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듣는 사람의 코앞에서 전조(調)하도록, 즉 한 조에서 다른조로 바뀌도록 곡을 만들었다. 그래서 그 카논은 "종결부가 다시 곡 전체의 클발부와 부드럽게 맞물리도록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그 과정을 반복해서 다시 출발부와 연결하기만 하면 E단조에 도달할 수 있다. 연속적인 전조는 듣는 이의 귀를 조성으로부터 점점 멀어지게 해서, 전조를 몇 번 거치고 나면 이제는 출발 당시의 조와는 절망적으로 멀어진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정확하게 여섯 번의 전조를 통하여 마치 마법처럼 원래의 조인 C단조로 복귀된다! 모든 성부는 출발 당시보다 정확히 한 옥타브 높아지고 이 지점에 이르면 그 곡은 음악적으로 납득할만한 방식으로 종료될 수 있다. 능히 상상할 수 있듯이 그것이 바로 바흐의 의도였다. 그러나 바흐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 과정이 무한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함축성에 매료되었고 아마 그래서 악보 가장자리에 다음과 같이 써놓았던 것이다.
"전조가 상승할수록 전하의 영광 또한 높아지리라!" 전조의 잠재적 무한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나는 이 카논을 "무한히 상승하는 카논"으로 부르고자 한다.
이 카논에서 바흐는 우리에게 이상한 고리(strange loop)라는 개념의 첫 번째 보기를 제공한다. "이상한 고리"라는 현상은 위계체계의 층위들에서 위 또는 아래)로 움직이다가 예기치 못하게 출발점에 돌아와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발생한다. (여기서 체계는 음악의 조성[性]이다.) 나는 종종 이상한 고리가 발생하는 그런 체계를 기술하는 데에 뒤엉킨 계층질서(Tangled Hierarchy)라는 용어를쓴다.  - P13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 가장 명백한 사실들조차도 결코 인식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판에 박힌 일을 하도록 기계를 프로그래밍하는 것은 가능하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있는 일들에 관한 어떤 사실들을 알아차리는 것은 인간의식에 본질적이다. 그러나 당신은 이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당신이 휴대용 계산기에 1을 입력하고 그리고 "1"을 더하고 또 1을 더하고, 더하고 더하고몇 시간 동안 그렇게 계속해도 그 계산기는 당신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스스로 그것을 하는 것을 결코 배우지 못할 것이다. 사람이라면 반복되는 행동을 재빨리 파악할 텐데 말이다. 또는 좀 우스운 예를 들면, 차 주인이 아무리 오랫동안 또는 운행을 잘 해도 자동차는 차 주인이 도로 위에서 다른 차나 장애물에충돌하지 않도록 운전했다는 생각을 결코 하지 못할 것이며 또한 차 주인이 가장 자주 다니는 노선조차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차이는 기계는 관찰력 없이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고 사람은 관찰력없이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내가 모든 기계가 필연적으로정교한 관찰을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렇지 않은기계도 있다. 모든 사람이 항상 정교한 관찰을 한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사실 사람들도 종종 매우 관찰력 없이 행동한다. 그러나 기계는 완전히 관찰력이 없도록 만들 수는 있지만, 사람은 되지 않는다.  - P50

********* 사실 인간사에서 사물들을 "체계 안"과 "체계 바깥으로 깔끔하게 가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삶이란 서로 얽히고설킨 그리고 때로는 일관성이 없는 수많은 "체계들로 이루어져서 사물들을 두 가지 방식으로 고찰하는것은 지나친 단순화인 것 같다. 그러나 좀더 복잡한 아이디어를 생각하는 데에모델로 이용할 수 있도록 단순한 아이디어를 아주 명확히 공식화하는 것은 때로 중요하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에게 형식체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유이다.  - P52

수학의 목표는 언제나 명백하지 않은 명제에 대하여 엄격한 증명을 제시하는 것이다. 단계들이 엄격한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사실은 이 명제들을 함께 묶는 패턴화된 구조(patterned structure)가 있을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 구조는 수에 대한 명제를 표현하는 데에만 적합하도록 만들어진 새로운 어휘, 즉 기호로 구성되어 있고 양식화된 어휘를 찾을경우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증명을 기호로 번역된 상태에서 관찰할 수 있다. 증명은 일련의 명제들인데, 한 줄씩 한 줄씩 검증할 수있는 방식으로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그 명제들은 적은 수의 양식화된 일련의기호들로 표현되기 때문에 패턴의 양상을 띤다. 달리 말하면, 그 명제들을 큰 소리로 읽을 경우에는 언뜻 수와 수의 속성에 대한 명제 같지만, 종이 위에 쓰여 있는 것을 볼 경우 추상적인 패턴으로 보인다. 그리고 한줄 한줄 이루어진 증명구조가 몇 가지의 활자형 규칙에 따라서 패턴을 서서히 변형시키는 것처럼 보일것이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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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바일족은 이미 사적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사이에는 분명히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모두 존재했다. 하지만 가깝게 함께 살며 어떻게 빈곤이 시작되는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가난을 모든 사람에게 찾아올 수 있는 일종의사고로 여긴다. 러시아 농민들이 사용하는 속담 가운데 "거지 깡통을 차지 않겠다느니 감옥에 가지 않겠다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다. 외견상의 행동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별할만한 차이를 발견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움‘을 요청하면 부자들은 그들의 논밭에서 일을 해준다. 마찬가지로 가난한 사람은 답례로 자기 차례에 일을 해준다. - P181

중세 도시는 이중의 연합체로 나타난다. 작은 지역적인 결합 거리, 교구, 구역으로 합쳐진 세대주들의 연합 그리고각자의 직업에 따라 서약에 의해 길드로 결합된 개인들의 연합.
전자는 도시에 스며있는 촌락 공동체적인 기원의 산물이고, 반면에 - P221

후자는 새로운 조건에 의해 나타난 후속적인 성장의 산물이다. - P222

개별적인 길드 내에서 공동의 일로 결합된 사람들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작은 지역 단위의 연합 그리고 도시나 도시집단의 연합은 당시의 삶과 사상의 본질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므로10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시대는 연합과 단결의 원리가 모든 인간생활에서 표출되고 최대한도로 지속되어 오면서 대규모로 상호부조와 상호지원을 확보하려는 광범위한 시도가 있었다고 설명할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러한 시도를통해 이전에 분열되었던 사람들이 결합하게 되었고 상당한 자유를확보하게 되었으며 사람들의 힘을 몇 배로 강화시켰다.  - P251

촌락공동체는 천 년 이상 지속되어왔다. 언제 어디서고 농민들은 전쟁이나 강제 징수 때문에 멸망하지는 않았고 꾸준하게 자신들의 경작법을 개량해왔다. 하지만 산업의 발달로 땅의 가치가 증가하면서 귀족들은 봉건 제도를 통해서는 가져본 적이 없던 권력을 국가 조직을통해 획득하게 되자, 공유지 가운데 가장 좋은 부분을 차지했고, 공유 제도를 파괴하려고 전력을 다했다. - P280

18세기 내내 노동자들의 동맹은 계속해서 재건되었다. 1797년과 1799년에 제정된 법에 따라 법 집행이 가혹하게자행되었어도 이러한 움직임은 막을 수 없었다. 조금이라도 감독자에게 흠잡을 일이 있거나 주인들이 노동조합을 밀고하는 낌새가보이면 노동자들은 언제나 꼬투리를 잡아 단결하였다. 사교 모임, 장례 공제회 또는 비밀 조합 등으로 위장해서 다양한 조합이 직물산업이나 셰필드의 칼 장수, 광부들 사이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동맹 파업이나 법이 집행되는 동안에 이런 다양한 직업 단체를지원해주기 위해서 강력한 연합조직들이 결성되었다.  - P311

중앙집권국가의 파괴적인 권력도, 고상한 철학자나 사회학자들이 과학의 속성으로 치장해서 만들어낸 상호증오와무자비한 투쟁이라는 학설도 인간의 지성과 감성에 깊이 박혀 있는연대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다. 모든 인간의 연대감이란 앞선 진화과정 속에서 자라난 것이기 때문이다. 최초의 단계부터 진화를 거듭 - P338

하며 얻어진 연대감이 마찬가지로 진화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양상 가운데 단 한 가지 요인 때문에 극복될 수는 없다. 최근에작게는 가족이나 빈민가에 사는 이웃들 그리고 촌락이나 노동자비밀 결사 형태로 숨어들었던 상호지지와 지원에 대한 욕구는 근대사회에서도 다시금 거듭 주장되었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미래의진보에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그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 P339

"잘못에 대해 보복하지 않는다."거나 이웃으로부터 받기로예상한 것보다 더 많이 무상으로 준다는 한층 수준이 높아진 개념이실질적인 도덕 원리로 나타났다. 단순히 동등함, 공평함이나 정의라는 개념보다 이 원리는 우월하고 행복에 훨씬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인간은 개인적이거나 아니면 기껏해야 종족에 대한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 존재 한 사람 한 사람과 자신이 하나라는 인식을통해서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호소해왔다. 진화의 맨처음 단계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상호부조의 실천 속에서 윤리개념의 긍정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원을 찾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인간의 윤리적인 진보라는 측면에서 상호투쟁보다는 상호지원이야말로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생각을 널리 확장시켜나가야 우리 인류가 훨씬 더고상하게 진화해나가면서 확실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 P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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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우리는 각각의 동물이 다른 모든 동물들에 맞서, 각각의‘야만인‘이 다른 모든 ‘야만인들‘에 맞서, 그리고 각각의 문명인이모든 동료시민들에 맞서 ‘거칠고 무자비한 생존경쟁‘을 벌이고 있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어왔다. 그러한 주장은 거의 신조처럼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우선 동물과 인간의 삶을 전혀 다른방향에서 보여주는 사실들을 폭넓게 취하여 최근의 통설에 반박할필요가 있었다. 나는 자연계에서 그리고 동물의 종과 인간들의 점진적인 진화에서 사회적 습성이 차지하는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적할필요가 있었다. 그러한 사회적인 습성으로 인해 동물들은 적으로부터 보다 안전하게 보호받고(동절기를 예비하거나 원거리 이동을 할 때에)수월하게 식량을 구하고, 일찍 죽거나 잡아먹히지 않으면서 지적인능력을 훨씬 더 수월하게 발달시킬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인간의경우에는 여기에 더해 자연에 맞서는 힘든 투쟁에서 살아남아 역사속의 온갖 부침을 넘어 진보할 수 있게 해주었던 제도들을 고안할가능성을 얻었다는 점을 입증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P20

동물계가 속한 아주 넓은 부문에서 상호부조는 곧 규칙이다. 상호부조는 가장 하등한 동물들 사이에서도 발견된다.  - P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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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구음초 - 한시로 읽는 1896년 조선 사절단의 세계 일주 ㅣ 규장각 대우 새로 읽는 우리 고전 29
김득련 지음, 황재문 옮김 / 아카넷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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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년 조선에서 러시아 황제 대관식을 위해 사절단이 꾸려진다. 김득련은 사절단의 일행으로 특명전권대사인 민영환, 수원 윤치호, 참서관인 김도일과 함께 2등 참서관 자격으로 참여했다.

이 체험이 특별한 것은 그들이 그저 러시아 황제 대관식만 참여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1896년 혼란스럽던 구한말 조선의 상황에서 외교관으로 파견된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아메리카, 유럽 땅을 밟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다. 자동차나 비행기가 없던 시절 배와 마차 등으로 다닌 체험은 쉽지 않았을 여정이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세계 곳곳을 누비고 돌아올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환구음초>는 이 여정을 한시로 기록한 것이라면 <환구일록>은 이를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다. <환구일록>은 체험을 메모로 기록해두었다가 조선에 돌아온 뒤 민영환의 기록과 비교해보면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책에는 <환구음초>만 실려 있지 않고 그 배경이 되는 <환구일록>까지 함께 실어두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김득련의 체험기는 민영환이 남긴 기록과 윤치호가 남긴 기록이 있어 서로 비교해볼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두 기록을 뒤져가며 읽기에는 번거로울 수 있는데 책에서는 두 기록을 함께 등장시키기 때문에 더 읽는 맛이 풍성하다. 아무래도 민영환은 전권대사 자격으로 가서 상대국인 러시아에 민감할 수 있는 내용은 가급적 빼고 최대한 공식적으로 기록했던 것 같다. 김득련의 기록은 이에 비해 가족에 대한 이야기 등 사적인 기록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윤치호는 앞서 미국을 다녀온 경험이 있어서인지 두 사람과의 기록과는 차이를 보이는 면이 많았다.

사절단은 인천 제물포항에서 상하이항으로 가 당시 동양 제일이었다는 번화하고 화려한 상하이의 모습을 구경한다. 원래는 여기에서 프랑스 공사선을 타고 홍콩을 거쳐 러시아로 향할 작정이었으나 배편을 놓치는 바람에 일본, 미국을 거쳐 유럽으로 건너가는 여정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는 바람에 사절단은 대관식에 늦지 않으려고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으나 길어진 루트 덕분에 우리로서는 간접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된 셈이 되었다.

옆나라 일본에서는 나가사키, 시모노세키를 거쳐 고베에 잠시 들렀다 기차를 타고 도쿄를 향한다. 고베에서 하루 반나절이면 도쿄로 갈 수 있었다니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이면서 그만큼 발전한 일본을 보고 소회가 남달랐던 모양이다. 도쿄는 의화군이 신바시에 있었기에 만나러 간 것이었다. 참고로 1872년 신바시와 요코하마를 잇는 철도선이 일본 최초로 개통된 것이다.

태평양을 거쳐 캐나다의 벤쿠버항에 닿아서는 호텔의 엘리베이터와 전기의 모습을 보고 감탄한다. 캐나다에서 기차를 타고 동쪽으로 9천리 떨어진 뉴욕으로 향하는데 김득련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축지법’을 써서 금방 닿는 것 같았다고. 그만큼 찰나로 느껴져서 신기했던 모양이다.

광활한 아메리카의 평원을 보면서는 중국의 요동과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해당하는 연경의 광활함보다 몇배나 더 큰 규모라 표현한다. 또 뉴욕은 근심 없는 장춘원, 불야성 같은 화려함으로 표현한다. 뉴욕은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도 많고 화려한 도시였던 것 같다. 마침 뉴욕 전기 박람회가 있어서 구경할 기회가 있었다 한다. 퀸스타운을 거쳐 영국의 리버풀 항구에 도착하며 유럽의 관문에 입성했다.

영국 런던의 ‘정치가 융성하고 천하 오대주에선 패권국으로 일컬어지며 하늘 위에선 신선의 세계요, 인간 세상에선 부귀의 그림(P165)’이란 표현도 흥미로웠다. 이는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고 활동한지 어느덧 50년이 지나갈 무렵으로 번성한 도시 속에서도 국법이 엄격하고 명백한 모습을 보며 영국이 부강하다고 느껴서인 듯하다. 아쉽게도 사절단은 당시 유명했던 수정궁은 시간상 둘러보지도 못하고 떠나야 했다 한다(내가 다 아쉽다).

베를린을 거쳐 폴란드를 지나 드디어 러시아 땅에 입성한 사절단. 그곳 모스크바에서 사절단은 황제의 대관식을 경험한다. 당시 세계 각국의 사신이 하례에 참여했는데 모자를 썼다는 이유로 청나라, 튀르키예, 페르시아 사신들과 더불어 대관식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외부의 누각 위에서 기웃거리며 보았다니 당황스러웠다. 아무튼 사흘 밤낮동안 환한 등불이 집, 거리, 크렘린 궁을 비추었다니 과연 장관이었을 것 같다. 김득련은 놀라했으나 윤치호는 이미 미국에서 더 멋진 연등 행사를 경험한 바 있었기에 다소 냉소적으로 기록했다. 황궁에서 밤에 공연을 관람을 하기도 했으나 내용을 알 길이 없으니 뭐 사실 무용만 보고 온 것이 아닐까 한다. 이와중에도 윤치호는 공연 감상기에 발레복을 보며 종교적인 이유로 비난을 하다니 좀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사절단이 2개월 넘게 머무른 도시이기에 기록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이야깃거리가 많다.
특히 김득련이 이곳에서 작성한 기록에는 그날의 일과와는 관계 없는 정보나 지식으로 최대한 주관적인 판단이나 감상을 자제하고 관찰한 바 그대로를 표현했다.

일단 조선과는 다른 기후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 현상인 백야 현상을 보기도 하고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면서 기록한 것들이 많다.
동물원과 식물원, 영화관, 맥주 공장, 수돗물 정수장, 도서관, 자기공장, 유리공장, 양초공장, 개선문, 겨울 궁전, 천문대, 미술관 등을 다녀왔다.
장례 행사를 경험하고 황제가 타는 요트를 타볼 기회도 있었고 엘라긴 섬에 가 피서를 보내기도 했다.

표트르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도읍을 정한 뒤 스스로는 검약한 모습을 취하는 것을 보며 배울 점이 있다 느낀 점이 인상깊었다. 네바강의 해질 무렵 풍경을 보면서는 이국적으로 느끼는 동시에 고향을 그리며 향수를 느끼기도 한다.

음력 2월 떠난 사절단은 8월 19일 드디어 그곳을 떠나게 된다. 윤치호는 그곳에서 귀국하지 않고 파리행을 선택한다. 사실 민영환, 김득련, 윤치호는 글에서 이미 너무 다른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여행길 초반에는 민영환과 윤치호는 앙숙인가 싶을 정도로 서로를 못마땅해하는데 이무렵이 되면 서로 가졌던 선입견이 많이 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김득련은 영어를 잘하는 윤치호에게 도움을 많이 얻었기에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한다.
사절단은 시베리아를 거쳐 흑룡강, 블라디보스토크를 지나 부산항->제물포로 귀국한다.
당시 완성되지 않았던 시베리아 철도과 바이칼 호수의 풍경, 이르쿠츠크/하바롭스크 총독부에 들른 소회, 곳곳에서 만난 조선인 유민들을 만난 소회가 인상깊었다.

사절단은 7달 동안 8개국을 거쳐 그렇게 돌아왔다. 과연 이 경험들은 네 사람에게 어떤 경험이 되었을지.

이 책은 정말 우연히 건진 책이었다. 참 오랜만에 오프라인 서점에 갔다가 눈에 띄어서 읽게 된 책이었기 때문이다. 역시 서점은 무어든 읽을 만한 거리를 챙겨오게 되어 수확이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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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10-13 1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것도 한시로 쓴 여행기군요 한시뿐 아니라 일기도 실려 있어서 괜찮을 듯합니다 여러 달에 걸쳐서 여러 나라를 돌아보다니,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런 걸 보면 기록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예전보다 지금 사람한테 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그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조금이라도 알 테니...


희선

거리의화가 2026-10-18 17:46   좋아요 0 | URL
여행기이자 한시인데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었습니다. 당시는 배를 타고 돌아 돌아 가야 했을 테니 쉽지는 않았겠죠. 그래도 그랬기에 세계의 많은 곳을 두루 돌아다니는 경험을 했으니 개인에게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을 것 같아요.
 
고독서정 -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 읽기
강유원 지음 / 라티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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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에는 여러 가지 감정 상태가 결집되어 있다. 화남, 억울함, 슬픔, 시샘이나 부러움, 부끄러움, 쌀쌀맞은 쓸쓸함에 이르는, 부정적 심정의 묶음이다. 외로움은 추상적 묶음이고 그것의 드러남은 이러한 구성 속성 중 하나 또는 몇 가지의 결속체로 이루어져 있다. 누군가를 원하면서도 찾지 못한 상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결핍도 외로움을 유발한다. 이는 '스스로 존재함'과는 확연히 다르다. 외로움이 고립된 몸의 내면이라면, 스스로 존재함은 독존하는 몸의 정신적 표상 형식이다. - P47~48

서양 철학자이자 인문학자인 저자가 한시에 관한 책을 내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부제도 '서양 철학자 강유원의 한시읽기'다. 서문을 읽어보니 본인에게 한시는 모호한, 몽롱한, 가 닿을 수 없는 철학 같은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고. 그러나 책을 읽어보면 저자의 소리가 스스로에 대한 겸손의 표현임을 느끼게 된다. 나는 몇 권의 책을 통해서 한시를 경험한 것이 다이기 때문에 정말 문외한에 가깝다. 이 책은 한시를 읽는 처음 경험하거나 아직 잘 모르는 초보 독자라도 겁먹을 필요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제목이 '고독서정' 고립과 독존에 대한 서정읽기다. 이에 따라 고른 한시들은 대체로 저마다 다른 사정의 외로움이 드러나고 스스로 존재하기 위해 맞서고 분투하는 감정이 놓여 있다. 한시의 해석을 앞에 싣고 뒤에는 원문과 독음을 준 뒤 이에 대한 저자의 감상을 덧붙였다. 한시를 쓴 시인의 상황과 감정은 이랬을 것이라는 추측을 통해 독자도 저마다 추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에만 그치지 않고 저자의 배경과 시를 쓸 당시의 상황을 알려줌으로써 그 해석을 돕는다.


마음에 드는 한시들을 체크하면서 내 마음이 어느 시에 공명하는지 확인하며 읽었다. 


이백의 시는 술을 홀짝이고 기울인 뒤 읽으면 그 감상을 더할 수 있다. 저자의 감상기에 웃음이 났는데 본인이 이백의 짠한 외로움을 느끼기에는 술을 하지 못해서 감정 이입이 되기 어렵다고 해서다. 어쨌든 그의 시가 널리 읽히는 것은 저자의 말처럼 읽기 쉬운데다가 술에다가라도 의지하려는 결핍의 영혼을 가진 이들과 공명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저자는 그의 시가 은근함이 없어서 어느 순간 감정이 파사삭 식는다고 하는데 뭐 나는 그의 그 지지리 궁상같은 속이 훤히 보이는 투명함 때문에 그의 시를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백, <장진주>(술을 권한다)


뜻이 이루어졌을 때는 마땅히 온전히 기뻐하고

술잔은 헛되이 달을 마주해서는 안 될 것

...

잠부자, 단구생

술을 올리니 멈추지 말고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부르니

내게 귀 기울여 들으라

음악도 안주도 귀하게 여기지 말고

오래 취하고 깨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

옛부터 성현은 고요하고 쓸쓸했고

술 마신 이들만 이름을 남겼다

...

주인은 어찌 돈이 적다 말하는가

주저 말고 술 사오시라, 그대와 마실테니

...


이백은 어느 술집에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람들과 세상에 대놓고 분노를 토한다. 이 상황을 보는 이들은 혀를 끌끌 찼으려나. 왜 진상이야 하는 말을 들었을 것 같기도 하다. 이러다 싸움이라도 안 났으면 다행이려나. 


왕유는 안사의 난 때 안록산이 세운 대연국에서 벼슬을 한 것 때문에 난이 평정된 후 더는 자신의 뜻을 펼치기 어려웠던 듯하다. 개인의 뜻을 펼치기 어려운 시대를 만났을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 왕유의 삶과 그의 시에서 한 사례를 만날 수 있다. 왕유의 시는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 대체로 어느 정도의 감정적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살갑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냉소적인 것은 아니다. 뭐 츤데레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왕유, <송별>(사람을 보냄)


말에서 내려 술을 권하며

그대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것인지

그대 말하길, 뜻한 바 같지 않아

남산 자락으로 돌아가 눕겠다고

그저 가시라, 다시 묻지 않을 테니

흰 구름 없어질 때는 없으리니


떠나는 친구를 보내며 행선지를 묻는 왕유나 답하는 친구나 무심한 듯 툭 건네는 상황이 인상적이었다. 친구는 뭔가 뜻한 길이 잘 풀리지 않아 어디엔가 은거할 작정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왕유는 그를 감히 붙잡을 수 없고 그저 가시라 툭 하고 말을 건넬 뿐이다. 


왕창령, <새하곡 - 둘째>(변방 요새 아래서)


가을, 말에게 물 먹이며 건너는데

물은 차갑고 칼바람 분다

가지런한 모래밭, 해도 저물지 않았는데

임조성은 희끄무레 보인다

오래전 장성 싸움들,

뜻과 기세가 높았다고들 한다

이제나 예나, 누런 티끌 가득 차고

썩고 남은 뼈들 들풀 속에 어지럽다


진나라 이후 장성이 쌓이고 나서 변방으로 출정하는 장병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변방에 나간 어느 장병이 시를 읽는 중이니 평시인 비전투기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은 가을에 물을 건너와 장성 앞 모래밭 풍경을 보며 과거 이 터에서 벌어졌을 전투와 거기 있었을 사람이 이제는 백골이 되어 떠돌고 있는 황망함을 느낀다. 남은 것은 들풀들 뿐이다. 


유종원, <강설>(눈 내린 강)


온 산에 새 날아감 끊기고

온 길에 사람 자취 사라졌다

배 한 척에 도롱이 삿갓 쓴 늙은이

눈 내린 강 홀로 낚시하는 차가움


고립된 이는 누군가 곁에 있어 주기를 원한다. 혼자서는 못 이겨 낸다. 독존하는 이는 강에서 홀로 낚시를 해도,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늘 그렇게 낚시하는 것을 연습했기에, 추운 날씨를 몸으로 느끼고, 애써서 온기를 찾지 않으며 차가움 자체를 구현한다. 물론 독존이 초월적인 것과의 접촉 통로일 수는 있다. 세상과 떨어져 지내던 은수자가 그러했을 것이다. 이들은 다른 인간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무도 느끼지 않는다. 유종원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인간을 외면하고 신 앞에 선 단독자로 살아가려는 계시종교의 수도자가 아니라, 강에 들어선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지반을 조심스레 살펴 보고 그 위에 나를 하나씩 조금씩 쌓아 올리고, 무너지는 것을 토닥여 가며 전진해온 인간이다. '실존의 편력을 통한 독존의 구축'-이것이 '시유'라 물리는 그의 삶이다. 오십 년도 살지 않은 그의 삶의 최종 귀결은 '차가움'이다. - P207


유종원은 벼슬을 하다가 호남성으로 좌천되어 영주에서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직책으로 지냈다. 내가 아는 그의 시에는 노년을 다룬 시가 많은데 이는 인생의 끝자락에서의 회한처럼 고립과 외로움의 환경에서 스스로의 내면을 돌아볼 기회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그는 결코 감정을 닫고 숨지 않았으며 스스로의 꿈을 펼칠 시기를 위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움직였다. 저자의 유종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경험하는 한시 여행이 참으로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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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6-10-13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양철학자라는 말이 눈에 띄는군요 서양철학자라고 해서 한시를 안 봐야 하는 건 아닐 텐데 말이에요 본래 한시를 좋아했나 봅니다 한시는 학교 다닐 때만 보고 거의 못 본 듯하네요 그때라고 제대로 본 것도 아니겠습니다


희선

거리의화가 2026-10-18 17:44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찌 보면 편견일 겁니다. 중국 한시 작가들은 몇 권의 한시 책들을 접하면서 낯이 익네요. 오히려 고려, 조선 시대에 국내 한시는 정철 말고는 생각나는 이름이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국내 한시에도 좀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