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리의 발견 (양장) - 앞서 나간 자들
마리아 포포바 지음, 지여울 옮김 / 다른 / 2020년 2월
평점 :
품절
우리는 한꺼번에 모든 것이 됨으로써 동시성을 관통한다. 우리의 이름과 우리의 성姓, 우리의 외로움과 우리의 사회, 대담한 야망과 맹목적인 희망, 보답 받지 못한 사랑과 부분적으로나마 보답 받은 사랑이다. 수평과 수직으로 뻗어나가는 삶은 비선형적인 방식으로만 파악되며 "전기"라는 직선의 그래프가 아닌 여러 측면과 여러 빛을 지닌 그림으로 나타난다. 삶이란 다른 삶과 얽힐 수밖에 없으며, 그 삶의 직물을 바깥에서 바라보아야만 인생의 핵심을 파고드는 질문에 어렴풋이나마 답을 구할 수 있다. - P15~16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을 어느 한 시기로 정의할 수 있을까? 질문에 대한 답은 당연히 ‘아니오’이다. 하물며 몇 권의 저서로도 그 사람을 다 파악할 수 없다.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에 숨은 뜻이 많다면 더 파악하기 어렵다. 설사 그 이야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해도 그의 개인적인 관계를 다 알지 못하는 한 우리는 표면에 드러난 층으로 일부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단편적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은 ‘앞서 나간 자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그의 주변 관계는 어떠했는지, 그가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지 충실히 담아냈다 .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여러 인물을 담아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문학가 쪽보다는 비문학, 과학자 쪽 계열의 이야기가 더 친숙했던 것 같다. 그나마도 에밀리 디킨슨을 제외하고는 요하네스 케플러, 허먼 멜빌, 찰스 다윈, 레이철 카슨의 이름만 알 뿐이었다.
이 책을 통해서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윌리어미나 플레밍이라는 여성 과학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다.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의 삶을 더 깊숙이 알게 된 것도 좋았다. 그래도 이 책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은 마거릿 풀러가 아닐까 싶다.
마거릿 풀러는 여성 해방 운동의 기초가 되는 책을 쓰고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문학, 예술 비평을 썼으며 뉴욕에서 가장 큰 신문사인 뉴욕트리븐에서 최초의 여성 편집자로 일했다. 또 교도소의 개혁을 주장하고 흑인 선거권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일찍부터 근시가 왔고 등이 굽어 스스로 추하다고 생각했다 한다. 풀러는 <19세기 여성>을 통해서 성별의 이원성을 비판했고 ‘대화’라는 모임을 통해 20세기 페미니즘 운동의 포문을 열었다. 그녀는 나중에 로마에 가서 이탈리아의 통일 운동 진행 과정을 목도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해서인지 마거릿 풀러는 책의 다른 인물을 설명하면서 끊임없이 언급된다.
인상적이어서 더 언급하고 싶은 인물은 마리아 미첼, 메리 서머빌, 에밀리 디킨슨, 레이철 카슨이 있다.
마리아 미첼은 수학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여성 최초로 미국 예술 과학 아카데미 회원이 되었으며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새로운 혜성을 발견한 사람이다. 그녀는 배움의 기회를 가진 이들을 위해 학교를 스스로 열어 운영하고 낸터킷 애서니엄 관장으로 일하면서 대중 강연회를 열었으며 해군에 들어가 계산자로 일하기도 했다. 우주에 대한 소명을 가지면서도 사회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틀릴 수 있고 틀려진 것이 밝혀지면 밝힐 줄 아는 용기를 가진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과학자란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소명이자 가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메리 서머빌은 스코틀랜드 과학자이자 네 아이의 엄마로 자외선의 자성을 연구한 과학 논문을 썼을 정도로 타고난 재능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그녀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대중에게 소개하고 <천계의 구조>를 써서 마리아 미첼에게 칭찬의 편지를 받을 정도였다. <물리적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라는 논문을 통해서 천문학, 수학, 물리학, 지질학, 화학을 하나로 묶어내는 작업을 하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성실함을 지니지 않았다면 결코 불가능했을 미션이라 생각한다. 특히 과학은 남자의 분야(man of science)라고 일컬어지던 때 일구어낸 일이었기에 한 비평가에 의해서 그녀에게 과학자라는 용어가 주어지기도 했다.
에밀리 디킨슨은 평생에 걸쳐 수많은 작품을 써서 이름을 알린 시인이다. 사실 그동안 그녀의 시를 몇 차례 읽었으나 무슨 의미가 담긴 것인지 결코 알 수 없었다. 마치 눈뜬 장님 같은 느낌이었달까. 이 책을 통해서 그녀 곁에 어떤 이들이 있었는지 알게 되니 조금이나마 그 의문이 해소가 되었던 것 같다. 중심 인물은 수전 길버트다. 그녀는 평생에 걸쳐 디킨슨에게 영향을 주었다. 디킨슨의 시는 찬양과 비탄을 이중적으로 담는 애가의 형식으로 그녀만의 리듬과 운율을 지녔다. 특히 다양한 물질에 대한 상징성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다. 그 대상에는 식물이 가장 많이 이용되었으나 일식 같은 자연 현상도 있었다. 그녀는 죽기 전 30여년 간 거의 밖을 나오지 않고 은둔한 채 작품에만 매달렸다 한다. 수전과 더이상 함께 지낼 수 없게 된 것이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이런 의도적인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이끌어내는데는 돌파구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디킨슨 사후 수전의 존재는 지워지고 만다. 그래도 메이블이라는 사람을 통해서 디킨슨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인 것 같다.
레이철 카슨은 문학적 재능을 가진 과학자로 그야말로 두 문화의 경계를 허문 인물이 아닌가 싶다. 사실 카슨의 문학적 재능을 잘 알지는 못했는데 그녀는 어릴 적부터 작가를 꿈꾸었고 여러 매거진을 통해 그녀의 이야기가 실릴 정도로 탁월한 글쓰기적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특히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글을 써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생물학자이자 과학자로만 알고 있었던 나는 그녀를 그야말로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독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특히 문학을 좋아해 여러 문학가의 글을 섭렵했다 한다. 카슨은 대학 2학년 때 생물학 수업을 듣고 과학계의 길에 들어선 뒤 인간의 관점이 아닌 바다, 생물의 환경에 관한 다양한 저서를 펴내 큰 반향을 일으킨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바다의 가장자리>, <침묵의 봄>에 이르기까지. 특히 <침묵의 봄>은 출간하면서 주변의 공격을 예상했다 한다. 카슨은 과학이 아니라 비과학적 태도를 비판하며 과학을 올바르게 적용하는 일에 대해서 윤리적인 물음을 던졌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의 신비와 현실에 우리가 좀 더 분명하게 주의를 기울일수록 파괴를 향한 인류의 성향이 약화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자본에 의해 환경은 끊임없이 공격받아 파괴되고 있다. 불과 며칠 전 있었던 네팔의 안타까운 사건을 보면서 여전히 그녀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묵직한 물음을 던져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이 책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면 한 사람을 설명하면서도 그의 주변 관계를 끌어오고 당시의 문헌이나 사건을 끊임없이 가져온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마리아 미첼이 혜성을 발견하기 몇 달 전 랠프 왈도 에머슨은 처음 출간한 시집에서 이런 시를 썼다는 식으로 설명한다든가 열두 살 소녀였던 마리아 미첼이 일식을 관찰하고 별을 향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지 몇 달 후, 21세의 마거릿 풀러는 초월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특별한 별”에 도달했다(P164)는 식이다. 하나의 이야기만 파고들고 싶은 이는 이런 방식의 이야기를 따라가기 벅찰 수 있을 것 같다. 반면 이야기를 서로 얽어 한 시대를 정리하고 싶은 이라면 꽤나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