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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 ㅣ 역비한국학연구총서 39
홍정완 지음 / 역사비평사 / 2021년 9월
평점 :
봄부터 함께 하던 독서 모임을 쉬었다. 독서 모임의 순기능을 알기는 하지만 일이 바빠지자 모임을 위한 책까지 읽기가 버거워진데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읽어보겠다는 욕심이 커져서 한동안 쉬기로 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런 욕심을 채우지는 못한 것 같다). 모임을 쉬더라도 모임방에는 계속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매달 어떤 책을 읽는지는 알고 있었다. 다른 책은 몰라도 이 책은 예전부터 궁금했고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기 때문에 읽어보자 생각했다. 매달 말이 독서 모임이라 조금 일찍 읽은 감은 있지만 임박해서 읽으면 그만큼 집중을 못할 것 같아서 여유가 있을 때 읽어보자 생각했다. 주중부터 가지고 다니기는 했는데 도무지 짬이 안 나서 몇 페이지 읽지도 못하고 결국 어제 하루를 통을 내어 읽었다. 역시 그러기를 잘한 것 같다.
이 책은 현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건설의 기본방향이 형성되었던 1960년대 이전까지의 시기를 사상사적인 관점에서 밝힌다.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과학자들이 가지고 있던 사상적, 학문적 지향을 살펴봄으로써 한국과 세계의 정치적 지형의 변화에 따른 학계의 변화와 흐름의 전환을 확인할 수 있다.
책의 부제가 이데올로기와 근대화의 이론 체계이다. ‘근대화’라는 용어는 다양한 함의를 띠는 것이지만 저자는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전반까지 남한의 자본주의 체제 건설을 둘러싸고 나타났던 사상적 동향을 아우르기 위한 것(P17)으로 사용했다. 남한의 경우, ‘근대화’라는 용어는 한국전쟁의 전선이 교착되고 전후복구와 재건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1950년대 후반에 이르면 지식인층에 크게 확산되었고, 4월혁명을 거치며 더욱 고조되는 가운데 1964년 박정희 정권의 출범과 함께 ‘조국 근대화’라는 정권 차원의 슬로건으로까지 등장했다. 그런 측면에서 당시 한국 사회에서 제기되었던 ‘근대화’는 냉전과 전쟁-분단과 결부된 안팎의 힘들이 교차하는 속에서 체제의 이념적 폭이 특정 범위로 제한되는 가운데, 그러한 이념을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제반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지칭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P19).
해방 전후 남한의 정치학 이데올로기의 지형은 어떠했을까. 당시 정치계의 주도 세력은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공부를 한 이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각 이상으로 당시의 정치학자와 지식인들은 다양한 세계 사조로부터 영향을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20~30년대 유럽을 선도하던 전체주의 정치 원리를 수용하는가 하면 일본으로부터 사회적 법치국가 형태를(독일의 바이마르 헌법 수용) 받아들이기도 했다. 영국과 미국의 번역서로부터 자유주의 정치 제도를 받아들이면서도 다원주의 형태의 경제 민주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전 한국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영향이 지속되는 가운데 신고전파 경제학 교과서가 출간되고 케인즈 경제학 등 비마르크스주의 경제학에 근거한 학자들의 움직임이 활성화되었다. 케인즈 이론은 일반적으로 불황에 대한 대비에서 나온 것이므로 한국 경제계는 이를 장기성장이론으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적용하고자 했다.
후진국 개발론은 후진국 사회 구조를 문제 삼고 후진국 개발 방향을 논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는 후진국의 경제 현상과 특질을 진단하고 타개할 모델을 구축함으로써 기본 틀을 제공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 정치학계에서 행태주의 정치학이 형성되고 주류가 된다. 이는 기성 정치학의 역사적 접근법이나 추상적 철학과 제도적 접근(이 문제라고 보아)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추자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과학적 조사와 검증 방법이 요구되었다. 행태주의 정치학은 첫째, 정치 연구의 초점(대상)을 ‘행태(behavior)’, 특히 집단, 과정, 체계에 깃든 정치행태에 두었고, 둘째, 방법론으로서의 ‘과학’, 즉 양화(量化)할 수 있는 관찰 가능하고 증명 가능한 사실적이고 경험적인 조사방법을 강조하여 자연과학과 흡사한 것으로 구축하려고 했다. 셋째, 미국 정치의 자유주의적 다원주의에 집중하여 자유의 가치들에 의해 활성화된 다원주의 정치체계의 기본 윤곽을 설명하고 확인하고자 했다(P156). 한국은 한국전쟁 무렵 행태주의를 받아들이고 1960년대 확산시켰다. 행태주의를 주도적으로 수용한 윤천주는 저개발국가의 정치체제를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중요시할 것이 아니라 정치 교육을 통해서 실질적인 개선을 이끌어내야한다고 보았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미소를 모두 반동 세력으로 규정하며 반제민족전선통일의 제3세계 세력에 혁명성을 부여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정치학자들은 소련과 미국을 축으로 한 이념대립과 남북한 체제대결 속에서 ‘반공주의’를 기반으로 한국 사회가 추구할 새로운 민주주의 이념을 설계해야 했다. 해방 후 전쟁 이전까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 혹은 온건 사회민주주의 형태에 귀를 기울였던 이들은 이제 그 설계 방향을 바꾸어야 했다.
특히 반둥회의 후에는 중립성과 균형성은 거부되고 반공주의에 더 힘이 실린다.
1956년 소련에서 평화공존 노선이 선택되고 제3세계 국가의 비동맹 중립 노선이나 반식민주의에 근거한 자립경제체제 건설 운동이 호응을 얻으며 국내 학계 분위기가 잠시 전환된다. 지식인들은 현실주의 국제 정치 이론을 받아들이며 미소 중심의 대외 정책을 비판하고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재고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후 제3세계의 쿠데타와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를 정치적 후진성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승만에 비판적이던 지식인 세력은 정권 권력 구조와 통치 행태를 비판하는 근거로 이를 사용하기에 이른다.
1950년대 후반 제3세계 국가들의 동향을 다루는 텍스트들에서 제3세계 군부 세력의 집권이나 집권자의 독재적 경향 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정당화하거나 ‘민족혁명‘의 일환으로 우호적인 관점에서 다룬 글을 찾기는 힘들다. 물론 경제 분야에서 ‘후진‘국가들의 경제개발 과정에서 국가(정부)와 시장(민간 자율)의 관계, 정부 정책의 위상 등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뉘어 있었다. 그중에서 정부의 역할이나 경제개발계획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자들도 적지 않았지만, 그들 논의에서 경제개발을 위한 정치적 동력과 권력형태, 정치체제의 재편 등 ‘발전체제(developmental regime)‘를 상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P311).
1960년 4월 혁명이 일어나자 학생을 중심으로 후진성을 탈피하고 발전 체제를 수립하기 위한 운동이 벌어진다. 제국주의 지배질서에 의한 예속 체제를 변혁시키고자 탈냉전, 민족자주, 평화 추구의 흐름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5.16 쿠데타가 벌어지면서 이 흐름은 꺾일 수밖에 없었다. 군부 쿠데타 세력은 자신들이 미 제국주의에 반하여 민족적 자주의 기치를 내걸고 쿠데타를 벌였다고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놀라운 것은 군정기에도 이들은 자신의 정권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제3세계 국가 동향을 통해 혁명의 필요성(’이러니까 혁명이 필요해’)을 설파하고 이용했다는 것이다.
형식상의 민주주의 법질서를 파괴하고 나선 5·16 혁명과 그 후의 사태 진전은 민족주의적인 관점으로 보지 않는 한 그 의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5·16 혁명이 초기에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 제국의 반대와 의혹을 무릅쓰고 성공하였다는 사실에서 한국의 이익은 한국이 스스로 결정하려는 민족적인 자주독립의 정신을 찾아볼 수 있다. (…) 한국민을 수천년간에 걸쳐 지배하여온 사대주의적인 사상이 정면으로 부정된 것을 의미한다. 이 점에서 우리는 5·16혁명의 그 사상적 연원을 멀리 3·1운동의 정신에서 구할 수 있다(P341).
이 책이 특별한 것은 한국 사상사를 확인하기 위해 한국과 미소를 중심으로 한 분석에서 나아가 일본, 유럽 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의 노선과 동향을 살폈다는 데 있다. 말미에 언급했듯 1950~60년대 학계는 제3세계의 동향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대중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책일 수 있을 것 같으나 한국 초기 정치 지형의 흐름과 사상사적 이해를 위해 아주 훌륭한 교과서가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