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세상에 이런 일이' 류의 한 방송 프로그램에 머리에 다닥다닥 핀을 꽂은
여인이 나왔다.
화려한 핀으로 온통 도배한 머리와 하늘하늘한 차림으로
자칭타칭 '공주'라는 것이다.
그는 조그만 수레를 끌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많이 찾는 공원에서
커피와 율무차 등속의 차를 팔고 있었다.

몇 년 전 남편의 사업이 망하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우울증을 앓게 되었는데
그런 아내를 달래주려고 남편이 화려한 큐빅의 머리핀을 하나 사다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예쁜 머리핀을 꽂자 그렇게 기분이 좋더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머리핀을 사고 빈틈없이 머리에 꽂다보니
그 동네의 명물로 부각되고 방송을 타게 된 것.

그의 머리핀 사랑은 머리에 꽂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집게 대신으로 
집안 살림 여기저기 사용할 정도에 이르렀다.
매일매일 새 머리핀을 한 바구니씩 사는 건 기본.
잘 때 비로소 핀들을 머리에서 빼는데 100개가 넘는 핀들을 뽑는 데 20여 분이 걸렸다.

그 모습이 묘하게 잘 어울리기는 한데 내 눈에는 아무래도 좀 이상해 보여서
마이 도러에게 물었다.

"너는 저 아줌마 머리핀 100개도 넘게 꽂은 것이 안 이상해? 예뻐?"

"응, 예뻐. 하나도 안 이상한데?!"

평소 레이스 달린 옷은 싫다고 거부하는 아이가 그녀의 화려한 화장에
묘한 머리와 차림을 보고도 이상타 안하고  예쁘다고 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런데 그의 이웃이나 공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그 공주님을 칭찬하는 것이었다.
어른 공경하고 어려운 사람 도울 줄 알고......
왠지 그녀를 끝까지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싶어하는 나의 속물근성이 부끄러웠다.

저녁에 또 모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신기한 포장마차 열전'이라고 하여
독산동의 쉴 새 없이 춤추는 빨강머리 아줌마 포장마차를 보여 주더니만.
대형 불판 위에 떡볶이를 양념장과 섞으며 얼마나 몸을 흔드는지
지나가는 차들이 창을 열고 "파이팅!"을 외치고 지나갈 정도였다.
그 앞에 턱을 괴고 앉아 구경하는 동네 사람들도 있고 심지어는 함께 춤을 추는 손님까지......

그렇게 남의 눈 의식 안하고 신명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아닌 게 아니라 부럽다는 생각마저 슬그머니 든다.
내 사는 꼴은 왜 이리 뜨뜻미적지근하고 엉거주춤한지........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리포터7 2006-09-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그분들도 어떤계기로 그렇게 과장되게 살아야 만족을 하나봅니다..저도 그런분들을 TV에서 보면 신기해하다가도 살짝 민망해질때가 있던데요..어떨땐 찌릿찌릿 제가 다 창피해가지곤 채널을 돌린답니다..하지만 그분들의 표정을 보면 남의식 안하고 사는것에 대한 크나큰 만족감으로 행복해 보여요..부럽기도 해요..아직까지 제가 걸친 삶의 가식들이 본질을 감추고 있지만 아마 할머니나이쯤 들면 저의 본 모습이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ㅋㅋㅋ

건우와 연우 2006-09-27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하나도 엉거주춤하지 않다구요, 뭐.
로드무비님이 안나타나시면 목을빼고 기다리고 글올리시면 열광하는 팬들이 줄을 섰는데 그리 말씀하시면 서운하다구요...^^
요즘 자주 적조하셔서 저까지 기운이 빠지잖아요.
자주 세상사를 들려주세요. 로드무비님만의 넓고 깊은 눈으로요...

로드무비 2006-09-2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우와 연우 님, 아이고 황공한 말씀을.
기분은 무지 좋습니다만.ㅎ
어떤 때는 책만 읽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지난 며칠 동안 리뷰 쓰고 싶어지는 책을 몇 권이나 읽었답니다.
하나하나 올릴 테니 아낌없는 성원 부탁.(비굴비굴~)
(님도 요즘 서재 적조하셨어요?
연우 얘기 듣고 싶어요.)

해리포터 7님, 맞아요, 어떤 분은 보고 있기 민망해요.
그런데 어제 그 공주님은 좀 묘했어요.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내가 이상한 사람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더라고요.
아이의 시선이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했고요.
노래자랑 같은 데 나와서 끼를 맘껏 발산하는 사람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사람을 보면 재밌고 한편 부러워요.
하긴, 뭐 우리는 또 우리 방식대로 뭔가를 발산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Mephistopheles 2006-09-27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반적이지 않은 삶의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기인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사람을 보고 이런 저런 판단이 생기는 건 당연한 건데..뭘 그런걸로
부끄러우실 필요까지야....^^

로드무비 2006-09-27 1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피스토님, 그렇다고 많이 부끄러워 한 건 아니고요.( '')
'편집증 같은데...'하고 제멋대로 병명을 떠안겼거든요.
그런데 딸아이가 이쁘다고만 하니... 그런가보다 접수했습니다.
아이의 눈이 정확하잖아요.^^

마노아 2006-09-27 1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멋에 산다고, '제멋'을 즐길 줄 아니 대단해요. 민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렇게 해보는 것도(사는 게 아니라) 필요한 것 같아요. ^^

비자림 2006-09-27 1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방송에서 보았는데, 반짝이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어떤 아주머니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그 분에게도 온갖 종류의 반짝이 원피스가 많았고 심지어는 스팽글을 사러 직접 다니기도 한다는.. 밤무대 옷차림 같은 그 옷을 보고 우리 아들들이 예쁘다고 하며 신기해 하던 게 생각나요. 자신의 개성을 사랑하고 표현하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에게도 그들의 행복감을 전염시켜 좋더라구요.

클리오 2006-09-27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 애들은 원래 화려하고 원색의 것을 좋아하잖아요...

로드무비 2006-09-27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 호호~ 그런 점도 있겠지만 그만큼 자연스러워 보였다는 거겠죠.
주하는 요란한 차림 질색이거든요.^^

비자림님, 사람 사는 얘기 참 재밌어요.
저도 반짝이 옷만 입는 아줌마 텔레비전에서 봤거든요.
어떤 부부는 또 반짝이로 커플룩을 해 입더만요.
가끔 제정신인지 진짜 아리송한 사람도 나오는데
사실이야 어쨌든 본인이 행복하다면 된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더구나 주변까지 즐겁게 해준다면야......^^

마노아님, 자기만의 독자적인 멋을 찾아낸 것도 대단해 보입니다.
언제 님이 먼저 시범을.^^

가랑비 2006-09-27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속물 근성으로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싶어하신 게 아니라... 그게 뭔가 튀려고 하는, 그렇게 해서 버티려고 하는 안간힘으로 보여서, 그런 안간힘을 그냥 웃으며 보자니 민망하셨던 게 아닐까요.

로드무비 2006-09-27 16: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FTA반대 벼리꼬리님, 그건 아니고요.
머리핀에 너무 집착하는 게 좀 이상해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책이나 먹을 것에 집착하는 저도
저 여인이랑 다를 바 없지 않겠어요?^^

blowup 2006-09-27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지점을 넘어간 사람들을 보면 '나도 저기까지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봐요.
그런 모습이 슬퍼 보일 때도 있고, 그저 우스울 때도 있는데.
그것과는 다르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때도 있어요.
한끗이라는 생각 때문에요.
주하에게 물어보셨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로드무비 2006-09-27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지점을 넘어간 사람들이라......
맞아요, 한끗이죠.
최소한 그들을 비웃긴 싫어요.^^

sooninara 2006-09-27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인들..저도 이해가 잘 안돼요. 제가 너무나 평범한 인간이라서 그럴까요?

전호인 2006-09-27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에 따라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 것 뿐이겠지요. 우리 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기인처럼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그것이 세상사는 맛이 아닐까 합니다. 하긴 가끔 자유분방하게 사는 사람이 부럽기도 하지만........

로드무비 2006-09-28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 안녕하세요?
살아가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는 말씀에 공감합니다.
그런데 제가 절대 도달할 수 없는 어떤 경지(?)에 가 있는 분들 보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더라고요.^^

수니나라님, 기인에 따라 달라요.
기인이라고 몽뚱거리기도 좀 거시기하군요.^^

올리브님, 그러니까요.
전 용감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연을 떠나서......

2006-09-28 2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6-09-29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크 트웨인님, 그 책 안 샀어요.
함께 빌려주세요. 읽고 싶군요.^^

oooiiilll 2006-09-2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뜻미적지근하고 엉거주춤하다는 표현이 묘한 동질감을 불러 일으키네요. 가끔은 기름칠 해서 윤도 내고 싶고 팔팔 끓여 소독도 해주고 싶은데말이죠.

로드무비 2006-09-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디트님, 전 아예 해체해서 새로 조립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