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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 -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ㅣ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손문상.오영진.유승하.이애림.장차현실.정훈이.최규석.홍윤표 지음 / 창비 / 2006년 2월
평점 :
--외국인 노동자들을 불법으로 고용한 업주들이 구속되었습니다.
특히 이들 업주들 중 일부는 불법취업한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내국인 직원과 같은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 것으로 밝혀져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2006년 회사에서 신상품 개발 실험 도중 이상한 약을 마시고 홍 대리는 2106년의 세계로 날아간다.
그런데 이 100년 뒤의 세상이 요지경이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내국인 수준의 임금을 지급한 업주가 구속되고, 그것이 큰 뉴스거리로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이다.
미혼의 직장여성에 대한 적당한 언어폭력은 법으로 보장되어 있는데 이유는
그렇게라도 눈치를 주지 않으면 결혼할 생각을 않고, 그것은 곧 저출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란다.
날씨가 화창한 날의 외출도 자제한다. 왜냐?
피부색 측정기가 있어 16등급 이하로 피부색이 짙어지면 취업, 사회보장 등에서 차별을 받게 된다.
홍윤표의 만화 주인공 천하무적 홍 대리는 탄식한다.
"미쳤구나,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아? 내 비록 생각 없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이건 아니야!"
그런데 그를 감시하고 지도하는 국가차별위원회에서 파견된 요원은 홍 대리의 말에 콧방귀를 뀐다.
"이 차별들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홍 선생이 살던 시대에 존재했던 차별들을
모두 법으로 만들었을 뿐이라고요!"
작년에 읽은 <십시일반>에 이어 8인의 만화가가 다시 인권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이시옷>을 읽었다.
그런데 여덟 편의 만화 중 비정규직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맨 앞 손문상의 작업과, 홍윤표의 만화
'이상한 나라의 홍 대리'가 제일 시선을 끌었다.
한밤중에 자고 일어나, 부의 세습이며 등급제 사회를 말하는 텔레비전 앞에서 작업복도 벗지 않고 앉아
한숨 쉬고 있는 부모에게, "잘 된다는 보장은 없지만 열심히 살아볼게요."라고 말하는
어린 아들의 대사라니!(손문상의 한 컷 만화)
<사이시옷>은 비정규직 노동자,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 비혼모 들이 받는 차별뿐만 아니라,
'해리포터와 호구왔다 마법학교'라는 정훈이의 작품을 통해 인생의 한 시기를 아주 당연하게
간섭받고 억압받는 입시생들의 애환까지 비틀어서 폭넓게 다루고 있다.
최규석의 '용서 받지 못한 자'라고 할 수 있는 '창'은 군대 내의 한 으슥한 막사 풍경을 리얼하게 보여준다.
공부를 집중적으로 하기 위해 당분간 합숙하러 떠난다고 집에 거짓말을 하고 한 시설에 틀어박혀야 했던
열여덟 살 소녀의 실화 '축복'은 가슴 먹먹한 이야기지만, 유승하의 독특한 펜선이 살아 있는
그림 때문인지 조금도 칙칙하지 않다.
소녀들과, 소녀가 사는 집과, 분식집이 있는 골목과, 동네 목욕탕 속 쭈그렁 할머니까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 같은 게 느껴진다.
이애림의, 형식적인 면에서 아주 파격적이고 실험적인 만화도 인상 깊었고.
두 낱말이 어울려 한 낱말을 이룰 때 그 둘 사이를 이어주는 사이시옷, 그리고 '사람 인(人)'이라는
글자와 연결시킨 '사이시옷'이라는 제목은, 만화가들이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과 참 잘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