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글로리아 스타이넘 지음, 양이현정 옮김 / 현실문화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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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지만 이 책의 제목을 얼마 전 처음 알게 됐고 저자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낯설었다. <여전히 미쳐있는>의 참고도서로 포함되어 있던 책이었으나 오래된 책이라 과연 신선할까 싶어 망설여졌다. 그러나 제목이 흥미롭기도 했고 빈도수 면에서 꽤나 여러 번 거론되길래 읽어보게 되었다. 


책에는 스타이넘이 쓴 에세이나 칼럼, 인터뷰 등이 실려 있다. 책의 제목과 같은 <남자가 월경을 한다> 글은 놀랍기는 해도 개인적으로 와닿지는 않았다(물론 당시는 지금보다 더 놀랐을 법한 글이다). 오히려 1부 뒤의 내용인 트랜스젠더와 성기에 가해지는 범죄는 현실적이어서 끔찍하게 느껴졌다.


성기를 절단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종교적인 이유로 너무나 어린 여성들의 생식기가 잘려나가는데 감히 그 고통을 짐작할 수가 없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아픔이 느껴지는 듯했다. 여성에 대한 철폐, 반인권적인 행태를 이유로 1990년 이후 권고안이 통과되었지만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그 지역 여성들이 주도하는 운동이 시작된 것은 정확히 1979년 2월이었다. 수단 카르툼에서 열린 역사적인 회의에는 아프리카와 아랍의 10개국대표들(외과의사, 산파, 보건 공무원 등)이 참석했고, 그 밖의 많은 나라들은 대표를 보낼 수는 없었지만 지지를 표명했다. 이 회의는 세계보건기구동지중해 지역사무국이 수단 정부의 도움을 받아 개최한 것이었다. 이 회의의 이름은 조심스럽게도 "여성과 아동의 건강에 영향을 주는 전통적 시술에 대한 세미나로 정해졌다. 구체적인 주제들은 아동 결혼, 임신 수유기동안의 음식 금기, 그리고 성기절단이었다. 회의의 결과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권고사항이 정해졌다.

1. 국가정책으로 여성 할례를 폐지할 것.

2. 여성 할례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필요한 조치를취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위원회를 설치할 것.

3. 성기 절단 시술의 위험과 불필요성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4. 산파, 치료사 등 의료 시술자에 대한 교육을 강화할 것. - P55~56


1990년 여성에 대한 모든 형태의 차별 철폐에 관한 협약CEDAW 준수를 감시하는 UN 위원회가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권고안은 여성 성기절단이 여성에게 해롭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 권고안은 여성 성기 절단은 단지 건강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 P60


3부는 다섯 명의 여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 한 명의 연예인, 포르노 배우, 두 명의 정치인, 그리고 페미니스트이다. 


최근 들어 마릴린 먼로의 생애는 재주목받았던 것 같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최고의 스타가 되었지만 외모로만 자신을 평가하는 사회에 그녀는 분노와 좌절감을 느꼈을 법하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무엇보다 끔찍하지 않았을까.  


영화, 사진, 책 등에서 그녀는 오로지 남성의 눈에 비친 마릴린이었고, 그것은 그녀가 죽고난 후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가 노마 진 베이커 (마릴린 먼로의 본명)를 돕기에는 너무 늦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그녀가 바라던 일을 할 수는 있다.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것은 우리가 그녀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P130


'린다 러블레이스'의 진실은 들여다보기 끔찍했다. 그녀를 고용한 인간은 고용자를 가장한 범죄자 수준이었다. 그 참혹한 현장에서 빠져나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2부에 포르노그라피 내용을 읽고 이 내용을 읽으면 자연스레 포르노는 없어져야 할 악임을 충분히 느끼게 된다. 


"이제서야 나는 사람들이 왜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지를 알 것 같다. 예전에는 나도 강간당하는 여자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마음 속으로 ‘나한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어. 나라면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하지 않을테니까 말이야.‘ 라고 생각했었다. 이제 나는 그 생각이 ‘나라면 눈사태가 나지 않게 할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안다." - P138


신체적 학대 때문에 생긴 많은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음으로 인한 괴로움을 당한 후에, 린다와 남편 그리고 10대 자녀 두 명은 뉴욕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조용하게 살고 있다. 그녀는 아직도 매체에서 납치, 살인, 가정 폭력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괴로움을 겪지만, 그래도 자기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해 멀리 다른 주로여행하기도 하며 성매매와 포르노그라피의 현실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법정에 서기도 한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 자기 삶을 바치는 것은 치유의 마지막 단계이다. 아직도 <목구멍 깊숙이>를 만든 사람들에게 피해액을 받아내거나 그것의 배포를 중단시킬 법적인 방법은 없다. - P145


‘포르노그라피‘ 라는 말은 그리스어 ‘포르네‘ (매춘부나 여자 포로)와 그래포스(서술, 묘사)를 합친 것이다. 그러므로 포르노그라피의 언어적 의미는 ‘성을 사는 것을 묘사한 것‘ 이며, 권력의 불균형, 성노예화를 함의한다. 또한 다른 사람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묘사하는 것도 포르노그라피의 정의에 포함된다. - P104


인종차별주의 주장은 조직적인 학살과 폭행 등의 행위로 이어지고 그 행위까지 정당화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적인 영화를 보는 것은 폭력을 더 많이 용납하게 만들고 폭력을 저지를 가능성도 높인다는 사실이 실험 결과 밝혀졌다. 모든 인종의 여성들에 대한 성적인 폭력을 정당화하는 선전물 역시 집단 혐오의 한 형태이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포르노에 대해서만은 아무런 위험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포르노는 남성의 공격성을 만족시키는 "안전" 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포르노가 없으면 남성의 공격성이 실제로 발휘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포르노도 폭력을 미화하는선전물들 중 하나이다. 그런데 왜 그것만은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생각되는 걸까? - P108


앨리스 워커에 대한 인터뷰는 개인적으로 가장 소득이 많았고 대표작인 <컬러 퍼플>을 정말로 읽어보고 싶어졌다. 흑인 여성들이 그녀에게 기대하며 책을 읽는 마음도 이해할 것 같았으나 결국 워커의 작품이 지향하는 바는 모든 여성을 향한 것이기 때문에 더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언제나 대중은 지도자보다 앞서나가고 독자들은 학자나 비평가보다 앞서나간다. 구하기 어려운 앨리스 워커의 책들을 찾아보는 사람들 중 대다수가 흑인 여성들이고 그 점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그녀의 작품이 경험을 거쳐 보편성에 이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용감하게도 흑인과 백인의 섹스나 아프리카의 여성 억압 같은 미묘한 주제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있다. ("그녀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당신은 조금도 이해할 수없을 거예요."라고 스펠먼 대학의 흑인 여학생이 눈에 눈물을 머금고 내게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흑인이 아닌 다양한 여자들도 개인적으로 앨리스워커와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자기 일과 자기 생각을 갖는 일의 어려움, 쉽게 성폭력의 대상이 되는 우리의 몸, 어머니에 대한 우리의 부채 의식, 출산의 현실, 여자들의 우정, 우리를 하찮은 존재로 취급하는 남자를 사랑하는 일의 파괴적인 결과, 관능, 폭력 등………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소설과 시의 주제이다. - P162~163


앨리스에 대한 미스테리 중에는 작품을 통해서만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있다. 지금 내 맞은 편에 앉아 있는 그녀는 상냥하고 말이 많지 않은 친절한 사람이다. 나는 그녀가 여러 시간 동안 모임에서 말없이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자기가 잘 알고 있는 주제였는데도 말이다. 어떤 작가는 그녀를 투사 같지 않은 투사"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녀의 글에서 볼 수 있는 분노와 징벌, 정당한 살인에 관한 상상은 그녀 안에도 있다. 그런 분노가 터지는 것을 보려면 아주 오랫동안 그녀를 알고 지내야 한다. - P177


무엇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감동받았던 부분은 마지막 챕터에서 한 스타이넘이 쏟아낸 개인적인 기록들이었다. 가족에 대한 소회, 플레이보이클럽의 바니걸 이야기는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이기에 힘들게 읽어내려갈 수 없는 이야기다. 자매애에 대한 소견은 여성들이면 인생을 살다가 한 번쯤은 외로움과 고독에 나만 빠져 있다 절망한 이들이라면 어느 정도 공감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스타이넘의 고백을 듣고 있으면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닐까 느끼게 된다. 나도 어렸을 적 학대 등 아픈 기억이 있어서 부모님에 대한 고백은 눈물샘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결혼 전에는 주체적인 여성이 결혼 후 집에 갇히거나 남성과 그 집안에 의해 하고 싶은 것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될 때 자존감이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부모의 관계가 엉망이 되고 가정이 뒤틀린 상황에서 아이가 태어난다면 솔직히 말해서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기란 더 어려울 지 모른다. 자녀가 부모를 오롯이 이해하기란 어렵다. 반대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무엇보다 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생각하면 이제는 연민이 든다는 말에 무릎을 칠 수 밖에 없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서 어머니가 밉기도 한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런 시절을 나 또한 지나왔다. 가난, 가정 폭력 등으로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경험해본 자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룻이라는 이름의 독특한 여성이었던 어머니는 이제 이 세상에 없다. 그녀는 뉴욕에서 살고 싶어했고 유럽을 여행하고 싶어했지만, 결국 마을을 지나는 버스를 타는 것도 두려워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그녀는 마을 최초의 자동차를 운전했지만 운전을 허락하지 않는 남자와 결혼했다. 

어머니가 떠나간 지금 나는 일이 제대로 풀렸다면 어머니가 어떤 사람이 되었을까 상상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열정과 유머를 보여준 몇몇 순간들에서 그 단서를 포착할 수는 있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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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3-10-14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타이넘 참 좋죠. 앨리스 워커도.
평범한 가정이야 말로 가부장적 질서의 가족인 거 같아요. 그리고 신화였다는 걸. 그 평범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평생을 지극히 애써오신 나의 부모님. 애씀은 자칫 폭력이 되고 아니 애쓰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이 보일때 까지. 보게된 후.

저는 저의 가족을 사랑하는 데 그건 가족이어서가 아니에요. 그들 각자 개인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식에 닿기위해 정말 많이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사랑을 하는 건 너무 어렵고ㅋㅋㅋ (공부의 결론) 저는 이제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노력하면 안되더라고요. 제게. 저의 사랑방식은.

거리의 화가님의 평범하지 않은 독서에 아침부터 감동받고 갑니다! (책목록이 다 너무 비범하다😻)

거리의화가 2023-10-14 20:40   좋아요 1 | URL
어렸을 때 ‘왜 우리 가족이 평범하지 않지?‘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나 나중에 보니 다들 조금씩의 트라우마와 고통이 있더라구요. 평범성이라는 것의 기준도 결국 사회에 기준에 맞춰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개인으로서의 나‘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만 여전히 가족 간에 문제는 조심스러운 면이 있어요.

평범하지 않은 독서! 쟝님의 철학 책 읽기 무엇보다 비범한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