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봐야지 생각만 했던 <산해경>을 완독했다. 의외로 보다 보니 이미 내가 다른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것, 매체를 통해서 친숙해진 사실들이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애당초 모든 것을 외우겠다 덤비지만 않는다면 편하게 쓱쓱 볼 수 있다. 다만 신묘한 동물(?)에 대한 것은 전체적인 그림만 나오고 개개의 그림은 없어 설명만으로는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이 책은 북차1경의 괴이한 동물이라고 해서 이렇게 전체적인 삽화도를 실어놓고 옆에 간단한 설명을 실어놓았다.
상고시대에 모우는 지금보다 넓은 지역에 살았지만 지금은 청해, 티베트 지역에서만 산다. 이 구역에는 소리를 낼 줄 아는 뱀이 있어 제단의 수호신이 되었다. 더욱 괴이한 것은 제건이란 동물인데, 사람 머리에 눈이 하나뿐이고 특이하게 춤추며 꼬리가 무척 길어서 꼬리를 입에 물고 걸어다닌다. 옛날 사람들은 제건 흉내내기를 좋아해서 그를 따라 춤도 추고 소리도 지르며 혼자 기분을 내거나 씨족 사람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또 사냥하기 전이나 출정하기 전 혹은 무술 의식 전에 이 동작으로 몸을 풀기도 했다. - P63

근데 나는 이걸 봐도 잘 와닿지가 않았다. 그림을 알아먹는 재능이 없는 걸로. 아무튼 개개의 동물을 이미지화시켜놓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전자책을 통해 도움을 얻었다(물론 <산해경>에도 몇몇 동물은 개별적으로 설명하고 있기는 하다). 해당 동물이 어느 곳에 거주하고 어떤 특징을 지니고 있는지 간단한 설명을 제공하기에 레퍼런스로 딱이었다. 
책에 나오는 모든 동물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아래 그림은 상류에 대한 설명이다. 머리가 아홉개 달린 뱀인데 이미지로 보니 확실히 더 감이 잘 왔던 것 같다. 사실 이 전자책은 중국에 갔을 때 사려고 했다가 전자책에 이미 있는 것을 발견하고 구입하지 않고 넘어갔던 책이었다. 
 


그리고 나는 방향을 비롯한 공간(지리) 감각은 없는 편이라서 역시 설명만으로는 이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이것은 개인적인 부분으로 고질적인 문제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이런 곳이 있나보다 하고 넘어갈 수밖에. 어차피 해당 시기는 역사인 듯 아닌 듯 대부분의 내용이 역사와 신화가 섞여 있기도 하니까. 그래도 한반도와 가까운 곳이 나오면 좀 더 집중하게 보게 되더라.

앞서 정재서 교수의 이야기 동양신화 1, 2권을 통해서 어느 정도 맛보기로 접한 바가 있었던 것이 꽤나 도움이 되었다. <산해경>의 역자들도 원문을 번역하면서 의문이 드는 부분은 정재서 교수의 책을 참고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조사 끝에 판단 내린 결론을 책에 실어두었더라. 이런 좀은 흥미로웠다. 배울 점을 찾아 보완하려는 모습이 좋았다. 사실 원문을 번역을 통해서 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번역에 의지해서 원문을 해석할 수밖에 없다. 원어를 아는 독자라도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오류를 걸러내기란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좋은 접근이었다 생각한다.

그렇다면 산해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고 있고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을까.
<상서>와 <여씨춘추>, <사기>를 보면, 대우가 치수한 후에 대신들을 거느리고 산천대지와 생산물의 분포상황을 조사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조사결과에 근거하여 당시 매우 정확한 ‘국토자원 분포도’를 제작하면서 전국을 구주로 나누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산해경>의 <산경> 부분이 바로 대우의 조사결과에 해당된다. <산해경>은 서적으로도 만든 동시에 <산해도>라는 그림으로도 제작되었다. 사실 <산해경>은 이 <산해도>를 설명한 글이라고 한다. <산해도>는 세발솥 구정에 넣었으나, 춘추전국시대의 사회가 어수선하고 전쟁이 빈번하여 구정이 사라지면서 <산해도>도 자취를 감춘다(P4).
그후 진이 통일을 하면서 산해경을 찾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전해지는 산해경은 18권으로 남산경, 서산경, 북산경, 동산경, 중산경이 각각 한 권으로 합해져 5경으로 <오장산경> 또는 <산경>이라 부른다. 해외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해내남, 서, 북, 동경이 각각 한 권, 대황동, 남, 서, 북이 각각 한 권, 해내경을 한 권으로 해서 13권을 <해경>이라 부른다. 합해서 <산해경>이다.
그러니까 산해경의 지리 정보는 측량에 기반한 정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산해경은 그야말로 방대한 백과전서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상고 시대 살았던 이들이 디디고 있던 땅과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지리, 역사, 종교, 문학, 철학, 민족, 민속, 동물, 광물, 의약 등 다양한 지식을 담아낸 것이다. 그래서 오래도록 꾸준히 언급되고 회자되며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다. 중국은 오래전부터 산해경을 중요하게 다루어오면서 중화민족에 얽힌 신화와 전설을 끄집어내어 꾸준히 이용하는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지리에 약하기도 해서 땅을 묘사하고 그곳에 사는 생물에 대한 설명보다는 전승되는 역사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더 재밌었다. 대표적으로 서왕모, 황제와 치우에 얽힌 이야기나 요, 순임금에 대한 내용 등이 그렇다.   



중국 신화전설에 대해서는 이 책으로 가장 먼저 접하지 않았나 싶다. 그때는 잘 모르고 읽었던 것 같은데 다시 읽으면 더 잘 읽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얼마 전 정재서 교수의 신간으로 이 책이 나왔길래 구입했으나 언뜻 책의 내용을 보니 조금 어려워보여서 읽기를 망설이고 있다. 그래도 흐름을 끊기지 않기 위해서는 읽어야겠지. 이 책과 더불어 한국의 신화에 대한 이야기도 더불어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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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영화든 드라마든 한 번에 몰아서 보아주어야 하는데 드라마 <삼국지>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길다보니 이제 반쯤 보았나. 다 보고 나면 엮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그만하자 생각하고 읽은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결단을 내렸다. 


삼국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핵심만 쏙쏙 골라서 써낼 수가 있구나 일단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읽히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 삼국지는 중반까지 가지도 못하고 책을 놓게 된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다양하다보니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 나도 초반에 유비 삼형제가 만나고 동탁이 권력을 잡은 뒤 조조가 그를 공격하려다 실패해서 도망자가 되는 과정, 그를 물리치기 위해 군웅이 모여서 한판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은 몇 번을 읽어서 그 과정을 꿸 정도이나 그 이후의 벽은 넘기가 참 쉽지 않았다. 


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단연 여포였다. 공격력 면으로는 관우나 장비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최강이었으니 사실 초선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지혜가 부족하고 편협하여 여러 번 좋은 기회를 놓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팠다. 책사인 진궁의 말만 귀기울여 들었어도 좀 나았을텐데 말이다. 진궁은 동탁을 공격한 뒤 그를 피해 달아난 조조를 영웅이라 생각했으나 조조는 그가 생각하는 도의를 아는 이상적 지도자는 아니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을 거두어준 이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조조는 예전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관도대전에서 70만 대군을 상대로 몇 만의 군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것은 그야말로 쾌거였다.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몰랐던 원소의 핵심 인사였던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원소군의 군량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조조가 사람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앞서 유비 삼형제가 전투에 패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것, 뒤에 조자룡을 얻기 위해 보인 관심 등이 있다. 조조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조조는 관도대전으로 삼국의 승자로 떠올랐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얻는다. 이로써 장수 뿐 아니라 소중한 책사를 확보했다. 앞서 유비가 계속 조조에게 밀려 전투에게 패했던 것은 그의 곁에 걸출한 장수들은 많았으나 두뇌를 쓸 줄 아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공격력만으로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제대로 된 작전이 없다면 승리를 얻기 힘들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강동의 손권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유연합의 결성으로 유비는 조조를 물리칠 준비를 끝마친다. 이로써 조조와 손유연합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손유연합이 만들어졌으나 주유와 제갈량의 두뇌 싸움은 치열했다. 손권 측에서는 유비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더 우위에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싸움은 강동에서 이루어질테니 오랜 기간 수전에 단련되어온 자신들이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주유는 강동의 브레인이었다. 손견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이었으나 손권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았다. 반면 주유는 손견과 오랜 기간 전투를 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풍부했다. 제갈량이 손유연합을 위해 손을 내밀면서 두 사람의 두뇌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갈량이 한 수 위였다. 주유도 대단한 책사였으나 제갈량은 늘 그의 수를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번번히 그보다 앞선 수를 내놓았다. 자신보다 항상 더 앞서는 지략가를 만난 주유는 평생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어쨌든 이제 삼국지 하이라이트 전투인 적벽대전이 시작된다. 전투를 위한 사전 작전들이 정말 대단했다. 본 전투 이전에 만약 이런 치밀한 작전들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결과가 그리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유는 친구인 장간을 역이용하고 황개의 고육계와 방통의 연환계를 이용해 조조를 속였으며 제갈량은 안개를 이용해 조조군 진영에 가서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냈다. 화공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방통의 연환계로 조조군의 배를 엮어 불을 연달아 붙게 한 것이 컸다. 이로써 다윗(손유 연합)과 골리앗(조조 진영)의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조조는 왕위에 올랐고(그전까지는 왕처럼 행세하기는 했으나 승상의 위치에만 있었음) 유비는 형주에 이어 익주 땅까지 얻으며 기반을 얻게 되었다. 조조 진영은 책사였던 순욱과 순유가 사망한 뒤 사마의가 그 책임을 맡게 된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한중은 익주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땅이었다. 조조의 꿈인 중원 점령을 위해서는 익주를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조는 한중마저 유비에게 내주면서 후퇴해야만 했다. 


여러 곳을 다스려야 하게 된 유비는 홀로 그 모든 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관우는 형주성을 맡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 진영에 있었던 관우는 이제 수성해야 할 성주의 입장에 있었다. 기고만장해진 그는 손권의 아들과 자신의 딸의 결혼인 사돈 제의를 말도 안되는 말(호랑이의 자식을 어떻게 개의 자식과 결혼을 시키겠는가)로 거절한다. 이것은 비극의 씨앗이 되는데 화가 난 손권이 형주를 비우고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관우가 북으로 간 사이 형주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목숨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겠다. 정말이지 가장 안타깝고 씁쓸한 장면이었다. 관우의 끝은 이렇게나 좋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그는 초심을 잃은 뒤 오만함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장비의 죽음은 더 황망했다. 그는 예전부터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버릇도 고약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장수의 말로는 잠자는 사이 부하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남는다. 


정사에서는 과연 두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아래는 정사 촉서 관우전의 내용 중 일부이다.


손권은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냈다.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또 남군 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이 공안에서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싫어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는 않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손권이 미방과 사인을 은밀히 유인하니,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했다. 게다가 조조가 서황을 보내 조인을 보았으므로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

역시 예상대로 관우가 했다는 말은 나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이야기가 사실 더 핵심이었다.  


장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비는 군자를 아끼고 존경하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늘 이 점을 경계하여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할 때, 장비는 병사 만 명을 인솔하여 낭중으로부터 나와 강주에서 유비와 만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막하의 장수 장달과 범강이 장비를 죽이고, 그 머리를 갖고 장강을 따라 손권에게로 달려갔다. 장비 군영의 도독이 표를 올려 이를 유비에게 보고했다. 


유비는 관우가 사망한 것 때문에 손유연합을 깨고 손권을 공격한다. 삼형제의 의리가 그렇게나 중요했을까. 관우는 오만해서 화를 불렀고 장비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아 자멸했다. 지도자로서 어떤 것이 더 중요했을까. 유비는 의리에 목매어 우선순위를 그르친 끝에 내리막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유연합이 깨진 이상 유비와 조조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가 후회하고 깨달은 뒤에는 그의 목숨이 이미 다할 때였다. 그는 제갈량에게 촉나라를 부탁하고 사망한다. 제갈량은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북벌을 단행함으로써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상 위나라의 브레인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브레인인 제갈량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북벌인 가정 전투에서는 위나라가 승리한다. 이는 “높은 산 위에 진을 치지 마라"는 제갈량의 당부를 잊은 마속이 산을 아래에서 포위함으로써 물이 없었던 산에 불을 놓은 사마의가 쉽게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속은 유능한 장수였으나 제갈량은 본보기로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수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읍참마속이다. 

서성 전투에서는 군량을 지켜내기 위해 제갈량이 직접 참전했다. 촉군은 2500명이었던 반면 위군은 15만명에 달했다. 아무리 수성의 위치에 있던 촉군이었다 해도 이는 쉽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갈량은 성의 깃발을 내리고 오가는 사람이 없게 한다. 그리고 군사들을 보내 성 앞에서 쓸게 한 뒤 성문을 활짝 열어둔다. 그는 비단옷을 입고 성 위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그 모습을 보고 ‘설마 뭔가 있겠지’ 하며 돌아가고 만다. 제갈량의 완벽한 승리였다. 여기에서 허장성세(허세)라는 말이 유래했다.

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를 데리고 촉군의 식량창고를 습격한다. 그런데 창고문을 열었더니 마른 풀과 장작, 기름만 있을 뿐이었다. ‘아뿔싸!’한 사마의, 여기에 제갈량은 불화살을 쏘면서 불바다로 그들을 섬멸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위군은 살아남아 돌아갈 수 있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제갈량은 이런 말을 남기며 씁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장원에서 위군과 촉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다. 제갈량은 하늘을 통해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촉군을 위한 퇴로를 준비했다. 제갈량은 죽었으나 작전을 남겨두었다. 자신의 가면을 만들어 그가 살아있음을 믿게 만들어 촉군을 도망치게 했던 것이다. 사마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 했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의 두 라이벌인 주유와 사마의 간의 두뇌 싸움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물론 조조와 유비 간의 라이벌 대결도 만만치 않았지만. 작가는 ‘절제’라는 키워드로 삼국지의 인물과 사건을 추적한다.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리더로서의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말까지 후한이 무너지고 진이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100여 년의 시간인 역사 <삼국지>가 14세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재미난 소설로 탄생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최소한의 삼국지>는 복잡한 삼국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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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것이 됨으로써 동시성을 관통한다.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성姓, 우리의 외로움과 우리의 사회, 대담한 야망과 맹목적인 희망, 보답 받지 못한 사랑과 부분적으로나마 보답 받은 사랑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삶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만 파악되며 "전기"라는 직선의 그래프가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지닌 그림으로 나타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 P15~16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어느 한 시기로 정의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하물며 몇 권의 저서로도 그 사람을 다 파악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 숨은 뜻이 많다면 더 파악하기 어렵다. 설사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그의 개인적인 관계를 다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층으로 일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앞서 나간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주변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가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충실히 담아냈다 .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여러 인물을 담아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가 쪽보다는 비문학, 과학자 쪽 계열의 이야기가 더 친숙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에밀리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요하네스 케플러, 허먼 멜빌, 찰스 다윈, 레이철 카슨의 이름만 알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윌리어미나 플레밍이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의 삶을 더 깊숙이 알게 된 것도 좋았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마거릿 풀러가 아닐까 싶다. 


마거릿 풀러는 여성 해방 운동의 기초가 되는 책을 쓰고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문학, 예술 비평을 썼으며 뉴욕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뉴욕트리븐에서 최초의 여성 편집자로 일했다. 또 교도소의 개혁을 주장하고 흑인 선거권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일찍부터 근시가 왔고 등이 굽어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풀러는 <19세기 여성>을 통해서 성별의 이원성을 비판했고 ‘대화’라는 모임을 통해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나중에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 진행 과정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해서인지 마거릿 풀러는 책의 다른 인물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언급된다. 


인상적이어서 더 언급하고 싶은 인물은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이 있다. 


마리아 미첼은 수학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여성 최초로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녀는 배움의 기회를 가진 이들을 위해 학교를 스스로 열어 운영하고 낸터킷 애서니엄 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 강연회를 열었으며 해군에 들어가 계산자로 일하기도 했다. 우주에 대한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회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틀릴 수 있고 틀려진 것이 밝혀지면 밝힐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란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명이자 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메리 서머빌은 스코틀랜드 과학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로 자외선의 자성을 연구한 과학 논문을 썼을 정도로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천계의 구조>를 써서 마리아 미첼에게 칭찬의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물리적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통해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질학, 화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을 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성실함을 지니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미션이라 생각한다. 특히 과학은 남자의 분야(man of science)라고 일컬어지던 때 일구어낸 일이었기에 한 비평가에 의해서 그녀에게 과학자라는 용어가 주어지기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써서 이름을 알린 시인이다. 사실 그동안 그녀의 시를 몇 차례 읽었으나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마치 눈뜬 장님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 책을 통해서 그녀 곁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니 조금이나마 그 의문이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중심 인물은 수전 길버트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디킨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디킨슨의 시는 찬양과 비탄을 이중적으로 담는 애가의 형식으로 그녀만의 리듬과 운율을 지녔다. 특히 다양한 물질에 대한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 대상에는 식물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나 일식 같은 자연 현상도 있었다. 그녀는 죽기 전 30여년 간 거의 밖을 나오지 않고 은둔한 채 작품에만 매달렸다 한다. 수전과 더이상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이런 의도적인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이끌어내는데는 돌파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디킨슨 사후 수전의 존재는 지워지고 만다. 그래도 메이블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디킨슨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인 것 같다.


레이철 카슨은 문학적 재능을 가진 과학자로 그야말로 두 문화의 경계를 허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카슨의 문학적 재능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여러 매거진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실릴 정도로 탁월한 글쓰기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써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물학자이자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녀를 그야말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독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특히 문학을 좋아해 여러 문학가의 글을 섭렵했다 한다. 카슨은 대학 2학년 때 생물학 수업을 듣고 과학계의 길에 들어선 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바다, 생물의 환경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침묵의 봄>에 이르기까지. 특히 <침묵의 봄>은 출간하면서 주변의 공격을 예상했다 한다. 카슨은 과학이 아니라 비과학적 태도를 비판하며 과학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일에 대해서 윤리적인 물음을 던졌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현실에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파괴를 향한 인류의 성향이 약화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본에 의해 환경은 끊임없이 공격받아 파괴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있었던 네팔의 안타까운 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그녀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한 사람을 설명하면서도 그의 주변 관계를 끌어오고 당시의 문헌이나 사건을 끊임없이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리아 미첼이 혜성을 발견하기 몇 달 전 랠프 왈도 에머슨은 처음 출간한 시집에서 이런 시를 썼다는 식으로 설명한다든가 열두 살 소녀였던 마리아 미첼이 일식을 관찰하고 별을 향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지 몇 달 후, 21세의 마거릿 풀러는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별”에 도달했다(P164)는 식이다. 하나의 이야기만 파고들고 싶은 이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찰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이야기를 서로 얽어 한 시대를 정리하고 싶은 이라면 꽤나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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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매체를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는 일이 쉬워질수록 우리는 그 안에 담길 내용을 점점 더 선별하지 않게 된다. 우리는 일상에 - P396

서 마주하는 사소하고 평범한 것들을 전달한다. 단지 종이를 채우는 데(혹은 글을 입력하는 데, 영상을 올리는 데, 다음에 등장할 매체가 무엇이든 그 매체를 이용하는데) 거의 수고가 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이다. 점심으로 무얼 먹었는지를쓴 편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점심 사진으로 대체되고 이 사진에 우리는빛과 그림자, 구도의 예술적 효과를 대체한다고 주장하는 기성품화된 필터를 적용한다. 사진 예술 또한 그 편리함 탓에 죽임을 당하고 있다. - P397

천문대 계산자로 합류한 지 10년 만에 플레밍은 자신이 직접 분류한 1만 개별의 분포를 기록한 400쪽에 이르는 일람표를 발표했다. 플레밍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의 고향에 은판 사진술을 최초로 도입한 남자였다. 다른계산자인 헨리에타 스완 레빗 Henrietta Swan Leavitt은 업무 능력이 특히 뛰어나다른 계산자들의 평균 급료보다 시간 당 5센트 많은 30센트를 받으며 일을했다. 그녀의 계산 결과는 훗날 우주가 팽창한다는 에드윈 허블 Edwin Hubble의 법칙을 증명하는 기초가 되었다. - P400

호스머는 결혼이 여자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일반적이고 거의 유일한 길이었던 사회에서 대안적일 뿐 아니라 거의 아무도 가지않는 길을 택했다. 주위의 동료가 모두 결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호스머는크로에게 쓴 편지에서 말했다.
나를 빼고 다들 결혼을 하고 있어요. ...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해도 예술가한테는 결혼할 권리가 없어요. 남자는 어쩌면 괜찮을지도 모르지만 부부의 의무와 책임이 훨씬 더 무겁게 부과되는 여자의 경우 예술가가 결혼한다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일이나 가정 중 하나를 방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결국 현모양처가 되지도 뛰어난 예술가가 되지도 못하게 될 겁니다. 내 야심은 후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통합의 매듭으로 영원히 지속되는 불화를 계속해서 봉합해나갑니다. - P443

호스머의 유산은 바로 그녀 자신의 존재,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로 한 선택을 통해다른 이들에게 가능성을 넓혀주고 그들의 삶을 확장시켜 준 방식에 있다.
호스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여성 예술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타인"으로존재했던 문화 한복판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노력한 모든 창조적인사람들, 동성애자임을 숨길 이유가 거의 없어진 문화 안에서 편안하게 커밍아웃할 수 있던 모든 퀴어 남녀들은 해리엇 호스머에게 빚을 지고 있다. 우리의 존재를 받치는 기반에는 호스머의 원형적인 유전자의 무늬가 새겨져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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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 : 상 - 한 역사학자의 8·15 일기 ㅣ 역사 앞에서
김성칠 지음, 정병준 해제 / 창비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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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앞서 같은 제목으로 1945년 말부터 1951년 4월까지 일기의 내용이 실려 출간된 바 있었다. 그러다 최근 8.15 해방 직후부터 그해 11월 말까지 기록이 추가로 발견되어 작년에 한 신문사에 연재된 내용을 바탕으로 개정판이 나오게 되었다. 앞선 구판은 사실상 하권의 내용이 되며 이 책과 더불어 2권의 책으로 분간되어 나오게 되었다. 상권은 8.15 일기, 하권은 6.25 일기가 되는 것이다. 앞부분은 1945년부터 1946년 4월까지의 내용이 실려있는데 주로 해방 직후 2~3개월 내용의 분량이 많아서 해방 직후사라 할 만했다.


이 책의 내용은 해방 후 서울의 공간이 아닌 충북 제천군 봉양면이라는 지방의 공간적 관점이 적용되어 있다는 것이 특별하다. 이는 저자가 그곳에서 주로 생활했고 금융조합 이사로 일했기 때문에 그렇다. 덕분에 중앙이 아닌 지방에서는 어떤 일이 구체적으로 벌어졌는지 그 실태를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다. 


먼저 저자의 해방 전 이력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는 1928년 대구고보 2학년 때 대구학생 비밀결사 사건으로 검거되어 10월 징역 2년 집행유예 선고를 받을 때까지 근 1년간 미결수로 복무한 이력이 있다. 그리고 1942년 경성제대 법문학부에 입학해 조선역사를 전공했다. 1943년 일제가 학도지원병을 강제하자 입대를 거부한 그는 1944년 징용훈련소에 수용되었다. 다행히 그곳에서 경성법학전문 시절 훈련교관을 만나 퇴소할 수 있었고 그 이후 조선금융조합 연합회 제천군 봉양면 이사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제천은 원주와 경주를 잇는 기차가 지나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1941년 7월 현재의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봉양역이 생겼다. 봉양면은 제천군의 북쪽에 위치하여 원주군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봉양면의 해방은 8월 17일에 느껴진다. 여러 분위기가 있는데 일반 서민들은 환호하는 반면 일제에 협력했거나 부역했던 자들은 불안해했다. 관청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가다가 사람들이 던지는 돌에 맞거나 구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시간이 지나면 자포자기로 바뀌거나 나태나 무책임의 태도로 변화하기는 하지만 초반에는 실제로 공격당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가 몸담고 있던 금융조합 직원들도 그랬다. 금융조합은 곧 사라질테니 하루 빨리 도망쳐야 한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언제 올지 모를 폭풍우를 예상하며(애써 외면하며) 몸조심하는 사람이 있었고 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어차피 사라질 금융조합 일이니 대충 하자며 근무 태만인 자도 있었다. 하루는 그가 금융조합 내부에서 위로금을 나눠 가지기로 했다고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이는 명백한 배임죄라며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한다. 

그는 혼란한 상황 속에서도 각자의 역할에 충실(학생은 학생답게, 직장인은 직장인의 일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시스템의 구조적인 개혁보다는 개개인의 자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기에 보수적인 입장이었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친일파 강력 처벌에 대해서도 회의적이거나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치안력이 확립되지 못해 주먹이 앞서는 세상을 경계했다.  


해방이 되어 하루 빨리 조선을 떠나야 했던 재조일본인들도 있었으나 자의 반 타의 반 나가 있던 조선인들은 귀환을 서둘렀다. 

1945년 8월 31일 흐리다.

제천행.

역에 내리니 "귀환 병정, 응징사 환영, 강원도 영월군"이라는 깃발이 보이고  그외에 평창, 정선 등 군도 있었다. 그리고 마이크로폰으로 "강원도 영월 사람으로 병정이나 징용 갔던 분은 이리 오시오" 하고 외치고 있었다. 이 더위에 갖는 고생을 겪고 가까스로 여기까지 돌아와서 다시 몇백리 산길을 어떻게 톺아 갈까 하고 걱정하던 사람들이 저 깃발을 보고 저 목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기쁠까. 동포애에 눈물겹고 새 결심이 용솟음칠 것이다.

근래에 보던 중 가장 유쾌한 광경의 하나이다.

저자의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었다. 강제동원당한 뒤 조선에 돌아오던 사람들의 모습이 어떠했을까 궁금했는데 이 일기로 그 광경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다. 다른 곳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해방 후 이렇게 한 달도 안 되어서 돌아올 수 있던 사람도 있었겠지만 여러 이유들의 사정으로 아예 돌아오지 못하거나 귀환이 늦어졌으리라 생각한다. 실제로 11월의 일기에서 조선에 있는 일본인의 사정이 나쁘다는 소식이 일본에 전해지자 일본 내 분위기가 악화되었고 이것이 조선인의 귀환에 발목을 잡는 일이 생겼다고 한다. 자신이 원해서 나간 것이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것도 뜻대로 안되는 이 상황은 정말이지 씁쓸하기 짝이 없다.


그는 전재 귀환 동포를 위한 구휼 사업을 금융조합 내부에 건의하여 시작했다. 기다림 끝에 돌아오는 동포를 위해 음식을 마련하여 전해주면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따뜻한 조선 입성의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다. 


9월이 되자 미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퍼졌고, 이에 분위기가 뒤숭숭해진다. 심지어는 대학도 미군이 점거하는 상황이 되었다고. 어느 날에는 미군 접대를 위한 환영 연회가 열리는데 그는 미군들을 위해 애쓰는 꼴이 우습다고 넋두리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무렵 초기 대한민국을 지도할 만한 교육 행정 책임자가 마땅히 없어 순수 학문을 연구하던 학자들을 끌고 와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그는 연구에 매진해야 할 사람들이 행정에 가담해야 하는 현실에 통탄하며 대한민국교육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당시 통화가 시중에 대량으로 풀리면서 인플레이션으로 물가도 급등한다. 그런데 받는 급료는 그대로이니 직원들의 불만은 커졌고 이때를 틈타 회계 장부에 손을 대는 직원도 생겨났다. 

그는 총독부와 군정청을 매한가지라고 생각했다. 일부는 미군을 해방군으로 여기기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미군은 해방군이 결코 아니었기에 그의 생각은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조선의 정치는 무능함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이 세태를 비판하며 '그만큼의 질서도 기적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복잡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던걸까. 시니컬함이 엿보이기도 하다. 


여기 한 사나이가 있다. 그의 운명의 고삐는 자꾸만 엇나가려 하고 있다. 그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버티고 버티고 했으나 운명의 작희는 끝이 없다. 그러나 그는 이를 하늘님이 주시는 시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밀물처럼 밀려오는 슬픔과 애달픔을 이를 악물고 눈물을 삼켜버린다. 그는 꿈에도 술에 숨으려 하지 않고 아편에 도망하려 하지 않는다. 하늘님이 영 그를 버리시기 전엔 그는 앞으로도 언제나 그러하리라. ... 낙천주의여. 허허 하고 웃는 그의 웃음 뒤에 만겹 시름이 첩첩이 쌓이고 쌓이었음을 그 누가 알랴. - P146~147

일제강점기 이후 조선과 조선인의 운명은 가혹하였으나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낙천주의를 가지고 있다고 그는 자신의 마음을 빗대어 말하였다. 가까운 친구는 그를 안온적이고 보수적이라고 비판하며 좌익으로 노선을 달리하기 시작한다. 내심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노선을 끝내 고수하고자 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그는 학문에 대한 태도를 구기를 배우는 태도에서 나아가 상업으로까지 연결시킨다. 여기에는 정공법, 속여서 얻기, 정공으로 시작했으나 이익으로 나아가는 세 가지의 모습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공부하는 목적은 단순히 문제를 풀기 위함이 아니라 올바른 길을 찾아 그 길을 똑바로 지켜나갈 수 있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공부는 유한 계급 엘리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올바른 방향이자 자기 성장의 유일한 길이기에 나이, 환경 등을 따지는 것은 핑계라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가 있었다. 


그는 일기에 여러 차례 한글의 우수성과 위대함에 대해 피력한다. 한글만큼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과학적인 문자가 없다고 말이다. 그는 문화적인 독립을 위해서라도 한문을 전폐하고 한글을 사용해야 함을 계속 일기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책을 번역했는데 그중 강용흘의 자전소설인 Grass Roof를 '초당'으로 내었다는 이력이 눈에 띄었다. 그뿐 아니라 펄벅의 대지도 그 목록에 있다. 1945년 12월에는 <조선역사>를 쓰고 정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당시 출판계의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다고 한다. 

12월 초 임시정부 요인들이 개인 자국으로 입국했다는 신문이 지방에도 보도되었다. 얼마 후 임시정부 요인의 개선 환영식이 있었으나 이와중에도 인민공화국과 한국민주당으로 파가 나뉘어 극도의 혼란한 모습을 보였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결과가 발표되자 이 분위기는 더욱 심화되었다. 


그는 금융조합 지회에 몸담고 있었던 만큼 자문을 하러 오는 방문객들이 끊이지 않았으나 가능하면 이를 회피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1946년 1월에는 <조선역사>를 기고 및 탈고하는 데만 매진했다. 이를 통해 향후에는 학문 연구, 기고에만 집중하겠다는 생각을 점차 굳힌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금융조합 연합회에 사의를 표명하는데 이는 갈수록 금융조합이 우익편향이 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한몫을 했다. 물론 그는 공산당의 독단과 사대주의를 경계했다. 공산주의의 이념은 배울 점이 있으나 공산당의 방향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내 안에 드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과연 개개인이 각자의 일에 매진하는 것과 투쟁을 포함한 사회를 개혁하는 것 중 해방 후의 미래를 위해서 어느 것이 더 나은 과정이었나 하는 생각 말이다. 저자는 앞선 관점을 고집했다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문이 남았다. 해방 초기 잠깐은 친일에 부역하던 이들이 몸을 사리고 눈치를 보았지만 이후에는 그러지 않았다. 더군다나 미군정이 들어온 뒤에는 각자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이 달라 난맥상이 벌어지지 않나. 개인적으로 당시의 상황에서 구조적인 개혁 없는 미래는 그려지지 않는 것 같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 책의 전작을 사두고 아직 읽지를 못했는데 개정판이 나오는 바람에 스텝이 꼬였다. 뒷내용은 아직 나오지 않았기에 구판을 먼저 읽을지 아니면 개정판을 읽고 다시 구판을 읽을지 고민을 좀 해보려 한다.


저자의 일기 자체로도 좋지만 정병준 선생님의 해제를 함께 읽으면 배경을 좀 더 소상히 알 수 있어 도움이 된다. 하권도 하루 빨리 나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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