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고독으로부터 찾는 해답 서양문학의 향기 10
라이너 마리아 릴케 지음, 김재혁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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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에세이는 작가의 삶을 통해 독자 개인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일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겐 그렇다. 그런 면에서 이 편지는 내게 좋은 에세이다.

"판단하려 하기 전에 유보하라!"라는 말을 오래 들었다. 고질적인 문제인데 나는 어떤 문제를 오래 끌어안고 살지 못하는 편이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그 끌어안고 있는 시간을 못견뎌한다. 그래서 어떤 질문이 생겼을 때 A플랜, B플랜, C플랜 정도를 생각해 놓고 브레인스토밍을 멈춘다. 그리고  그 세 가지 답 중 가장 나은 답을 찾는다. 나에게는 정답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장 나은 선택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무엇이냐. 더 많은 플랜이 있을 수 있는데 생각을 끊어냄으로써 더 나은 플랜의 기회를 생각해내는 기회를 놓쳐버리는 것이다.
정말 내가 고치고 싶은 문제인데 늘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문제를 끌어안고 있으면 나는 그것으로 머릿속이 꽉 차서 다른 것은 들어올 틈을 찾지 못하는 것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 같다. 그리고 어떤 다른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눈과 귀를 열어두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호기심은 많은데 탐구심이 부족한 것일까. 그렇다고 해서 끈기가 부족하지는 않다.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마십시오. 아무리 노력해도 당신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아직 그 해답을 직접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궁금한 문제들을 직접 몸으로 살아보십시오. 그러면 먼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해답 속에 들어와 살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 P40
릴케는 시인 지망생이었던 카르푸스(카푸스)와 여러 통의 편지를 주고 받는다. 릴케는 인생 후배의 고민에 공감하면서 조심스럽게 조언을 해준다. 당시 20대의 릴케가 얼마나 많은 인생을 알 수 있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시인이었기에 지망생이 보내는 편지를 쉽사리 지나쳐버리지 못했을거라 생각한다.
릴케의 핵심 메시지라면 '당장 해답을 구하려 들지 말고 몸으로 깨달을 때까지 그 고독을 견디라!'는 의미일 것 같다. 진정으로 내게도 필요한 메시지인데 나는 절감하면서도 지금까지 살면서도 잘 되지 않았는데 과연 이것이 앞으로도 나아질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나의 문제를 다시금 여기서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하겠다.

'사랑을 위해서는 각자의 고유성이 중요하다'라는 메시지도 내게 적지 않은 울림이 있었다. 누군가 내게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웃고 있는데 슬픔 같은 것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 때는 실제로 삶이 힘들었고 팍팍했다. 그래서 매일 산다는 것이 절망이었고 그야말로 난간에서 억지로 버티고 있는 상황이었다. 웃을 수가 없는 상황에서 내가 그렇게나 웃었나보다. 아마도 '썩소' 아니었을까. 결코 자연스러운 웃음은 아니었을거라 생각한다. 내면의 슬픔이 가득한데 사람들이 가득한 장소에서 억지로 풀어보려 애썼던 나날들이 길었다.

슬픔의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사람들이 슬픔을 시끌벅적한 곳으로 들고 갈 때, 오히려 그 슬픔은 위험스럽고 나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표피적으로 그리고 아둔하게 치료한 질병처럼 그런 슬픔들은 물러나는 척하였다가는 짧은 잠복기가 지나고 나면 전보다 훨씬 무섭게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그런 슬픔들이 가슴속에 집적되어 인생이 되면, 그 인생은 제대로 살지 못한 삶, 거부된 삶, 실패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삶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 P80~81

그런 의미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비단 연인이 아니더라도 친구 등 모든 관계에서 바탕이 되는 것은 개인이다. 스스로가 홀로설 수 없다면 제대로 된 관계도 성립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더 확고해지고 있다.
내가 하나의 주체로서 꼿꼿이 서 있지 않으면 어디든 휘둘리기 쉽다. 쉽게 사람을 만나고 헤어질 수 있는 세상이 되었기에 이 메시지는 더욱 중요하다. 개인이 존립해 있지 않으면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사랑은 개인이 성숙하기 위한, 자기 안에서 무엇이 되기 위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즉 상대방을 위해 자체로서 하나의 세계가 되기 위한 숭고한 동기입니다. 사랑은 개인에게 주어지는 위대하고도 가혹한 요구입니다. 즉 사랑은 한 개인을 지목하여 그에게 원대한 사명을 부여하는 그 무엇입니다. - P69
그들은 이 문제가 사람마다 각각 경우가 다른 사적인 문제로서 그때마다 새롭고 독특하고 극히 개인적인 답변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상대방에게 자신을 내맡기고 서로의 경계를 짓지도 않고 구별하지도 않게 된 그들이, 다시 말해서 자신들의 고유성을 더 이상 지니지 못하게 된 그들이 어떻게 자기 자신들로부터, 이미 막혀버린 고독의 깊은 곳으로부터 나가는 출구를 찾을 수 있겠습니까? - P71

이 책은 스스로에 대한 진지한 탐구, 성찰이 필요한 모두들에게 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 청년이 더 어린 청년에게 쓴 편지지만 비단 청년에게만 통하는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른들에게도 위로와 성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조용하지만 묵직한 메시지로 다가올 편지다.

당신의 회의는 탐구적이 되어야 하고 비판적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의 회의가 당신의 무언가를 파괴하려 들면, 그때마다 그 무언가가 도대체 왜 보기 싫은 건지 회의에게 물어보십시오. 그리고 회의에게 그에 대한 증거를 요구하시고, 회의를 시험해보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아마도 회의가 할 말을 잃고 당혹해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혹은 회의가 반항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에 굴복하지 말고, 논쟁을 끝까지 이끌어가십시오. 그리고 그때마다 한시도 눈을 떼지 말고 철두철미하게 행동하세요. 그러면 회의가 파괴자에게 당신의 가장 훌륭한 일꾼 중의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아마도 회의는 당신의 삶을 만들어가는 모든 일꾼 중에서 가장 현명한 일꾼이 될 것입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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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142호 - 2023.봄
역사문제연구소 지음 / 역사비평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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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상’이라는 단어가 다양한 냉전의 동아시아 공간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살펴본 특집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자조라는 용어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현대 이후 한국에 이 담론이 어떻게 적용되고 변주되는지(미국의 대외원조와 접촉하며 변주를 겪었다) 알려주는데 아주 흥미로워 향후 더 깊이 조사해보고 싶은 생각이 이는 발제 논문이었다.
제주 4.3 사건에서 갖은 이유로 ‘손상’의 주체로 만들어내려는 당국의 의도 하에 수용소가 운영되었음은 인권의 또 다른 유린 현장을 들여다보게하는 아픔이었다.
베트남전쟁 파병에 대해 한국 대학생의 인식은 어떠하였는지도 흥미로웠다. 베트남에 6차례에 걸쳐 대학생 위문단을 파견한 정부의 의도가 파병에 대한 국내 여론을 의식하여 한일협정 파문에 따른 대학생들의 시위를 누그러뜨리려는 시도의 일환에서였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전후 타이완 냉전주체인 영예국민, 그리고 영예국민지가라는 것은 생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한 주제였다. 타이완 국민당 정부가 한국전쟁 이후 동아시아 반공 기지로서의 역할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들여다볼 수 있었다. 타이완은 퇴역 군인, 반공의사, 대륙에서 귀환한 동포 등을 위해 다양한 정책을 이용하여 섬 전체를 반공기지로 자기매김하려는 의도를 공고히 하였다.

역비논단 주제는 조금은 아쉽기도 했는데 식민주의 역사학에 대한 단상, 세키노 타다시의 한국 고적 조사에 대한 시각은 내가 이미 몇몇 책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던 부분이라 새로울 것이 없었다. 다만 안중근과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에 대한 실체와 조선후기 화이론을 문화가 아니라 풍기적으로 접근한 논문은 잘 읽었다.

어느덧 5번째로 연재되고 있는 세종 시대의 재조명 기사는 뉴라이트 역사가들과 지식인들의 허점이 무엇인지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라도 이런 기획의 논문이 지속적으로 나와주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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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14 - 4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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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의 배경은 개화기부터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넓은 시대를 아우른다. 그래서 다양한 역사적 주제가 바탕이 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계급'이다. 이는 내가 토지 14권까지 읽으면서 올 때까지 내내 느꼈던 감정이다. 양반과 상민, 천민은 신분제 폐지로 진작 그 구분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1930년대가 올 때까지도 신분의 질서는 뿌리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이란 무엇인가. 계급이 신분적 질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업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두만이 같은 자산가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중산층 이상의 계급으로 성장한 반면 어디에 묶여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 애초부터 가난했던 사람들과 백정, 날품팔이, 소작인들은 몇 년이 지나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자본주의의 저 밑바닥 계급에 잔존하는 것이다. 신분적 질서는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본주의에 따른 위계 질서가 추가되었고 거기에 일본인, 그러니까 마치 식민지 조선민은 무릎을 꿇어라! 하는 식의 질서까지 보태져서 그야말로 당시의 계급은 오히려 더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사라질 수 없는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식민지 조선인 대중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평등에 목을 메었던 것은 아닌지. 반면 고위층, 식자층, 친일파, 지주, 자산가들 등은 그것이 자신의 목줄을 겨누는 것이 될테니 기를 쓰고 반대했을 것이다.


(형평사 제6회 전선 정기대회 포스터)


형평사 운동이야말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의 대표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동학 운동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거의 와해 분위기가 되는 와중에 형평사 운동은 가장 불평등한 존재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백정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토지 리뷰를 하면서 내가 언급을 안했기에 이번에 언급해보려 한다. 


토지에 나오는 인물 중 송관수라는 인물은 토지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모두 거쳐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와 어미, 그리고 자신이 동학과 연관이 있었고 백정 아내를 얻었는데 이는 송관수가 나올 때마다 누차 언급된다. 나중에는 이렇게 강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어서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님은 다 계산이 있으신 것이다.

보부상이던 아비는 9살 때 동학운동에 참가하여 죽었고, 동학군의 아낙과 자식으로 받아야 했던 핍박과 수모에 모친의 품팔이로 겨우 살아가면서 불공평한 세상을 더 두고봐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던 그였다. 그리고 화적떼로 몰리어 쫓겨다닐 때 은신처가 진주의 백정네 집이었는데 그 집 딸을 아내로 맞으면서 백정의 사위, 백정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동학 운동으로 산으로 들어간 뒤 조준구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난 모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은 그를 더욱 더 악에 바친 투쟁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형평사 운동이 그에게 준 것은 투쟁에 대한 이념과 신념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의 네트워크가 있다. 


장인이 생존해 있을 때 "백정의 자식 인물 좋으믄 머하노. 인물 좋은 것이 화근이라..." 혼자 한탄하곤 했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제 세상은 달라져가고 있인께 너무 걱정 마시이소."

문제의 발단은 강혜숙이라는 여학생 때문인데, 그들은 양가의 부모 몰래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이다. 혜숙이 집에서 그 일을 먼저 알았고, 백정의 외손자라는 것이 탄로되어 일이 크게 벌어졌다. 관수는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고 영광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강혜숙이 사는 곳은 뛰어넘을 담조차 없는 절벽인 것을 영광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자랑스러웠던 그의 청춘은 산산조각이 났다. 크나큰 충격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 P 49~50


백정네한테 딸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태산만큼 확고한 신념이었다. - P298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운다. 해도 소용이 없는 말이었다. 잘못된 세상의 탓이라고 골백번을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수백 년 천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던가. 아이들의 수모도 감수해야 했으며 의복도 백정의 표식이 있어야 했던 세월,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다고는 하나 마음속에 찍혀 있는 피차간의 숱한 낙인들이 일조일석에 없어질 것인가. 혜숙의 부모를 탓하기는커녕 그들에게는 오히려 자신들이 가해자요 죄인으로 생각하는 영광네, 속죄할 길조차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 P299


"소선생. 양반, 선비들은 나라를 잃어부리고 나서 그제서야 제 목심 짜르고 할 일 다 했다 그래 되겄십니꺼?" 관수는 소씨 가문의 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내리친다. "소선생 말씸대로 하자믄 살자고 발버둥치는 놈은 모두 쥐새끼란 말이오? 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겄소?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 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보아야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에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묵히기밖에 더하겄소. 살아남을라 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소선생은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 P52~53


그래서 송관수는 식자층, 양반 등이 일본에 대처하는 자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사실 따져 놓고 보면 앞장서서 나서는 것들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학생, 천민들 아니었던가. 그들은 뒤에 빠져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 비호를 맞춰주며 이속을 차리는 사람들이었다.


극 중 인물에서 송관수와 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인텔리, 귀족 층으로 최참판 댁 식구들, 그리고 조용하, 조찬하 형제 귀족층 츰 될까. 임명희는 그 조 가 집에 시집을 갔었으니 귀족층이 되어 버린 케이스다(물론 명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임명희가 자라온 집안은 역관의 집안이니 중인층이다. 그러나 그가 하는 생각의 바탕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보다는 멸시와 천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가 귀족층을 두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족함이 엿보인다.


"요즘 식자 좀 들었다 하면 사회주의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하고들 말 많이 하는데 난 때론 무서워져. 어째서 내가 그들의 적인가 하구, 그들은 모두 착하구나 같은 사람은 모두 악하구,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말하는,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 대다수는 노동자도 농민도 아니지 않아. 북만주에 가서 독립운동하는 소위 양반의 후예보다 농민이 더 위대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니."

"그 말엔 나도 동감이야. 가난하다고 다 착하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지. 그 속에도 고약한 사람 많아. 권좌에 앉혀놓으면 포악무도할 요소를 가진 사람 말이야. 또 민중을 믿는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그러나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통해서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것 아니라 할 수는 있으나 일면 고난이 사람을 맑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 " - P126

"하지만 피해를 어떻게 물질에만 둘 수 있겠니. 이런 말 또 하면 넌 배고파보지 않은 자의 호사스런 얘기라 하며 공박할지 모르지만" - P127


같은 형제지만 조찬하와 조용하는 다르다. 조용하는 철저히 귀족층의 권위 의식을 활용하려고 한다면 조찬하는 그렇지 않다. 귀족으로 일본에 빌붙어 남부러울 것 없이 얻은 조선의 권력층들이었다. 그래서 떳떳할 수 없는 처지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일본 여자와 결혼까지 했으니 마음에 부채 의식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부친께서는 생각을 매우 잘못한 겁니다. 친일파란 합방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합방이 되고 나면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몰랐다, 세계 만방에 체면 세우기 위하여 조선왕실을 일본 황족으로 하고 친일파에겐 작위를 주고 그것도 일종의체면용일 뿐,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뿐이지요. 다 써먹고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밥버러지가 뭐 그리 반갑겠소. 죽어 없어지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게요. 처량한 신세지요. 나의 부친은 매우 셈을 잘못한 겁니다. 작위를 받을 게 아니라 상놈으로 격하됐어야 옳았어요. 노역형(勞役刑)보다 금고형(禁鋼刑)이 가혹한 걸 몰랐지요. 대학을 나오면 뭣합니까?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데, 과거 조선문화에 대한 일본의 콤플렉스는 그것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유산을 많이 싸 안고 있는 과거 지배층이 반가울 까닭이 있겠어요?" - P410



신간회를 지난 리뷰에서 한 번 언급하였지만 다시 한 번 언급하고자 한다. 신간회는 알다시피 좌우합작운동으로 만들어진 단체다.1920년대 말 극도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립운동을 통합해보고자해서 만들어진 단체였다. 


신간회는 독립운동단체였지만 독립운동만 한 것이 아니고 여러 활동을 했다. 특히 노동자, 학생 운동을 지원했던 이력이 많다. 12, 13권에서 등장한 광주 학생운동과 14권의 장풍탄광 노동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30년 6월 함경남도 신흥(新興)에 있는 장풍(長豊)탄광의 광산노동자 수백명이 임금을 받지 못해 광주(鑛主)에 대한 폭동을 일으키자, 중앙본부에서 조사단을 장풍탄광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한 결과 광주가 광부들을 혹사한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신간회의 이름으로 즉시 ‘경고문’을 보내고 광산노동자들을 성원하였다.


-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간회 운동' 이병헌


단천 산림조합운동 지원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신간회는 1929년 7월부터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농민들이 일제의 산림조합 설치를 반대하는 대대적 운동을 일으켜 마침내는 일제 군청과 경찰서를 습격했으며, 일제 경찰이 발포하여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60여 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본부 중앙상무집행위원이며 신간회 전(前) 단천지회장인 이주연을 단천에 파견하여 사건을 조사하도록하고 농민들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도록 하였다. 또한 신간회 단천지회는 일제 산림조합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註 074 이 이후에도 신간회는 전국 각 지방의 농민운동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간회 운동' 이병헌


"단천은 어떻게 해서 발단이 된 거요?"

"불법벌채를 했다 하여 군청에서 조사하러 나간 놈이 남정네도 없는 집에서 아낙을 모욕했던 모양이라. 그런 일쯤이야 일제치하에 들어간 후 다반사가 아니겠소. 결국 쌓이고 쌓인 곳에 그게 불씨였겠지요. 이천여 명의 군민들이 군청과 경찰서로 밀고 들어가서 시위를 했는데, 또 조사하러 나간 놈이 조선인이라 처음부터 험악했던 모양이오. 군청과 경찰서를 때리부싰는 지경에 이르러 사상자가 많았다 하더구먼." 해도사가 물었다.

"애림사상의 진흥이니 삼림의 재해를 방지하고 임업발전을 육성한다, 취지는 그러하나 결과적으로 산주(山主)는 일체 자기 손을 못 댄다, 게다가 조합비마저 물게 하면서.... 당장 목줄이 달려 있는 농토하고는 그 양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또 삼림녹화라는 명분이 없지 않으나... 그러나 이천여 명, 그 군민들이 모두 산주라 할 수는 없고, 소요의 원인이 이해문제에 있기보다 물론 민족감정에서 출발..." - P62~63


이 사건 이외에도 신간회에서 지원한 사건은 무척 많다. 국내 민족 협동 조직의 확대, 국외 '한국독유일당촉성' 대표파견 시도, 전국순회강연운동, 수재민 구호 운동(함경도 홍수 피해 지원), 재만동포옹호운동, 어부들의 권익옹호활동, 원산총파업과 노동운동 지원, 함남수력발소매립지구 토지보상운동(함남 장진발전소와 부전발전소 등 수력발전소의 댐 매몰지구의 농민들에게 대한 토지 보상 없이 농민들을 먼저 축출), 갑산화전민방축사건 규탄운동(일제가 함남 갑산 화전 방화 및 화전민들을 강제 추방), 태평양문제연구회의 참가반대운동(1928년 8월 교토에서 개최되기로 한 ‘태평양문제연구회의(太平洋問題硏究會議)’, 그러나 갑산화전민방축사건을 일제가 조종한다는 것에 반대), 언론·출판·집회·결사탄압 규탄운동, 재일본한국인노동자송환 항의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옹호·지원활동, 민중대회운동 등 다양했다.



추가적으로 14권 후반부에 주요 주제였던 국가와 민족, 예술,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내가 언급할 수있는 영역 이상인 것 같아 밑줄긋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어차피 문화란 다소간에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처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글자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자를 우대하기론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당신네들한테도 우리를 거쳐 중국 것이 들어갔고 또 우리 것도 가져갔다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다 모조사상(思想)도 성립이되겠네요.

야나기의 그릇된 관점 중에 옳은 것이 하나 있어요. 조선의 예술은 고유한 것이며 독특하다고 한 그 말은 옳아요.… - P370


"칼로써 힘을 빼고 황폐해진 정신으로,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 없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즐겨 말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그게 진실이라면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는 있을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무력(無力)이 아니에요. 평화는 한의 대상이며 생명에의 지향이에요. 오늘날 결과가 어떠했든, 이건 악의 승리, 하지만 결정은 아닌 거예요." - P374


"언젠가 요시노 사쿠조[作]선생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지휘에 반항하는 조선인을 불령도배(不逞徒輩)로 비난하는 논리에 대해서 선생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그들의 입장은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했는데, 그분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정당함을 지적한 것은 훌륭했어요. 우리에겐 자비나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시노 선생은 귀한 양심이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에선 말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 영향을 받은 지식인도 적지 않았겠는데, 공산주의를 논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일본 군국주의 자본주의의 밑깔개가 되어 신음하는 조선에 대하여 거의 어떤 소리도 없었으니까요. - P379~380


야나기는 참아라, 바위에 깔리어 빈사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참아라! 폭력과 살생은 어느 쪽이든 나쁘다, 아아 비운의 민족이여! 하며 슬퍼했지요. 조선에서는 또, 소위 지식의 반풍수들이, 지적 댄디스트, 그리고 민족개조론 따위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조선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 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한 마디로 치사해요. 골자를 얘기하자면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라, 야나기의 그런 관점의 저변에는 사대주의의 조선이란 의식이 짙게 깔려 있어요. 그는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 했거든요. …" - P380


읽으면서 궁금증은 일었다. 특히 예술에서.

예술은 사대가 아닌가? 예술은 소위 '이념'과 비켜서있을 수 있는가? 유미주의 자체로서의 예술이 가능한가. 민족과 현실을 외면한 순수 예술은 의미가 있는가? 나는 적어도 순수 예술은 거부감이 이는 쪽이다.



14권에서 특히 작가님의 자료 조사와 시대를 읽는 혜안에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후반부는 압권이었는데 내가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독자로서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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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29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려면 토지 몇 권 남았나요?

거리의화가 2023-03-30 08:45   좋아요 1 | URL
20권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6권 남았네요^^

희선 2023-03-30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반이 아닌 사람은 계급이 없어지기를 바랐겠습니다 그때 그런 게 바로 사라지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평민이라 해도 자기보다 더 낮은 사람을 차별하기도 하다니... 그런 게 지금이라고 아주 없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직업 귀하고 천한 게 없다고 하지만, 말만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30 08:48   좋아요 1 | URL
계급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는다는게...ㅠㅠ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못 가진 자는 더 어려워지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위계라는 것이 자본만으로 정해지지는 않지요. 인종, 학벌, 지역 등 다양한 것이 더해져서 계급이 없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서 과거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어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3 - 꽃핀 소녀들의 그늘에서 1
마르셀 프루스트 지음, 김희영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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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생에서 보통 몇 번인가 부딪혀야 하는 어려운 상황 중 하나를 나는 통과하려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과 부딪혔을때 성격이나 기질은 변하지 않지만 우리는 나이에 따라 매번 똑같은 방식으로 대처하지 않는다. 그때 우리 삶은 나뉘며, 또 저울에 배분되듯 양쪽 접시에 고스란히 놓인다. - P278~279
사람마다 인생에 몇 차례의 어려움과 곤란이 찾아온다. 부모님 사업의 실패, 사랑·친구 관계의 파괴, 지인의 죽음, 갑작스럽게 찾아온 병, 직장에서의 해고 등. 이런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비슷한 어려움이더라도 처음, 다음, 그 다음...에 각각 다르게 대처하는 듯하다. 이는 본인의 경험에 따른 판단일 수도 있고, 주변 사람들, 외부 매체 등에서 배운 것일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도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이전보다는 감정적으로 덜 아파했고 좀 더 현명한 방식으로 대처하려 노력했던 것 같다. 나무의 나이테가 나이를 말해주듯 사람의 나이는 경험치를 쌓이게 한다. 그것은 똑같은 방식을 낳지 않고 대처한 방식에 따라 삶은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그것이 찬성과 반대처럼 이분법으로 나누어진다면 선택이 쉽겠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택지가 다양하다면 오히려 나중에 비슷한 어려움을 겪었을 때 그 선택지는 더 늘어날테니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3권의 전반부는 화자의 꿈, 예술, 작가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후반부는 질베르트와의 사랑-이별이 주 테마다.

어느 날 집에 아버지 지인인 외교관 노르푸아 씨가 찾아온다. 나는 극장에서 하는 공연 「페드르」를 보러 가고 싶었다. 헌데 담당 의사가 모든 여행을 금지했고 당연하듯 부모님도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자신을 걱정하는 것에 대한 염려, 공연을 보러 가고 싶은 충동과 열망. 이 두 저울에서 그는 선뜻 선택을 내리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내가 결정 장애로 힘들어하고 있을 때 노르푸아 씨가 구세주가 되었다.

저울 하나에는 ‘엄마를 슬프게 하고 샹젤리제에 가지 못할지도 모르는 위험‘을, 또 다른 저울에는 ‘장세니스트적인 창백함과 태양의 신화‘를 올려놓았다. 그러나 이런 낱말 자체가 내 정신 앞에서 점차로 모호해지면서 더 이상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았고 또 모든 힘을 잃었다. 나의 망설임은 점점 더 심한 고통이 되어 만일 지금 내가 극장에 가기로 결정한다면 그건 단지 이 망설임을 중단하고 거기서 영원히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 P38

공연장 뒤의 모습을 상상해 본 일이 있는가? 배우나 가수, 스탭들이 무대 뒤에서 정신없이 준비하는 모습. 나는 이 모습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제나 이 장면을 생각하면 가슴 속이 흥분으로 공기처럼 차오른다.
고등학교 시절 합창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어느 날 도 경연이 있어서 대회에 참석했다. 몇 개월을 노력해 준비한 대회였다. 대기 전 무대 뒤 장막에서의 순간, 본 무대가 시작되었을 때 쏟아지던 조명의 빛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 감정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다. 걱정, 불안, 두렵고 공포스러운데 무대를 경험해보고 싶은 흥분과 설레임이 복합적으로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내 기쁨은 커튼이 내려진 막 뒤에서 마치 병아리가 알껍데기를 까고 나오려 할 때처럼 어렴풋한 웅성거림을 식별하기 시작하면서 커졌고, 이윽고 그 웅성거림이 높아지면서 갑자기 우리 시선이 뚫고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그쪽에서는 우리가 잘 보이는 그 세계로부터, 마치 화성에서 온 신호만큼이나 그렇게도 감동적인 개막을 알리는 세 번의 위압적인 두드림 형태로 분명히 전해졌을 때 더욱 커졌다. - P43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달랐다. 할머니에게서 오페라글라스를 받아오기까지 했지만 그럼에도 내 망막을 통과한 형상은 내가 기대하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보는 모습은 실재가 아닌가. 그렇다면 무엇이 실재인가. 화자는 어지러움 속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내가 연구하고 싶었던 장면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자 할머니가 오페라글라스를 주셨다. 우리가 사물의 실재를 믿을 때 단지 인위적인 수단을 써서 사물을 보여 주는 것과 그 사물 가까이 있다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같지 않다. 확대경에서 내가 본 것은 더 이상 라 베르마가 아닌 그녀의 이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오페라글라스를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나 어쩌면 내 눈이 받아들인 이미지는 거리감으로 축소되어 더 이상 정확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 두 라 베르마 중 어느 것이 진짜였을까? - P47

우상과의 만남은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이다. 베르고트는 나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다. 온화한 모습의 백발 시인을 상상했던 나는 키가 작고 다부진 체형에 근시이며 코가 달팽이 껍데기 모양으로 붉은 턱수염을 가진 그를 만나고 실망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몸 안에 있던 베르고트 작품의 아름다움마저 사라지는 지경에 이른다. 베르고트는 삶을 글로 옮기는 법을 아는 대가였던 반면 노르푸아 씨는 작가가 꿈인 나에게 이리 저리 훈수를 두며 일명 '명예를 얻거나 돈 되는 글쓰기'에 대해서 일장연설을 해댄다. 노르푸아 씨는 그를 (때로 저속하며, 남에게 책처럼, 그것도 자신의 책이 아니라 지루한 책처럼 떠들어 대는 작자) 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베르고트가 '예술을 위한 예술'을 하는 작가는 아니라고 보인다. 삶을 반영한 예술과 예술을 위한 예술은 분명 다르다는 생각이다.

부모님은 내가 게으르다고 하지만 위대한 작가와 같은 살롱에서 보내고 있으니 내 재능에 가장 유리한 생활을 한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이 재능을 자신의 내부에서 만드는 일로부터 면제받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의사와 자주 시내에서 식사하는 것만으로(모든 건강 규칙을 무시하고 최악의 무절제한 생활을 하면서도) 건강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무모하다. - P271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나타가 가져다주는 모든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지만, 난 한 번도 소나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었다. 소나타에는 우리 삶과 닮은 데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삶보다 덜 환멸스러운 이 위대한 걸작은 처음부터 작품이 가진 최상의 것을 주지 않는다 - P185

클래식 음악 작품 중 일명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몇 번 이상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그 작품이 내 머리와 가슴에 각인되면 그것이 추억처럼 박혀 버려 그 작품을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마성처럼. 이는 미술 작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보고 어떻게 느낌이 딱 오겠는가. 작품이 나에게 중요한 의미가 되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 수도 있다. 처음부터 개인에게 걸작은 없다. 그렇다고 하니까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또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음악 자체의 예술성을 이해하여 그것이 내 기억에 남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어쩌면 그 음악을 들을 때의 내 주변의 상황과 풍경이 그 음악 감상에 더 큰 감상을 불러일으켜 뇌리에 박히는 것일 수도 있다.

가장 훌륭한 작품을 만드는 이들은 가장 세련된 환경에서 살고 가장 재치 있는 화술과 가장 폭넓은 지식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갑자기 그들 자신만을 위해 살기를 멈추고 자신의 개성을 거울처럼 투명하게 만들어, 비록 현재의 삶이 사회적으로 또 어떤 점에서는 지적인 면에서조차 초라하다 할지라도 그 삶을 거울에 반영하는 자이다. 천재란 사물을 반영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반영된 광경의 내적인 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 P227


질베르트는 스완 부부의 딸이므로 나는 자연스럽게 그 집에 드나들 수 있었다. 물론 나의 부모는 그 집안을 전체적으로 탐탁치 않게 여겼지만. (부모님이 원하는 친구는 내가 원하는 친구와는 언제나 다른가보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를 좋아했다. 하지만 질베르트도 한 얼굴이 아니다. 어떤 사람을 좋아할 때 분명 그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이 다 100% 만족스러울 수 없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어느 단면을 좋아할 뿐이다. 내가 질베르트에게 기대한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수호천사 같은 그런 얼굴이었을까. 인간은 선과 악을 함께 갖고 있는데 선만 갖고 있기를 기대한다면 그것은 너무 순진한 것 아닌가.

질베르트가 외동딸인 건 사실이지만, 적어도 거기에는 두 명의 질베르트가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나온 두 성질이 단순히 그녀 안에서 섞이는 데 그치지 않고, 이 두 성질이 서로 그녀를 가지려고 다투었고, 게다가 두 성질이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이 아닌데, 제3의 질베르트가 그동안 다른 두 질베르트의 희생물이 되는 고통에 시달렸음을 추측하게 하기 때문이다. - P247
이 두 질베르트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서 당신은 자신이 무슨 짓을 했기에 이렇게 사람이 달라졌는지 생각해보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다. - P248

내가 바라보는 상대는 언제나 움직인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테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항시 변하고 움직이는 존재다. 멈춰 있지 않다. 

어쨌든 나는 질베르트와 헤어질 결심을 한다. 그러면서도 그녀에게서 올 편지를 기다린다. 어느 순간 이후에는 그마저도 기대를 스스로 접어갔지만. 어쩌면 사랑이나 감정으로 인한 아픔이나 고통보다는 주변의 상황이나 그런 것으로 인해 타격을 받았을 때, 또는 그것으로 인해 흔들리는 느낌을 받을 때 슬픔은 더 가중되는 듯하다.

사랑하지 않을 때라야 우리는 그 사람의 움직임을 고정할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움직인다. 따라서 우리에겐 언제나 실패한 사진만이 있다. - P117

사랑을 시작한 사람들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시간을 보내지 않고 다음 날 약속의 가능성을 준비하며 시간을 보낸다. 사랑을 단념하는 사람들은 슬픔이 무엇인지 알려 하지 않고 가장 다정해 보이는 표현을 그 슬픔을 초래한 사람에게 전하고자 한다. 말할 필요가 있다고 느끼지만 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하는 걸 말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말한다. - P326

그 어떤 것도 영속성과 지속성을 보장받지 못한다. 우리 고통조차도.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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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3-03-27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이 좋아하는 시인을 실제 만나고 실망하다니... 그럴 것 같기도 합니다 글을 보고 사람을 상상하면 실제와 다를 때가 더 많을 테니... 그렇다 해도 그 사람을 자꾸 보면 다른 생각이 들겠습니다 겉만 보고 그 사람이 어떻다 생각하면 안 되겠네요 음악이나 그림을 한번이 아니고 여러 번 듣고 보는 것과 같기도 하겠습니다 사람은 한가지 면만 있지 않군요 좋은 점도 안 좋은 점도 다 있겠지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27 09:04   좋아요 2 | URL
너무 큰 기대로 기대치를 높인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면 마치 신화화되어서 그 실망감이 오히려 커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제는 사진이라는 기술이 있어서 유명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으니 긍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부정적인 것 같기도 하네요.
어떤 예술 장르든 작자와 작자가 펼치는 예술이 동일시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의 생각이 일부가 담기거나, 아니면 아예 안 담길 수도 있고... 보는 사람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버드 중국사 진.한 - 최초의 중화제국 하버드 중국사
마크 에드워드 루이스 지음, 김우영 옮김 / 너머북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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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여러 차례의 분열기를 거친 이후 변신을 거듭하며 오랜 기간에 걸쳐 존속할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의 제국들인 진과 한漢에 의해 시도된 중국문화의 근본적인 재구성 덕분이다. 그 시기에 정치와 군사제도는 물론이거니와 문예활동과 종교적 관습, 친족구조, 향촌생활, 심지어 도시경관도 재편되었다.
진과 한 두 제국은 중국 문명의 ‘고전기‘를 이루는데, 이는 그리스와로마가 서양에서 성취했던 바와 유사하다. 그리스-로마 시대의 지중해권 문화와 마찬가지로, 이 시대의 중국 문화는 그 후 그것으로부터성장해 나온 여러 왕조의 문화와 확연하게 구별된다. 그렇지만 이 시대에 중국 최초의 통일이 이루어진 방식을 파악하지 않고서는, 그 후에 펼쳐진 중국의 역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 P19~20

하버드 중국사 1권은 사실 작년에 읽으려고 정리해두었던 책이었는데 이제야 시작하게 되었다. 중국사 책 읽기를 얼마 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 더는 미룰 수 없게 된 셈이다. 먼지를 털어내듯 시작했다.

작년에 읽었던 하버드 C.H. 베크 세계사와 관련성이 있다 보여지지 않지만 목차나 구성을 보면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역사서에서 만나듯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된 역사서가 아니다. 그러니까 어느 왕 다음에 어느 왕이 나오고 이런 식의 역사서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까 이런 역사서를 기대한 사람에게는 실망을 안길 수도 있을 것 같다.

총 6권의 시리즈로 정리된 하버드 중국사는 시대별로 테마가 서로 다르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시대별로 중요했던 명제에 따라 역사는 다르다.

예를 들어, 진나라의 경우 전국 시대의 혼란을 뚫고 세워진 나라인 만큼 전쟁이 항시 벌어졌던 환경이었고 중앙 집권 하의 황제의 권력이 중요했다. 때문에 '전쟁을 위해 조직된 국가', '제국의 역설', '법률' 같은 테마가 주제로 들어갔을 것이다. 한나라는 서한과 동한 시절이(전한과 후한으로 불리기도) 다른 만큼 진과 한이 어떻게 다른지에 주목했다. 오래갈 것 같았던 진나라가 20년도 안 되어 무너지고 한나라가 들어선 것은 왜인가. 진나라는 강한 법률과 황제의 지나친 권력이 백성들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여기에 한나라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경전의 보급이 중요했던 만큼 '문예'라는 챕터가 들어간 것이 눈에 띈다.

두 나라간에 공통점도 많았다. 진은 상앙의 농지 개혁에 따라 개별 농가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고 지역에 따라 주민들을 이주시켰으며 그들에게 납세와 군역의 의무를 지우면서 제국의 질서를 만들었다. 중앙 권력인 황제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지방의 소리는 꺼지지 않았다. 초기 한나라는 진의 질서를 대부분 세습하되 자신들에게 맞춰 개선해나가는 방식을 택했다. 나라가 바뀐다고 해서 기존의 시스템을 모조리 다 갈아엎지 못한다는 소리겠다.

가장 인상적인 챕터는 '농촌사회', '친족'과 '종교' 였다.
진나라와 한나라에서 살던 사람들을 지금 바로 앞에서 느낄 수 있게 하는 주제였다고 생각한다.

농업은 고대 사회에 주축이 되는 기본 산업이었다. 지리적으로 북부와 남부에 땅의 질이 차이가 많았기 때문에 습윤한 땅이었던 남부는 치수를 중요시 했다. 북부는 물을 외부에서 끌어오는 것을 기본으로 고랑을 넓게 파고 씨앗을 고랑에 파종시키고 다음 해는 고랑과 이랑의 위치를 바꾸어 지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토양을 개선시켰다.
마을은 현에서부터 시작하여 향, 정, 리까지 규모가 넓어지고 각 호는 소규모의 토지를 소유하면서 작위에 따라 등급화되는 체계였다. 농가는 일반적으로 4~5인의 가족으로 이루어진 소농들이었다. 작위를 받으면 특권(군역 면제 등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점점 이를 노리는 이들은 많아졌다.
돈이 많고 지위가 있는 가문들은 학자들을 집안에 초대하거나 다른 성씨와 혼인, 조정의 관리와 인맥을 맺으면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특이한 것은 이들이 가구를 여러 개로 쪼개어 여러 개의 군현과 지방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면서 자신들의 부와 토지를 늘릴 뿐 아니라 인맥을 확대했다는 것이다.

최근으로 올수록 기존의 역사 서술에서 다루지 않았던 '여성', '노예' 등의 주제를 다룸으로써 균형을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점이 보인다. '친족'은 그런 점이 가장 돋보이는 테마였다.
고대 가부장제가 기본인 사회에서 '여성'은 지워진 존재로 비켜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서에서 다루지 않았더라도 여성들의 삶은 존재했다. 실제로 이 시기 가구 내에서 여성들이 제법 지위가 있었다고 한다. 물론 권위적으로 성별보다는 연령의 지위가 높았기 때문에 장자에 대한 존중이 더 높았지만.
현실에서 여성들은 가구를 지배했다. 진한시대 황태후의 권력이 막강했기도 했던 것은 특히 유방의 아내인 여태후가 대표적이다. 내부 공간은 여성이 관장했다면 외부 공간은 남성이 지배했다. 부계 친족 사회를 보존하는 데 여성들의 네트워크는 꽤나 위협적이었을 것 같다.

'종교'라는 주제에서 내가 눈여겨 본 것은 의례와 상장례다. 진한 시기 황제들, 특히 진시황이나 한 무제 등은 집권 시기 여러 차례의 봉선 의식을 가졌다. 이들이 봉선 의식을 가졌던 것은 자연신에게 최고의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스스로를 인간계와 선계 사이에 인정받는 천하의 주인으로 확립하는 과정이었다. 사기를 읽으면서 한 무제 때 봉선 의식이 왜 이리 많이 나오나 궁금했는데 이런 배경이 있었다. 주나라 초기만 해도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관계를 중요시 하며 연회를 즐기기도 하며 마치 축제처럼 사람을 떠나보내는 과정이었다. 이것이 전국시대 말 무렵이 되면 산자와 죽은자가 명확히 분리되고 한나라 때가 되면 형식을 중요시하면서 이를 확립해나가는 결과로 나아간다. 지방의 제의는 의례와 민간 신앙이 여전히 공존하는 방식이었다.

앞으로 남은 시리즈가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지 사뭇 궁금해진다. 적어도 나는 이런 방식의 역사 서술이 나쁘지 않다. 다만 어느 정도 기본적인 시대의 흐름을 알고 이 책을 통해 전체적으로 주제별로 정리하는 방식이 되면 더욱 도움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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