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19] A New Kind of King

영국에 Ricard I세는 Richard the Lion hearted로도 알려져 있는 인물이다. Richard는 자국의 소유권을 팔아 넘기고 군대를 모아 crusade를 떠난다(???). 프랑스로 간 그는 왕과 Austria의 영주에게 함께 힘을 모으기를 요청하나 Austria의 영주는 거부하고 자기 지역으로 돌아가버린다. Richard는 자국의 군대만으로 예루살렘으로 향했으나 Saladin 군대는 예상보다 끈질겼다. 이 때 고향에서 남동생인 John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문을 듣게 된 그는 발걸음을 돌린다(소유권 포기 아니였니?). Austria로 지나가려던 Richard를 감옥에 가두어 버린 영주, 사람들은 죽은 줄 알았으나 Blondel이 감옥을 뒤진 끝에 그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알린다. Austria 영주가 요청한 막대한 배상금을 내고 Ricard는 돌아온다. 그러나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 프랑스가 쳐들오는 바람에 사망한다. 그렇게 John이 영국의 왕위를 이었다.

John은 프랑스 전투에 막대한 돈을 썼기 때문에 세금을 늘려야 했는데 이를 귀족들에게서 받아낼 생각을 한다. 이에 귀족들은 반란을 일으키고 이렇게 civil war가 발발했다. 1215년 여름 Runnymede에서 Magna Carta 서약이 발표되는데 이는 지휘권자가 어떠한 행위를 하기 전에도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에 기초했다. 오늘날의 의회민주주의에 의회, 상원/하원도 이 법률의 기본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영국왕 John은 귀족들에게 세금을 걷어갔지만 귀족들은 소작농과 농노들에게 돈을 뜯어갔기 때문에 점점 사람들의 삶은 팍팍해졌다. 이 때 로빈훗의 전설이 시작된다. 로빈훗은 부자들의 돈을 뺏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는 우리 역사에서 보면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존재다. 로빈훗이라는 캐릭터가 지금까지 살아남고 이야기가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그 시절이 살기 힘들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CH20] The Diaspora

한 유대인 학자가 있었다. 이름은 Yohanan ben Zakkai. 그는 예루살렘이 운명에 처했음을 느끼고 관을 사들여 그 속에 들어간 다음에 죽은 척 한다. 그는 자신의 제자들을 예루살렘 바깥으로 피신시킨다. 수백년 간 유대인들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유대 회당에서 예배를 하고 토라를 읽는다. 유대인들은 스페인에 정착을 많이 했는데 상대적으로 이슬람 교도들이 유대인들에게 좀 더 친절했기 때문이다. 랍비와 토라 때문에 유대인들은 존속할 수 있었다.

Cordova의 똑똑한 랍비 이야기. Cordova의 수장은 주위의 경계의 말을 듣고 유대인들을 내쫓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테스트로 가장한 자신의 명령을 전한다. "유대인들은 3개의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첫 번째는 "하늘에 별이 얼마나 많이 떠 있을까?" 두 번째는 "진실과 거짓 사이의 거리는?" 세 번째는 "종이 한 면에는 'Stay'라고 적혀 있고 다른 쪽 면에 'Go'라고 적혀 있다. 어느 것을 선택하든 그대로 행해야 한다."

랍비의 첫 번째 대답은 "Five million, four hundred thousand, three hundred and two." 세워봤다며 당당하게 이야기하는!ㅋㅋ 못 믿어도 할 수 없음. 어차피 못 세워볼 것 아닌가.

두 번째 대답은 "The truth is what you see with your own eyes. A lie is what another tells you to be true, but which you canno see. The distance between your eyes and your ears is the width of one hand."

세 번째 대답은 랍비도 바로 대답하지 않고 좀 뜸을 들이더니 종이를 씹어 먹어버린다. "내가 선택한 종이는 없어졌지만 그 반대쪽은 아직 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반대 쪽을 선택할 것이다." 결국 랍비의 대답이 인정되어 테스트를 통과했다는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대답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CH21] The Mongles Devastate the East

세계 서쪽에서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람들이 싸우는 동안 동쪽에서는 다른 전투가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몽골인들이 먹을 게 떨어지면 말의 혈관을 통해 피를 섭취하고 다하면 봉합한 뒤 말을 다시 탄다는 것이 신기했다(몽골족이 그런다기보다는 유목민들의 생활 방식이 맞을 것이다). 아무튼 칭기스칸은 1167년에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부족의 리더가 되지만 몽골은 여러 부족이 존재했으므로 이를 또 통합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고 드디어 "텡그리(하늘 신)가 나를 선택했다!" 선언한 뒤 대칸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서쪽을 먼저 정벌하는데 특히 이슬람 세력에게는 테러에 가까웠다(이슬람인에게는 공포에 가까웠을듯). 1227년 칭기스칸이 병을 얻어 죽고 추종자들에 의해 시신이 옮겨졌으나 현재까지도 무덤의 위치는 정확히 밝혀진 바 없다. 칭기스칸의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1260년 중국 정복을 완성한다. 중국군이 화약을 쓰는 바람에 당황했으나 결국 중국을 굴복시키고 원 왕조를 세운다. 몽골이 정복하지 못한 것은 일본이었다. 두 차례나 호기롭게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향하려 했으나 바람(신풍 = 가미카제)의 방해로 실패로 끝났다. 이 때 일본으로 가기 위해 고려의 노동력과 기술력이 사용되었다-_-


[CH22] Exploring the Mysterious East

유럽 사람들은 중국을 다른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중국으로 통하는 실크 로드를 이용하여 상인들이 중국에 있는 상품들을 바깥으로 실어 나르면서 유럽 사람들도 중국의 문물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쿠빌라이 칸은 유럽과의 무역이 중국에 이득이 됨을 알고 있었다. 마르코 폴로는 이탈리아 상인인 니콜로의 아들이다. 마르코가 태어나기 전 아버지는 중국으로 이미 떠나 그가 15살이 될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대칸은 그에게 로마의 성유(holy oil)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드디어 그는 아들과 함께 중국으로 떠나고 마르코 폴로가 여행 중간에 병이 드는 바람에 쉬었다가 두 부자는 베이징에 도착한다. 두 사람은 칸을 만나고 그들은 20년간을 중국 곳곳을 여행하게 된다. 마르코 폴로가 남긴 여행 기록은 책으로 남아 당시의 상황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 여정을 마치고 이탈리아에 돌아간 두 부자는 남루한 옷 때문에 거지라 오해받고 쫓겨날 뻔했으나 옷 속에 감춰둔 온갖 보석류들을 꺼내놓자 그제서야 받아들여졌다고.

쿠빌라이 칸 이후에 몽골은 분할되어 힘이 쇠약해진다. 중국에는 명 왕조가 들어서고 강력한 황제인 Yongle(영락제)가 즉위한다. 그는 1421년 베이징에 수도를 대표하는 궁전을 지으라 주문하고 14년간 작업이 이어진다. 무거운 돌을 수도까지 옮기는데 무척 힘들었다고 한다. 궁전을 둘러싼 석벽은 30 피트 높이로 지어지고 석벽 안에는 9999개의 건물들이 만들어진다. 이 건물들은 돌로만 만들어지지 않고 쌀과 라임으로 붉은 벽돌을 이어붙이게 함으로써 몇 백년을 끄떡 없이 유지할 수 있게끔 했다. 황색은 중국 황실의 상징색이며 건물들은 황금 용과 노란 벽화, 지붕도 온통 황색 타일로 칠해졌다. 이 영역은 외부에서 전혀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에 Forbidden City라고 불려진다. 


[CH23] The First Russians

The Rus(루스족=Rurik)는 콘스탄티노플 북부에 살았다. 원래는 슬라브족이 살던 곳인데 루스족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들은 결혼을 하며 자연스레 인종 간 결합이 되었다. 그들은 항해술이 뛰어나서(바이킹의 후예) 배를 타고 나가 콘스탄티노플에 몇 주에서 몇 달을 오가며 항해했다. 루스족의 지도자는 그곳을 오가는 것보다 공격해 무너뜨리는 것이 싸게 먹힌다 판단하고 콘스탄티노플을 공격을 감행한다. 그러나 비잔틴 군대에는 Sea fire(oil that kept on burning even when it was spread out on water)라는 비밀 무기가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는 결국 공격에 실패한다. 러시아 왕자 블라디미르는 콘스탄티노플에게 화해의 선물로 6천명의 러시아 병사를 선물한다. 블라디미르는 비잔틴의 공주와 결혼을 하고 정교회로 개종을 한다. 오늘날 러시아 국명은 이 Rus에서 온 것이다.

원래 러시아는 하나의 부족이 아닌 여러 부족이 결합된 곳이었다. 이반(Ivan)은 모스크바의 왕자였는데 그 대에 몽골로부터 자유를 얻고 다른 러시아 지역도 통합하면서 이반 대제(Ivan the Great) 명칭을 얻게 되었다. 그는 훌륭한 왕이었으나 손자는 그러질 못했던 것 같다.(Ivan the Terrible) 그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자신을 차르(tsar)라고 부르고 러시아를 더 부강하게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아내가 죽은 후 정신 이상이 된 후에 비밀 경찰을 만들어 무고한 자들 포함하여 배반자들을 처형하는 등의 행동을 한다. 러시아 귀족들은 그의 아들이 얼른 성장해서 왕위를 잇기를 바랐다. 어느 날 이반과 아들이 싸우다 화가 난 이반이 그를 살해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후 그는 급 정신을 차리고 속죄의 삶을 살았다고…


[CH24] The Ottoman Turks Attack

투르크인(the Turks)은 몽골군의 추격을 피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마을을 공격하고 음식을 약탈했다. 그러나 그들은 무슬림 상인들과 교역하면서 무슬림이 되었고 비잔틴 제국 변경 지역에 정착했다. 투르크 왕국은 점점 커져 왕을 술탄으로 부르고 비잔틴 제국을 넘보기 시작한다. 1444년 메흐메드(Mehmed) 술탄은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명하고 군대는 유일하게 육지에 닿아 있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대포를 이용하여 공격했지만 그럼에도 성벽은 무너지지 않았다. 그들은 방법을 바꾸어 북쪽 성벽을 확보하기 위해 북쪽 항구(The Golden Horn)에서 서쪽 벽까지 육지 길을 만들어내 결국은 모든 방향에서 공격을 할 수 있게 된다. 이 때 하필 일식이 발생하는데 비잔틴 제국이든 오스만 터키든 이 현상을 전쟁의 끝을 의미한다고 인식했다. 콘스탄티노플의 성벽은 마침내 열렸고 내부의 것들은 사라졌다. 하기아 소피아 교회는 모스크로 변했고 콘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로 바뀌었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이 사라진 날이자 로마의 치세의 종언을 고하는 날이었다. 

술레이만은 1520년 오토만 제국의 술탄이 되었다. 그는 솔로몬왕의 이름을 따라 이름을 지은 것이다. 그는 터키 사람들에게 적용할 법을 만들려 했다. 비잔틴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가 모든 사람들에게 같은 법률을 적용하지 않았던 것을 따르고 거기에 새 법을 따르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감독을 했다. 스파이 체계를 갖추고 변장을 한 뒤 잠행을 나가 자신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법은 잘 따르고 있는지 확인하였다. 그는 술탄에서 나아가 칼리프(종교 지도자)까지 된다. 다행히 사람들은 이를 따랐다. 꿈에서 황금 사자가 자신에게 달려들어 물어 뜯히고 깨어나 예루살렘을 보호하지 않아 발생한 일임을 느끼고 the Lion Gate를 예루살렘에 세운다. 이는 지금도 있다. 비록 로마 밑으로 내려가지 못했지만 술레이만은 자신의 치세 때 오스만 터키를 가장 강력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죽고 즉위한 아들이 정사를 잘 돌보지 않아 점점 국력이 약해졌다. 이후 300년 간 유지된 터키는 더 이상 술레이만 때만큼은 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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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4-01-28 1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원서읽기, 응원하는 1인입니당~~~
그리고 부럽습니다.(히죽~~)

거리의화가 2024-01-29 16:31   좋아요 2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히죽~~)이 이모티콘인 줄 알았어요!ㅎㅎ 응원 받았으니 더 열심히 읽어야겠네요^^

희선 2024-01-29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 공부도 하고 세계사를 다시 살펴보기도 하겠습니다 저는 세계사 다 모르는군요


희선

거리의화가 2024-01-29 16:32   좋아요 1 | URL
저도 세계사는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아요. 빈 구멍들이 많다는 걸 읽으면서 느낍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