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엄마는 꿈속에서도 길을 못 찾아 헤매더라."
"내 꿈 꿨더나? 그런데?"
"자꾸 엉뚱한 데로 가서 내가 엄마 팔을 질질 잡아 끌어 집으로 데려왔어."
"휴, 다행이다."(며칠 전 딸아이와의 대화)
지난주 어느 님이 알려주신 한 기독교 사이트에 들어갔더니
설교와 찬양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옆에 링크해 놓은 테마별 제목이 눈에 띈다.
- 나의 무능과 궁핍을 인정하라.
(거지이면서 부자인 체하지 말라.)
솔직하게 말해, 나의 무능과 궁핍은 최근 절정에 달했다.
알라딘 1일 특가 난로가 눈에 번쩍 띄어 주문했다가 겨울 두 달 동안 전기요금을
오십만 원이나 더 무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 첫 번째.
(무능이라기보다는 흥청망청이라는 죄목에 더 가까울 듯.)
특히 많은 눈이 내렸던 올 겨울, 분위기 있게 물주전자까지 머리 위에 받치고
낮이고 밤이고 우리집을 따뜻하게 데워준 빨간색 난로는
알고보니 엄청난 양의 전기를 잡아먹는 괴물이었다.
전기세를 관리하는 관리사무소의 직원이 부리나케 달려와 팽팽 돌아가는
전기계량기 속을 보여주었다.
낭비한 전기도 전기고 돈도 돈이지만 무엇보다 나의 안일과 나태와 무지에
무참하고... 가슴 아팠다.
딸아이가 저런 꿈을 꾼 데도 다 이유가 있다.
<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이 개봉되던 날, 집에서 가까운 극장을 놔두고
3D로 영화를 보기 위해 딸아이와 딸아이의 친구와 셋이 집을 나섰다.
어마어마한 액수의 전기요금이 머리속에 달라붙어 있어
조금이라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대중교통을 이용한 것까진 좋았다.
집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극장 가는 버스를 본 것 같은 곳'에 내렸다.
그런데 버스가 안 보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15분쯤 걸어야
우리가 탈 노선의 버스 정류장이 있다는 것 아닌가.
오전에 야심차게 내건 야무진 얼굴을 끝까지 바꾸지 않고 나는 두 아이와 함께
눈길에 엎어지고 자빠지며 그 정류장까지 갔다.
그런데 또 물어보니 딱 한 개 있는 그 노선의 버스는 몇십 분에 한 대씩 온다는 것이다.
시간을 넉넉하게 잡고 나왔지만 길에서 낭비한 시간이 많아
영화 시간에 맞추려면 불안불안했다.
"안 되겠다, 우리 택시 타자!"
나는 단호한 표정으로 택시를 불러세웠다.
중간에 택시를 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버스를 타고 왔고 많이 걸었기 때문에
요금을 상당히 절약했을 거라고 마음의 위안을 삼기로 했다.
그런데 뭔가 느낌이 이상해 차창 밖을 보니 우리 동네 부근을 지나고 있는 게 아닌가.
기사님께 물어봤더니 집에서 바로 택시를 타고 왔으면 요금을
절반 정도만 냈어도 됐을 거라고......
(불안하고 당황하면, 더욱더 당혹스러운 일들이 줄줄이 생긴다.)
2주 전에는 여러 가족이 어울려 속초에 놀러갔다.
돌아오는 날 갑자기 설악산 산행이 이루어졌는데
헐렁하고 납작한 부츠를 신고 갔던 나는 눈길이 무서워 절반쯤 오르다 산행을 중단했다.
다른 한 명의 낙오자와 함께 간이주점 걸상에 죽치고 앉아 감자전에 동동주를 마셨는데,
아이젠을 운동화에 두르고 두 시간여 일행과 함께 목표 지점까지 올랐던 딸아이는
"엄마 데려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다"며 여러 차례 아빠를 돌아보며, 또 돌아보며
눈물 그렁그렁한 눈으로 동의를 구했다고 한다.