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리 돌리기 ]

수도(首都)의 서성(西城)의 큰길은 이맘 때면 시끄러운 소리가전혀 들리지 않는다. 비록 아직 불꽃 같은 태양이 내리쬐지는 않지만 길바닥 위의 모래는 마치 번쩍번쩍 불꽃이 이는 것 같다. 혹독한 더위가 공기 속에 충만해서 성하(盛夏)의 위세를 떨치고 있다. 개들도 모두 혀를 내밀고, 나무 위의 까마귀조차 모두 입을 벌리고 헐떡인다. - 그러나 물론 예외도 있다. 멀리서 구리잔을 두드리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온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산매탕(酸梅湯)을 생각나게 하며 은연중에 시원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이따금 들리는 그 느릿느릿하고 단조로운 금속성의 소리는 오히려 그 정적을 한층 더 깊게 한다.
머리 위에서 작열하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려는 듯 묵묵히 앞으로 달리는 인력거꾼의 발소리만이 들린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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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 가정 ]
주인공은 걸작을 써낼 궁리를 하는 중이다. 그런 그에게 주변은 모든 것이 방해꾼으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

행복한 가정은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내를 위해 애를 써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있으니 그를 함께 돌보는 것은 당연하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인간에게 타인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
작품이 안 써진다고 남 탓만 하다간 시간이 지나도 그 모양은 비슷하지 않을까.

쓰고 말고는 전적으로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다. 작품은 마치 태양의 빛과 같이 무한한 광원 속에서 용솟음쳐나오는 것이다. 부싯돌의 불씨처럼 쇠와 돌이 맞부딪쳐야 나오는것은 아니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예술이다. 또 그런 작가라야 비로소 진정한 예술가이다. - P282

‘마르크스는 어린애들 울음소리 속에서도 『자본론(資本論)』을쓸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위인인 것이다……….‘
바깥방으로 걸어 나가 창문을 여니, 석유 냄새가 확 끼쳐 왔다.
어린애는 문의 오른쪽에 누워 있었는데 얼굴은 땅바닥을 향해 있다가 그를 보자 "아앙" 하고 소리쳐 울었다.
"자아, 괜찮아, 괜찮아, 울지 마라, 울지 마. 우리 착한 아가."
그는 허리를 굽혀 어린애를 끌어안았다.
그가 아이를 안고 몸을 돌리는데, 문 왼쪽에 서 있는 아내가 보였다. 역시 허리를 곧추세우고 있었는데 두 손을 허리에 얹고, 화가나 있는 것이 마치 체조라도 하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너까지 나를 못살게 구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방해만 하다니-등잔까지 뒤집어 엎었으니 밤에 뭘로 불을 켤 거야?" - P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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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을 비는 제사 ]

'샹린댁'이 안타깝고 마음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남의 고통을 들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란 것을 이해한다(P258). 나조차도 부탁을 부담스러워하는 편이라 그럴 때는 못 들은 척, 당장은 답해줄 수 없는 척 한 적이 많다(P243). 

작은 불행들이 이어지면 사람은 흔들리거나 무너지기 쉽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하나 없고 자신의 상황을 타개해나갈 방법조차 보이지 않는 상황은 뼈아플 수밖에 없었다.


[ 술집에서 ]

술집에서 수년만에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둘 다 모양새가 썩 좋지 않다. 이런 경우는 껄끄러워서 피하고 싶고 달아나고 싶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또 반가움은 내재해 있을 것이고... 어쨌든 두 사람은 마주앉았지만 서로의 신세를 보며 내 모습은 왜 제자리일까 생각한다(P270). 너무 힘들 때 인생이 도돌이표 같다고 느낀 적이 있어서 그들에게 감정이입이 됐다. 그리고 당시 중국 남자아이가 시경, 서경 등을 배우는 동안 여자아이는 아예 배울 기회가 없거나 배우더라도 여아경만 배운다는 사실도 역시나 씁쓸한 대목이었다. 친구는 계획했던 일이 연거푸 틀어졌고 이를 주인공에게 푸념하듯 털어놓는다. 취기가 오고 가지만 해결되는 일은 없다. 그저 넋두리일 뿐. 그래도 서로를 만나서 다행일까? 두 사람은 그렇게 술집에서 헤어진다.

당장 1분 뒤, 1시간 뒤의 일을 우리가 알 수 있을까? 그저 지금이 무사할거라고 안녕을 기원하면서 살 뿐 장담하며 사는 인생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들은 혼돈과 불안 속에 사는지 모른다(P281). 



‘정확히 말할 수는 없다‘는 말은 매우 쓸모 있는 말이다. 세상경험이 없는 용감한 청년은 때로 타인을 위해서 의문을 풀어 주기도 하고, 의사를 불러다 주기도 하지만 만일 그 결과가 좋지 않으면 대개는 도리어 원한을 사게 마련이다. 그러나 이 ‘정확히 말할수는 없다‘는 한마디로 결말을 지어 두면 모든 일에 거리낌이 없게 된다. 나는 지금 이 한마디 말의 필요를 실감하였다. - P243

그녀는 반복해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비참한 이야기를 했고, 항상 너덧 명이 그녀의 이야기에 이끌려 듣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안 되어 모든 사람들은 귀가 닳도록 들어서 가장 자비심 많고 부처를 잘 믿는 노부인네들의 눈에서조차 한 방울의 눈물도 볼 수없게 되었다. 나중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를 외울정도가 되었고, 마침내는 듣는 것조차 넌더리치게 되었다. - P258

"나는 어렸을 때, 벌이나 파리가 한 곳에 머물러 있다가 무엇에놀라면 즉각 날아갔다가 한바퀴 빙 돌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머무는 것을 보고는 정말 우습고 측은하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뜻밖에도 지금 나 자신이 바로 그 조그만 원을 한 바퀴 돌고는 다시 되돌아온 거야. 그런데 뜻밖에 자네도 여기 돌아와 있네그려.
자넨 좀 더 멀리 날 수 없었나?"
"글쎄, 뭐랄까, 아마 나 역시 조그만 원을 한 바퀴 돈 것에 불과한가 봐."
나 역시 웃는 듯 마는 듯이 말했다. - P270

"자네가 가르치고 있는 것이 공자 가라사대, 시경에 이르기를인가?"
나는 이상하게 여겨져 물었다.
"물론이지. 자넨 내가 A, B, C, D라도 가르치고 있는 줄 알았나? 전에는 학생이 두명 있었네. 한 학생에게는 『시경』을, 다른한 학생에게는 『맹자』를 가르쳤지. 최근에 한 명이 더 늘었어. 여자앤데 『여아경(女兒經)』을 가르친다네. 산수는 안 가르치지 내가가르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르치지 말라고 해서 말이야."
"정말 뜻밖이네. 자네가 그런 책을 가르치고 있다니………."
"그 애들의 아버지가 그 애들에게 이런 책들을 읽게 하는 거야.
나는 남이라서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다네. 그런 쓸데없는 걸 따져서 무엇 하나? 되는 대로 하는 수밖에…………" - P280

"자넨 우리가 미리 예상했던 일중에 마음먹었던 대로 된 게 하나라도 있나? 난 지금 아무것도 모르겠네. 바로 내일의 일도 모르겠고, 당장 1분 후의 일도…………" - P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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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미래 - <민주주의란 무엇인가>_고병권





훌륭한 책은 독자의 뇌를 흔들어 깨운다. 뉴런에 충격을 가해 깜짝놀라게 한다. 새로운 생각이 담긴 훌륭한 책은 독자를 사유의 새 길로이끈다. 책을 읽다가 독자는 문득 자기가 낯선 길로 들어섰음을 깨닫게된다. 훌륭한 책은 문장들을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책을통째로 외우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한다면 그 책은 틀림없이 훌륭한책일 것이다. 결정적으로, 훌륭한 책은 독자의 대결의식을 불러일으킨다. - P528

고병권과 최장집의 결정적 차이는 ‘대의제‘에서 드러난다. 최장집은 대의제를 강화해 완성하는 일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과제라고 보지만, 고병권은 민주주의 열망은 대의제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 더 나아가 고병권은 우리 시대의 민주주의는 대의제를 넘어선 곳에 있다고 암시한다. - P538

언어 현실에서 발견되는 표상성(대표성)은 우리삶의 보편 조건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현장에서조차도 어떤 목소리가 결·집단적 대표성을 얻는 것은 자연스럽고도 불가피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게 대의제는 회피하거나 우회하기 어려운 존재 조건으로 다가온다. 대의제를 완전히 극복한 세계를 창안하는 것은 삶의 원초적 조건을 초월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대의제라는 그 한계를 끊임없이 받는 일, 그럼으로써 대의제의 한계를 조금씩 밀고 나가는 일, 그리하여 우리의 직접적 목소리가 조금이라도 더 구현될 수 있도록 공간을 넓히는 일이 아닐까. - P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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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텍스트로 다시 읽는 '율리시스' - <조이스의 '율리시스' 입문>_숀 시핸


율리시스는 20세기 모더니즘 소설의 대표작 중 하나라고 당연한 듯 생각해왔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소설을 이끌어 가는 방식으로 이해하기 까다로운 것으로도 유명하다. 프루스트의 '잃시찾' 시리즈를 현재 읽고 있는데 어려움을 매번 느낀다. 율리시스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 같은 난산 같은 중압감이 드는데 그럼에도 꼭 도전해보고 싶은 책이다.  

영국의 저술가인 숀 시핸은 율리시스의 통상적인 읽기 방법으로는 한쪽 측면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은 조이스가 하려는 이야기를 정치적 의식이자 메시지로 읽어보자 이야기한다(그런 측면에 주목한다면 이 책을 나도 조금은 더 잘 읽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조이스는 더블린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한 후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등에서 보내면서 이방인으로 살지만 아일랜드에 대한 정치, 역사에는 관심의 끈을 놓지 못했다. 이 책은 탈식민주의 해석의 관점에서 영국의 지배를 받는 식민지 아일랜드를 중심에 두고 해석했다. 참으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치유와 구원의 동무공동체를 찾아서 - <비평의 숲과 동무공동체>_김영민


일단 이 저자의 이름을 알게 된 것에 감사하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런 저자가 있다는 것을 몰랐거나 봐도 지나쳤을테니까. 김영민의 글은 초심자에게는 어렵다고 한다. 씹고 생각하고 되새김질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겠다. 제목인 '비평의 숲'은 '비평이 생활과 일치하는 곳'이고 '동무공동체'는 '인문학적 교양의 공동체'이다. 현대인들에게 인문학적 교양이란 무엇일까. 현대인에게 있어서 오히려 그 가치는 더 중요해지고 있는데 정작 사람들은 그 가치를 간과하고 있다 느낀다. 이 책은 동무론 3부작으로 <동무와 연인>, <동무론>에 이은 완결편인데 안타깝게도 절판이라고 뜬다. 다만 <동무론>은 개정판이 나왔더라. 도서관에서 그의 전작을 찾아보고 파볼지 간을 볼 참이다.  



1907년 트리에스테에서 행한 아일랜드 문학 강연에서 조이스는 ‘반동 세력을 물리칠 수 있는 정신의 독립‘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조이스가 말한 ‘반동 세력‘에는 아일랜드 식민 지배를 지속하려는 제국주의 영국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내부의 친영파 가톨릭 세력도 포함된다. 시행은 조이스의 정치 이념을 ‘자유주의적 사회주의‘로 규정하는데, 그런 조이스는 당시 아일랜드 민족주의 세력의 구심체로서 영국 지배에 맞서 독립 투쟁을 이끌던 신페인당을 지지했다. - P397

‘율리시스‘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이스는 이 이야기를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의 구조 속에서 풀어냈다. 이 서사시에서 영웅 오디세우스는 천신만고의 고난을 이겨내고 이타카의 집으로 돌아가아들 텔레마코스와 함께 침입자들을 물리치고 아내 페넬로페와 만난다. <율리시스>는 이 서사시의 틀을 빌려와 그 10년의 모험을 더블린의하루 속에 집약한다. - P398

《율리시스》의 정치적 성격을 새롭게 읽어낸 것이 탈식민주의 해석이다. 1980년대에 등장한 탈식민주의 관점은 ‘영국의지배를 받는 식민지 아일랜드‘를 중심에 놓고 조이스의 작품을 다시 독해함으로써 조이스 비평의 지형을 바꾸어놓았다. 이 책의 지은이가 지지하는 관점도 바로 이 탈식민주의 독법이다. 탈식민주의 해석을 거침으로써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언어라는 매체를 실험의 대상으로 삼는모더니즘 태도가 전면에 나타난 작품일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 민족주의를 둘러싸고 벌인 조이스 자신의 정체성투쟁이 배어든 정치적 성격의 작품으로 나타났다. <율리시스> 속 오디세우스 모험은 문체를 실험하는 언어의 모험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을 찾는 젊은이의 문화적 투쟁이기도 하다. 이 두 힘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조이스 작품을 전례 없는 예술성의 세계로 끌어올린 것이다. - P400

김영민은 비평을 ‘화이부동(和而不同, 화합하되 하나가 되지 않음)과 ‘화이불류(和而不流,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음)로 설명한다. 동무란 이런 화이부동화이불류의 비평적 관계를 지속할 때 부르는 이름이며, 그 동무라는 나무들로 이루어진 숲이 비평의숲인 셈이다.
김영민은 비평을 (심리)상담이나 정신분석과 비교해 설명하기도 한다. 김영민이 보기에 상담과 분석은 돈을 주고받고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점에서 우선 비평과 다르다. 또 상담은 ‘일방적 조언의 형식‘이어서상담자에게나 내담자에게나 어떤 소외감을 남긴다는 문제가 있다. 그런가 하면 분석은 "자기를 찾아가는 탐문의 여정‘의 형식을 취하지만,
일종의 자기분석이어서 결국 자기 안에서 맴돌다가 끝나기 십상이다. - P412

이와 달리 비평은 "상담가의 일이나 분석가의 작업이 아니라 동무로서생활을 말하는 것"이다. 비평은 동무관계다. 김영민은 비평이 "성숙이 되고, 만남이 되고, 사귐이 되고, 평등이 되고, 자유가 되고, 해방이되고, 치유가 되고, 구원이 되는 전례 없는 꿈", "숱한 거목들의 화이불류로 가능해지는 ‘비평의 숲‘이라는 꿈을 꾼다.
김영민은 비평의 숲을 이루는 동무공동체를 "인문연대의 미래적 형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시 말해 동무공동체는 ‘인문학적 교양의공동체이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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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미 2023-09-21 13: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율리시스 <잃.시.찾>과는 비교도 안되게 어려워요. ㅜ.ㅜ 정신이 아득해 지는 느낌ㅋㅋㅋㅋ 그래서 읽었다고 하기에도 참...그런 책이었어요. 그래서 꼭 재독하고 싶어요. 숀 시핸의 책을 일단 담아둡니다. 화가님께는 조이스가 어떤 느낌일지 궁금합니다.^^

거리의화가 2023-09-21 13:51   좋아요 2 | URL
조이스 아직 읽기도 전인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것 같습니다ㅎㅎㅎ 그래도 읽을 때 여러 권의 입문서가 있으면 고갯길 넘어가기 좋지 않을까 싶어서 저도 담아뒀어요. 일단 잃시찾부터 마무리하고 조이스는 나중에 도전해보려고 합니다. 아득해지는 느낌이라니! 예상은 했지만 역시 그렇군요ㅋㅋㅋ

미미 2023-09-21 14:01   좋아요 2 | URL
<잃.시.찾>읽고 난 다음 도전 하신다니 화가님 읽으실때 저 따라 읽을께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