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로 본 한국현대사와 군 현대한국구술사연구 총서 3
정용욱 외 지음 / 도서출판선인(선인문화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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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현대한국구술사연구사업단이 "한국현대사와 군"이라는 주제로 2009년부터 10년에 걸쳐 구술 채록을 한 것을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물이다. 100명이 넘는 군 관련 인물의 증언을 수집했고 933시간 분량의 동영상과 음성 파일, 녹취록 등의 결과물이 나왔다. 이 구술 자료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현대한국구술자료관의 아카이브를 통해 누구나 확인 가능하다.(mkoha.aks.ac.kr)

군은 한국현대사에 깊숙이 관여하고 있음에도 그동안 군의 활동에 대한 연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당 연구는 한국현대사의 또 하나의 자료로서의 기능과 군의 역할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군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수집했다는 것에 의의를 지닌다. 다만 한계성도 있다. 구술한 군의 인사들이 군을 대표한다고 하기에는 인원의 수가 너무나 적고, 또 인사들 대부분이 고령의 나이(1920년대 생이 많음)인데다 사건이 발생하고 이미 많은 시간이 흐른 뒤이기 때문에 그 기억을 온전히 믿기에는 어렵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 연구의 장점은 국방부에서 공식으로 내놓은 자료들과 비교할 수 있는 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같은 인물이라도 군 공식자료에서 이야기한 내용과 이 내용이 다른 경우가 있었다.

해방 후 살아남아 귀국한 학병들 중 일부는 군대를 만들려는 운동을 전개했다. 이후 미군정이 한국에 들어와 한국군 창설에 직접 참여할 때 학병들이 중심 역할을 했다. 한국군 창설 초기에 좌익 성향의 군인을 솎아내는 숙군 작업이 전개됐다. 과거 전력이 있는 인물이나 특정 인물에 대한 개별적인 감시가 이루어졌고 1947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것이 여순사건 이후 육군 정보국 주도 하에 전군 차원으로 확대되었다. 월남인들은 대부분 정치 사회적 동기보다는 연고 없는 낯선 땅에서의 삶과 생활고, 교육의 연장 등 개인적 동기이거나 본인의 선택과는 무관하게 한국군에 가담했다. 월남인들은 대체로 분단 상황을 단기적인 것으로 보고 홀로 내려온 경우가 많았다. 곧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시간이 길어지자 먹고 살기 위해 군 입대를 하게 된 경우가 많았다. 미군은 한국군에 일제 잔재를 청산하고 새로운 군대를 만들려고 시도했으며, 이 때 한국군 장교들이 선발을 거쳐 미국으로 유학을 가 교육을 받았다. 1965년 이후에는 서독으로 군사 유학을 가는 경우가 생겼다. 이후 군사유학을 미국으로 가느냐 서독으로 가느냐에 따라 군인의 진급 및 정체성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의 '독자적 작전권'에 대한 미군과 한국군의 갈등이 첨예했으나 지휘권은 한국군이, 작전권은 미군이 갖는 방식으로 결론이 났다. 이는 한국군의 군수물자의 보급과 수당 등을 사실상 미군에 의존하고 있었던 상황에서 애초부터 한미동맹 관계의 틀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한진, 현대 등의 한국기업은 베트남특수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끌어 모았다. 한진과 미군은 서로 용역을 제공하고 대가를 지불받는 관계였는데 한진이 수행하는 용역제공에는 미군과 한국군의 맹호부대에게 미군으로부터 받은 물자를 수송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었다. 맹호부대는 한진이 물자를 수송하는 과정을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 말부터 베트남에 주둔하던 미군이 부분 철수하고 군비절감정책이 추진되었는데 이 때부터 한국 기업들도 나누어 철수하였다. 베트남전에서 비정규전이라는 특성상 우호적 대민관계 유지가 중요했고 한국군은 특수교육대를 통해 전투 기술과 더불어 대민 관계 관련 교육을 실시했다. 그러나 실제 교육 내용은 빈약하여 대다수 한국군은 베트남 현지 문화와 습속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로 베트남에 도착했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은 구호사업, 건설사업, 의료사업, 농경지원, 자조사업 등에 주력하여 필요한 물자와 자금을 미군에게 지급받아 사업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한국군의 민사작전은 긍정적 성과를 이끌어내지 못한 채 도난사건, 교통사고, 살인, 성범죄 등의 사건에 연루되며 베트남의 민간사회와 충돌했다.

하나회는 비밀 사조직으로 관련 인물들이 육군본부 인사과의 주요 보직을 차지하면서 군내 인사권을 장악했고, 주로 선후배나 동기들과의 관계에 따라 형성된 인맥이었다. 이들은 고위층이나 재벌로부터 활동비를 받기도 했고 하나회 선발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서 동기들 간에도 알 수 없는 구조였다. 하나회가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73년 '윤필용 사건'이다. 수도경비사령관 윤필용이 술자리에서 이후락에게 "각하의 후계자는 형님이십니다"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체포되었고 윤필용이 하나회의 후원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하나회 이름이 거론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윤필용과 그 부하들이 쿠데타 혐의로 군법회의에 넘겨졌으나 전두환과 노태우 등은 살아남아 12.12 사건을 넘어 신군부의 주체가 되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박정희 정권의 자주국방을 실현시키기 위한 핵심기관이었다. 70년대 초에는 모방에 가까웠고 70년대 중반 이후가 되어서야 자체기술개발과 무기개발이 진행되었다. 하지만 70년대 후반 이후가 되면 미국이 한국의 자주국방정책을 경계하여 자주국방정책은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다.

이 책을 통해서 한국군이 창설되는 과정과 한국전쟁 시기의 군의 역할, 베트남 전쟁에서의 한국군의 모습, 한국군이 정권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군에 대한 시각이다. 해방 이후 극렬한 좌우 대립에서 소련군과 미군이 인민군과 국군에 미친 영향을 느낄 수 있다. 장우주 같은 인물의 발언은 뼛속같이 친미파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해못할 바는 아니라고 본다. 배고픈 와중에 미군이 건넨 초콜릿 하나에 넘어가듯이. 어쨌든 미군은 여전히 한국군에 미친 영향이 너무나 크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군을 옹호할 생각은 없다.
이후 베트남전에서 국군이 행한 일들은 불편하고 눈살이 찌뿌려질 수 밖에 없다. 군은 여전히 작전 수행으로 행한 일이라고 명명하지만 그것이 감춘다고 감추어질 일인가. 여러 증언을 통해서 이미 상당 부분이 수면 위로 올라와 있는 상태인데 말이다. 진정한 사과와 보상이 필요하지 않을지.
또한 하나회와 윤필용 사건에 대해서는 이름만 들어보고 제대로 사건에 대한 전개, 이면을 알지 못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또 자세한 이야기를 확인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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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6-27 09: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나회가 이렇게 시작된거군요. 정말 잘 읽었어요 화가님 ~~

거리의화가 2022-06-27 09:30   좋아요 2 | URL
네 미니님 저도 하나회 전두환 노태우 법정에 서면서 이름만 듣고~ 이면에 복잡한 사정이 많더군요. 하긴 비밀 사조직이었으니 누가 불지 않는 한 수면에 드러나지 못했겠죠^^

바람돌이 2022-06-27 12: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은 1차 자료가 되겠네요.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 정말 존경스러움요. 그걸 읽어내는 화가님도 존경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2-06-27 13:03   좋아요 3 | URL
네 맞습니다. 10년 동안의 작업이라니요. 녹취를 하고 그걸 정리하면서 발췌하고 자료 조사도 병행해야하니 얼마나 어려웠을지. 연구자들의 녹과 공으로 저는 자리에 앉아 편하게 읽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읽어주는 독자가 있어야 이런 작업이 지속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존경은 그분들께! 감사합니다.

레삭매냐 2022-06-27 19:4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서독으로 간 이들의 후예가
훗날 독사파가 되지 않았나
추정해 봅니다.

일본군 내의 고질적 병폐인
파벌다툼이라는 악습을 유
산으로 건네 받은 게 큰 문
제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6   좋아요 0 | URL
독사파라고 하셔서 잠시 웃음이...^^;
저는 일본군의 악습과 잔재 중에서 받은 가장 큰 문제가 군기와 상명하복 시스템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파벌 다툼도 있지요~ 이 때문에 현재 정치가 이리도 난투극을 벌이는 걸까요-_-;

그레이스 2022-06-27 2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박정희, 하나회, 소설 무기의 그늘 ... 여러 비화들이 막 생각나네요
저도 잘 읽었습니다.

거리의화가 2022-06-27 21:47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뿌리 깊은 군의 개입은 우리 한국 현대정치와 뗄레야 뗄수가 없더군요. 하필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고 세계는 냉전이었으니 더욱 개입하기 좋은 조건이긴 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