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름지기 영화든 드라마든 한 번에 몰아서 보아주어야 하는데 드라마 <삼국지>는 아직 끝을 보지 못했다. 워낙 길다보니 이제 반쯤 보았나. 다 보고 나면 엮어서 쓸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계속 그 시간이 길어져서 이제 그만하자 생각하고 읽은 책이나 정리해야겠다 결단을 내렸다.
삼국지를 한 권의 책으로 이렇게 핵심만 쏙쏙 골라서 써낼 수가 있구나 일단 놀라웠다. 그리고 생각보다 잘 읽히고 재밌어서 순식간에 읽을 수 있었다.
대부분 삼국지는 중반까지 가지도 못하고 책을 놓게 된다. 워낙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고 사건도 다양하다보니 읽다 보면 머리에 쥐가 나기 마련이기 때문. 나도 초반에 유비 삼형제가 만나고 동탁이 권력을 잡은 뒤 조조가 그를 공격하려다 실패해서 도망자가 되는 과정, 그를 물리치기 위해 군웅이 모여서 한판을 벌이기까지의 과정은 몇 번을 읽어서 그 과정을 꿸 정도이나 그 이후의 벽은 넘기가 참 쉽지 않았다.
초반에 나를 사로잡은 인물은 단연 여포였다. 공격력 면으로는 관우나 장비도 제칠 수 있을 정도로 최강이었으니 사실 초선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지 않았을까. 물론 그는 지혜가 부족하고 편협하여 여러 번 좋은 기회를 놓치면서 스스로 무덤을 팠다. 책사인 진궁의 말만 귀기울여 들었어도 좀 나았을텐데 말이다. 진궁은 동탁을 공격한 뒤 그를 피해 달아난 조조를 영웅이라 생각했으나 조조는 그가 생각하는 도의를 아는 이상적 지도자는 아니었다. 잘 알아보지도 않고 자신을 거두어준 이의 가족들을 몰살시켰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
물론 오늘날 조조는 예전과 달리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무엇보다 관도대전에서 70만 대군을 상대로 몇 만의 군대로 승리를 일구어낸 것은 그야말로 쾌거였다. 사람을 소중히 할 줄 몰랐던 원소의 핵심 인사였던 허유가 조조에게 투항하면서 원소군의 군량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기에 가능했다. 조조가 사람에 진심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앞서 유비 삼형제가 전투에 패해 서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다한 것, 뒤에 조자룡을 얻기 위해 보인 관심 등이 있다. 조조가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이유가 가장 컸다고 생각한다. 조조는 관도대전으로 삼국의 승자로 떠올랐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제갈량을 얻는다. 이로써 장수 뿐 아니라 소중한 책사를 확보했다. 앞서 유비가 계속 조조에게 밀려 전투에게 패했던 것은 그의 곁에 걸출한 장수들은 많았으나 두뇌를 쓸 줄 아는 자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투는 공격력만으로 결코 가능한 것이 아니며 제대로 된 작전이 없다면 승리를 얻기 힘들다. 제갈량은 유비에게 조조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강동의 손권과 손을 잡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유연합의 결성으로 유비는 조조를 물리칠 준비를 끝마친다. 이로써 조조와 손유연합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손유연합이 만들어졌으나 주유와 제갈량의 두뇌 싸움은 치열했다. 손권 측에서는 유비 측에서 먼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이 더 우위에 싶었을 것이다. 게다가 싸움은 강동에서 이루어질테니 오랜 기간 수전에 단련되어온 자신들이 우위에 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주유는 강동의 브레인이었다. 손견이 죽고 손권이 그 뒤를 이었으나 손권은 아직 나이가 어린 만큼 전투 경험이 많지 않았다. 반면 주유는 손견과 오랜 기간 전투를 하면서 그런 경험들이 풍부했다. 제갈량이 손유연합을 위해 손을 내밀면서 두 사람의 두뇌 대결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제갈량이 한 수 위였다. 주유도 대단한 책사였으나 제갈량은 늘 그의 수를 꿰뚫고 있었을 뿐 아니라 번번히 그보다 앞선 수를 내놓았다. 자신보다 항상 더 앞서는 지략가를 만난 주유는 평생 얼마나 한스러웠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어쨌든 이제 삼국지 하이라이트 전투인 적벽대전이 시작된다. 전투를 위한 사전 작전들이 정말 대단했다. 본 전투 이전에 만약 이런 치밀한 작전들이 없었다면 적벽대전의 결과가 그리 마무리될 수 없었을 것이다. 주유는 친구인 장간을 역이용하고 황개의 고육계와 방통의 연환계를 이용해 조조를 속였으며 제갈량은 안개를 이용해 조조군 진영에 가서 10만 개의 화살을 얻어냈다. 화공작전이 가능했던 것은 방통의 연환계로 조조군의 배를 엮어 불을 연달아 붙게 한 것이 컸다. 이로써 다윗(손유 연합)과 골리앗(조조 진영)의 싸움은 다윗의 승리로 끝날 수 있었다.
조조는 왕위에 올랐고(그전까지는 왕처럼 행세하기는 했으나 승상의 위치에만 있었음) 유비는 형주에 이어 익주 땅까지 얻으며 기반을 얻게 되었다. 조조 진영은 책사였던 순욱과 순유가 사망한 뒤 사마의가 그 책임을 맡게 된다. 조조는 유비가 한중을 차지하자 위기감을 느꼈다. 한중은 익주를 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땅이었다. 조조의 꿈인 중원 점령을 위해서는 익주를 지나야 가능했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만 했다. 그러나 조조는 한중마저 유비에게 내주면서 후퇴해야만 했다.
여러 곳을 다스려야 하게 된 유비는 홀로 그 모든 곳을 관리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관우는 형주성을 맡게 된다. 적벽대전 이후 여러 전투에서 계속 승리 진영에 있었던 관우는 이제 수성해야 할 성주의 입장에 있었다. 기고만장해진 그는 손권의 아들과 자신의 딸의 결혼인 사돈 제의를 말도 안되는 말(호랑이의 자식을 어떻게 개의 자식과 결혼을 시키겠는가)로 거절한다. 이것은 비극의 씨앗이 되는데 화가 난 손권이 형주를 비우고 조조를 공격하기 위해 관우가 북으로 간 사이 형주성을 빼앗기 때문이다. 더 결정적인 것은 그의 목숨도 부지할 수 없었던 것이겠다. 정말이지 가장 안타깝고 씁쓸한 장면이었다. 관우의 끝은 이렇게나 좋지 않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여야 하는데 그는 초심을 잃은 뒤 오만함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장비의 죽음은 더 황망했다. 그는 예전부터 술을 너무 좋아했고 술버릇도 고약했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장수의 말로는 잠자는 사이 부하들에 의해서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남는다.
정사에서는 과연 두 사람의 죽음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아래는 정사 촉서 관우전의 내용 중 일부이다.

손권은 아들을 위해 관우의 딸에게 구혼하려고 사자를 보냈다. 관우가 그 사자를 모욕하고 결혼을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손권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또 남군 태수 미방이 강릉에 있고 장군 사인이 공안에서 주둔했는데, 평소 관우가 자신들을 경시했으므로 싫어했다. 관우가 출병하자 미방과 사인이 군수물자를 대었는데 힘을 다해 돕지는 않았다. "돌아가면 반드시 그들을 징벌하겠다." 미방과 사인은 속으로 두렵고 불안했다. 그래서 손권이 미방과 사인을 은밀히 유인하니, 미방과 사인은 사람을 시켜 손권을 맞이했다. 게다가 조조가 서황을 보내 조인을 보았으므로 관우는 이기지 못하고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손권이 이미 강릉을 점령하고 관우의 병사들과 처자식을 모두 포로로 붙잡았으므로 관우의 군대는 흩어지고 말았다. 손권은 장수를 보내 관우를 공격하고, 관우와 그 아들 관평을 임저에서 참수했다.
역시 예상대로 관우가 했다는 말은 나오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원인이 되는 이야기가 사실 더 핵심이었다.
장비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장비는 군자를 아끼고 존경하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늘 이 점을 경계하여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을 채찍질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는 화를 부르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할 때, 장비는 병사 만 명을 인솔하여 낭중으로부터 나와 강주에서 유비와 만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할 때 그 막하의 장수 장달과 범강이 장비를 죽이고, 그 머리를 갖고 장강을 따라 손권에게로 달려갔다. 장비 군영의 도독이 표를 올려 이를 유비에게 보고했다.
유비는 관우가 사망한 것 때문에 손유연합을 깨고 손권을 공격한다. 삼형제의 의리가 그렇게나 중요했을까. 관우는 오만해서 화를 불렀고 장비는 나쁜 버릇을 고치지 않아 자멸했다. 지도자로서 어떤 것이 더 중요했을까. 유비는 의리에 목매어 우선순위를 그르친 끝에 내리막을 걸었다는 생각이 든다. 손유연합이 깨진 이상 유비와 조조의 대결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유비가 후회하고 깨달은 뒤에는 그의 목숨이 이미 다할 때였다. 그는 제갈량에게 촉나라를 부탁하고 사망한다. 제갈량은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북벌을 단행함으로써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이는 사실상 위나라의 브레인인 사마의와 촉나라의 브레인인 제갈량간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1차 북벌인 가정 전투에서는 위나라가 승리한다. 이는 “높은 산 위에 진을 치지 마라"는 제갈량의 당부를 잊은 마속이 산을 아래에서 포위함으로써 물이 없었던 산에 불을 놓은 사마의가 쉽게 승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속은 유능한 장수였으나 제갈량은 본보기로 결국 눈물을 흘리며 마속을 참수한다. 여기에서 유래한 말이 읍참마속이다.
서성 전투에서는 군량을 지켜내기 위해 제갈량이 직접 참전했다. 촉군은 2500명이었던 반면 위군은 15만명에 달했다. 아무리 수성의 위치에 있던 촉군이었다 해도 이는 쉽게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제갈량은 성의 깃발을 내리고 오가는 사람이 없게 한다. 그리고 군사들을 보내 성 앞에서 쓸게 한 뒤 성문을 활짝 열어둔다. 그는 비단옷을 입고 성 위에서 거문고를 연주했다. 사마의는 그 모습을 보고 ‘설마 뭔가 있겠지’ 하며 돌아가고 만다. 제갈량의 완벽한 승리였다. 여기에서 허장성세(허세)라는 말이 유래했다.
사마의는 사마사, 사마소를 데리고 촉군의 식량창고를 습격한다. 그런데 창고문을 열었더니 마른 풀과 장작, 기름만 있을 뿐이었다. ‘아뿔싸!’한 사마의, 여기에 제갈량은 불화살을 쏘면서 불바다로 그들을 섬멸하려 했다. 그런데 이때 하늘에서 비가 내리며 위군은 살아남아 돌아갈 수 있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구나." 제갈량은 이런 말을 남기며 씁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오장원에서 위군과 촉군의 마지막 전투가 벌어진다. 제갈량은 하늘을 통해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알고 촉군을 위한 퇴로를 준비했다. 제갈량은 죽었으나 작전을 남겨두었다. 자신의 가면을 만들어 그가 살아있음을 믿게 만들어 촉군을 도망치게 했던 것이다. 사마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물리쳤다.” 했다.
개인적으로 제갈량의 두 라이벌인 주유와 사마의 간의 두뇌 싸움이 너무나 흥미로웠다. 물론 조조와 유비 간의 라이벌 대결도 만만치 않았지만. 작가는 ‘절제’라는 키워드로 삼국지의 인물과 사건을 추적한다. 권력을 얻었다고 하더라도 절제가 없으면 리더로서의 신뢰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세기 말부터 3세기 말까지 후한이 무너지고 진이 삼국을 통일하기까지 약 100여 년의 시간인 역사 <삼국지>가 14세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라는 재미난 소설로 탄생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최소한의 삼국지>는 복잡한 삼국지를 비교적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난 스토리텔링으로 엮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