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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베, 조금만 기다려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초 신타 그림,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6년 3월
평점 :
깊고 캄캄한 구덩이 속에 개가 빠졌습니다.
"로쿠베, 바보!"
짖는 소리로 로쿠베인 줄 알게 된 아이들은 속이 상해 개를 욕합니다.
손전등을 가져와 구덩이 속의 개가 로쿠베임을 확인하고, 아이들은 힘을 내라고 외칩니다.
로쿠베도 큰 소리로 짖어서 아이들에게 화답해 줍니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온 엄마들은 와글와글 시끌시끌 떠들기만 하다가
남자가 없어서 안되겠다면서 그냥 집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칸이 구덩이 밑으로 내려가 보겠다고 하자 칸의 엄마는 위험하다며 눈을 부라립니다.
아니, 무슨 엄마들이 그럴까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골프채를 든 아저씨는 그 부근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하자,
"사람이었으면 큰일날 뻔했네!"
한마디 하고는 그냥 가버립니다.
아이들은 과연 어떻게 로쿠베를 구했을까요? 혹은 구하지 못했을까요?
이야기가 자못 흥미진진합니다.
궁둥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구덩이 앞에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아이들과 엄마들의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 있습니다.
와글와글, 시끌시끌, 후우후우,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사용하여 아이들의 동작을
그대로 전달함으로써, 책을 읽어내려 가는 이도 바로 그 구덩이 앞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그뿐인가요, 바구니가 구덩이에 내려가는 장면에서,
기
우
뚱
이라고 정말 활자를 기울여서 읽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철렁하게 하는 센스라니!
상냥하고 어른보다 현명한 아이들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기만 하다가, 남자가 없어서 안되겠다고 그냥 가버린 엄마들이
마음에 영 걸리긴 하지만요.
오래 전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들을 읽으며 이상하게 우리나라의 동화작가 권정생을 떠올렸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글쓴 이의 시각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