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흐름을 잊고 살지만 4월이 되면 코끝이 시리다는 걸 느낀다.


오늘로서 세월호 8주기다.

선체가 기울어 배의 단면을 드러낸 이미지는 몇 년이 지났지만 내 머릿속에 여전히 선명하게 남아있다.

또한 아이들의 울음과 비명은 달아나지 않고 내 가슴을 맴돌고 있다.

그 날 가라앉은 배에 한 두명의 사람이라도 구조해보겠다고 달려든 민간잠수부들이 있었다.

25명 모두 자발적으로 나선 이들이었다.

목숨을 걸고 의롭게 행한 일들이었지만 이후 김관홍 잠수사는 고인이 되었고 남은 이들 중 10명은 잠수사를 아예 그만두었고 나머지도 몸과 마음이 무너져 순탄치 않은 삶을 살고 있다.

4년 전 선체조사위원회가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명확한 결론은 나지 않은 채 두 가지 가설을 밝혀내는 데 그쳤다.

현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6월 10일 조사기한 종료를 앞두고 막바지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에는 규명 작업이 80% 정도의 단계까지 와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더 이상 시간을 보내지 말고 이번에는 최선의 결과치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죽은 자들은 말이 없지만 살아남은 이들을 위해서라도 명확한 원인이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하필 이렇게 슬픈 날 왜 이렇게 날이 좋은지 옆지기와 산책을 다녀왔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나왔더라~

공원 옆 맥줏집에서 맥주 한잔 하면서 이야기 나누다 왔다.

갑자기 현실감이 없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당신과 나는 동일한 물리 법칙을 따르는 동일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우리의 삶은 거시 규모의 이야기(사람 이야기)에 담겨 있다. 우리는 생각하고, 숙고하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성공하고 실패한다. 우리에게 친숙한 언어로 쓰인 이 이야기는 입자 규모에서 서술된 환원주의적 이야기와 양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거시 규모의 서술에서는 우리의 행동이 중요하고, 우리의 선택이 미래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우리의 결정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 불변의 물리 법칙으로 운영되는 미시 세계에서도 그럴까? 그렇다. - P223


동일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지만 사람은 각자의 모양으로 살아간다. 내가 가진 입자 배열은 나만의 방식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반응한다. 이는 사람이 자유 의지를 가지고 있어 내가 하는 선택이 나와 우리의 미래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 때문인걸까 생각했다. 이는 책임과도 연결된다.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향후 어떤 영향을 가져다줄지 모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일 것이다. 

사실 의식이란 것이 물리 법칙과 연결된다는 것은 이론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럼에도 이 자유의지 부분은 흥미로웠다.


비상한 천재가 아닌 한, 상상의 세계에서도 언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가 있음으로 현실세계에서 잘 보이지 않는 다양한 가능성을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먼 것과 가까운 것, 실질적인 것과 몽상적인 것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고, 어렵게 얻은 지식을 교육으로 전수하여 후손들의 수고를 덜어 줄 수 있으며, 계획을 공유하여 협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또한 우리는 여러 사람의 창조력을 하나로 결합하여 막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고, 자신을 돌아봄으로써 생존보다 중요한 목표를 추구할 수 있으며, 자음과 모음, 그리고 마침표를 정교하게 배열하여 시공간의 특성을 서술하거나 사랑과 죽음을 감동적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 P233


과학에서 언어까지 다룬다는 것이 너무 간다 싶었다. 어쨌든 언어는 분명 우리에게 중요하다.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선조들의 과거를 알 길이 없을지도 모른다. 사진이 있기 전까지는 기록 자체가 없을테고 남아 있는 것은 유적이나 유물 뿐이니 그것이 어떤 의미를 나타내는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언어의 기원은 정확히 밝혀진 바 없어 수수께끼이지만, 우리의 사고력에 언어가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든다. 언어는 스토리텔링으로, 신화까지 다양한 모양으로 전파되면서 상상력을 확장해갈 수 있게 만들었다.



"화폐 자본의 이자와 구분되는 고리대의 문제"(Harvey, 1994[1982]: 343)는 노동자, 빈민의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는 개인 신용의 확대를 팽창하고 있는 현대 금융 산업의 구조 속에서 더더욱 명료해지는데, 신용이 없는 빈민에게 탈취한 높은 이자수익이 자산가계급의 낮은 이자율을 보장하는 금융적 안전장치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Parker, 1988). 한국에서는 이러한 먹이사슬 구조의 말단에 성매매 업소 종사 여성이 있다. - P111 


대출을 받아보면 알겠지만 자산이 많고 신용도가 높을수록 이자율이 낮고 반대로 자산이 없는 경우 신용도가 낮아서 이자율이 높다. 이는 신용도가 낮은 이들을 빚의 악순환으로 몰게 하고 빚투에 빠지게 만든다. 빚을 빚으로 갚아야 하게 되고 그 빚은 단시간 내에 없어지지 않는다. 먹이사슬의 가장 하단에 위치하는 성매매 업소 종사 여성들은 고리대금으로 이자만 갚아나가는데도 이자가 탕감되지 않는 현실을 마주하게 되고 이는 그 곳을 떠날 수 없게 만드는 한 요인이 된다. 


물론 이것만이 원인은 아니다. 여성들은 빌려준 돈을 나에 대한 신용으로 생각하여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고리대금을 제공하는 업자가 여성을 믿고 빌려준 고마운 사람으로 둔갑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이렇게 건네진 돈은 결과적으로 여성들을 성매매 집결지에 안착시키는 수단이 된다.






p.s) 오늘 온 책들^^; 늘 책탑 사진을 귀찮다고 안찍는데 오늘은 간만에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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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4-16 19:4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론물리학 하시는 분들이 불교에 관심 갖게 된다는 뭐 그런 구절 본 것 같아요 ㅠㅠ 알고 싶은데 어려운 물리 ㅎㅎ 과학하면 저는 미드 빅뱅이론 생각나요. 아이랑 재미있게 봤거든요. 4월은 언제부턴가 슬픈 달이 된거 같아요. 기울어지던 배와 아이들 모습 ㅠㅠ 꼭 진싱규명돼서 유가족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ㅠㅠ

거리의화가 2022-04-16 20:49   좋아요 2 | URL
저는 의외로 물리가 공식 이런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면 재밌는 것 같더라구요^^; 그나마 과학 4과목 중에서 물리가 가장 재미났던 것 같아요. 양자역학 이런 것까지는 난해하지만.
4월은 저도 4.3에 이어 세월호 사건이 있다보니 매년 가장 슬픈 달이 되는 것 같아요. 어찌 보면 날은 가장 찬란한데 말이죠. 아이러니합니다. 8년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진상규명이 안되서 답답합니다. 유가족들은 오죽하겠어요ㅜㅜ 가려져 있는 진실이 부디 수면 위로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책읽는나무 2022-04-16 20: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탑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은 것 같아요~^^
앞으론 책탑 사진도 좋은 배경에서 찍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락방님 회사 옥상 책탑 사진도 이쁘더군요^^

6 월 10일이 조사기한 종료일인가요?
정권까지 바뀌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ㅜㅜ
빨리 진상규명이 되어야 할텐데요.
정말 술을 부르는 날입니다ㅜㅜ

거리의화가 2022-04-16 22:40   좋아요 2 | URL
다락방님 책탑 사진이야말로 빛이 쫙 들어오는 자연광이라서 예쁘잖아요 제 배경은 찍을 때가 마땅치 않아서 늘 고민입니다 책상은 늘 너저분해서 안 예쁘길래 LP플레이어 위에 올려놓고 찍었네요^^;
네 종료가 임박해서 걱정이에요 정권이 바뀌면 흐지부지되거나 하진 않을지ㅠㅠ
맥주에 라볶이튀김세트 괜찮더군요.

새파랑 2022-04-16 2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벌써 8주기군요 ㅜㅜ 이런 안타까운 비극이 이젠 안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사진속 날씨는 더 좋아보이네요. 책탑사진도 예술입니다~!!

거리의화가 2022-04-16 22:43   좋아요 2 | URL
인재가 이젠 정말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ㅠ
오늘 날씨는 정말 덥지도 않고 쾌적하고 볕까지 좋아서 최고였습니다! 책탑 올리지만 말고 열심히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