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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연인 이브몽땅의 고백
이브 몽땅 지음, 임자영 옮김 / 꿈엔들(꿈&들) / 2003년 3월
평점 :
품절
1991년 11월 퇴근길, 나는 홍은동의 비디오 가게 으뜸과 버금으로 가는 버스 안에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 라디오에서 프랑스의 국민배우 겸 가수 이브 몽땅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의 대표곡 '고엽'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유언이 소개되었다.
나는 여한이 없다, 삶에서 할 수 있는 것 누릴 수 있는 것을 전부 해보았다.
재능 또한 아낌없이 소진했다......
영화를 찍다가 현장에서 심장마비로 죽었다니 나는 그의 삶이 부러워 미칠 것 같았다.
늙어 병상에서 시난고난 앓다가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니고 자신이 평생 해오던 일을 하다가
그렇게 홀연히 감쪽같이 죽음을 맞이하다니!
나는 평소 이브 몽땅이라는 가수가 에디뜨 삐아프의 애인이었고 내가 좋아한 프랑스의 배우
시몬 시뇨레의 남편이었던 걸로만 기억했다.
--참 잘나고 매력적인가 보네! 그런 멋진 여성들의 마음을 빼앗다니!
그렇게만 생각했다. 코스타 가브라스의 영화와 <마농의 샘>에서 그를 만났지만 이상하게 그는 내게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도리어 언젠가 텔레비전 명화극장에서 본 영화 <갸르송>이라는
영화 속의 웨이터 역할이 꽤 깊은 인상을 남겼을 뿐이다.(이 책 속에 그 영화 이야기도 나오는데
역시나 끌로드 소떼 감독의 영화였다!)
'여한이 없다'는 유언을 남기려면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나는 그것이 내내 궁금했나 보다.
--그 남자는 유명한 가수이고 배우였으며, 연애의 명수인가 하면 철저한 맑시스트였다.
(...) 연애를 사랑처럼, 사랑을 연애처럼 한 남자.(...)
학교를 다녀본 기억이 거의 없는 그 남자. 그러나 그의 지성은 당대의 정점에 있었다.(옮긴이의 말)
이 책은 1988년 가을부터 1990년 여름까지 이브 몽땅의 집에서 한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만들어졌다.
한 가난한 이탈리아 공산당의 아들로 태어나 부둣가를 쥐새끼처럼 쏘다니며 보낸 어린 시절,
파시스트들의 박해를 피해 1930년 초 프랑스로 귀화를 한 부모님을 따라 프랑스인으로 살게 된
이브 몽땅은 열한 살에 국수공장에 입사한다.
열다섯 살에는 미용실 심부름꾼으로 일하며 어깨 너머로 기술을 배우고, 어느 날 새끼당나귀
한 마리를 상품으로 내건 콩쿠르에 출연하면서 가수의 인생을 걷게 된다.
생국수가락을 씹어 먹으며 배고픔을 견딘 어린 시절의 경험 때문인지 공산주의자인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은 건지 '재산을 모은다는 것은 절도행위다'는 조셉 프루동의 말을
평생 좌우명으로 여기며 살아온 그이기도 하다.
에디뜨 삐아프, 시몬 시뇨레, 마릴린 먼로, 로미 슈나이더 등의 여성과 나눈 사랑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자크 프레베르 등 문인들과의 교류, 러시아를 방문하여 후르시초프를 만나고, 티토 대통령,
아옌데 등과의 만남의 장면은 입술이 마를 정도로 재미있게 단숨에 읽힌다.
"죄송합니다만 흐루시초프 각하, 각하의 당이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면전에서
큰소리를 쳤다니 알아볼 쪼 아닌가!
--시몬은 나의 쾌할함, 나의 '살아가는 기쁨', 지나친 흥분 따위가 흔히 인위적인 것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내 정신은 다른 데에 가 있었다.
시연회나 시사회가 다가올수록 정신이 나갔다가 들어왔다 하는 일이 더욱 심해졌다.
사람들은 배우들의 자아도취니 이기주의니 운운한다. 물론이다. 나는 자아도취적이다.
단상에 올리기 전이면 짐승을 잘 먹여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을 살찌우지 않는다면 누가 해주겠는가?
3천 명의 관중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기 위해서는 내 속에 에너지를 가득 채우지 않을 수가 없다.(262쪽)
자신의 삶을 자신이 가진 재능을 가지고 정면승부를 한 남자, 함께 공연하게 된 대부분의
매력적인 여성들과 사랑을 나누었지만 그 사랑이 미심쩍지 않고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짓게 되는 사람은
이브 몽땅이 거의 처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사랑이나, 자신의 정치적인 견해에 대한 서술, 인생을 바라보는 그의 낙관적인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14년 전 퇴근길 버스 안에서 우연히 들은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여한이 없다!'는 유언이
순순하게 그대로 수긍되는 것이었다.
젊은날의 시몬 시뇨레와 이브 몽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