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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장

학學자의 성질은 원래 동사動詞다. 도를 배운다, 혹은 글(文)을 배운다 등 모두 동사의 문자로서 명사로서 쓰이는 일은 적다. 실명사實名詞에는 많은 경우 도道 자를 쓴다. 중국(漢) 태고에는 도예라는 두 문자로 나타냈으며, 나중에 이르러 도를 행한다는 행자에서 생겨난 술자를 사용했다. 학과 도란 같은 종류로서 종래 일본에서는 와카和의 학이라고 하지 않고 ‘와카의 도라든가 ‘글짓기(學)"의 도‘라고 해왔다.
(백학연환] 문단 3 문장 1~5) - P98

아리스토텔레스는 만학의 비조로 불리는 사람으로서 모든 학술영역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 그가 무언가 존재한다는 것은 과연어떤 것인가라는 문제에 몰두한 문헌이 『형이상학』입니다. 이 책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물에 대해 놀라움을 느낀다는 사실에서 사람이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게 뭘까?‘
하고 불가사의함을 느끼기에 그에 대해 알고 싶어집니다. 바꾸어 말하자면 ‘뭘까?‘라고 의문을 갖지 않으면 탐구하지 않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뭘까?‘ 하고 느낀 대상의 원리 · 원인을 분명히 파악하는 일이야말로 그 대상을 진정으로 알게 되는 것이고, 그는 이를 ‘학문‘이라고부릅니다. - P113

‘술‘이란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그에 대해 확실히 안 다음.
잘 완수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로 궁리함을 뜻합니다. - P118

사람이 학문적 지식(에피스테메)을 갖는다는 건 어떤 경우인가,
이는 필연에 의해 존재하는 것에 대해 그 원리들을 논증할 수 있는형태로 인식하고 있는 경우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필연에 의한 존재‘란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법칙에 따르는 자연과 수학등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다른 무언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알기위해 인식하는 것을 철학함(앎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형이상학』, 982b). - P151

여기서는 ‘기술(테크네)‘이란 사물의 생성, 만드는 것에 관련되어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본 ‘학문적 지식(에피스테메)‘이 대상으로 삼는 ‘필연에 의해 존재하는 것‘과 ‘자연에 의해 존재하는 것‘이구별된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구별이야말로
‘사이언스(학)‘와 ‘아트(술)‘의 구별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있습니다. - P152

‘학‘과 ‘술‘을 구별하기 위한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여기에 한사람의 병자가 있다. 전쟁에서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고로의사(醫者)를 불러 치료(療治)를 하는데, 의사가 인체人體의 근육과뼈, 피부와 살, 오장육부의 구조를 아는 것이 학이요, 총에 맞은 다리를 치료할 때는 이렇게 근육과 뼈의 구조를 잘 알고 있기때문에 총탄(丸)을 어떻게 빼낼까를 궁리하여 치료를 하는데, 이것이 곧 ‘술‘이다.
(『백학연환」‘을본‘에서) - P160

사이언스는 사물에 대해 더 상위이고 더 보편적인 원리를 탐구하고, 아트는 더 하위의 보편성과 개별 구체적인 사실을 탐구하는 것이다. - P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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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앤이 태어나고 성장하다. 독일의 1차 대전 참전 후 히틀러가 독일 수상이 되었고 유대인에 대한 압박에 독일을 떠나기로 한 앤의 가족.

When times were good, this feeling would often retreat into the shadows, but in bad times, it boldly stepped forward into the light.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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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백학연환이란 무엇인가


이 부분을 읽으면서 기초교양(Liberal Arts)의 항목과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평생공부』을 여러 차례 읽으며 기억해둔 것이고 그 공부 방법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전공을 공부하기 전 기초 학문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는 시간이 지날 수록 깨닫고 있다. 지금의 학제 간 구분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고 무엇보다 대학 교육 내용 자체는 곱씹어봐도 잘못되었다. 지금처럼 취업을 위한 일변도의 교육을 하는 한 대학 교육은 점점 무너져갈 것이고 경쟁력은 떨어지기만 할 것이다.



번역어를 읽을 때 ‘내가 만약 이 말을 번역한다면 어떻게 할까‘ 하고 생각해보는 것도 언어 사용 훈련이 될 것입니다. 물론 오늘날의 사전을 펼치면 encyclopedia 항목에는 ‘백과사전‘이라든가 ‘전문사전‘이라는 번역어가 나옵니다. 그러나 누군가 애써서 만들어 놓은 번역어를 그저 빌려 쓰지만 말고, 내 지식의 범위 내에서 이를 번역한다면 어떻게 할지 생각해보는 겁니다. - P48

현재 Encyclopedia(엔사이클로피디아)라고 하면 거의 즉각적으로 ‘백과사전‘이나 ‘백과전서‘라고 번역됩니다. 오늘날의 용법으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이 번역어 그대로 중세나 고대에 대입하면 문제가생깁니다. ‘백과사전‘이라는 의미는 좀 더 현대에 가까운 용법이기 때문입니다.
마루는 EyKUKAIOS TALSEL의 EyKUKANOG라는 말이 고대 그리스에서는 ‘둥근 고리를 이룬다‘라기보다 ‘보통‘ ‘일상의‘라는 의미였다고 지적합니다. 즉, Evkukios Talla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의미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일반교양‘이랄까요. 이것이 로마 교육에 편입되고 중세를 거쳐 ‘자유학예 (artes liberales)‘라고 불립니다. 영어에서 말하는 Liberal arts 입니다. 자유학예란 의학, 법학, 신학등 한층 고도의 학문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를 쌓는 공부였습니다. - P59

학술을 어떻게 분류하느냐에는 시대와 문화의 세계관, 학술관이 반영됩니다. 자유학예에는 대략 절반가량이 말을 배우고, 말을 더 잘 사용하기 위한 학술에 할당되어 있으므로 그 비중이 크다는 사실이 눈을 사로잡습니다. 이처럼 ‘기본적인 교육과정‘을 의미하는Eykuk入Los maidela의 이념이 ‘자유학예‘에 계승되고, 이윽고 오늘날 대학의 ‘일반교양‘에까지 이어집니다. - P60

여기서 니시 아마네와 동시대 사람이기도 한 존 스튜어트 밀의 말이 생각납니다. 그는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대학 교육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생이 대학에서 배워야만 하는 것은 지식의 체계화다. 즉, 각각 독립된 부분적인 지식 간의 관계와 이들과 전체 사이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때까지 다양한 곳에서 얻은 지식의 영역에 속하는 부분적인 견해를 연결하여 이른바 지식의 모든 영역의 지도를 만든다. (J. S. 밀, 『대학 교육에 대하여 Inaugural address delivered to the University of St.Andrews, Feb. 1st 1867』, 다케우치 잇세이竹內 옮김, 이와나미문고, 2011,p.15/원서 p.8) - P79

이미 그어져 있는 경계선을 당연시하지 말고 그렇게 된 내력과 현 상황을 확인할 것. 나아가 그러한 경계선이 타당한가를 검토해볼것. 필요하다면 다시 선을 그을 것. 지금 「백학연환」을 다시 읽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수많은 학문을 보면서 학역간의 차이, 현재와 과거의 차이를 전체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그중 하나입니다. - P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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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서론 격


‘보통학’과 ‘수별학’은 어떨까요? 요즘은 ‘일반학’ 또는 ‘보편학’과 ‘특수학’으로 분류하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학술 전체를 크게 분류하는 말처럼 보입니다. 우리에게 현재의 다양한 학술을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분류해보라고 하면, 어떤 학술을 어느 쪽으로 분류할까요? 저는 구체적인 사상이나 사안을 다루는 학술은 수별학, 추상화된 이론에 가까운 영역이 보통학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예를 들면 역사는 수별학이고 수학은 보통학입니다. [41~42]
-> 끼워 맞추었다는 생각이 드는 지점이다. 역사학을 과연 특수학으로만 볼 수 있을지. 용어도 애매한데. 도입으로 뒷부분에 다룬다고 하니 기다려보기로.

학술의 분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생기거나 사라지면서변화해왔습니다. 하지만 재미있게도 이러한 분류는 우리에게 처음부터, 즉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서부터 당연한 것으로서 존재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종종 이렇게 ‘당연한 것‘이 있으면 ‘왜 그렇게되었는가‘라는 내력을 잊어버립니다. 그런데 내력을 알지 못하면 그필연성도 잃게 됩니다. - P21

이렇게 상상해보면 될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르는 말이나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보면 사전을 찾습니다. 또 용도에 따른 다양한 사전이 이미 나와 있습니다. 만약 사전이 없었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예를 들어 영일사전이 한 권도 없었다면 영어 문장을 읽다가 모르는 - P30

단어를 마주했을 때 어떻게 했어야 할까요? 처음 보는 영단어의 의미를 영영사전 등을 통해 조사한 뒤, 그에 대응할 만한 일본어를 찾거나 경우에 따라 말을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니시 아마네가 바로 그런 일을 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 덕분에 오늘날 쓰는 용어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게 되었다고 해도과언이 아닙니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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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3호 - 2023.여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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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의 핵심 주제는 ‘인권’이다. 배경은 지난 3월 6일 2018년 대법원 판결에 대한 대응으로 국내 재단을 통한 배상인 ’제3자 변제‘ 방안의 발표다. 윤석열 정부의 용단(!)에 미일은 환영했지만, 국내 사정은 입장에 따라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시민사회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계는 반대 성명을 쏟아냈지만 정부의 태도는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 이슈 뿐 아니라 한미일 동맹의 움직임은 이미 강화되고 있고 중국이나 북한, 소련과의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그 배경에는 물론 미국의 중국 견제가 가장 크지만 그것으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요즘의 외교 분위기를 보면 마치 냉전의 회귀 같은 분위기다(실제로 신냉전이라는 용어가 쓰이고 있다).
지금의 한미일 관계는 1965년 한일협정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굴욕 외교라는 오명을 받으며 지금까지도 논란이 되는 체결이었고 그 역사는 지금도 재현중이라는 게 뼈아프다.

<특집> 코너에서는 과거 인권의 역사를 다시 확인한다. 과거 연합국의 전범재판을 통해 바라본 인권과 냉전기 재일조선인들의 인권, 1960년대 한국의 노동자들의 인권, 국제엠네스티 인권운동과 한국의 초국가적 민주화 과정에서의 인권을 다루었다. 특히 나는 한국에서 1960년대 경제성장을 우선시하여 사회적 합의는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제노동기구(ILO) 가입이 실현되지 못했다는 사실, 국제적 노동 표준과 현실간의 괴리 탓으로 국제엠네스티를 통한 인권운동이 제대로 된 동력을 얻지 못한 사실이 인상깊었다.

경영관리 기술원조를 제공하고 인력개발을 강조하는 동시에, 노동자 인권 표준을 함께 설파하겠다는 ILO의 통합 개발모델 전략은 1960년대 한국의 여러 주체들이 ILO를 각기 달리 전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지반을 제공하였다. 정부는 경제성장과 근대화 전략을 성취하기 위해 경영기술과 인력양성을 위한 제정지원을 제공받았지만 국제적 노동 표준에 대해서는 자본과 마찬가지로 소극적으로 대처하거나 저지해 나갔다. 생산성본부를 비롯하여 자본 측은 기술 원조를 통해 경영관리 기법을 도입하고 기술인력 양성에 주력하였을 뿐이다.- P98

이어서 볼 수 있는 주제는 <기획> 코너로 한국 근현대 능력주의의 역사와 신화다. 인권은 예전과 비에 달라졌는가. 객관적인 지표는 그럴지 몰라도 결코 그렇게만은 볼 수 없는 사각지대들이 존재한다. 때문에 ’능력주의의 외부와 틈새‘ 칼럼이 인상적이었다. 여기서 능력주의를 설명하기 위하여 ’테크네‘와 ’메티스‘라는 개념을 들고 온다.

테크네와 메티스의 개념구분은 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이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체계에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테크네라고 한다면 일종의 암묵지처럼 도제적으로 숙련되는 능력을 메티스라고 할 수 있다. 테크네는 보편적이고 기술적인 지식,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맥락적이고 유동적이며 실질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테크네가 측정되고 양화될 수 있는 능력이라면, 메티스는 도제식 교육 등을 통해 숙련되어가는 맥락적 능력이다. - P273

간단하게 말하면 테크네는 양으로 측정가능한 지식을 의미하고 메티스는 상황에 따라 변하는 유동적인 지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에서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사람들은 능력주의의 경쟁 영역에 진입조차 하지 못한다. 능력주의의 외부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야 했다. 신자유주의 시대 국가와 시장 중심으로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사회에서 밀려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결국 틈새다. 그 예로 시각장애인들의 점복업 공동체를 든다. 이들은 조합의 방식으로 능력을 훈련하고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 활동을 이어간다고 한다. 시각 장애인들이 글을 단순히 읽기 어렵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그들의 구술 능력으로 얼마든지 직업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이다.

사회에서 메티스에 기반한 능력을 부정하는 문제는 비단 장애인과 비정상인 집단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도제식 관계에서 다양한 숙련성을 기르는 집단적 역량과 배움의 가치를 부정하고, 시험과 공식 자격 중심적인 방식으로만 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 P287

지금의 잘못된 역사의 반복은 역사를 통한 반성은 없고 정치와 경제에 모든 이슈를 밀어두는 탓이 크다고 본다. 어제 보고 들은 광복절 기념사를 보면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는 이유다.


한국 대법원의 판결은 식민지배와 전쟁 수행에 직결되어 기업이 개인에게 가한반인도적 행위에 대해 그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 배상은 냉전 시기에 체제 경쟁을 빌미로 봉인되었으며, 그 도장이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이었다. 탈냉전과 민주화의 시대가 되었다고 바로 봉인이 풀린건 아니었다. 냉전 시기에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피해 당사자들이 지난 30여년간 뼈와 피를 갈아넣어 소송을 진행한 결과 겨우 봉인이 뜯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 정부와 이번 한국 정부는 다시 봉인하여 피해자들의 입을 막으려 한다. 탈냉전대 신냉전, 인권 대 지역안보의 충돌이다. - P15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나? 첫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피해 당사자들과 지원모임이 생을 바쳐 얻어낸 한국 대법원의 판결, 인권회복의 권리를 이제 시민이 연대로써 지켜내야 한다. 이는 피해 당사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유산, 미래 인권과 평화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권리를 공유한 시민들이 힘을 합쳐 그 실현을 요구하면 효과적일 것 같다. 물론 피해자 당사자, 그대리인과 협의하여 동의하에 적절한 연대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또 법적 권리가소멸되었다고 진실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법적 틀에 얽매이지 않는 광범위한 연대도 모색해야 한다. 약자의 최고무기는 연대이다.
둘째, 식민지배와 전쟁의 폭력, 반인권 범죄를 한국과 아시아, 세계에 널리 알리자, 강제동원 피해 문제의 해결은 다음 세 가지가 충족되어야 한다. 하나, 가해자의 사실인정과 사죄, 둘, 사죄의 증거로서 배상, 셋, 다음 세대에 반복되지 않도록 교육. 앞의 두가지는 이번 정권 아래에서는 바라기 힘들 것 같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교육 그리고 선전을 강화하여 장기적으로 사죄와 배상을 끌어내야 한다. 매년 3월 1일, 또는 8월 15일에 탈식민 탈냉전 포럼을 개최하고 한국, 세계 여러 나라의 식민지배와 전쟁 피해자를 초청하여 그 경험담을 듣고 이를 전 세계에 중계하자. 아시아, 나아가 세계 청년들이 모여 전 세계로 ‘차별 철폐, 폭력 근절, 인권 존중’을 발신하자.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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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3-08-16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만큼 능력주의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환호하는 나라도 드문 것 같아요. 능력이 다르면 당연히 다르게 대우받아야 하고 불평등한 것이 오히려 평등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심지어 그 능력이라는 것이 결국 대부분은 시험성적(수능, 취직시험, 승진시험 등등)을 말하는 것이니 사실은 능력주의라는 것인 시험을 잘 치르는 능력이라는 단 한가지 잣대로 사람들을 평가하는 지극히 불평등한 잣대라는 것을 어떻게 인식시킬 수 있을지 참 암담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8-16 16:33   좋아요 1 | URL
한국사회가 능력주의에 대한 신봉에 가까운 집착을 버리지 않는 한 차별당하고 배제되는 사람은 계속 발생할 것이란 절망감이 들어요. 말씀하신대로 평가에 대한 기준이 그저 수치로, 시험으로 재단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은 모두 제각각이고 다른데 하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그것이 어찌 평가될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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