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14 - 4부 2권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 (마로니에북스) 14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2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토지의 배경은 개화기부터 일제 식민지 시기까지 넓은 시대를 아우른다. 그래서 다양한 역사적 주제가 바탕이 되지만 그 중 가장 중요한 핵심 주제는 '계급'이다. 이는 내가 토지 14권까지 읽으면서 올 때까지 내내 느꼈던 감정이다. 양반과 상민, 천민은 신분제 폐지로 진작 그 구분이 사라졌음에도 여전히 1930년대가 올 때까지도 신분의 질서는 뿌리에 잔존하고 있는 것이다. 

계급이란 무엇인가. 계급이 신분적 질서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상업 활동이 가능해지면서 두만이 같은 자산가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중산층 이상의 계급으로 성장한 반면 어디에 묶여 돈을 벌어야 하는 노동자들, 애초부터 가난했던 사람들과 백정, 날품팔이, 소작인들은 몇 년이 지나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고 자본주의의 저 밑바닥 계급에 잔존하는 것이다. 신분적 질서는 남아 있는 상태에서 자본주의에 따른 위계 질서가 추가되었고 거기에 일본인, 그러니까 마치 식민지 조선민은 무릎을 꿇어라! 하는 식의 질서까지 보태져서 그야말로 당시의 계급은 오히려 더 심화되면 심화되었지 사라질 수 없는 상태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식민지 조선인 대중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사회주의, 공산주의, 평등에 목을 메었던 것은 아닌지. 반면 고위층, 식자층, 친일파, 지주, 자산가들 등은 그것이 자신의 목줄을 겨누는 것이 될테니 기를 쓰고 반대했을 것이다.


(형평사 제6회 전선 정기대회 포스터)


형평사 운동이야말로 반봉건 반외세 운동의 대표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동학 운동이 불꽃처럼 타올랐다 거의 와해 분위기가 되는 와중에 형평사 운동은 가장 불평등한 존재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던 백정들에 대한 처우 개선에서 시작되었다. 과거 토지 리뷰를 하면서 내가 언급을 안했기에 이번에 언급해보려 한다. 


토지에 나오는 인물 중 송관수라는 인물은 토지에서 다루는 대표적인 사건들을 모두 거쳐가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와 어미, 그리고 자신이 동학과 연관이 있었고 백정 아내를 얻었는데 이는 송관수가 나올 때마다 누차 언급된다. 나중에는 이렇게 강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어서 들여다보게 된다. 작가님은 다 계산이 있으신 것이다.

보부상이던 아비는 9살 때 동학운동에 참가하여 죽었고, 동학군의 아낙과 자식으로 받아야 했던 핍박과 수모에 모친의 품팔이로 겨우 살아가면서 불공평한 세상을 더 두고봐서는 안되겠다는 결심을 했던 그였다. 그리고 화적떼로 몰리어 쫓겨다닐 때 은신처가 진주의 백정네 집이었는데 그 집 딸을 아내로 맞으면서 백정의 사위, 백정의 가족 구성원이 되었다. 동학 운동으로 산으로 들어간 뒤 조준구에 의해 마을에서 쫓겨난 모친의 생사조차 알지 못하는 현실은 그를 더욱 더 악에 바친 투쟁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형평사 운동이 그에게 준 것은 투쟁에 대한 이념과 신념이다, 그리고 젊은 세대와의 네트워크가 있다. 


장인이 생존해 있을 때 "백정의 자식 인물 좋으믄 머하노. 인물 좋은 것이 화근이라..." 혼자 한탄하곤 했었다.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이제 세상은 달라져가고 있인께 너무 걱정 마시이소."

문제의 발단은 강혜숙이라는 여학생 때문인데, 그들은 양가의 부모 몰래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였던 것이다. 혜숙이 집에서 그 일을 먼저 알았고, 백정의 외손자라는 것이 탄로되어 일이 크게 벌어졌다. 관수는 신변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고 영광은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강혜숙이 사는 곳은 뛰어넘을 담조차 없는 절벽인 것을 영광은 비로소 깨달은 것이다. 자랑스러웠던 그의 청춘은 산산조각이 났다. 크나큰 충격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에 대한 증오심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 P 49~50


백정네한테 딸을 주지 않겠다는 것은 태산만큼 확고한 신념이었다. - P298

모녀는 서로 끌어안고 운다. 해도 소용이 없는 말이었다. 잘못된 세상의 탓이라고 골백번을 외쳐본들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 수백 년 천년 세월은 그렇게 흘러오지 않았던가. 아이들의 수모도 감수해야 했으며 의복도 백정의 표식이 있어야 했던 세월, 세상이 달라져가고 있다고는 하나 마음속에 찍혀 있는 피차간의 숱한 낙인들이 일조일석에 없어질 것인가. 혜숙의 부모를 탓하기는커녕 그들에게는 오히려 자신들이 가해자요 죄인으로 생각하는 영광네, 속죄할 길조차 없음을 안타까워한다. - P299


"소선생. 양반, 선비들은 나라를 잃어부리고 나서 그제서야 제 목심 짜르고 할 일 다 했다 그래 되겄십니꺼?" 관수는 소씨 가문의 내력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내리친다. "소선생 말씸대로 하자믄 살자고 발버둥치는 놈은 모두 쥐새끼란 말이오? 내 소견으로는 나라고 민족이고 간에 그거는 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울타리가 아니겄소? 공부깨나 했다는 사람, 너 남 지간에 한다는 말이 일본은 심이 세다, 세계에서는 강국이다, 대항해보아야 바위에 계란 던지기다, 그럴 바에야 더 배워서 시기를 기다리는 기이 낫다, 제에기랄! 호랭이 앞에서 기다리보아야 잡아묵히기밖에 더하겄소. 살아남을라 카믄 심약한 인간은 창을 맨들고 함정도 파고 덫도 놓고, 환하게 다 알믄서 소선생은 와 딴전을 피우는 깁니까?" - P52~53


그래서 송관수는 식자층, 양반 등이 일본에 대처하는 자세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사실 따져 놓고 보면 앞장서서 나서는 것들은 가난한 농민과 노동자, 학생, 천민들 아니었던가. 그들은 뒤에 빠져 있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일본에 비호를 맞춰주며 이속을 차리는 사람들이었다.


극 중 인물에서 송관수와 반대 편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인텔리, 귀족 층으로 최참판 댁 식구들, 그리고 조용하, 조찬하 형제 귀족층 츰 될까. 임명희는 그 조 가 집에 시집을 갔었으니 귀족층이 되어 버린 케이스다(물론 명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엄밀히 말하면 임명희가 자라온 집안은 역관의 집안이니 중인층이다. 그러나 그가 하는 생각의 바탕에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동정보다는 멸시와 천시가 없다고 할 수 없다. 그가 귀족층을 두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에는 가난한 자들의 마음을 결코 이해하지 못하는 부족함이 엿보인다.


"요즘 식자 좀 들었다 하면 사회주의다 무정부주의 공산주의하고들 말 많이 하는데 난 때론 무서워져. 어째서 내가 그들의 적인가 하구, 그들은 모두 착하구나 같은 사람은 모두 악하구,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거니? 그렇다면 그런 말하는, 그런 이론을 믿는 사람 대다수는 노동자도 농민도 아니지 않아. 북만주에 가서 독립운동하는 소위 양반의 후예보다 농민이 더 위대하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 아니니."

"그 말엔 나도 동감이야. 가난하다고 다 착하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지. 그 속에도 고약한 사람 많아. 권좌에 앉혀놓으면 포악무도할 요소를 가진 사람 말이야. 또 민중을 믿는다는 것도 어리석은 짓이고, 그러나 억압당하고 착취당하는 현실을 통해서 그들을 이해해야 하는 거 아닐까? 반드시 환경이 지배하는 것 아니라 할 수는 있으나 일면 고난이 사람을 맑게 하는 것도 사실이지. " - P126

"하지만 피해를 어떻게 물질에만 둘 수 있겠니. 이런 말 또 하면 넌 배고파보지 않은 자의 호사스런 얘기라 하며 공박할지 모르지만" - P127


같은 형제지만 조찬하와 조용하는 다르다. 조용하는 철저히 귀족층의 권위 의식을 활용하려고 한다면 조찬하는 그렇지 않다. 귀족으로 일본에 빌붙어 남부러울 것 없이 얻은 조선의 권력층들이었다. 그래서 떳떳할 수 없는 처지라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식민지 조선인으로서 일본 여자와 결혼까지 했으니 마음에 부채 의식 같은 것도 있었던 것 같다. 


"내 부친께서는 생각을 매우 잘못한 겁니다. 친일파란 합방되기 이전에 필요한 것, 합방이 되고 나면 쓰레기로 변하는 것을 몰랐다, 세계 만방에 체면 세우기 위하여 조선왕실을 일본 황족으로 하고 친일파에겐 작위를 주고 그것도 일종의체면용일 뿐, 일본이 필요로 하는 것은 영토와 자원과 노동력뿐이지요. 다 써먹고 이제는 필요 없게 된 밥버러지가 뭐 그리 반갑겠소. 죽어 없어지는 것을 학수고대하고 있을 게요. 처량한 신세지요. 나의 부친은 매우 셈을 잘못한 겁니다. 작위를 받을 게 아니라 상놈으로 격하됐어야 옳았어요. 노역형(勞役刑)보다 금고형(禁鋼刑)이 가혹한 걸 몰랐지요. 대학을 나오면 뭣합니까? 손도 발도 내밀 수 없는데, 과거 조선문화에 대한 일본의 콤플렉스는 그것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데 그 유산을 많이 싸 안고 있는 과거 지배층이 반가울 까닭이 있겠어요?" - P410



신간회를 지난 리뷰에서 한 번 언급하였지만 다시 한 번 언급하고자 한다. 신간회는 알다시피 좌우합작운동으로 만들어진 단체다.1920년대 말 극도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립운동을 통합해보고자해서 만들어진 단체였다. 


신간회는 독립운동단체였지만 독립운동만 한 것이 아니고 여러 활동을 했다. 특히 노동자, 학생 운동을 지원했던 이력이 많다. 12, 13권에서 등장한 광주 학생운동과 14권의 장풍탄광 노동자 사건이 대표적이다. 


1930년 6월 함경남도 신흥(新興)에 있는 장풍(長豊)탄광의 광산노동자 수백명이 임금을 받지 못해 광주(鑛主)에 대한 폭동을 일으키자, 중앙본부에서 조사단을 장풍탄광 현지에 파견하여 조사한 결과 광주가 광부들을 혹사한 사실이 드러났으므로 신간회의 이름으로 즉시 ‘경고문’을 보내고 광산노동자들을 성원하였다.


-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간회 운동' 이병헌


단천 산림조합운동 지원 사업도 빼놓을 수 없다.


신간회는 1929년 7월부터 함경남도 단천(端川)에서 농민들이 일제의 산림조합 설치를 반대하는 대대적 운동을 일으켜 마침내는 일제 군청과 경찰서를 습격했으며, 일제 경찰이 발포하여 30여 명의 사상자를 내고 60여 명이 구속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본부 중앙상무집행위원이며 신간회 전(前) 단천지회장인 이주연을 단천에 파견하여 사건을 조사하도록하고 농민들을 옹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벌이도록 하였다. 또한 신간회 단천지회는 일제 산림조합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활동하였다.註 074 이 이후에도 신간회는 전국 각 지방의 농민운동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 출처: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신간회 운동' 이병헌


"단천은 어떻게 해서 발단이 된 거요?"

"불법벌채를 했다 하여 군청에서 조사하러 나간 놈이 남정네도 없는 집에서 아낙을 모욕했던 모양이라. 그런 일쯤이야 일제치하에 들어간 후 다반사가 아니겠소. 결국 쌓이고 쌓인 곳에 그게 불씨였겠지요. 이천여 명의 군민들이 군청과 경찰서로 밀고 들어가서 시위를 했는데, 또 조사하러 나간 놈이 조선인이라 처음부터 험악했던 모양이오. 군청과 경찰서를 때리부싰는 지경에 이르러 사상자가 많았다 하더구먼." 해도사가 물었다.

"애림사상의 진흥이니 삼림의 재해를 방지하고 임업발전을 육성한다, 취지는 그러하나 결과적으로 산주(山主)는 일체 자기 손을 못 댄다, 게다가 조합비마저 물게 하면서.... 당장 목줄이 달려 있는 농토하고는 그 양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또 삼림녹화라는 명분이 없지 않으나... 그러나 이천여 명, 그 군민들이 모두 산주라 할 수는 없고, 소요의 원인이 이해문제에 있기보다 물론 민족감정에서 출발..." - P62~63


이 사건 이외에도 신간회에서 지원한 사건은 무척 많다. 국내 민족 협동 조직의 확대, 국외 '한국독유일당촉성' 대표파견 시도, 전국순회강연운동, 수재민 구호 운동(함경도 홍수 피해 지원), 재만동포옹호운동, 어부들의 권익옹호활동, 원산총파업과 노동운동 지원, 함남수력발소매립지구 토지보상운동(함남 장진발전소와 부전발전소 등 수력발전소의 댐 매몰지구의 농민들에게 대한 토지 보상 없이 농민들을 먼저 축출), 갑산화전민방축사건 규탄운동(일제가 함남 갑산 화전 방화 및 화전민들을 강제 추방), 태평양문제연구회의 참가반대운동(1928년 8월 교토에서 개최되기로 한 ‘태평양문제연구회의(太平洋問題硏究會議)’, 그러나 갑산화전민방축사건을 일제가 조종한다는 것에 반대), 언론·출판·집회·결사탄압 규탄운동, 재일본한국인노동자송환 항의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옹호·지원활동, 민중대회운동 등 다양했다.



추가적으로 14권 후반부에 주요 주제였던 국가와 민족, 예술, 정신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내가 언급할 수있는 영역 이상인 것 같아 밑줄긋기로 대신하고자 한다. 


어차피 문화란 다소간에 서로가 영향을 줄 수 있는 건데 처지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불공평한 일 아닙니까? 글자란 엄밀히 말해서 전달의 수단이지 내용은 아니지 않겠는가. 한자를 우대하기론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당신네들한테도 우리를 거쳐 중국 것이 들어갔고 또 우리 것도 가져갔다면 모화사상(慕華思想)에다 모조사상(思想)도 성립이되겠네요.

야나기의 그릇된 관점 중에 옳은 것이 하나 있어요. 조선의 예술은 고유한 것이며 독특하다고 한 그 말은 옳아요.… - P370


"칼로써 힘을 빼고 황폐해진 정신으로, 파괴가 있을 뿐 창조는 없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즐겨 말하는 조선의 사대주의 그게 진실이라면 고유하고 독특한 문화는 있을 수가 없지요. 평화는 무력(無力)이 아니에요. 평화는 한의 대상이며 생명에의 지향이에요. 오늘날 결과가 어떠했든, 이건 악의 승리, 하지만 결정은 아닌 거예요." - P374


"언젠가 요시노 사쿠조[作]선생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일본인 지휘에 반항하는 조선인을 불령도배(不逞徒輩)로 비난하는 논리에 대해서 선생은 적어도 도덕적으로 그들의 입장은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 했는데, 그분도 한계는 있었겠지만 우리의 정당함을 지적한 것은 훌륭했어요. 우리에겐 자비나 동정을 받을 이유가 없거든요. 요시노 선생은 귀한 양심이었습니다. 일본 같은 나라에선 말예요. 왜냐하면 그분이 길러낸 수많은 제자, 영향을 받은 지식인도 적지 않았겠는데, 공산주의를 논하고 사회주의를 신봉하면서도 일본 군국주의 자본주의의 밑깔개가 되어 신음하는 조선에 대하여 거의 어떤 소리도 없었으니까요. - P379~380


야나기는 참아라, 바위에 깔리어 빈사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참아라! 폭력과 살생은 어느 쪽이든 나쁘다, 아아 비운의 민족이여! 하며 슬퍼했지요. 조선에서는 또, 소위 지식의 반풍수들이, 지적 댄디스트, 그리고 민족개조론 따위를 쓰는 기회주의자들이조선예술의 예찬자 야나기에게 박수를 보내고 감사 감격하며 그런 자신을 애국자로 착각하여 또 감격하는데 한 마디로 치사해요. 골자를 얘기하자면 조선의 예술은 참담한 민족수난이 빚은 쓸쓸하고 비애에 젖은 아름다움이라, 야나기의 그런 관점의 저변에는 사대주의의 조선이란 의식이 짙게 깔려 있어요. 그는 예술만은 사대가 아니라 했거든요. …" - P380


읽으면서 궁금증은 일었다. 특히 예술에서.

예술은 사대가 아닌가? 예술은 소위 '이념'과 비켜서있을 수 있는가? 유미주의 자체로서의 예술이 가능한가. 민족과 현실을 외면한 순수 예술은 의미가 있는가? 나는 적어도 순수 예술은 거부감이 이는 쪽이다.



14권에서 특히 작가님의 자료 조사와 시대를 읽는 혜안에 감탄하며 읽었다. 특히 후반부는 압권이었는데 내가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 독자로서 죄송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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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3-03-29 17: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려면 토지 몇 권 남았나요?

거리의화가 2023-03-30 08:45   좋아요 1 | URL
20권이 마지막입니다. 이제 6권 남았네요^^

희선 2023-03-30 02: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반이 아닌 사람은 계급이 없어지기를 바랐겠습니다 그때 그런 게 바로 사라지기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해요 평민이라 해도 자기보다 더 낮은 사람을 차별하기도 하다니... 그런 게 지금이라고 아주 없지 않기도 하겠습니다 직업 귀하고 천한 게 없다고 하지만, 말만 그렇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도 하네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3-03-30 08:48   좋아요 1 | URL
계급은 지금도 없어지지 않는다는게...ㅠㅠ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하고 못 가진 자는 더 어려워지는 세상인 것 같습니다. 위계라는 것이 자본만으로 정해지지는 않지요. 인종, 학벌, 지역 등 다양한 것이 더해져서 계급이 없어지지 않는 듯합니다. 다양한 인물을 통해서 과거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