여성사 연구에서 전념하는 과제는 ‘여성들을 보이게하라‘는 것이다. 여성 역사가 미셸 페로의 주장처럼, 여성사는 이러한 "특수성의 실체에 관해 연구해야 할 것이다." 1960년대까지 여성에 대한 가설은 대부분이 남성들이 작성한 것이었다. 그래서 철학가이자 심리분석학자인 모니크다비드-메나르의 표현을 가져다 쓴다면, "놀랍도록 반역사적‘이었다. 이는 극소수 여성이 학문 분야의 연구자나작가"가 될 수 있도록 해주는 대학 교육을 받았던 것과 분명 - P277

히 관련이 있다. 20세기가 될 무렵 아주 조용히 등장한 여성사는 영미 역사가들의 연구와 1960년대 말에 일어난 사회운동 덕분에 미국에서 먼저 발달했고 뒤이어 유럽에서도발달하게 된다. - P278

조앤 스콧 이후 거의 30여 년이 지났을 때, 여성역사학자 이사벨 에르노는 "여성사와 젠더사는 역사를 변화시키지 못했고, 그 공헌에 대해서도 인정받지 못했다"고하면서, 이 작업에 맞부딪히는 저항이 너무 세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이 작업은 너무 유토피아적인 걸까, 아니면 저항 요소가 너무 강해서 실현되기 어려운 걸까?" 역사에 대한해석은 우리가 놓인 관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기에 에르노가 제안한 것처럼, "하나로 통제된 것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서사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인류학적 접근과 학제 간 접근을 기반으로 반론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연구할 필요가있다. 우리는 에르노의 주장에 동조할 수밖에 없는데, 그것이 미력하나마 우리가 이 책에서 하려는 일이기 때문이다. - P280

과학적이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가까운 성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무너뜨리는 것은 특히나젠더 고고학이 해야 할 작업이다. 아직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제 틈이 벌어졌다. 그 틈은 여성이 역사 안에서 올바른 자리를 되찾기 전에는 닫히지 않을 것이다.
선사학은 이 전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가부장제가 - P281

근본적인 명분을 찾고자 하는 먼 과거의 심연을 선사학이탐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고학은 이에 대한 어떤 정당성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지식이 많아질수록 가부장제에 인류학적 근거가 전혀 없음이 드러난다. 가부장제는우리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 만큼 깊이 뿌리 내리고 있지만, 기준을 바꿔서 가장 오래된 사회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젠더 사이의 위계화가 사실은 편견에 근거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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