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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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이 책의 제목을 얼마 전 처음 알게 됐고 저자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낯설었다. <여전히 미쳐있는>의 참고도서로 포함되어 있던 책이었으나 오래된 책이라 과연 신선할까 싶어 망설여졌다. 그러나 제목이 흥미롭기도 했고 빈도수 면에서 꽤나 여러 번 거론되길래 읽어보게 되었다. 


책에는 스타이넘이 쓴 에세이나 칼럼, 인터뷰 등이 실려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 글은 놀랍기는 해도 개인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물론 당시는 지금보다 더 놀랐을 법한 글이다). 오히려 1부 뒤의 내용인 트랜스젠더와 성기에 가해지는 범죄는 현실적이어서 끔찍하게 느껴졌다.


성기를 절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너무나 어린 여성들의 생식기가 잘려나가는데 감히 그 고통을 짐작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아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여성에 대한 철폐, 반인권적인 행태를 이유로 1990년 이후 권고안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 지역 여성들이 주도하는 운동이 시작된 것은 정확히 1979년 2월이었다. 수단 카르툼에서 열린 역사적인 회의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의 10개국대표들(외과의사, 산파, 보건 공무원 등)이 참석했고, 그 밖의 많은 나라들은 대표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지지를 표명했다. 이 회의는 세계보건기구동지중해 지역사무국이 수단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것이었다. 이 회의의 이름은 조심스럽게도 "여성과 아동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전통적 시술에 대한 세미나로 정해졌다. 구체적인 주제들은 아동 결혼, 임신 수유기동안의 음식 금기, 그리고 성기절단이었다. 회의의 결과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권고사항이 정해졌다.

1. 국가정책으로 여성 할례를 폐지할 것.

2.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설치할 것.

3. 성기 절단 시술의 위험과 불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4. 산파, 치료사 등 의료 시술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 P55~56


1990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 준수를 감시하는 UN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권고안은 여성 성기절단이 여성에게 해롭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권고안은 여성 성기 절단은 단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 P60


3부는 다섯 명의 여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명의 연예인, 포르노 배우, 두 명의 정치인, 그리고 페미니스트이다. 


최근 들어 마릴린 먼로의 생애는 재주목받았던 것 같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외모로만 자신을 평가하는 사회에 그녀는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을 법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무엇보다 끔찍하지 않았을까.  


영화, 사진, 책 등에서 그녀는 오로지 남성의 눈에 비친 마릴린이었고, 그것은 그녀가 죽고난 후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가 노마 진 베이커 (마릴린 먼로의 본명)를 돕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녀가 바라던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우리가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P130


'린다 러블레이스'의 진실은 들여다보기 끔찍했다. 그녀를 고용한 인간은 고용자를 가장한 범죄자 수준이었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2부에 포르노그라피 내용을 읽고 이 내용을 읽으면 자연스레 포르노는 없어져야 할 악임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이제서야 나는 사람들이 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지를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나도 강간당하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마음 속으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나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테니까 말이야.‘ 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는 그 생각이 ‘나라면 눈사태가 나지 않게 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안다." - P138


신체적 학대 때문에 생긴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음으로 인한 괴로움을 당한 후에, 린다와 남편 그리고 10대 자녀 두 명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매체에서 납치, 살인, 가정 폭력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움을 겪지만, 그래도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멀리 다른 주로여행하기도 하며 성매매와 포르노그라피의 현실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서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자기 삶을 바치는 것은 치유의 마지막 단계이다. 아직도 <목구멍 깊숙이>를 만든 사람들에게 피해액을 받아내거나 그것의 배포를 중단시킬 법적인 방법은 없다. - P145


‘포르노그라피‘ 라는 말은 그리스어 ‘포르네‘ (매춘부나 여자 포로)와 그래포스(서술, 묘사)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라피의 언어적 의미는 ‘성을 사는 것을 묘사한 것‘ 이며, 권력의 불균형, 성노예화를 함의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것도 포르노그라피의 정의에 포함된다. - P104


인종차별주의 주장은 조직적인 학살과 폭행 등의 행위로 이어지고 그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적인 영화를 보는 것은 폭력을 더 많이 용납하게 만들고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밝혀졌다. 모든 인종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선전물 역시 집단 혐오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포르노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포르노는 남성의 공격성을 만족시키는 "안전" 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포르노가 없으면 남성의 공격성이 실제로 발휘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포르노도 폭력을 미화하는선전물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그것만은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걸까? - P108


앨리스 워커에 대한 인터뷰는 개인적으로 가장 소득이 많았고 대표작인 <컬러 퍼플>을 정말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흑인 여성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며 책을 읽는 마음도 이해할 것 같았으나 결국 워커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모든 여성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언제나 대중은 지도자보다 앞서나가고 독자들은 학자나 비평가보다 앞서나간다. 구하기 어려운 앨리스 워커의 책들을 찾아보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흑인 여성들이고 그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이 경험을 거쳐 보편성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용감하게도 흑인과 백인의 섹스나 아프리카의 여성 억압 같은 미묘한 주제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다. ("그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조금도 이해할 수없을 거예요."라고 스펠먼 대학의 흑인 여학생이 눈에 눈물을 머금고 내게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흑인이 아닌 다양한 여자들도 개인적으로 앨리스워커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과 자기 생각을 갖는 일의 어려움, 쉽게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몸,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부채 의식, 출산의 현실, 여자들의 우정,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의 파괴적인 결과, 관능, 폭력 등………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소설과 시의 주제이다. - P162~163


앨리스에 대한 미스테리 중에는 작품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지금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그녀는 상냥하고 말이 많지 않은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가 여러 시간 동안 모임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주제였는데도 말이다. 어떤 작가는 그녀를 투사 같지 않은 투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분노와 징벌, 정당한 살인에 관한 상상은 그녀 안에도 있다. 그런 분노가 터지는 것을 보려면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알고 지내야 한다. - P177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마지막 챕터에서 한 스타이넘이 쏟아낸 개인적인 기록들이었다. 가족에 대한 소회, 플레이보이클럽의 바니걸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이기에 힘들게 읽어내려갈 수 없는 이야기다. 자매애에 대한 소견은 여성들이면 인생을 살다가 한 번쯤은 외로움과 고독에 나만 빠져 있다 절망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스타이넘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느끼게 된다. 나도 어렸을 적 학대 등 아픈 기억이 있어서 부모님에 대한 고백은 눈물샘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결혼 전에는 주체적인 여성이 결혼 후 집에 갇히거나 남성과 그 집안에 의해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때 자존감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부모의 관계가 엉망이 되고 가정이 뒤틀린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솔직히 말해서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기란 더 어려울 지 모른다. 자녀가 부모를 오롯이 이해하기란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제는 연민이 든다는 말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서 어머니가 밉기도 한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 시절을 나 또한 지나왔다. 가난, 가정 폭력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경험해본 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룻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녀는 뉴욕에서 살고 싶어했고 유럽을 여행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마을을 지나는 버스를 타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마을 최초의 자동차를 운전했지만 운전을 허락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 

어머니가 떠나간 지금 나는 일이 제대로 풀렸다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열정과 유머를 보여준 몇몇 순간들에서 그 단서를 포착할 수는 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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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4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타이넘 참 좋죠. 앨리스 워커도.
평범한 가정이야 말로 가부장적 질서의 가족인 거 같아요. 그리고 신화였다는 걸. 그 평범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평생을 지극히 애써오신 나의 부모님. 애씀은 자칫 폭력이 되고 아니 애쓰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이 보일때 까지. 보게된 후.

저는 저의 가족을 사랑하는 데 그건 가족이어서가 아니에요. 그들 각자 개인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식에 닿기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랑을 하는 건 너무 어렵고ㅋㅋㅋ (공부의 결론) 저는 이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안되더라고요. 제게. 저의 사랑방식은.

거리의 화가님의 평범하지 않은 독서에 아침부터 감동받고 갑니다! (책목록이 다 너무 비범하다😻)

거리의화가 2023-10-14 20:40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 ‘왜 우리 가족이 평범하지 않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보니 다들 조금씩의 트라우마와 고통이 있더라구요. 평범성이라는 것의 기준도 결국 사회에 기준에 맞춰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 간에 문제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평범하지 않은 독서! 쟝님의 철학 책 읽기 무엇보다 비범한 걸요^^
 

정신 질환, 중독과 가난. 중독은 극빈의 생활로 이끄는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중독의 손아귀 안에 있는 사람이 처음부터 이미 가난할 때만 가난에 가속이 붙을 수 있다. 정신 질환은 당연히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감소시켜서 정신 질환 그 자체나 중독에 성공적으로 대항하지못하도록 한다. - P62

소모되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었다. 진짜 불처럼 말이다. 불씨를 불어버릴 수는 있지만 불씨는 다른 곳으로 옮겨 가 무언가를 먹이로 삼는 한 어딘가에 살아 있다. - P64

성적 이미지로 가득하면서도 여전히 처녀성을 숭배하는 사회에서 성매매 당사자는 사회가 추구하는이미지와 반대되는 스펙트럼 제일 끝 쪽에 위치해 가까운시일 내에 존중받을 수 없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알 정도 - P66

의 재치는 있다. 누군가 나 같은 여성들을 전력으로 비난할때, 조용히 혼자 생각한다. 당신도 나였을 수 있고, 나도 당신이었을 수 있어, 세상은 아직 약쟁이로 변하지 않은 중독자들로 가득하지 않아? 라고. - P67

어머니는 내가 매우 어린 나이였을 때부터 실제 나이보다 열 살쯤 더 많은 것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었고, 이런 대우가 아동기, 청소년기를 거치는 동안 스스로 더 성숙한 듯느끼게 했다. - P69

눈에 보는 모든 곳은, 회색빛 그림자들, 크림색의 칙칙한 음영들, 끔직한 부패가 연상되는 녹색 같은 죽은색들뿐이었다. 베개에서 머리를 들어 올리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아버지를 보았을 때 상태가 얼마나 안 좋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버지 어깨를 당기면서 ‘아빠, 아빠’라고 계속 불렀고, 결국 아버지가 느릿하게 머리를 들어 올려 나를보았다. 아버지는 심하게 약에 취한 상태였다. 눈은 거슴츠레했고, 초점이 없었으나 나를 알아보자 수치스러움으로두 눈이 구름 끼던 모습을 본 것 같다. - P71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평소에 별로 의식하지 않는 비밀 문들로 연결되어 있다. 그 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유년시절의 장소로 여행하게끔 나를 소환한다. 이 문으로 가는열쇠는 시시각각 변형되고 바뀐다. 그 문으로 통하는 열쇠가 오늘은 공중 화장실 특유의 꺼림칙한 녹색이었다가, 내일이면 예쁘게 페인트칠이 된 공원의 하얀 벤치로 바뀔 수도 있었다. - P72

‘노숙‘이라는 단어를 보면 언뜻 결여된 것이 집 한 가지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개별적 결핍들 간의 결합이다. - P79

노숙인은 어디를 가건 환영받지 못한다. 노숙자는 사회적의미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 없고 필요 없는 자라는 정체성을 지니게 된다. 사회에서 따돌림 받는 사람, 추방된 자, 외부인이며 자신과 함께 짊어지고 다녀야만 하는 그들의 몸은 어디를 가든지 침입이 되어환영받지 못한다. 그야말로 아무도 원하지 않는 존재이다.
불필요함이 신체로 구체화되었다. 모든 노숙인들이 그렇다. 피할 수 없다. - P84

아직도 주로 밤에 따뜻하고 편한침대보 속에 누워 있으면 생각난다. 추워 떨면서, 배 고프고 목마른 채로, 외롭고 피곤한 채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채로 밖에서 배회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을 떠올리고는 따뜻한 침대 속에서 몸서리치며 그들을 위해 짧은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난 후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느끼는 감정은죄책감인데, 그 이미지를 마음속에서 지우려 하기 때문이다. - P87

노숙 생활을 할 때 정말이지 독서가 그리웠다. 책을 사랑했고 책을읽는 행위가 정말 그리웠다. 독서를 아무 곳에서나 할 수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땡전 한 푼 없는 노숙 신세인 경우 어쩌다 돈이 생기면 즉각 음식을 사는 데 써야 해서 책을 살 수 없게 된다. 서점 안을 동경하며 쳐다보곤 했고, 무척이나 안에 들어가서 책을 읽고 싶었지만 점원이 여기는도서관이 아니라고 말할 때 느끼게 될 부끄러움이 두려워그러지 못했다. 도서관에서는 회원 가입조차 할 수 없었다.
주소 없이 이 세상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 P90

하얀 차가 도로 한쪽에 섰고 남자친구가 운전석 쪽 열린 창문으로 그에게 말했다.
"살살하쇼, 이 아이 처음이니까."
그곳에 나를 데려간 주제에 아끼는 체하던 그 위선을보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움찔했다. - P94

성매매 연구를 수행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성매매는 자라난 가정에서 독립하는 일반적인 나이 혹은 권장되는 나이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독립한 10대 여성들이 흔히 진입하게 되는 삶의 국면으로 널리 인식된다. 지금에야 알게 되었다. 정말 알아야 할 때는 몰랐다. - P96

성매매 옹호론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는 ‘성인들 간의 합의‘라는 말이다. 그 단어는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있다. 첫째로, 진면모를 알 수 없는 라이프 스타일에 합의하기란 불가능하다. 성매매 유입 전에 정확하게 성매매를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에 어떨지 추측하고 동의할 뿐이다.
둘째로, 성매매되는 많은 자들의 경우 성인이 아니므로 어떤 방식으로든 성인과의 성관계에 ‘합의할 수 있는 위치에있지 않다. 또한, 성인이라고 하더라도 많은 비율이 나처럼최초 성매매에 ‘합의‘ 하였을 당시 성인이 아니었다. - P97

인간은 위협적이거나 대단히 충격적인 환경에 놓이면 심리적으로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충분히 입증된바 있다. 인간 악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서 『거짓의 사람들』에서 스콧 펙 박사는 "감정에 대한 느낌이 압도적으로 고통스럽거나 즐겁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면, 우리는 스스로를 마비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라고 쓴다. - P98

종종 주변의 모든 것들이 변했다고 느꼈지만 잠깐씩 평정을 되찾을 때면 세상은 그대로인데 달라지고 오염된 건 나임을 깨닫곤 했다. 그잎들이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음은 내가 다른 눈으로 그 나뭇잎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그렇게 명료한 순간들에는 자연과 문학 등 성매매에 유입되기 전에 사랑했던 그 모든 것들이 아직 거기 그대로 있지만 내가 달라져서 더 이상 내게 열려 있지 않다고 느끼곤했다. 그것은 나의 모든 것이 바뀌고 떠나가버렸다는 상념보다 훨씬 더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이런 느낌들은 편재했으나 파도와 같아서 때로는 격렬하게 아우성치다가도 때로는 뭔가 잘못됐다는 부드러운 속삭임을 남기면서 물러났다. - P106

행복, 충만, 만족스러움같이 모든 사람이 바라는 삶의기준들은 성매매 여성에게서 비껴가기 시작하는데, 그녀스스로 이런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거나 주변 여성들의 삶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08

내게 성매매에 잠식된다는 말은 삶의 범위가 좁아져 모든 것이 그 당시 생활의 중심에 놓여 있던 성매매로 귀결된다는 의미였다. 성매매는 모든 것을 침범하고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취침 습관, 구매하는 옷, 대화, 내가 하던 것 못지 않게 하지 않던 행동들도 지배했다. - P109

누구든지성인기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성인이 되는 정말중요한 분기점은 가슴이나 생식기가 아니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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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 자연의 재발명 Philos Feminism 4
도나 J. 해러웨이 지음, 황희선.임옥희 옮김 / arte(아르테)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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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이분법적 사고가 통할 수 없는 세상이 된 지금 도나 헤러웨이의 혜안은 미래로 갈수록 탁월함을 느끼게 한다. ‘경계‘는 불안을 뜻하기도 하지만 변화와 새로움을 모색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사유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그녀의 철학을 이번에야말로 섭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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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4 - 충렬왕에서 최영까지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 4
KBS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이익주 감수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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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시리즈의 마지막 편까지 왔다. 공부를 할수록 고려의 역사가 더 좋아지고 궁금해진다. 고려의 역사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는데 이런 쉽고도 알찬 교양서를 통해서 공부한다면 쉽고도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지난 권 마지막에 삼별초의 항쟁이 끝나고 강화도에 있던 조정이 개경으로 환도하면서 이제 명실상부 몽골의 내정 간섭이 시작되었다. 
 
원종에 이어 즉위한 충렬왕은 쿠틀륵케미시(제국대장 공주)와 혼인(제국대왕 공주와 충렬왕의 관계는 딱히 좋지는 않았음)하면서 부마 지위를 활용해 외교적 이익을 추구했다. 1278년 몽골에 가서 쿠빌라이 칸을 만나 몽골의 다루가치 배치와 호구조사 요구를 철회하게 하는데 성공했다. 몽골이 고려에 항복을 받아들이게 하면서 요구한 ‘6사‘의 내용 중 고려가 결코 들어줄 수 없는 두 가지 사항들이었는데 이때야 비로소 받아들여진 것이다. 또 이 때 고려에 주둔한 몽골군이 철수하면서 몽골 관리나 군대가 상주하지 않게 되었다. 이로서 고려 국왕의 지위는 부정되지 않았으며 고려 독립국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매사냥을 하는 응방의 인물을 측근들에게 맡기는 등 자기가 신임하는 사람들 위주로 정치를 행하면서 왕권을 강화하려고 함으로써 한계를 보인다.

충선왕은 충렬왕이 죽지 않은 상태에서 왕위를 양위받는다. 그는 쿠빌라이의 외손자이기도 했고 계국대장 공주와 혼인하여 몽골의 부마가 되면서 왕위 경쟁에서 유리했다. 충렬왕은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하였으나 그녀는 쿠빌라이 칸의 정비 소생이 아니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힘이 약했다. 쿠빌라이 칸이 죽고 후계를 정할 때 충렬왕이 원 성종을 지지하지 않으면서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다. 아버지의 측근 정치를 보고 못마땅했던 충렬왕의 측근세력을 제거하려다 오히려 원의 의심을 샀고 계국대장공주와 불화가 생기자 8개월만에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원나라 성종이 죽고 인종과 무종 간에 대결이 펼쳐졌는데 줄을 잘 선 충선왕은 원의 실력자로 등극한다. 이후 그는 고려 인사 행정 관제를 바로잡고 공이 있는 자를 포상하고 백성 착취를 금지하는 등 개혁 정책을 펼쳐 나갔다. 하지만 그는 즉위 후 3개월만에 원에 가서 고려에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 같은 측근정치를 하지 않기를 원했지만 결국 이전의 측근정치를 반복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었다(고려 내에서 직접 개혁을 했다면 나았겠지).

기황후는 몽골에 끌려간 공녀가 뛰어난 정치력으로 황후에 자리까지 오르면서 큰 권력을 가졌던 인물이다. 이 무렵 원나라와 고려 내 왜구 출몰이 잦아지자 원 조정은 공민왕을 세워 해결하려 한다. 공민왕은 핵심 부원 세력이었던 기황후 세력을 몰아내고 신돈을 기용해 개혁 정치를 펼쳐 나가는데 원나라의 힘이 약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정동행송 이문소를 폐지하고 쌍성총관부를 수복하였으며 전민변정도감을 설치하여 권문세력이 불법소지한 토지와 노비를 토해내게 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고 권문 세력을 몰아냈다. 또 과거 제도를 개혁함으로써 기존의 유학자들의 계파 정치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새로운 인물을 발탁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신돈이 사적 권력을 지나치게 휘두르자 공민왕도 그를 경계하며 내치게 된다. 중국은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교체되었고 공민왕은 명나라에 책봉됨으로써 친정 정치를 행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이인임은 대표 권문세족으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이다. 그는 개혁 세력인 신진사대부들을 내치고 개혁 이전으로 흐름을 돌리기 위해 최영과 결탁하였다. 명 사신이 피살되는 일이 발생하자 이인임은 원과 끊어져 있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북원에 사신 영접을 추진한다. 그로서는 명, 원과 둘 다 관계를 가짐으로써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인임의 고단수 정치력은 여기서 발휘되는데 대표적인 신진사대부였던 정도전을 북원 사신으로 보내려고 한다. 정도전이 이를 받아들일리가 없었고 이 일로 정도전은 나주로 유배를 가게 된다(나주 현장에서 백성들의 참상을 보면서 그는 개혁 의지를 일으키게 되었다). 이인임은 정도전 뿐 아니라 이 때 신진사대부들을 모조리 싹쓸이함으로써 개혁 동력을 끊고자 했다. 그러나 이인임의 계속되는 국정 농단 때문에 최영과의 연립 의지는 끊어진다. 이인임이 이 때 개혁 세력들을 잘 보듬고 건강하게 끌어갔다면 고려는 더 이어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권력욕과 탐욕은 그들에게 내어줄 의지가 없었다.

14세기 말 왜구가 침공하자 고려는 전국에 계엄령을 내린다. 이 때 일본은 남과 북으로 나뉘어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웠고 중국은 원-명 교체였기 때문에 정세가 불안정했다. 왜구의 출몰이 심각했던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다.
최영이 홍산에서 왜구를 막아내고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구를 막아냈다. 1389년에는 조선과 왜구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던 쓰시마를 정벌한다. 일본이 남북조를 통일하자 내부가 안정되었고 원-명이 교체되고 명이 해금 정책을 펼치면서 왜구는 자연스레 줄어들게 되었다.

최영은 이성계와 손을 잡고 이인임을 비롯한 권문 세족(구 귀족 세력)을 제거한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최영과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 사건으로 갈린다. 명이 고려에 철령 이북 땅을 요구하자 최영은 요동 정벌을 주장했고 이성계는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반대했다. 이성계가 돌아온 뒤 최영은 체포되고 명이 철령 이북 땅을 포기함으로써 최영은 고려의 마지막 무신으로 남았고 이성계는 고려의 무신이자 조선의 개국 왕으로 변모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물론 이 때 당시에는 새 왕조를 열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최영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마지막 이야기는 조선과 이어져서 대중들도 잘 아는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려 말의 역사는 조선의 건국 역사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더 자주 다루어져서 잘 알게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역사저널 그날 고려 편은 패널에 신병주 선생님이 참여함으로 인해 고려의 역사를 조선의 역사와 비교하여 설명해주면서 더 쏙쏙 이해되는 측면이 있었다. 책을 읽기 전 역사저널 그날 고려편을 보아도 좋고 후에 복습 겸으로 해서 보아도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고려 편을 복습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일었다.

아쉬운 점은 역사저널 시리즈로 조선은 총 8권의 분량이었는데 고려는 4권의 분량이어서 상대적으로 짧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방송 분량 자체가 조선보다 훨씬 짧았기 때문일 것이다. 11월에 드라마 방영도 있는 만큼 고려의 역사를 더 다루는 기획 시리즈가 있으면 좋겠다. 고려의 역사는 여전히 부분적으로 가려져 있어 메워야 할 역사가 많다. 앞으로 더욱 많은 자료가 발굴되고 이를 바탕으로 역사들이 보충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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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10-15 0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아는 이름이 보이기도 하는군요 고려 시대 일어난 일은 잘 모르고 이름만 기억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지는... 조선은 기록을 잘해서 더 많이 알기도 하겠습니다 고려 때 왕권이 약해서 조선이 되고는 왕권을 강화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10-15 16:08   좋아요 1 | URL
조선으로 넘어가기 전 역사는 의외로 많이 드라마에서 다루기도 했고 알려진 게 많아서인지 익숙한 면이 있습니다. 아마도 공민왕 때부터인 것 같아요. 조선은 자료도 많이 남아 있어서 더 매체에서 다루기 쉬운 것이겠죠^^
 



[ Ch 22 ] Sparta and Athens


Life In Sparta

그리스는 전제군주정인 페르시아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국가였다. 유일신이 아닌 다신교를 믿었으며 폴리스(책에서는 city를 썼지만 도시라는 의미는 아니라서)마다 군대를 각자 소유했고 삶의 방식이 달랐다.

그리스 폴리스 중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가장 규모가 컸는데 둘은 완전히 삶의 방식이 달랐다. 

스파르타인 남성은 군인으로 키워졌는데 7살이 되면 캠프에 가서 fighter로 훈련을 받게 된다. 그들은 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목표였던 만큼 거칠면서도 과묵하도록 강요받았다. 사례로 든 것이 너무 끔찍(어떤 병사가 여우를 훔쳐 먹으려다가 다른 사람이 와서 뺏길까봐 옷 안에 숨겼다. 그는 여우에게 뜯기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이 떠날 때에는 여우가 그의 위까지 먹어치웠다는…-_-) 20살이 되면 시험을 받아 통과해야만 군대에 입대할 수 있는 허가가 주어졌고 통과 못하면 투표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여성은 스파르타 군인들을 키우기 위한 어머니로 키워진다. 그에 관한 유명한 문장이 있다. 어머니가 아들이 전투에 나가면서 하는 말. “Either win the battle, or come back dead!”


Life in Athens

아테네는 민주정이여서 어떤 일이든 주민들이 forum에서 만나 의견을 투표하여 사안이 결정되었다. 아테네 남성들은 읽고 쓰는 것에서 나아가 수학, 시, 음악 연주(플루트/리라) 등의 교육을 배웠다. 아테네 여성들은 좋은(?) 아내 되기의 역할을 맡아 바느질, 정원 가꾸기, 아이 돌보기, 노예 관리 등 집안일을 행했다. 플라톤은 무지한 이들은 언제나 폭군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법이라고 이야기했다고.



[ Ch 23 ] The Greek Gods


The Golden Apple

제우스가 많이도 무료했나보다. 어느날 올림푸스에서 그리스를 내려다보다가 “지구엔 사람이 너무 많아. 좀 쳐내야겠어.”라고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예쁜 이에게 사과를 주겠다” 한 뒤 (일부러) 헤라 앞에 사과를 떨어뜨린다. “내가 가장 아름답지.” 그러나 아프로디테는 동의하지 않았고 “사과는 내 차지예요.” 아테나도 동의하지 않고 “이건 분명 내 거예요.”한다. 제우스는 트로이의 왕자인 파리스에게 셋 중 한 명을 고르게 한다. 헤라는 “나는 세상에서 당신에게 가장 큰 권력을 주겠어요.” 한다. 아테나는 “날 선택한다면 어떤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만들도록 하죠.” 한다. 아프로디테는 “날 선택한다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당신에게 바치죠.”한다. 승자는? 아프로디테였다. 무슨 ‘픽 미 픽 미 픽 미 업’도 아니고ㅋㅋㅋ 아프로디테는 헬렌을 그에게 주지만 하필 그는 트로이 메델라오스의 아내였고 이 때문에 트로이 전쟁이 발생했고 트로이 편에 선 신들 vs 아테네 편에 선 신들이 나뉘며 수년 간 전쟁은 지속되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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